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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가밥먹는다

먼치킨은 여동생을 잘 키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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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휴
작품등록일 :
2023.01.15 20:58
최근연재일 :
2023.01.18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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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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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1.18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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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이정표 (2)

DUMMY

홀로 남은 훈련실에서, 미야는 주먹을 바들바들 떨며 생각했다.


왜일까.


― 이게 다야?


도무지 지워지지 않는, 소녀가 남기고 떠난 물음표.

덧붙여진, 빈정거리던 어조와 표독스러운 시선이, 선명한 적대감이 미야의 뇌리에 깊게 박혔다.


무슨 연유로, 비아냥을 들어야 했던 것일까.


단언컨대, 밀로와의 대면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헌데 저도 모르게 밀로에게 원한을 사버린 것일까.

아니면 책이라도 잡힌 것일까.


수없이도 떠오르는 경우의 수. 그러나 도무지 합리적인 사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대체 왜···.”


서로는, 간접적으로라도 연관될만한 사이가 아니었기에.

만약이란 가정을 두기에도 어려울 만큼, 둘의 환경이나 성장 배경은 극단적이라고 해도 좋을 간극이 존재했다.


― 시간 낭비였네.


상기하며, 미야는 슬그머니 눈가에 고인 눈물을 훔쳤다.

훌쩍거리는 소리를 죽였다.


“뭣도 모르면서···.”


사정을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저런 되도 않는 무례를 당해야 하는 처지가 너무나 억울하고 분하고, 또 슬펐지만.

미야의 평온을 망가뜨린 주된 원인은, 보다 더욱 깊은 심연에서 발현되었다.

그것은 바로, 지독히도 오래 전부터 당해왔던 멸시였다.


“다들 그런 말을 쉽게 내뱉는 거야. 나한테 뭘 해줬다고···.”


네까짓 게 뭘 할 수 있겠냐며.

적당히 포기할 줄 알아야, 실망하지 않는다고.

그만하면 되었다고, 시간은 그만 허비하라던.


재능 따위는 없으니까―.


소중한 오라비를 되찾고 싶다는 일념으로 노력하는 순간마다.

주위에서 어김없이 끼얹는 무시와 비난들.


꿋꿋이 견뎌왔지만, 차마 빼내지는 못했던 그 비수들은 상처로 곪아 미야의 역린이 되었다.


스읍.


들이 마시는 공기가 시리었고, 좀처럼 잊을만하면 맞닥뜨리는 이 상황이 몹시도 쓰라렸다.


쥐뿔도 없는 고아가 발버둥 치며 살아가는 꼴이 세상이 보기에는 그리도 아니꼬운 것일까.


비참하고, 서러웠다.


생도가 되면 조금은 나아질 줄 알았는데, 결국 헛된 기대였을 뿐이었다.


절망으로 비워지는 울분. 허탈감이 빗질하듯 가슴을 쓸어내린다.

우울감이 들어차고, 무기력증이 정신을 침잠해 그냥 편히 포기해버릴까 싶지만.


“···두고 봐.”


그러기에는, 너무 간절하게 보고 싶다. 기억에도 희미한 오라비를, 또렷해진 두 눈으로 다시 담고 싶다.

잔뜩. 눈이 부풀다 못해 터지도록.

그 귀중한 소망을 위해서는, 겨우 이 따위 역경에 허우적거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보란 듯이 해내줄 테니까.”


코를 훌쩍이며, 눈을 부릅뜬 미야가 아직까지도 스크린에 동동 떠있는 표적들을 노려보았다.

서슬 퍼런 안광만으로 꿰뚫을 기세로, 내려놓았던 활을 짚고는 과녁을 정조준했다.


컨디션은, 도전에 실패했던 아까보다도 훨씬 저조했다.

마나는 고갈되어서, 억지로 끌어올리면 쥐어짜는 듯한 통증이 전신을 난도질했고.

기세만 좋았지, 초점은 금세 풀려서는 힘을 빡 주어도 잘 잡히지가 않았다.


“괜찮아. 할 수 있어.”


그래도, 시위를 당긴 손아귀는 굳건했고.

시야는, 보이지 않아도 좋다. 실력이 모자라다면, 악으로 깡으로 극복하면 된다.


되는대로 방금 밀로의 얼굴을 박아 넣으면 오히려 효과가···.


“아.”


실수로 시위를 놓쳤다. 악력이 풀려버린 탓이었다.


“하하···, 그냥 얌전히 숙소로 돌아갈 걸.”


망했다.

쏘고 나면 탈진은 확정이라서, 훈련실에 꼼짝없이 한 시간은 누워있을 텐데.

마나도 억지로 짜내서 화살도 영양실조 제대로네.

설마 밀로가 어디 숨어서 지켜보고 있는 건 아니겠지.

제발, 진짜 있으면 쪽팔려서 똥간에 빠져 죽어버릴 거야.

···하, 괜히 오기 부려가지고는 개고생을 하게 생겼네, 같은 뒤늦은 후회를 실컷 남발하고 있었는데.


슈우우우우우웅―!


돌연, 시위를 벗어난 화살이 막강한 돌풍을 일으키며 스크린에 쇄도했다.

청명한 숲의 기운이 스며들어, 점차 비대해지는 몸집.

공간을 찢으며, 발생하는 굉음. 가공할만한 위력이었다.


파지지지지지직―!


화살이 스크린에 닿자, 마나의 출력을 감당하지 못해 스파크를 일으키다가.

과부하를 견디지 못해 훈련 시설의 기반 자체가 다운되었다.


“엥?”


서버가 마비되어 암전되는 실내.

방전되어서, 바닥에 가녀리게 쓰러진 미야는, 휘둥그레진 두 눈을 열심히 깜박거렸다.


“엥?!”



*



노을이 진다.

황혼이라고도 불리는, 무르익었던 한낮의 절정을 지나 안식에 접어드는 시간.

어스름한 물결이 하늘을 수놓는 풍경은 나름의 운치가 있었지만.


“······.”


밀로는 그다지 감흥이 없었다.

해는 지고, 밤이 오며.

오늘이 지고, 내일이 뜬다. 딱 그 정도의 감상이었다.

어차피 소녀는 어느 때고 변함없이 훈련에 몰두하고 있을 테니까.

가문의 안녕을 위해서.


“오늘도 이렇게 끝이네.”


결코 변하지 않고 벗어날 수조차 없는, 정해진 운명.

당사자였던 소녀의 의지는 단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명백하고도 지루한 삶이었지만.


그래도 가슴 속에 파묻어둘만한 바람 하나쯤은 있었다.

비록 이루어지진 못했지만.


“오늘만은 다르길 바랐는데···.”


십여 년 전, 밀로가 아직 재능을 본격적으로 꽃피우지 못했던 시절.

소녀보다 앞서서, 같은 운명을 부여받았으나 항거하고 거슬렀던 소년.


“결국 뵙지 못했네요, 오라버니.”


절대적인 가주의 명령을 어긴 중죄로 가문에서 쫓겨났고.

배신자로 낙인 찍혀서는 소식조차 접할 수 없었지만.


남몰래 끈질기게 수소문을 뒤지고, 집요하게 행적을 추적해낸 결과.

엔유 아카데미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그의 자취를 겨우 건질 수 있었고.

틈틈이 소식을 전해 들으며, 다시 만날 오늘을 기다렸는데.


···없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있었다는데. 오늘은 그 어디에도 오라비가 없었고.

있었어야 할 자리에는, 훌륭한 업적과 화려한 경력을 등에 업은 새로운 대체자가 임명되었다.


헌데 웬만한 업계 인사들과 기본적인 일면식이 있던 밀로로서는.

알지도 못하는, 신원조차 불분명한 남자였고.


그가 책임교관의 권한으로 추천했던 생도도 난생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사교계에서도 거론된 적이 없고, 아카데미 실기 성적 상위에도 없는.

하물며 가문도 무명이었다.


미심쩍은 냄새가 나서, 조사해본 결과.


웬걸.

약력에 기재된 항목들은 죄다 거짓이었고, 그가 뽑은 생도는 고아 출신의 일반 서민.

이것이 전부였다. 그 외의 정보는 세상에 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먼지 한 톨 나오지 않았다.


전해 듣기로는, 오늘의 테러를 진압했던 장본인이라고 했다.

일찍이 입소해 현장에 없었던, 그의 실체를 파헤친 밀로로서는 믿지 못할 목격담.

그러나 마냥 불신할 수도 없었다.


갈팡질팡. 심란했다.

도통 뭐가 뭔지 모르겠어서, 답답했던 밀로는 직접 확인에 나섰다.


책임교관을 무턱대고 찾아가 독대할 수는 없으니.

그가 선정한 추천생도를 찾았다. 자격을 판단하고, 실력을 가늠해 보고자 했던 것인데.


허무하리만치 형편없었다.


열을 올리며, 발품까지 팔았던 스스로가 부끄럽게 느껴질 만큼.

처참한 수준이었다.


일개 생도에 불과하다.

실감한 즉시, 더는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없어서 훈련실을 빠져나왔다.


의욕이 몽땅 꺾인 지금. 원망을 장작 삼아 타오르고 남은 잿더미는 미련이었다.

고이 간직해뒀던, 사무치는 그리움이 밀로를 괴롭히는 것이다.


존엄한 가문의 영예를 위하여, 운명의 굴레에 순응한 순간부터 감정을 숨기고.

필요하다면 도려내기까지 했던 소녀이지만.

오늘의 여파는 꽤나 질척여서, 떼어내기가 힘겨웠다.


그러나 여운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청승맞은 모습은 오늘까지다.

아니, 오늘도 길다. 저무는 석양에 유약한 자신을 실어 보내고.

달빛이 만연해지면, 늘 그랬듯 성장과 훈련에 매진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저 둘 만큼은 곱게 보지는 못할 듯하다.

누구에게나 사정은 있기에, 남의 사정은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밀로는.

그들의 내막이 어떠한지는 크게 관심두지 않았다.


다만 사기와 편법으로 분수에 맞지 않는 자리까지 올라서서는, 고대하던 오라비와의 재회를 가로채간 원수들을.

용서할 수 없고, 가만 둘 수 없을 뿐이다.



*



주말이 금세 지났다.


일상은 평안했고, 나도 적응을 어느 정도 마친 듯했다.

휴이로서도, 아카데미 책임교관으로서도.

에이타의 세계관을 살아가는, 어엿한 주민이 되어가는 것이다.


[야.]


책임교관 집무실.

따분했는지, 그라엘이 내게 말을 걸었다.


“불렀나.”

[궁금한 게 있는데.]

“무엇이지.”


나는 적당히 상대해 주었다.


[언제까지 그 종이쪼가리를 붙들고 있을 셈이냐?]


나 또한 궁금하던 참이었다.


그라엘이 핀잔하듯 말하는 종이는, 1학기 훈련 계획 서류철이었다.

1학기를 마치고 있을 메인 시나리오, 세례식. 그 신성한 행사를 치르기까지, 생도들을 최적의 상태로 끌어올리기 위한 계획서.


주말이 지나도록 고민했으나, 아직까지도 백지에서 진전이 없었다.


해본 적도 없고, 참고할 지침도 없는 탓이다.

속편하게, 다른 교관들의 계획을 짜깁기할까도 했지만.


“어설픈 흉내는 안 하는 것만 못하다.”


마나를 다루는데 정교한 숙련도가 미미한 휴이와 세상의 지식이 전무한 나로서는 오히려 제 무덤을 파는 격이었다.

생도들은 어릴지라도 멍청하지 않았고, 교관들은 나름의 보이지 않는 경쟁이 치열했으니.

괜히 어쭙잖게 따라했다가, 씻겨내지 못할 오명을 쓰기라도 하면 곤란했다.


“오로지 나만이 할 수 있는 훈련이어야 한다.”


골머리가 아프다.

퀘스트였다면 참 좋았을 것을.


속으로 푸념하며, 나는 휴식을 취했다. 서류를 내려놓고 피로한 눈을 돌렸다.


“팔자 좋군.”


나른한 정오. 유리창의 햇빛이 투과하는 집무실의 테이블.

내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그 끄트머리에 강아지 한 마리가 벌러덩 누워서 곤히 자고 있다.


“있잖아요, 악마···.”


문득 들려오는 시무룩한 목소리. 손님맞이 소파에 다소곳하게 앉은 천사였다.


“말하라.”


악마는, 전용 바벨을 지고는 중량을 치는데 한창이었다.


“요즘 늑대가 밥을 잘 안 먹어요. 고기가 부족하진 않은데···.”

“똥개는 신경 쓸 것 없다. 요즘 싸돌아다니면서 주워 먹는 게 많아서 그런 것이다.”


대수롭지 않게 답하는 악마의 곁으로, 여우가 생긋 웃으며 다가왔다.


“우리의 세계만큼이나 이 세계에도 좋은 사람들이 꽤 많더라고요.”

“걔네가 좋은 사람들이냐, 애한테까지 사기 치지 마라.”


집무실을 청정하게 가꾸고 있던 나무가 한 소리했다.

여우가 언급하는 좋은 사람들이란, 관용적인 표현은 아니었으니.


“그, 그런 거겠죠···?”


듣고 있던 천사가 풀이 죽어서는 물었다.


“감사한 줄 모르는 것이지. 밥 양을 줄여보아라. 위기를 자각하고 허겁지겁 먹어댈 것이다.”


눈이 마주친 나무는 지극히 현실적인 솔루션을 제공했는데.


“나, 나 밥 양 안 줄었다고···.”


위기를 직감하고 깨어난 것인지, 자고 있던 늑대가 거의 잠꼬대하는 수준으로 해명했다.


“좀 느긋하게 먹을··· 뿐이라고···.”

“그, 그치만! 맛있게 먹어주지는 않는··· 걸요.”


서러움이 터지다가, 울먹거리며 침울해지는 천사.

마침 세트를 마친 악마가 바벨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네가 잘못한 것이다. 반성하도록.”


나머지도 비슷한 반응으로 동조했다. 진실 여부를 떠나서, 밥해주는 천사에게 쓸데없는 미움을 살 이유는 없는 것이겠지.


“아니, 그게 무슨··· 억울해! 내 밥 못 잃어!”


다섯 중 식욕이 가장 왕성한 늑대의 대위기. 이렇듯, 딱히 부르지도 않았는데 제 집인 냥 집무실을 점령한 그들을.

관객의 시선으로 구경하고 있던 나는, 문득 기발한 발상이 떠올랐다.


“왜 내가 이 생각을 못했을까.”


테이블에 놓인 훈련 계획서, 라는 명목의 백지.

가르침을 전하기에는 지식이 현저하게 부족하고, 재주를 전수하기에는 전투 스타일이 단조롭고 투박한 휴이의 현주소였다.

아무리 생도들이 전도유망하다고 한들, 일대를 초토화시킬 만한 위력이 담긴 일격을 재주라고 훈련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니.


“녀석들을 이용하면 수월해지는 것을.”


그러나 수족들은 사정이 달랐다. 그들의 권능은 남다르고 고유하며, 정밀하고 섬세한 조작에도 능통했고.

나 또한 다년간의 게임 기록으로, 그들에 대한 이해도도 완전하고도 무결했으니.


“진정, 등잔 밑이 어두웠군.”


머리가 지끈거리도록 거듭했던 고민에 마침표를 찍는 순간.

나는 조금은 들뜬 마음으로, 펜을 쥐고는.

새하얀 백지를 과감하게 잉크로 물들여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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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치킨은 여동생을 잘 키우고 싶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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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화, 이정표 (2) 23.01.18 28 0 13쪽
8 7화, 이정표 23.01.17 27 0 13쪽
7 6화, 입소 (2) 23.01.16 31 0 13쪽
6 5화, 입소 23.01.16 34 0 10쪽
5 4화, 수족 23.01.16 44 0 12쪽
4 3화, 여동생 (2) 23.01.16 48 1 12쪽
3 2화, 여동생 23.01.15 66 1 11쪽
2 1화, 빙의 23.01.15 74 2 10쪽
1 프롤로그, 귀환 23.01.15 78 2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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