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고래가밥먹는다

먼치킨은 여동생을 잘 키우고 싶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으휴
작품등록일 :
2023.01.15 20:58
최근연재일 :
2023.01.18 19:25
연재수 :
9 회
조회수 :
434
추천수 :
6
글자수 :
44,633

작성
23.01.17 19:25
조회
27
추천
0
글자
13쪽

7화, 이정표

DUMMY

엔유패드.

아카데미 생도들에게 기본으로 주어지는 패드로, 연합의 방대한 정보 수집력과 세계적인 기술력이 응집된 최첨단 장비다.

물론 전반적인 쓰임새가 아카데미 강의 및 훈련인지라, 생도 신분 이상의 조건 제약이 걸려 있는 정보는 제한적으로 공개되는 경우가 많지만.

최소한 아카데미에 관련해서는 없는 정보도 만들어서 저장되어 있다.


“엄청 대단하신 분이셨네!”


패드에 저장된 휴이의 정보를 열람하던 미야가 입을 틀어막았다.

실물을 고스란히 담아낸 사진 밑으로 빽빽하게 나열된 약력을 제외하면 특별할만한 내용은 딱히 없어 보이지만.

심지어 공란으로 기재된 사항까지 있는, 성의가 없어도 너무 없는 인적사항이지만.


“무슨 참전한 전투가···!”


그러나 약력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하나하나가 가히 세계를 뒤흔들었던 대사건이었거나, 대사건이 될 뻔했던 막중한 사태였다.


“이 정도면 살아있는 역사 아냐···?”


그런데 왜 기억에 없는 것일까. 생도로서는 모를 수가 없는 수준인데.


“아, 모르겠다!”


아무리 골몰해 봐도, 짚이는 구석은 없었고.

생각할수록 머릿속은 실타래가 엉키듯 복잡해져 갔다.

이대로 가다간 아무 소득도 없이 방구석에만 하루 종일 박혀있을 듯했다.

버려지는, 아까운 시간들. 따질 것도 없이 명백한 낭비였기에, 미야는 생도복으로 환복하고 밖으로 나왔다.


“아, 이 옷 입고 아카데미에 있으니까 꼭 나 생도 같네···.”


오늘은 입소 첫 날.

공식적인 훈련까지는 아직 시일이 남았지만, 수속 절차는 모두 밟았으니 어엿한 생도 신분인 것이다.


“아, 맞다. 나 오늘부터 생도였지.”


작게 호들갑을 떨며, 미야는 패드로 아카데미 약도를 띄웠다.

찾는 것은, 생도들이 언제든지 자유롭게 훈련할 수 있도록 마련된 아카데미의 첨단 시설들.


“되게 많네. 어디부터 가봐야 되지?”


없는 형편으로 생도를 준비했던 미야는 제대로 된 시설에서 훈련해 본 적이 손에 꼽았다.

시설을 대여하려면 돈이 필요한데, 소녀의 지갑 사정은 늘 여의치 않았으니.


지겹고도 궁핍한 나날들이었다. 어떻게 아카데미 실기를 붙었을까 스스로도 납득이 어려울 만큼.


“어차피 다 돌아볼 거니까, 우선 가까운 시설부터 돌아볼까!”


허나 이제 더는 훈련에 임하면서 돈 걱정을 안 해도 된다.

그러니, 늘 다하지 못했던 훈련 걱정에 불안하고 시달려왔던 한을 졸업할 때까지 몽땅 풀어버릴 작정이었는데.


“···다, 다들 첫 날부터 적극적이네.”


시설들은 생도들로 바글바글했다. 훈련할 자리가 없는 것은 당연했고, 대기열 순번을 입력해 두려고 보면 기본이 두 자릿수.


그나마 다행이라면 훈련 순번까지 대기하면서, 앞선 생도들의 훈련을 참관할 수가 있었다.

재미있었다.

시설들은 하나 같이 소녀가 몸소 겪어보지 못했던 유형들이라서, 방식 자체가 생소한 훈련들이 많았다.

반면에 훈련하는 다른 생도들은 예전부터 같은 훈련을 반복해왔던 듯 익숙해 보여서 조금은 주눅이 들기도 했지만.

보는 동안 기다림이 지루하지 않았고, 오히려 상당한 부분에서 참고가 되었다.


근데 한 사람당 훈련하는 시간이 꽤 길다.


“다른 데도 둘러봐야겠는데.”


오늘만 날이 아니니까.

직접 해보지는 못하더라도 비교적 많은 훈련 시설들을 알아보고 싶었던 미야는 발길을 옮겼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다른 시설들을 둘러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훈련실은 만석이었고, 생도들로 미어터졌다.


중간에 순환이 금방 이루어지는 훈련들이 있긴 했었는데.

다들 능숙하게 훈련하는 모습을 계속 보고 있자니, 선뜻 참여하기가 망설여졌다.

보는 눈도 많은데, 혼자 어설프게 훈련하는 모습을 보이기가 민망했던 것이다.

괜히 망신당하고 싶지 않았다.


“어? 여기는 아무도 없네?”


의욕도 한 풀 꺾여서는, 슬슬 구경도 웬만큼 했겠다 싶을 무렵.

근방의 구석진 외곽에 떨어져 있는 훈련 시설이 궁금해서 와봤는데.

북적하던 여타의 시설들과는 다르게, 생도들이 한 명도 없었다.

아니, 불조차 들어와 있지 않았다.


“내가 첫 손님인가?”


흥얼거리며 주위를 둘러보는 소녀의 눈동자에 이채가 실렸다.

시선의 부담이 없는 훈련이라면, 생도로서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마음먹은 미야는 곧장 훈련실로 입장했다. 무슨 훈련인지는 모르겠지만, 몇 번 해보면 감이 오겠지.


[미야 티아냐슈 생도, 3번 게이트 입장]


소녀의 입장을 알리는 안내 음성이 울렸다. 최대 열 명까지 수용 가능한 공간을 혼자 독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뭐야, 사격 훈련이었네?”


전방에 설치된 거대한 스크린. 앞에 진열된 다양한 사격전용 무기.


“이건 또 내가 잘하지.”


사실 제대로 해본 경험이 없어서, 아카데미 실기에서도 점수는 변변찮았지만.

허세 좀 부리면 어때. 듣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없는데.

일전에 없는 사치에, 뭐라도 된 기분이었다.


[훈련을 시작합니다.]


스크린에서 선명한 표적이 생겨났다. 그것은 괴수의 형상을 띄며, 일관성 없이 이리저리 움직였다.


흔들리는 표적을 집중해서 노려보다가, 미야는 활을 집었다.

화살은 없다.

그저 조준은 시선과 동일하게, 시위를 팽팽하게 당기고, 과녁을 끝까지 쫓으며, 정지하는 호흡.


자세와 동작이 일치하는 순간, 마나를 방출했다.

기저에서 끌어오는 그 힘은 섬세한 손끝으로 흘러 표적을 꿰뚫을 화살을 빚어냈고.

발화하듯, 푸르게 일렁이는 눈은 순간을 정지시키며.

손이 시위를 놓았다.


슈우우우우웅―!


공간을 가르며, 정직하게 날아간 화살은 가상의 표적에 명중했다.


“이 정도는 껌이지!”


주먹을 불끈 쥐고는 환호하는 미야. 직후, 바로 다음 표적이 생성되었다.

이번에는 하나가 아닌, 둘이었다. 스테이지를 통과 할 때마다 단계적으로 난이도가 상승하는 시스템.


“해보자고!”


소녀는 호흡을 가다듬고 집중했다. 온 신경을 집약시킨 화살이 차례로 공간을 갈랐고, 두 궤적에 모두 적중했다.

기뻐할 겨를도 없이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갔다.

나타난 표적은 다섯. 똑같은 형상을 지녔던 이전과는 다르게, 모두 제각각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좀 많은데···?”


지레 겁을 먹긴 했지만, 미야는 활을 들었다. 타겟은 제일 만만해 보이는 녀석.

정확하게 조준을 완료하고 발사했다. 그러나 빗나갔다.

화살이 녀석을 관통하려는 순간, 변칙적인 움직임으로 회피한 것이다.


“어쭈···?”


주저하지 않고, 곧장 쏘아진 두 번째 화살. 그러나 녀석은 피해버렸다.

벌써부터 힘겨울 수는 없었기에, 가당찮은 심정이 되어 녀석에게 열의를 불태웠는데.


[밀로 라일라 생도, 4번 게이트 입장]


마침 훈련실에 울리는 안내 음성. 흠칫 놀란 미야가 고개를 돌렸다.


“······!”


어느 장인이 평생을 바쳐 조각한 여인상처럼. 환한 실내에서도 돋보이는 희고 고운 피부.

큰 눈망울이 매력적인 수려한 외모.

같은 여자로서도 시선이 올라가는 장신에 아름다운 각선미.


···첫 대면이지만, 모를 수가 없는 생도였다.


세계의 정상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라일라 가문의 영애이자, 장차 가문을 짊어지는 촉망 받는 후계.

세간에서 수식하기를, 운명의 선택을 받은 소녀였다.


[훈련을 시작합니다.]


미야의 노골적인 시선에도, 눈길조차 주지 않은 그녀가 생성된 표적에 활을 겨냥했다.

그리고, 단숨에 스테이지를 돌파했다.


물 흐르듯 부드러운 마나 조작. 정교하고도 신속한 사격.

기력을 소진하고도, 흔들림 없는 몸짓.


보고 있노라면, 여실히 깨닫게 된다. 그녀는 여타의 생도들과는 완전히 다른 체급이었고.

닿을 수 있을까, 싶은 격차였다.


그러한 솜씨로 이어진 스테이지도 수월하게 통과했다.

그쯤,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는 미야를 힐끗거리는 밀로.

미야는 훔쳐본 것 마냥 어깨를 들썩이며 시선을 피했다.


“······.”


전방에는 여전히 맞히지 못한 다섯의 표적이 있었다.


미야는 호흡을 가장한 한숨을 내쉬며, 다시 활을 들었다.

그러나 자신이 없었다.


엄청난 속도로 사격하며, 미야가 맞추지 못했던 표적도 일격에 작살내버리고.

실시간으로 표적을 지우고 있는 천재를 옆에 두고 기가 죽어버렸다.


하물며 미야는 슬슬 한계였다. 마나 적재량이 많지 않았고, 사격 훈련도 익숙하지 않아 피로감이 금방 몰려온 것이다.


그래도 활을 들었으니 한 발이라도 더 쏴볼까 했지만.

어차피 잘 쏠 것 같지도 않아서, 무리는 하지 않기로 했다.


‘돌아가자.’


잘하진 못했지만, 훈련을 해봤다는데 의미를 두자.

다독이며 활을 내려놓고, 미야는 돌아가려는데.


“이게 다야?”


들려오는 목소리. 미야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틀었다.

의미 따위는 모르는 채로.


“···어?”


그리고 마주해 버린, 한심 섞인 밀로의 시선.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천한 것을 업신여기는 듯한 눈빛.

일순간 정신이 아득해지는 미야.

돌발적인 상황에 인지조차 느려지며, 어버버하는 사이.


“시간 낭비였네.”


그 경멸스러운 기조를 유지하며, 밀로가 먼저 자리를 떠났다.



*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


넘쳐나는 서류를 전부 읽다보니, 어느덧 해가 저물고 있었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빠져 있었다만, 덕분에 어느 정도 감을 잡은 참이었다.


내가 왜 이 자리에 앉게 되었는지,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오늘은 이만할까.”


아직 읽지 못한 서류가 산더미였지만, 급할 것은 없다.

내게 넘쳐나는 것은 시간이니.

이럴 때마다, 약골로 시작해서 초장부터 굴러대는 생존물이 얼마나 비참한지 새삼 실감이 난다.


[그거 꼬맹이 얘기 같은데. 옴뇸뇸.]


그라엘이 그림자에서 얼굴을 내밀은 그라엘. 창가 너머를 바라보며 과자를 씹고 있다.


내가 주지는 않았으니, 아마 아카데미의 누군가에게 훔쳤거나 매점을 약탈한 모양이다.


“잘도 찾았군.”

[흥! 숨긴다고 내가 모를 줄 알았냐!]


과자 부스러기가 묻은 주둥이로 성질을 부렸다.


[아무튼, 꼬맹이 지금 갈굼 당하는 거 같은데.]


갈굼.

적잖이 심기에 거슬리는 단어였다. 허나 일단은 진정하며, 나는 그라엘이 바라보는 방향을 주시했다.


천리안 같은 편리한 능력은 휴이가 쓸 수는 없지만.

그라엘은 가능하다. 그리고 그녀가 보는 시야를 나는 공유 받을 수 있다.


[대충 어떻게 된 상황이냐면···.]


자초지종을 들으며, 시야에 잡히는 미야와 또 한 명의 생도.

곱상한 외모와 거동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품격.

제법 고결한 귀족의 자제 쯤 되는 듯 보였으나, 내 알 바는 아니었다.

왜 아무도 없는 훈련실에 굳이 단 둘이 있게 되었는지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 상황. 이해됐어?]

“충분하다.”


처연하게 고개를 떨구고 있는 미야는 그냥 보아도 상태가 좋지 않았다.

오자마자 텃세를 된통 당해버렸으니, 그럴 수밖에.


그러나 이는, 앞으로 미야가 숱하게 겪을 일상이기도 했다.

아카데미는 철저한 경쟁 구도. 상대는, 콧대 높은 귀족과 명망이 자자한 가문 혹은 집단의 자식들이었으니.

나약해서는, 결코 한 발짝도 제대로 나아가지 못할, 확정적인 미래.


“좌절하고 있군.”


안타깝게도, 미야의 축 처진 어깨는 캄캄한 앞날을 암시하는 듯했다.


“한심하게도.”


그리하여 날뛰는 본능. 가슴 깊은 부위에서 차오르는, 원초적인 증오.

유약한 자질에 대한 역겨움이자, 혐오였다.


만일 절제하지 못한다면, 나는 미야를 찾아가 질책하고 꾸짖을 것이 자명했고.

상정할 수 있는 최악의 해결책이었기에. 나는 이를 꽉 깨물며 감정을 다스렸다.


허나 이대로 방관하기에는, 훈육자로서 용납하지 못할 상황.

직접 나서서 해결사를 자처하고 싶었으나, 이 역시도 옳지 못한 조치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고민할 가치도 없던 나는, 씨익 웃었다.


“나무.”


아이들의 문제는, 아이들 선에서 해결되어야 했다.

그 사실을 망각하고 함부로 끼어드는 간섭은 아이의 성장을 도려내는, 심각한 패착.

애초에 내가 나설 사안이 아닌 것이다.


― 부르셨나이까, 주군.


보호자는 보호자답게.

아이를 믿어주면 그만인 것이다.


부딪혀 넘어지더라도,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일어나는 과정을 묵묵히 기다려주면 되는 것이다.

아주 약간의 응원과 함께.


“미야를 도와주어라.”


그녀의 조력이라면.

탁월하진 못할지라도, 부족하진 않을 것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먼치킨은 여동생을 잘 키우고 싶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9 8화, 이정표 (2) 23.01.18 28 0 13쪽
» 7화, 이정표 23.01.17 28 0 13쪽
7 6화, 입소 (2) 23.01.16 32 0 13쪽
6 5화, 입소 23.01.16 35 0 10쪽
5 4화, 수족 23.01.16 44 0 12쪽
4 3화, 여동생 (2) 23.01.16 49 1 12쪽
3 2화, 여동생 23.01.15 66 1 11쪽
2 1화, 빙의 23.01.15 74 2 10쪽
1 프롤로그, 귀환 23.01.15 79 2 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