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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가밥먹는다

먼치킨은 여동생을 잘 키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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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휴
작품등록일 :
2023.01.15 20:58
최근연재일 :
2023.01.18 19:25
연재수 :
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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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4,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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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1.16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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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5화, 입소

DUMMY

식사를 마친 나는, 사전에 송달 받은 아카데미 정복으로 환복 했다.


“어쩜 이리도 잘 어울리실까.”


단정하도록, 흐트러진 부위를 정돈하고 넥타이를 메어주던 여우가 뿌듯하게 웃으며.


“첫 출근이네요, 잘 다녀오세요 서방···.”


휴이의 품에 안기려고 했으나, 뒤에서 주시하고 있던 나무에게 구속되었다.


“다녀오십시오, 주군.”


배웅하고자 기다리고 있는 수족들.


“다녀오지.”


하나 같이 개성 강한 녀석들끼리만 두니 말썽을 피우진 않을까 싶지만.

새로운 규율을 제대로 심어두었으니, 별 탈은 없겠지.


[당장은 그렇겠지.]


밖을 나선 나는 아카데미로 향하는 길목이 아닌, 가까운 주변의 그늘을 찾았다.

그리고는 그 드리워진 어둠 너머로 발을 내딛었다.


그라엘의 권능, 이면(裏面)의 미로.


세계의 땅 끝이라고 할지라도, 어둠만 있다면 초고속으로 이동할 수 있다.

어떠한 방해 공작도, 간섭도 무의미하다.


본래라면 저택에서 아카데미까지 이동하는 데 소요 시간은 한 시간 남짓.

그러나 나는 느긋한 걸음걸이로도 5분이면 도착할 것이다.


[···좋은 줄 알면 통행료 좀 내라고, 양아치야.]


짧은 시간 동안 걸으며 나는 일정을 정리했다.

오늘이 입소식이기는 하나, 식(式)의 개념은 생도들에 국한되었다.

참석하는 교관들도 있지만 소수에 불과하고, 나는 도착하면 맡은 직책에 대한 업무를 배정받는다.


그러나 나는 어떤 교관이 되어 어떤 업무를 수행하는지 알 수 없다.


공정한 정규 절차를 밟고서 교관이 되었다면 내 특기와 분야를 토대로 얼추 예상이 되었겠지만.

막무가내로 이사장을 찾아가 반강제로 교관을 따낸 나로서는 감이 잡히지 않았다.

서류랍시고 제출했던 내 인적사항도 사실상 백지에 가깝기도 했고.


[킁킁.]


어떤 직책을 수행하느냐는 아닌 듯해도, 상당히 중요하다.

업무의 경중에 따라, 주어지는 환경에 따라서 내 아카데미 생활도 정해질 것이었다.


[냄새가 난다.]


결국 가봐야 아는 것.

어차피 어떤 포지션을 맡든, 내가 미야의 추천 교관인 이상 결코 떨어지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으니.

생각은 깊게 이어지지 않았다.


[야, 냄새가 난다고!]


그라엘이 흥분하며 꼬리를 흔들었다.


“뭐지.”


나는 걸음을 멈추고 물었다. 풍차마냥 돌아가던 그라엘의 꼬리가 가리키는 어딘가.

의심 없이 따라간 내 시선에 잡힌, 수상하게 밀집한 무리들.


“많이도 모였군.”


나는 그들을 주시했다. 이면과 현실의 경계 어딘가에 잠입한 작자들.

그러나 내가 있는 위치는, 엄밀히 말하면 이면의 심연이었기에.

나는 그들을 볼 수 있으나, 그들은 내 존재조차 감지할 수 없다.


“테러 집단이로군.”


그들이 누구인지는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어렵지 않았다.

오분의 시간은 거의 경과했고, 아카데미는 몇 발자국 남지 않은 지척에 있었으니.


[어떻게 할까?]


무엇보다도 저들의 중심에서, 순수 인간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더럽고도 불순한 기운이 감지된다.

마기라고 불리우는, 타락한 마나에 잡아먹힌 추악한 변절자들.

괴인(怪人).


[봐줘? 아님 조져?]


휴이는 관련이 없다면, 하등 쓸데없는 참견은 하지 않는다.

이해득실을 철저하게 따지는, 그 사고는 온전히 내게도 유지되었다.


“물어보나마나···.”


그들의 집결 의도는 명백하게 불순하나, 목적은 아카데미였고.

그들의 작전을 성공적으로 실행한다면 유혈 사태는 피할 수 없겠지만.

책임 소재는 전부 아카데미에 있다.


“당연 말살이다.”


허나 아카데미에는 세상에 둘도 없는, 오직 하나 뿐인 미야가 있다.

그것만으로, 이미 놈들의 처우를 논할 가치는 없다.


“감히 버러지 따위가 주제도 모르고 꿈틀거리나.”


격앙된 어조. 끓어오르는 분노.

나는 참지 않으며, 놈들에게로 방향을 틀었다.



*



도시 아르카나를 수호하듯 감싸고 있는, 아릴산.

드높고도 험난하기로 악명 깊은 산의 초입에 자리를 잡은 엔유 아카데미의 정문은.

인내의 언덕이라 불리는, 매우 가파른 오르막길의 끝자락에 위치했다.


“드디어.”


언덕길의 시작점에서 고개를 들고는 정문을 바라보는 미야.

벅찬 감정이 도통 숨겨지지 않는 얼굴이었다.


오직 오늘을 위해 살아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은, 그토록 꿈에 그리던.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상상을 반복해 왔던 그 순간.


“내가 여기까지 왔어.”


어제까지만 해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물론 근 일주일 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밤잠을 설치고, 오는 동안에도 심장의 두근거림이 멈추질 않았으나.

막상 생도의 신분으로 아카데미를 코앞에 두고 있는 지금.

더할 나위 없는 성취가 몰아치는 해류처럼, 용솟음쳤다.


“가볼까!”


거기다가 생도 추천을 받은 덕분에, 입학금, 등록금, 숙식 및 훈련 등 아카데미에서 생활하면서 청구되는 비용 전액 면제.

심지어 품위 유지비라는 명목으로 주어지는 지원금까지.


“누구신지는 모르지만, 정말 감사드립니다.”


천운이 따랐다고 해도 모자랄 지경의 은혜에 감사하며.


“앞으로 잘 알아갈게요!”


감격스러운 심정으로 언덕길을 등반했는데.

얼마 되지도 않아, 잇따르던 고양감은 금세 식어버렸다.


“사람들이··· 엄청 많네···.”


예비 생도들이 입소하는 당일.

인내의 언덕은 어떠한 이동 수단도 허용하지 않고, 오직 신체의 두 다리로만 등반해야만 하는 암묵적인 규율이 있다.

신분을 막론하고 평등을 추구하며, 오로지 실력을 가치로 삼는 아카데미 신조가 고스란히 반영된 전통으로.

언덕길은 아카데미 정문으로 향하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는데.

인파의 전부가 예비 생도들은 또 아니었다.


아무리 제한된 조건과 환경일지라도, 잘난 작자들은 어떻게든 잘난체하듯.

드러낼 권위가 있는 가문이나 귀족들은 두 다리로 걷는 전통을 지켜주는 대신, 대동하는 세력의 규모로 위세를 과시하는 것이었다.


“많이도 데리고들 오셨네···.”


똑같은 아카데미 정복을 빼입은 생도의 뒤로.

가문의 예복을 차려입은 가신들이, 제식과 행렬을 갖추고 뒤따르는 그 모습들을 둘러보며.

홀로 짐을 한가득 짊어지고 등반하고 있는 스스로가 초라해지는 듯하다.

피어오르는 열등감. 좁아진 어깨가 좀처럼 펴지질 않는다.


“혼자는 나뿐인 거 같네··· 하핫.”


제 나름대로 비루한 삶에서 악착 같이 발버둥 쳐서 올라섰는데도, 격차는 아득하고 현실은 냉정했다.

돌연 허무해지는 감정이 드는 것도 어쩔 수가 없었다.


“괜찮아. 약해지지 말자.”


그러나 미야는 굴하지 않았다.

비교되고, 비참할지라도 원망할 여유 따위는 없었으니.

여전히 소녀가 오를 산은 높다.


“아직 갈 길은 머니까.”


주먹을 불끈 쥐고, 마음을 다잡은 미야가 씩씩하게 걸어 나갔다.


“아, 맞다.”


인내의 언덕에는 전통 말고도 한 가지 더.

예비 생도가 언덕을 오르는 동안 간절하게 바라는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특별한 설화가 있다.


“깜박할 뻔했네.”


가던 길을 멈추고, 손을 깍지 끼고 눈을 감은 미야는 염원을 담아.

늘 한결 같았던 소원을 빌었는데.


쩌저저적―.


별안간 귓구멍을 파고드는, 불길한 징조.


쩌저저저저저적―!


깨져버린 유리의 표면처럼.

반사적으로 떠진 동공에 포착되는, 하늘에 그어진 실금은.

점차 벌어져서는, 막대한 균열이 번졌다.


에에에에에에에에엥―!


영상과 매체로만 접했던, 이질적인 현상. 뒤이어 요란하게 울려 퍼지는 사이렌.

어느새 멈춰선 모두가, 경악에 물든 얼굴로 한 곳을 바라보았고.

그 북적한 틈을 비집고 급박한 안색으로 뛰어내려오는, 아카데미 경계 요원들.


이 모든 순간들이, 찰나에 재생되는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그리고,


콰아아아앙―!


부지불식간에 균열을 찢어발기며 출몰한 괴생명체.

하늘의 절반을 뒤덮었던 균열조차 모조리 찢어발긴 거체는.

정오로 밝았던 세상을 온통 어둠으로 물들었고.

홍염보다 진한, 날카롭게 벼려진 그것의 눈동자를 우러러보는 생명들은.

종말을 목도한 듯, 사색이 되었다.


죽기 싫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되뇌었다.

그러나 핏물로 얼룩진 채 꿈틀거리는 흑룡의 주둥이를 보고 있노라면.

죽음이 임박했음을, 모두가 느낄 수 있었다.


“···아, 아.”


가까스로 쥐어짜낸 탄식. 위압적이고도 압도적인 존재에 짓눌리고서, 걷잡을 수 없는 공포감에 옴짝달싹 하지 못하는.

그 만물이 정지한 시간 속에서, 사람들은 삶을 체념하던 순간.

문득 흑룡의 밑바닥에서 튀어나온 사람의 형체.


“···어?”


소녀에게는 익숙한 사람이었다. 낯설지만, 결코 잊을 수 없는 인상의 소유자.

아카데미 정복을 빼입은, 고고한 자태의 그가 일제히 쏠린 시선을 무심하게 맞받아쳤다.

그 차가운 기색이 모두의 긴장을 휘어잡던 그때.


거대한 흑룡의 형체가 순식간에 그에게로 흡수되었다.

천지를 까마득하게 채우던 무지막지한 체구가, 마치 증발한 것처럼.

말끔하게 사라졌다.


놀랄 새도 없이, 가려졌던 햇볕이 드러나 사람들은 눈살을 찌푸렸고.


“안심하도록.”


그 틈에 잔잔한 어조가, 얼어붙은 모두의 심상에 깃들었다.


“사태는 종결되었으니.”


서서히 빛에 적응해가는 망막. 이윽고, 선명해진 시야로 주위를 둘러보면.

거짓말처럼, 하늘은 맑고 깨끗하다.

주위를 온통 어둡게 했던 칠흑도, 세상을 붕괴시킬 듯했던 균열도 없었다.

흔적조차 남김없이, 말끔하게.


그러나 확실했다.

경직된 신경. 미처 가시지 않은 공포. 쉽게 떨어지지 않는 발길.

방금 자신들이 겪었던 일화는 거짓이나 꿈, 환각 따위가 아닌, 분명한 현실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또한, 그는 누구일까.


그런 생각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옷깃을 정돈하며 유유히 아카데미에 입성하는 그의 뒷모습을.

귀신에 홀린 것 마냥 멀뚱멀뚱 쳐다보았고.


우다다다다다다―!


곧이어 아카데미에서 사태를 진압하기 위한 추가 인력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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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3화, 여동생 (2) 23.01.16 48 1 12쪽
3 2화, 여동생 23.01.15 66 1 11쪽
2 1화, 빙의 23.01.15 74 2 10쪽
1 프롤로그, 귀환 23.01.15 79 2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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