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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가밥먹는다

먼치킨은 여동생을 잘 키우고 싶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으휴
작품등록일 :
2023.01.15 20:58
최근연재일 :
2023.01.18 19:25
연재수 :
9 회
조회수 :
435
추천수 :
6
글자수 :
44,633

작성
23.01.15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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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2화, 여동생

DUMMY

걸을 때는 앞을 보며 걸어야 한다고 했다, 다치지 않게.

주위도 잘 살펴야 한다고도 했다.

인사는 눈을 보며 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에 만나도 누구인지 알 수 없다고.


기억에 있지도 않을 적부터 이어져왔던 가르침.

노력해봤으나, 정신 차려보면 결국 바닥을 보며 걷게 되고는 했다.

잘 고쳐지지 않는 버릇. 고질병.


···그래서일까.


― 미야.


정갈하고도 단정한 옷차림. 단단하고도 강인한 체격과 우월한 기럭지.

그 모든 밸런스가 어우러져 드러나는, 흠결 없는 아우라 속에서.

홀로 고고하게 얼어붙은 듯한, 차가운 눈매. 그런데도 어딘가 모르게 호의적인 시선.


― 많이 자랐구나.


흐릿하던 초점이 돌아오며, 올려다보는 그는 결코 쉽게 잊을 수 없는 부류인데도.


“누구였을까.”


누구냐고 물었더니 말없이 사라져버린 의문의 남자.

방 안에 들어와서 열심히 기억 속을 파헤쳐보지만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길가다가 흔하게 마주칠 수 있는 인상도, 품위도 절대 아니었는데.


“으음···.”


소녀의 이름을 알고 있는, 한 눈에 봐도 자신과는 다른 세계를 살아가는 남자.


미야는 머리를 굴려보았다.


떠오르는 주위의 사람들.

보육원 식구들. 학원 사람들. 아르바이트 사장님 ···끝.


소녀의 인맥은 그리 넓지 않았다.

오히려 좁다고 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한정적이었다.


애초에 누군가를 만나며 사교할 수 있는 삶도 못되었고.

있었다고 한들, 보육원 출신인 소녀가 남다른 분위기를 풍기며 격식 넘치는 남자와 연이 생길 리가 없다.


그러나 아예 짚이는 바가 없지는 않았다. 아니,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쪽 밖에는 없어보였다.


“설마.”


소녀는 책상의 서랍을 열었다. 안에 있던 한 장의 종이를 꺼냈다.

소녀의 궁핍하고 부족하기만 했던 인생을 긁어모아 이뤄낸 결실.

인재를 양성하는 기관들의 최정점, 엔유 아카데미 합격 통지서.


“아카데미 관계자가 보러 온 건 아닐까?”


점점 확신이 들어차는 미야.

관계자가 아니고서야, 그런 깔끔한 차림새로 찾아올 만한 사람이 없었으나.


“근데 그럴 리가 없겠지.”


아카데미 관계자가 합격생을 친히 방문하는 경우는 굳이 사례를 꼽지 않아도, 극히 드물었으니.


기대는 하지 않기로 했다. 괜한 실망으로 우울감에 빠지고 싶지 않았다.


···후우.


소녀는 크게 한숨을 몰아 내쉬며, 바닥에 축 늘어졌다.

보이는 것은 새하얀 도화지 같은 천장. 방 안은 따스하고, 서서히 몸에 힘이 풀린다.

노곤고곤하게, 졸음이 몰려오는 듯.

이렇게 멍하게 있다 보면 절로 그려지는 한 사람이 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도화지를 물들이는, 언제나 그녀의 심상을 꽉 채우고 있는 단 한 사람.


“···오빠.”


그러나 흐릿하다. 분명 잘 그려지고 있었는데, 떠올려보려고 하면 아무것도 없다.

초점을 잃은 탓이 아닌, 너무 어린 시절의 기억인지라 그의 얼굴이 없는 탓이었다.

표정도, 목소리도, 그 흔하게 남는다던 추억의 편린도.

하물며 이름조차도 없다. 모른다고 하는 게 맞겠지.


가끔은 정말 존재했던 사람일까 싶기도, 혹시 너무 외로워서 만들어냈던 대상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분명히 곁에 있어주었던, 둘도 없는 소중한 사람이다.

비록 실종신고 되고, 사망처리 된지 십 년이 넘었지만.


“보고 싶어요.”


소녀는 지금도 어딘가에 그가 살아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그 일념 하나로, 오로지 그를 찾아가서 증명하겠다는 의지만으로.


소녀는,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



[잘 자네.]


피곤했는지, 단잠에 빠진 미야를 보며 나는 생각이 복잡해 질 수밖에 없었다.


[여린 몸에 피로가 제법 많이 쌓였네.]


밖에서 재회했던 당시만 해도 미야가 휴이를 알아보지 못한, 예상치 못한 전개에 그만 당황했었는데.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휴이가 외딴 차원에 강제로 끌려갔던 나이를 생각하면, 미야는 너무나도 어린 시절이었다.

고작해야 다섯 살은 됐을까.


작달만한 다리로 뛰다가 넘어지면 서럽게 울고, 콧물을 질질 흘리며, 작은 과자에도 헤벌쭉 미소 짓는.

그런 아기였던 것이다.


[···과자는 뭐, 맛있겠네.]


게임의 서사로만 이해하다가 막상 현실이 되어 경험하니, 이리도 잔인한 운명이 있을까.

새삼 깨닫는다.


[그러면 이제 저 꼬맹이 깨어나면, 짜잔 내가 네 오빠다 하는 거야?]


그렇다고는 하나, 내 정체를 순순히 고백할 수는 없다.


[엥? 갑자기 뭔 소리여.]


본래의 계획은 미야와 재회하는 것이었으나, 생각이 바뀌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미야에게 다가가 내가 휴이라고 일러주며 힘껏 부둥켜 안아주고 싶지만.

머리를 쓰다듬어주고픈 충동이 강하게 일지만.


이것은 진실 된 휴이의 감정이면서, 내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어긋난 사랑이었기에.


그렇기에 나는 더더욱 나를 알리지 않기로 했다.

실수로 내가 우를 범할지라도, 미야라도 나를 경계하며 벗어날 수 있도록.


실제로, 지금도 미야와의 재회로 차오르는 기쁨 뒤편에 치솟는 광기라 해도 좋을 무언가가 들끓고 있다.


저 연약하고도 나약한 소녀를 보며 발아하는, 잘은 모르겠지만 자칫 방심하면 잡아먹힐 듯한.

비틀린 욕망이었다.


잊어서는 안 된다.


눈앞에서 사랑스럽게 잠든 아이는 이 이야기의 끝에서 휴이의 심장에 검을 꽂아 넣는 비극의 여주인공이다.


원인은 휴이의 뒤틀린 애정에서 비롯된 잘못된 가르침.


누구보다도 강력한 무력만이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다는 강박을 떨쳐내지 못하고, 그 엄격하고 잔혹한 잣대를 들이밀어 미야를 감금하고, 고립시키고, 사지에 던져 넣어 악랄하고 비정하게 길러냈던, 줄줄이 나열하면 끝도 없는 수많은 악행들.


내가 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알고 있는 서사이자, 절대로 피해야만 하는 결말.


나는 그런 미치광이의 말로 같이 허무하게 죽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짐하며, 벽면에 기대어 있던 나는 미야에게 다가갔다.


[뭐하려고?]


걸음은 주저 없었으나, 걱정할 것은 없다.

내 존재는 은신되어 어떠한 기척도 미야에게 닿지 못할 것이다.


그토록 기다려왔던 오빠가 곁에 있는 줄은 꿈에서도 모른 채, 곤히 잠든 소녀.

나는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당장이라도 품에 안고픈 충동을 짓누르며, 나는 미야가 들고 있던 아카데미 합격 통지서를 빼냈다.


[엔유? 촌스럽네.]


남은 고민은 하나다.

정체를 알리지 않고서도, 미야를 성실히 돌볼 수 있는 방법.


“···오빠.”


별안간 파고드는 애달픈 음성.

나는 놀랐으나, 어떠한 미동도 보이지 않은 휴이의 신체는 태연하게 시선을 아래로 내릴 뿐이었다.


“······.”


내 발치에서 여전히 눈꺼풀을 내리고 새근새근 잠들고 있는.

꿈에서조차 제 오라비를 구슬프게 찾고 있는 미야.


내려다보며, 나는 대답했다.


“그래, 나는 여기 있다.”


닿지 않겠지만.

담담하게, 또한 진심을 담아.


“이제 안심하도록.”


소녀가 더는 모진 생을 홀로 견디지 않도록.

이렇게나마 내가 곁으로 돌아왔음을 알린다.


[꼴값 떠네.]


···나는 돌아서며 그녀를 불렀다.


“그라엘.”

[부, 불렀슈?]


하나의 실마리가 풀린 듯, 머리가 맑아지는 감각.


“갈 데가 있다.”


아무래도 나는 게임의 캐릭터에 빙의했다는 프레임이 갇혀있던 듯하다.

그저 찾기만 하면 다음 시나리오가 진행되고, 유저가 헷갈리지 않도록 단서만 짚는다면 알아서 척척 넘어가는 시스템처럼.


캐릭터에 빙의했다는 사실만으로 인물들을 단순하게 취급했고.

벌어지는 현상들을 퀘스트의 일부라고 단정했다.


[어디로 갈 건데?]


완벽한 패착이었다.

게임의 캐릭터가 되어버린 이상, 어찌되었든 캐릭터인 내게 게임은 곧 실재하는 세계였다.


아직도 이성의 한 쪽에는 이게 무슨 의미일까 싶지만.

휴이에 감정을 이입하고, 몰입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면 이해는 한결 수월했다.


“엔유 아카데미.”


모든 상황과 입장이 정리된 지금, 떠오르는 한 가지의 약속.


‘해줄 수만 있다면 나라도 대신 둘을 돈독하게 맺어줄 텐데···.’


어떻게라고 묻는다면, 겨우 빙의된 지 하루도 지나지 않는 시점에 해줄 수 있는 말은 없었다.


다만, 방침은 확고하게 정해둔 참이었다. 나는 미야에게, 한없고도 올바른 사랑을 베풀 심산이었다.


휴이가 다른 차원에 강제 이송되지 않았더라면 미야가 한없이 누렸을 그 사랑을.

그러나 피폐해진 휴이가 다하지 못했던 그 정성을 내가 아낌없이 나눠줄 것이다.


“바로 출발하지.”


졸지에 생전 팔자에도 없는 여동생을 돌볼 처지에 놓였네.

그런 하소연을 닮은 상념으로 마무리하고 자리를 떠나려는데.

그라엘이 그림자 속에서 뜬 눈으로 멀끔멀끔 쳐다봤다.


[거기가 어딘데?]


···그건 생각 안 해봤는데.


이, 이제부터 생각해 볼까?



*



엔유 아카데미.

국가와 신분을 불문하고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연합’의 부속 기관이자, 세계적으로 위명을 달리하는 명문 아카데미.


이사장, 슈아 스칼라는 집무실에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새로 입학할 생도들의 인적사항을 살펴보던 참이었다.


“흐음.”


앞날이 창창한 새내기들을 맞이하는 설렘은 매년 지루하게 반복되는 굴레를 살아갈 원동력이 되어주는.

정말 몇 안 되는 긍정적인 시너지였다.


터놓고 말해서, 적지 않은 세월을 쌓아온 그녀로서도 전혀 예상치 못한 사태들이 펑펑 터지는 것이다.


그녀가 아무리 수많은 지식과 경험을 축적해왔다고 한들, 결국 맞닥뜨리는 미래는 한 번도 부딪혀보지 못한 미지의 세월이었기에.


다가오는 봄이란, 대체로 그런 계절이었다.


“기별도 없이 이리 찾아오시면 곤란한데.”


지금만 해도 보아라, 이사장의 집무실에 허락도 없이 침입한 남녀 한 쌍이 있다.

정갈한 양복을 차려입은 남자와 우아한 각선미가 부각되는 검은 드레스를 입은 여자.


헌데 이사장실에 잡다하게 설치된 침입 감지 시스템은 작동할 기미조차 없었다.


원래라면 요란하게 경고음이 울려 퍼지며 저들은 진작 포박되었어야 했는데.

사전에 무력화시켜놓은 것인지, 망가뜨려놓기라도 한 것인지.

대치하고 있는 지금, 집무실은 고요하기만 했다.


“어쩐 일로 오셨을까요?”


그런 주제에 양심도 없는 건지, 아니면 교양은 차리고 싶은 건지 손님석에 점잖게 앉아서는 길쭉한 다리를 꼬고 있다.


거만하기 짝이 없지만.

본 적 없는 낯선 얼굴들이, 그 이면에 심어진 범상치 않은 기운이 슈아의 유별난 호기심을 당기고 있다.


과연 이들은 어떤 목적을 지니고서 방문했을까요.


“아무튼, 반가워요.”


뭐든 좋다.

지루한 일상에 지친 그녀에게, 흥미로운 사건은 언제나 환영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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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4화, 수족 23.01.16 44 0 12쪽
4 3화, 여동생 (2) 23.01.16 49 1 12쪽
» 2화, 여동생 23.01.15 67 1 11쪽
2 1화, 빙의 23.01.15 74 2 10쪽
1 프롤로그, 귀환 23.01.15 79 2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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