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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웅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대체역사

이원호
작품등록일 :
2018.01.29 14:52
최근연재일 :
2018.01.29 14:57
연재수 :
10 회
조회수 :
2,662
추천수 :
22
글자수 :
52,848

작성
18.01.29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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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대영웅 8화

DUMMY

그 순간 자객이 몸을 솟구쳤고 위사가 휘두른 칼날이 허리를 스쳤다. 천장으로 빨려든 자객을 향해 위사 한 명이 단검을 날렸으나 반응은 없다.


검을 내린 윤의충이 한 걸음 다가섰다. 탈무아가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두건을 벗어라.”


윤의충도 두 눈만을 내놓고 얼굴을 가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 윤의충은 몸을 솟구쳤다.


“내버려 둬라!”


아래쪽에서 탈무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놈은 내 목숨을 구해준 놈이다.”






그로부터 세 식경쯤 후, 윤의충은 바닷가에 돌출된 바위 위에 앉아 있었다. 주위는 아직도 어두웠다. 바위에 부딪친 파도가 물보라를 위쪽으로 뿜어 올렸다. 바람이 센 날씨였다.


한동안 좌우를 둘러보던 그는 몸을 일으켰다. 바위에서 뛰어내린 그가 백사장 위를 두 마장쯤 달려 올라가자 낮은 언덕이 나타났다. 그는 몸을 굽히고는 조심스러운 동작으로 언덕을 올랐다.

그러자 아래쪽에 정박한 배가 희미하게 보였다. 대선(大船)이다. 돛대가 두 개에 이층 갑판이 있는 무역선이었는데 돛을 내린 채 물결에 흔들릴 뿐 인기척이 없다.


서너 걸음 더 다가가 백여 보쯤 앞에 있는 배를 바라보던 윤의충은 문득 머리를 돌렸다. 뒤쪽의 나무숲 사이에 굵은 나무 둥치 하나가 서 있었다. 이십 보쯤의 거리였다. 윤의충은 나무 둥치를 바라보고 섰다.


“네놈이 이 근처로 올 줄 알았다.”


그가 성큼성큼 다가서자 나무 둥치가 움직였다. 검은 옷의 자객이었던 것이다.


“몽골 사신을 베려는 놈, 그것이 누구의 명이었는지 대라.”


등에 멘 검을 선뜻 빼들었을 때 사내도 검을 빼었다. 그러나 입을 열지는 않는다.


윤의충은 몸을 날렸다. 사내의 무술이 이제까지 겪은 대륙의 어떤 무술보다 독특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눈을 부릅뜬 얼굴이다. 뛰면서 내려친 칼날을 사내가 비껴 피하면서 옆쪽 나무 둥치에 붙는가 했더니 다시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윤의충이 옆쪽의 길게 자란 잡풀을 베자 그곳에서 껑충 뛰어올랐다. 그 순간 사내는 왼쪽에 쥐고 있던 단검을 던졌다. 이놈도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것이다. 마치 짐승이 자신의 모든 것을 무기로 삼는 것과 같다.

검의 손잡이로 단검을 퉁겨낸 윤의충은 사내에게 와락 다가섰다. 그 순간 사내가 후려친 칼날을 날로 받았으므로 날이 갈리는 섬뜩한 소리가 났다. 이제 사내의 얼굴이 바로 눈앞이었다. 검끼리 부딪친 상태여서 사내가 힘을 주며 반 발짝쯤 다가온 순간이다.

윤의충은 조금 젖혀졌던 머리로 사내의 얼굴을 힘껏 받았다. 지끈하는 촉감이 이마에 전해져 오면서 사내의 검에 힘이 풀렸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는 다시 사내의 사타구니를 차 올렸다. 사내가 휘청이더니 털썩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아직 칼은 내뻗고 있다. 윤의충이 칼등으로 사내의 손목을 치자 칼이 떨어졌다. 그의 칼날이 사내의 목젖에 닿았다.


“자, 대라. 어느 놈이냐?”


“졌다.”


두 팔로 땅을 짚은 사내가 뱉듯이 말했다.


“죽여라.”


윤의충이 퍼뜩 눈을 치켜떴다.


“네놈은 고려인이 아니다. 그렇지?”


윤의충의 칼끝이 사내의 두건을 걷어 내었다. 사내가 그를 쏘아 보았다.


“그렇다. 난 곤도 사치베. 아오이의 사무라이다.”


“왜구놈, 고려말은 어디에서 배웠느냐?”


“귀찮다. 베어라.”


그 순간 윤의충의 칼이 날아 사내의 머리칼을 잘랐다.


“이놈, 몽골 사신을 베어서 몽골군을 고려에 끌어들일 음모가 아니냐?”


이제 사치베는 책상다리를 하고 풀숲에 앉아 있었는데 가는 눈에 날카로운 인상이었다. 이십대 중반쯤의 나이로 보였다.






꼿꼿이 앉은 그가 쓴웃음을 지었다.


너는 김시중의 무사인 모양인데 김시중은 사신을 벨 배짱이 없었던 것 같군.”


그는 목에 닿아 있는 칼끝에 신경도 쓰지 않았다.


“고려인 배신자 백 명을 베어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건방진 왜놈.”


윤의충이 검 끝으로 그의 턱을 치켜 올렸다.


“틈을 이용하여 노략질을 하는 것도 부족해서 다시 고려를 쑥대밭으로 만들려고 하다니 막부의 지시를 받고 왔으렷다.”


“고려와 우리 막부군이 연합하면 몽골군도 어쩔 수 없다. 그리고 난 왜구가 아니다.”


“닥쳐!”


다시 윤의충의 칼이 날았으나 옆에 선 나무의 가지를 잘랐을 뿐이다.


“수작 부리지 마라. 그렇다면 왜 당당하게 나서지 않았단 말이냐?”


“고려왕이 받아줄까? 아마 우리 사신을 잡아 쿠빌라이에게 바쳤을 것이다.”


그가 힐끗 윤의충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김시중 주위도 믿을 수가 없다. 언제 무신 지도자가 바뀔지 알 수도 없고.”


동쪽 하늘이 부옇게 밝아오고 있었으므로 사치베의 얼굴 윤곽이 뚜렷이 드러났다.


“당신 이름이 무엇인가?”


그가 문득 생각난 듯 물었으므로 윤의충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쪽에 살기가 없음을 읽은 것이다. 한 걸음 물러선 그는 검집에 검을 넣었다.


“윤의충이다.”


그러자 사치베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연스런 태도여서 그저 앉았다가 일어서는 것 같다.


“살려주는 것으로 알겠다.”


잠자코 서 있는 윤의충을 향해 그가 머리를 숙였다.


“당할 수가 없었으니 돌아가서 사실대로 말하고 처분을 받겠다.”


“누구의 명이냐? 네 주군인가? 아니면 막부의 장군이냐?”


“그건 말할 수 없다”


둘의 시선이 부딪쳤고 윤의충은 상대가 목이 떨어지더라도 발설하지 않을 것을 알았다.


“네놈은 고려 땅에 전란을 일으키려 했다. 막부와 연합 운운 했지만 거짓말이다. 전란으로 피폐해진 고려 땅을 노략질하는 것이 더 쉬울 테니까”


한 걸음 다가선 윤의충이 쓴웃음을 지었다.


“네 주군께 일러라. 바다를 끼고 있어서 대륙의 정세에 어두운 모양인데 교활한 잔꾀만 부리다가는 큰 것을 잃는다고.”


“······.”


“살아남으려면 고려와 손발을 맞춰야 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일을 만든다면 고려국이 선봉이 되어 네놈들의 막부를 칠 테니까.”


윤의충이 몸을 돌렸다. 그러자 사내가 활짝 열린 그의 등을 보고는 눈을 치켜떴다. 그저 눈 한번 깜박일 동안의 시간이었지만 그의 이마에서는 땀방울이 주르르 떨어졌다. 도무지 허리춤에 꽂은 수리검에 손이 대어지지 않은 것이다. 그 순간 윤의충이 반쯤 머리만을 돌렸다.


“지금 내 등판에 살기가 닿았다가 식어졌다.”


그의 옆얼굴은 웃음을 띠고 있었다.


“살기가 조금만 더 머물렀다면 네 목은 그 순간에 떨어졌을 것이다.”




* * *




머리를 든 김준이 왕을 올려다보았다.


“전하, 개경 유수의 장계에 의하면 탈무아는 오히려 그 자가 목숨을 살려준 은인이라고 했다는 겁니다. 큰 불평 없이 개경을 떠났다고 합니다.”


“다행이오. 하마터면 저고여의 전철을 밟을 뻔했소.”


원종의 심기는 편치 않아 보였다. 개경 유수병마사 박황은 김준의 심복으로 정4품의 장군이다. 박황은 파발을 띄워 어젯밤에 조복서가 참살당한 것을 알려온 것이다.


“조 어사가 여진인의 원한을 사고 있었다니 금시초문이오.”


“몽골 조정 안에 패망한 금국(金國) 백성의 원한을 사지 않는 관리는 없소이다.”


대장군 최휘가 나서더니 말을 이었다.


“조 어사의 짐에서 온갖 보화가 쏟아져 나왔다고 합니다. 호피가 열 장에다 수달피 가죽이 쉰 장이나 있는데다 금은이 여섯 궤짝이라 하오”


그는 일자무식이었지만 몽골군 일개 부대를 몰살시킨 용장이다. 그의 굵은 목소리가 궐안에 울렸다.


“탈무아가 그것을 보더니 발을 굴렀다고 합니다. 탈무아의 재물보다 많았던 것 이외다, 전하.”


왕이 김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것이 정말이오?”


“예, 전하.”


목이 잘린 조복서는 이제 관에 넣어져서 그가 모은 보화와 함께 말 등에 실려져 있다. 그러나 보화는 모두 탈무아에 의해 압수된 것이다. 김준이 사저로 돌아온 것은 그로부터 두 식경쯤 후였다.


내실의 보료에 앉은 그의 앞으로 윤의충이 소리 없이 다가와 엎드렸다. 말끔하게 새 옷으로 갈아입은 데다 긴 머리도 단정하게 묶어 올린 모습이다.


“대감, 부르셨습니까?”


“이번 일은 잘 되었다. 여진족 행세를 한 것도 적절했다.”


그는 윤의충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쿠빌라이를 베라고 하면 가겠느냐?”


“예, 대감 .”


쓴웃음을 지은 김준이 보료에 등을 기댔다.


“아마 궐문에 들어서지도 못하고 참살을 당할 것이다.”


“······.”


“왕께서는 나를 의심하고 계신 것 같다. 물론 측근의 환관 무리들도 그렇게 말씀을 올렸겠고.”


거세된 환관들은 궐 안에서 생활하면서 왕에게 가장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위치였다. 왕권이 강화될수록 그들의 세력이 강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지금의 상황은 그들에게 불만일 것이다.


김준이 말을 이었다.


“왜인들이 대륙의 정세에 신경을 날카롭게 세우고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렇게 적극적인 행동으로 나올 줄은 뜻밖이다.”






“그놈은 아오이의 무사라고 했습니다, 대감.”


“아오이라면 붕고(豊後)의 영주다. 그놈이 왜구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는 생각난 듯 보료 옆에 놓인 나무상자를 앞쪽으로 밀어 놓았다.


“이건 네 직첩이다. 오늘부터 너는 정9품의 교위가 되었다. 소속은 교정도 감소속의 위사로 되어 있으니 녹봉은 그곳에서 타도록.”


“······.”


“하지만 네 임무는 내 측근에 있는 것이다. 앞으로 너는 내 그림자가 된다.”


“목숨을 바치겠소이다.”


“내 네가 살던 곳을 다 뒤졌다. 네 애비는 윤노이라는 양민이었다. 몽골군에게 무참히 참살당하고 불에 태워졌으므로 묻힌 곳도 없다.”


김준이 부드러운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일가친척을 수소문하였으나 피붙이는 아무 곳에도 없었다. 모두 죽거나 살던 곳을 떠난 탓이다.”


“······.”


“살아남은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로는 네 어미 김씨가 여장부였다고 했다. 널 업고 몽골군에 끌려가는 걸 보았는데 죽은 지아비나 자식들은 염두에도 두지 않는 것 같았다는 것이다.”


마침내 윤의충이 머리를 떨구었다. 그러나 이를 문 채 방바닥만 쏘아보고 있다.


“내 집권 동안 국력을 키우는 것이 소망이다. 그것을 이룬다면 몸이 찢겨 죽어도 좋다.”


이제 눈을 부릅 뜬 김준이 윤의충을 바라보았다.


“네가 대륙에서 닦은 기력을 모아 나를 도와라. 이대로 끌려가기만 했다가는 고려인은 씨가 마른다.”


윤의충이 머리를 들었다.


“대감의 수족이 되겠소이다. 분부만 내려줍시오.”




* * *




“말똥치기가 교위에 오르다니.”


김영이 김충을 바라보았다.


“관직을 이렇게 남발해도 되는 게요?”


사저 안의 정원에는 기암과 괴석으로 만들어진 동산이 있다. 동산 위에 정자를 세우고 주위에다 연못을 팠는데 정자와 연못을 잇는 다리도 놓여졌다. 들고 있던 술병을 들어 한 모금 술을 삼킨 김충이 쓴웃음을 지었다.


“네가 나설 줄 알았다.”


“나서다니, 뭘.”


“윤의충이의 이야기.”


김영이 정자의 난간에서 일어섰다. 눈꼬리가 솟아오른 얼굴이었다.


“도대체 왜들 이러는지 모르겠어. 그놈 이야기만 나오면 모두가 싸고 도니.”


“글쎄 상관을 하는 네가 문제지.”


“말똥치기를 교위시킨 것이 그래, 잘한 일이란 말이요”


“말똥 말똥 하지 마라. 할아버지는 최충헌의 종이었다. 근본보다 힘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낮술에 얼굴이 벌개진 김충이 손으로 주위를 가리켰다.


“봐라. 얼마나 좋으냐? 추밀원 부사 겸 대장군 임연도 말을 부리는 군사 출신이고 대장군 최휘는 돌 깨는 종이었다. 무신정권 이후로 천예들이 기를 펴고 사는 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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