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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가밥먹는다

먼치킨은 여동생을 잘 키우고 싶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으휴
작품등록일 :
2023.01.15 20:58
최근연재일 :
2023.01.18 19:25
연재수 :
9 회
조회수 :
426
추천수 :
6
글자수 :
44,633

작성
23.01.15 21:02
조회
73
추천
2
글자
10쪽

1화, 빙의

DUMMY

[하, 개열받네.]


우거진 녹음.

청결한 마나의 정기가 녹아든 이름 모를 산의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도시의 정경은 퍽이나 아름다웠다.


둥지에 대한 애착 따위는 없는 블랙 드래곤, 그라엘로서도 잠시나마 시선을 뺏길만한 경치기는 개뿔.


가뜩이나 강제로 끌려온 처지가 굉장히 어이없고 열 받아 죽겠는데.

정작 끌고 온 놈은 뿌리내린 거목마냥 한가롭게 구경하고 있는 꼴을 보고 있자니 짜증이 폭발해버렸다.


[···대체 언제까지 얼빠져 있을 거야!]


여유도 정도껏이지. 벌써 반나절이 족히 지났다.

돌아온 감회에 젖는 데만, 무려 한낮의 절반이 흐른 것이었다.

그간 휴이가 얼마나 돌아오고 싶어 했는지 이해하는 그라엘이지만, 지나치다.

너무나도 지나치다.


[으아아아아악!]


휴이의 그림자에서, 앙증맞은 헤츨링이 고개를 빼꼼 내밀고는 성질을 부렸다.


“······.”


한참이나 도시를 둘러보던 휴이의 차가운 눈매가 그라엘을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다시금 돌아갔다.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대체 얼마나 더 얼빠져 있을지, 그로서도 알 수 없었던 것이다.


휴이는.

···아니, 휴이 아스포델로 추정되는 나는, 아직까지도 뭔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못 알아먹고 있다.


그러니까 분명, 나는 새벽까지 무리해 가며 게임의 최종장을 클리어 했고, 엔딩을 보고는 가뿐한 기분으로 쪽잠을 청했었다.


두 시간이 지나면 시끄러울 알람이 울려댈 테고, 달라붙은 눈꺼풀을 겨우 떼며 좀비처럼 일어나서 노예가 되기 위해 씻을 예정이었지.


헌데 대체 왜, 정신 차리고 보니 내 눈 앞에는 아이타 세계관의 유명 도시, 아르카나가 펼쳐져 있고.

왜 나는 휴이 아스포델이 되어 있으며.

왜 내 그림자에는 그라엘이 둥지를 트고 있는 것일까.


···하아.


어딘가에 떠벌리기도 민망한, 참 가당찮은 상황이 실제로 일어나버렸다.


실제가 맞긴 할까?


처음에는 게임 중독이니, 자각몽이니 합리화를 열나게 해댔는데.

그러나 반나절이 지난, 그 긴 시간에 이르러서 나는 서서히 빙의된 현실을 인정해가고 있다.


“골치 아프게 되었군.”


한순간에 달라져버린 세계. 상식이 무너지고, 사고가 멀어지며, 두뇌를 뒤흔드는 충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는데도.

튀어나오는 말이라고는 고작 푸념 따위.


뺨을 때려보려고 해도 손은 미동도 하지 않고.

심장이 벌렁거리는데도 태도는 자약하기만 하다.


적에게 일절 흠을 보이지 않고, 위험에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해 생긴 버릇.

매일 같이 죽음이 도사리던 사지에서 살아남은 휴이의 고유한 특성이었다.


그 특성의 영향일까.


진정 말도 안 되지만, 실재해버린 현상을 나는 받아들이고 있다.

맥박이 차분해 지고, 머리가 맑아지며,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고 있다.


나는 다시금 정상에서, 도심을 굽어보았다.


자연과 문명이 합일되어 조화로운, 견고하고도 이상적인 판타지 속의 도심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평범하게 살아오던 내가 갑자기 판타지의 주인공으로 살 수 있을까.

막막한 심정이 남아있긴 하지만, 더는 남일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어쨌든 움직여야만 했다.


[오, 드디어 움직이냐!]


이 이상 지체했다간, 성미가 급해서 따분한 것을 병적으로 싫어하는 그라엘이 날뛰기 시작할 테니.



*



어차피 일어나버린 사태라면,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생각해 보면 차라리 잘 된 일이었다.


현실에서는 챗바퀴 돌 듯, 남 밑에서 남의 돈으로 벌어먹고 사는 고리타분한 삶이었다.

재미없는 일상의 나날이었다.


게임을 하게 된 계기도 지루한 일상에 소소한 재미를 붙여보려던 것이었지.

이렇게 등장인물에 빙의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그래도 어딘가 하자가 있거나, 밑바닥에서 시작하는 고생스러운 스토리에 비하면.

하나의 독립된 세계관에서 정점을 찍었던 휴이는, 상당히 좋은 출발선이었다.


다만, 목적이 없었다.


퀘스트 같은.

게임의 시스템까지는 현실이 되지는 않은 것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서사는 전부 과거에 지나지 않았고.

더군다나 완전히 새로운 세계관에서, 에필로그까지 찍은 휴이의 다음 시나리오를 생각만 해도 앞이 깜깜했다.


[근데 어디 가고 있는겨?]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당장 어디로 가야하는지는 어렵지 않게 정할 수 있었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자해하고 싶어도 뜻대로 하지 못하듯.

내 자의와는 전혀 무관하게 샘솟아나는, 격정이라 해도 좋을 감정.


[딱 보니 여동생 보러 가는 구만.]


입가에 흐뭇하게 그어지는 미소. 내가 짓지 않았다.

저절로 지어졌다. 당연한 것처럼.


조금 놀랬다. 휴이가 미소를 짓는다는 표현은 게임 내에서도 손에 꼽을 수준이었다.

애초에 휴이의 표정에 관한 언급 자체가 거의 없었다.


문득 궁금했다.

고스란히 전해지는 기대와 설렘을 안고 여동생을 만난다면.

휴이는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까.



*



에이타에서 유일하게 나라의 영토에 속하지 않아 어떠한 법령에도 자유로운 도시.

건축물의 기본 바탕은 중세의 풍경이 깔려 있지만, 무릇 게임들이 그러하듯 군데군데서 심심찮게 발견되는 현대의 문물들.


그런 만큼이나 사람들 또한 서로 뒤섞여 활기가 가득했고.

입고 있는 패션, 성격, 생김새 등등 다양하게 혼합되어 있다.


막막한 심정만 도려낸다면, 마치 판타지를 배경으로 만든 테마파크를 돌아다니는 듯했다.


그 새롭고도, 신비로운 광경들을 눈에 담으며 지나치는 내 발걸음은 거침없었다.


알지 못하는 지리, 낯선 거리. 그러나 본능이 이끄는 발길의 끝자락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무엇보다도 명확했다.


“여기인가.”


그런 모종의 확신을 갖고서, 도착한 곳은 외관이 허름한 보육원이었다.


[되게 낡아빠졌네.]


휴이는 고아 출신이었다. 아주 어릴 적에 버려져, 부모에 대한 어떠한 기억도 남아있지 않았다.

사실 현 시점의 휴이에게는, 어떤 기억이든 마찬가지였다.

설령 여동생일지라고 해도.


「엘리제 보육원」


대문에 걸려있는 명패. 나는 가만히 쳐다보았다.

녹이 슨 대문의 문고리에도 시선이 묻었다.


[뭐해? 안 들어가고?]


차마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 또한 게임이었다면 망설임 없이 들어갔을 것이다.

들어가기만 한다면 다음 진행은 운영자가 짜놓은 각본대로 진행되었을 테니.


그러나 지금은 현실. 모든 상황은 내 판단에 의해서 달라진다.

앞서 말했던 문제점이 발목을 잡은 것이었다.


나는 여동생이 누구인지도 모른다. 얼굴도, 이름도, 특징도 무엇 하나 모른다.

단서조차도 없었다.


게임에서도 여동생을 그리워하는 장면만 있었지, 구체적인 묘사는 아예 없었다.

심지어 여동생을 떠올리는 장면도 소녀를 연상시키는 배경에 이목구비는 모자이크 처리였다.


그러니 붙임성이나 사교성은 눈곱만큼도 없는 휴이로 들어간들.

뭘 해야 하는지도, 어떻게 해야 여동생을 만날 수 있는지도.

아무 것도 모르니 선뜻 발이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설마 여기까지 와서도 추억 팔이 하고 있냐?]


머뭇거리는 나를 오해하고 핀잔하는 그라엘.

그녀로서는 합리적인 의심이었으나 해명할 수 없었던 나로서는 곤란했다.


[이번엔 얼마나 죽치려고···!]

“재촉하지 마라.”


올 때만 해도 별 생각 없었는데, 막상 도착하니 별에 별 가정이 다 떠올랐다.

그러다 보니 무엇보다도 중요한, 잊어서는 안 될 사실을 기억해냈다.


파국으로 치닫는, 남매의 비극적인 미래.


원작대로라면 휴이는 여동생과 재회하고서, 교육을 명분 삼아 처절한 양육강식을 강요하고 또 주입할 것이다.


어떻게든, 그 수순만큼은 반드시 피해야 할 것이다.

이대로 발길을 돌려 여동생을 안 만나면 어떨까 싶었으나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본능적인 직감이었다.


사람이 숨을 쉬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것처럼.

오직 여동생을 위해서 아득바득 살아남았던 휴이는 이제 여동생 없이는 결코 살아갈 수도, 그리할 필요도 없는···.


뚜벅― 뚜벅―.


예고는 없었다. 그저, 어느 순간 귓가에 밟히는 발걸음.

불현듯 돌아가는 눈동자. 홀로 서있던 골목길에 진입한 누군가.

자연스레 나는 깊은 딜레마에서 깨어났다.


[설마 쟤가···.]


흑발의 긴 생머리.

아직은 앳된 모습이지만 어딘가 모르게 성숙함이 녹아 있는, 아리따운 소녀에게 닿고서 제멋대로 멈추는 눈길.


일순간 세계가 정지하는 듯한, 동시에 그리움이 물밀려온다.

어디서 오는지도 모를, 휴이가 고이 간직해왔을 감정들.


“···미야.”


무심코 입에서 튀어나온, 소녀의 이름.


미야 티아나슈.

휴이가 그토록 보고 싶어 하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여동생.


“······.”


지나치던 소녀는 부르는 목소리에, 나른한 눈동자로 휴이를 올려다보았다.

맞춰지며, 포개지는 시선. 그 망막 너머로 전해지는 모든 감각이 몹시도 자극적이었다.


그러나 심정은 어느 때보다도 평온했다. 대문 앞에 굳어서는, 잡념에 사로잡혔던 것이 무색하게도.

입술은 부드럽게 생동했다.


“많이 자랐구나.”


그때까지도 멍하니 보고 있던 소녀의 안색이 차차 변해갔다.


내가 그러했듯, 미야도 가슴의 저편에 묻어두었던 기억들이 되살아나고 있을 것이었다.

휴이를 잊었더라도, 인연으로 맺어졌던 옛적의 추억을 잊지는 못했을 테니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나는 휴이로서 묵묵하게 기다려주었다.

변함없는 일념으로 평생을 기다려왔던 재회인데.


고작 이 찰나를 기다려주지 못할 까닭은 무엇일까.


“···그.”


이윽고, 미야가 신중하게 말을 고르며 입을 열었다.

나는 옅은 미소마저 띄며, 기꺼운 마음으로 들었다.


“저, 누구시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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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3화, 여동생 (2) 23.01.16 48 1 12쪽
3 2화, 여동생 23.01.15 66 1 11쪽
» 1화, 빙의 23.01.15 74 2 10쪽
1 프롤로그, 귀환 23.01.15 77 2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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