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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웅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대체역사

이원호
작품등록일 :
2018.01.29 14:52
최근연재일 :
2018.01.29 14:57
연재수 :
10 회
조회수 :
2,657
추천수 :
22
글자수 :
52,848

작성
18.01.29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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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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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12쪽

대영웅 1화

DUMMY

강화도의 칼바람








고려 원종(元宗) 6년 3월. 하늘은 푸르렀으나 대지에는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았다. 바람이 센 날이었다. 내륙(內陸)을 쓸고 오는 살여울의 바람에서는 언제나 탄 냄새가 맡아진다.

작년 가을에는 몽골군이 여울 건너에서 십여 명의 죄수를 태워 죽였는데 인육이 타는 냄새가 며칠간이나 흘러왔었다. 그것을 맡은 어떤 병사는 식욕을 느꼈다고 했다. 삼십 년 전 란에 이쪽도 익숙해져 있는 것이다.


좌별초(佐別抄) 대정(隊正) 송합이 살여울의 초소에 들어섰을 때는 한낮이었다. 일곱 명의 별초군이 주야 2교대로 여울을 감시하게 되어 있었지만 초소에 모인 병사는 네 명뿐이다. 병사들이 긴장을 했다.


송합은 전주(全州) 출신의 숯장수 아들이다. 이 년 전에 몽골 병사 두 명의 목을 싸 들고 강화도로 건너왔는데 왕이 좋아할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교정별감(敎正別監) 김준이 장하게 여겨 그에게 대정 벼슬을 주었던 것이다.


“어디를 갔느냐?”


그가 부드럽게 묻자 병사들은 긴장을 풀었다.


“여울 끝에 고기를 낚으러 갔습네다.”


“그물은 있느냐?”


“예, 빌렸습네다.”


하루 두 끼의 군량을 지급받지만 그것도 한 줌밖에 안 되는 잡곡이다. 원종 시대에 이르러 몽골군은 침략을 그쳤으나 아직도 내륙에는 주둔군이 남아 있는 것이다. 무신정권의 지도자 최우가 고종을 압박하여 강화도로 천도해온 지 삼십여 년이 지났다.

그동안 해전에 약한 몽골군은 강화도를 침공하지는 못했지만 내륙은 그들의 말발굽 아래 처참하게 유린당해온 것이다. 전쟁은 소강상태가 되어 있었다.


작년에 연경에서 몽골 황제 쿠빌라이를 알현한 원종은 출륙(出陸)을 약속하고 돌아왔지만 왕의 뜻대로 되는 일이 아니다. 최의를 죽인 후 정권을 장악한 교정별감 김준은 삼별초를 기반으로 항몽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송합은 초소의 돌벽에 걸터앉았다. 두 길쯤 아래에서 조류가 빠르게 흐르고 있었다. 이곳은 내륙과 활 한바탕의 거리지만 물살이 세어서 어지간한 세곡 선도 접근을 꺼리는 곳이다. 그가 문득 허리를 폈다.


“저것이 무엇이냐?”


병사들이 몰려와 섰다.


“통나무에 사람이 걸쳐 있습니다.”


“활을.”


누군가가 말했고 병사 하나가 활에 살을 끼웠다. 빠른 급류를 탄 통나무는 점점 이쪽으로 다가왔다. 이제 오십 보 정도의 거리가 되었고 통나무를 부둥켜안은 사람의 상반신이 드러났다. 그 순간 병사의 활에서 화살이 날았다.

꽤 솜씨 있는 궁수여서 모두 숨을 죽였을 때 사내가 손을 휘젓는 것이 보였다. 살을 퉁겨낸 것이다.


“이런.”


궁수는 다시 활에 살을 끼웠다. 이제는 삼십 보로 거리가 가까워져 있다. 다른 병사 하나도 벌써 시위에 살을 걸고 있다. 송합은 사내를 쏘아보았다. 이미 이쪽의 의도를 알고 있을 텐데도 다가오고 있다. 시위를 퉁기며 두 대의 살이 거의 동시에 날아갔다.

이번에는 이십 보 거리밖에 되지 않았다. 그다음 순간 송합은 눈을 크게 떴다. 사내가 다시 살 두 대를 쳐낸 것이다. 그것도 한 손을 휘저었을 뿐인데도 살 두 대가 바닷속으로 쳐내려 졌다.


“멈춰라.”


송합이 손을 들었다. 어차피 이쪽에 닿을 놈인 것이다.


통나무가 암초에 걸려 빙글 돌려지면서 사내가 이쪽을 보았다. 창을 던지면 맞힐 수 있는 거리였다. 사내는 긴 머리를 묶어 올렸는데 등에는 검을 메고 있었다.


발길로 암초를 찬 사내는 반동을 이용하여 그들과의 거리를 더욱 좁혔다. 병사 한 명이 들고 있던 창을 그에게로 불쑥 겨누었다. 그것은 위협하는 것 같이 보였지만 구조의 표시도 된다.


송합은 사내의 눈을 보았다. 맑고 힘찬 눈빛이었다. 고려인이다. 몽골인도, 말갈인도, 한인도 아닌 고려인의 얼굴이었다.


사내가 손을 뻗쳤다. 그리고는 날카로운 창끝을 쥐었으므로 송합은 몸을 굳혔다. 창을 내민 병사도 당황한 모양이었다. 양날이 예리한 대창(大槍)이다.

잡아당기지도, 그렇다고 더 내밀 수도 없어서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 있던 병사가 갑자기 한 걸음 뒤로 물러서더니 창을 놓았다. 그리고 그 순간 창날을 쥔 사내가 창자루로 해변의 바위를 찍으면서 몸을 솟구쳤다.

송합이 칼을 빼든 것은 그다음 순간이다. 물보라를 뿌리며 바위 위에 내려선 사내는 육 척 장신이었다. 가죽 저고리에 다리에도 가죽 다리 싸개를 했으므로 몽골인의 차림이다.


“네 이놈.”


병사들을 제친 송합이 그에게 다가섰다. 장검을 앞쪽으로 경사지게 내밀었는데 단숨에 찌를 기세였다.


“네놈은 첩 자렸다.”


사내가 들고 있던 창을 버렸다.


“나는 고려인이오.”


“말도 이상하다. 고려인의 말투가 아니야.”


반 걸음을 더 다가선 송합의 칼끝이 사내의 목젖에 닿았다. 그러나 사내는 움직이지 않았다.


“단칼에 죽이겠다. 이실직고해라.”


“나는 몽골에서 돌아왔소이다.”


사내가 송합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다섯 살 때 끌려가 십칠 년 세월을 보내고 온 길이오. 고려 말을 잊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외다.”


“첩자가 쓰는 말이다.”


병사들이 사내를 에워쌌는데 창을 빼앗긴 병사는 분기 탱천해 있었다. 그는 단단히 움켜쥔 창끝을 사내의 허리에 겨누고 있다. 사내가 어깨를 늘어뜨렸다.


“별초에 가담하러 온 사람이외다. 이곳까지 오는데 일 년이 걸렸소.”


송합이 칼끝을 내렸다. 끌고 가서 문초해 보면 알게 될 것이다.


“어쨌거나 담대한 놈이다. 널 조금 전에 죽일 수도 있었다.”


“당신은 죽일 뜻이 없었소이다.”


병사들이 달려들어 등에 찬 검을 빼앗고는 거칠게 묶었으나 사내는 반항하지 않았다.


“당신 눈에 살기가 보이지 않았소.”


병사 둘에게 사내를 끌게 하고 송합이 낭장(郞將) 두천의 막사에 들어선 것은 그로부터 한식경 후였다.


두천은 좌별초의 차수(次首)로 고려 검의 달인이다. 중의 아들로 태어나 절에서 자란 두천은 승병을 이끌고 여러 차례 전과를 올린 후에 김준의 수하가 되어 있었다.


송합으로부터 전말을 들은 두천이 날카로운 시선으로 사내를 쏘아보았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윤의충(尹義忠)입니다. 장군.”


“무릎을 꿇라.”


두천이 큰 목소리를 내었다.






두천은 마술(馬術)에도 능해서 달리는 몽골 말에도 뛰어서 타는 사람이다. 그가 입술 끝을 비틀면서 웃었다.


“네가 비공술(飛空術)을 보였다지? 그건 어디서 배웠느냐?”


“비공술이 아닙니다, 장군. 반동을 이용하여 뛰어올랐을 뿐이오.”


“검을 쓰느냐?”


“예, 장군.”


옆에 서 있던 송합이 힐끔 두천을 바라보았다. 좌우별초군은 물론 신의 별초에서도 검술로 그를 당할 자는 없다. 막사 안에는 두천을 중심으로 서너 명의 교위급 군관들이 있었는데 모두 긴장을 했다. 두천이 송합에게로 머리를 돌렸다.


“이놈의 포승을 풀어라.”


“예, 장군. 하지만.”


“풀고 검을 들려라.”


“장군.”


송합이 한 걸음 다가섰다.


“우선 문초를 하시는 것이.”


“물을 것 없다.”


“······.”


“신의별초(神義別秒)의 첩자를 줄여주는 셈이 될 것이다.”


신의별초는 몽골에서 도망쳐온 사람들을 모아 편성한 별초군의 하나다. 따라서 몽골에 대해서 가장 전의(戰意)가 강한 집단이었지만 출륙이 이뤄지려는 상황이다.

기강이 풀리면서 얼마 전에는 몽골 첩자가 발견되어 처형당했던 것이다. 대정 한 명이 다가서더니 칼끝으로 윤의충의 포승을 잘라 풀었다. 두천이 턱짓을 했다.


“밖으로 끌고 나가라.”


“장군.”


끌려 일어선 윤의충이 그를 바라보았다.


“절 베시렵니까?”


“검을 잡게 한다고 했다.”


“살기를 품고 계십니다.”


그러자 두천이 빙그레 웃었다.


“내 눈은 언제나 그렇다.”


막사 밖은 꽤 넓은 조련장이다. 좌별초의 영수(領首)인 별장(別將) 이기연은 교정도감에 나가 있었으므로 막사의 수장은 두천이다. 윤의충의 앞에 그가 차고 왔던 검이 던져졌다. 이미 상황을 눈치 챈 수십 명의 병사가 주위를 에워쌌고 군관들은 두천을 중심으로 서 있었다. “검을 집어라.”


두천의 목소리가 조련장을 울렸다. 그리고 그는 한 걸음 나서면서 가죽 허리덮개를 뒤쪽으로 젖혔다. 그 순간 그가 찬장검이 드러났는데 끝부분이 조금 휜 고려검이다.


“네 말투, 네 몸짓 그리고 네 눈 모두가 고려인의 것이 아니다. 비록 얼굴은 고려인일지라도.”


그러자 윤의충이 온몸을 떨었다.


“장군, 다섯 살 때 끌려가 몽골과 거란, 송나라를 전전한 때문이오.”


“집어라. 그렇지 않으면 벤다.”


“장군, 혈혈단신 살아남아 산을 넘고 강을 건너 고려 땅에 돌아왔습니다. 아직도 몽골군과 싸우고 있다는 말만 듣고서.”


“네놈은 보통 무인이 아니야.”


“일가족이 몽골군에게 몰살당했습니다. 내가 보는 앞에서 모두 죽었소. 그래서 이를 악물고 무술을 연마했습니다.”


그 순간 두천이 빼든 칼날이 윤의충의 목을 쳤다. 송합이 입을 딱 벌렸고 모두가 숨을 멈춘 순간이다. 끄덕 목을 젖혔던 윤의충이 다시 목을 세웠다.


“그렇지.”


두천이 눈꼬리를 추켜 올리면서 웃었다. 그는 두 발을 조금 옆쪽으로 벌린 채 검을 비스듬히 세워 들고 있었다. 고려검법은 대륙에서 건너온 검법이 여러 사람의 달인(達人)을 거치면서 독자적인 검술이 된 것인데 특히 단병접전에 강하다.


반 걸음 앞으로 나선 두천이 이제는 검을 번쩍 치켜들었는데도 윤의충은 움직이지 않았다. 아예 검을 집지도 않은 것이다.


“집지 않아도 벤다.”


두천이 낮게 말했으나 둘러선 병사들은 모두 들었다. 그리고 모두의 눈에도 그가 내뿜고 있는 살기가 보였다. 그 순간이었다. 초당의 입구에서 대지를 울리는 고함소리가 났다.


“멈춰라!”


두천의 시선이 그쪽으로 스치고 지나더니 껑충 뛰어 두 걸음을 물러섰다. 그리고는 검을 검집에 집어넣으면서 허리를 폈다. 병사들의 시선을 받으며 조련장으로 한 사내가 서둘러 들어서고 있었다.

남루한 베옷에 추위를 막으려고 누비 조끼를 걸친 그는 마치 바닷가의 어부 같은 차림이었다. 짚신을 끌고 다가온 그가 두천 앞에서 멈춰 섰다.


“낭장, 내가 다 보았어.”


“무엇을 말씀이오?”


쓴웃음을 지은 두천이 좌우를 둘러보았다. 그의 시선을 받은 군관과 병사들이 제각기 몸을 돌렸다. 이제 막사 앞에는 사내와 두천 그리고 윤의충과 송합 네 사람뿐이다.


“낭장은 이 자의 말을 확인하지도 않고 베려고만 했어.”


“어떻게 확인한단 말입니까?”


남루한 사내는 지금 고려정권을 장악하고 있는 교정별감 김준의 아들인 김충(金忠)이다. 김준에게는 김주, 김애, 김기 등의 여러 아들이 있었고 모두 제각기 급제를 해 고관이 되어 있지만 김충은 별종이었다.

그는 스스로 분수를 지키며 근신했고 세도를 부리는 가족들에게 잔소리를 했으므로 집안에서도 따돌림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왕을 누르는 무신의 지도자 김준의 아들이다. 입맛을 다신 두천이 얼굴을 폈다.


“나리가 상관하실 일이 아닙니다.”


“내가 이 자를 도감에 데려가겠다.”


김충이 윤의충을 올려다보았다.


“가서 잘 먹이고 상세히 알아보겠다.”


“안 됩니다. 이 자는.”


“내가 다 들었어. 이 자가 하는 말을.”


김충이 눈을 치켜떴다.


“이 자가 죄가 없더라도 낭장을 탓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리, 하지만.”


김충이 윤의충의 소매를 끌었다.


“날 업어라.”


“예?”


“날 업고 도방까지 가자. 길은 내가 알려줄 테니.”


윤의충은 아직 그가 누구인지 모른다. 그러자 송합이 한 걸음 다가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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