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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가밥먹는다

먼치킨은 여동생을 잘 키우고 싶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으휴
작품등록일 :
2023.01.15 20:58
최근연재일 :
2023.01.18 19:25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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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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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1.16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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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4화, 수족

DUMMY

사람에겐 각자 저마다의 사정이 있다. 그 사연이란 정도가 있겠지만.

아무리 사소할지라도, 처한 사람에게는 하나 같이 녹록치가 않은 경우가 부지기수였고.

가랑비에도 옷이 젖듯, 사연이 누적되다 보면 사람은 저도 모르게 부정에 젖어간다.


그리하다보면 어느새 문턱까지 찾아와 문을 두드리는, 고독.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보고 마주하게 되는 쓰디쓴 녀석이지만.

기껏해야 유아기를 갓 벗어나던 시절이었을 아이가 부딪치기에는.

그 가혹한 처지가,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재해와도 같았을 것이었다.


[머리 검은 놈아, 이거 범죄다.]


심야의 산자락.

멀찍이 떨어진 창문 너머로 구슬프게 울고 있는 미야를 보니, 새삼 소녀가 얼마나 고달픈 길을 개척하며 견뎌왔을지 짐작이 간다.


그러나 감정에 젖어 마음이 약해져서는 안 된다.


[저러다 옷 갈아입으면 어쩌려고.]


현재의 가엾고 딱한 미야가 한없이 안타깝게 느껴지더라도.

잊지 말자.

나약한 미야를 혹독하게 키워내고픈, 분명하게 잠재해 있는 욕망을.


[근데 되게 오래 우네. 탈수 오겠는데.]


겨우 그 따위에 나는 무너지지 않을 것이지만.

미야를 곁에 품어두고도 이성의 고삐를 움직이기에는 매우 이르니.


[정말 가서 안 달래줘도 괜찮겠어?]


전혀 괜찮지 않다.

속에서 천불이 타오르듯, 심박이 요동치고 있다.

그러나 당장 손 쓸 수 있는 방도는 없기에, 분노를 삭이며 나는 오직 한 가지만 되뇌었다.


시리고도 차가운 세상 밖에 나앉아 있는 저 아이.

미야를 누구보다도, 잘 키워내겠다.

망가져버린 애정이 아닌, 온전한 사랑으로 이어주겠다.


휴이로 살되, 그와는 다른 나로 살며.

어둡고 습한 음지가 아닌, 양지바른 아르카나에서 미야와 건강한 일상을 영위할 것이다.


[···얼씨구, 그 기도문 같은 맹세도 이제는 지겨워 죽겠네.]


적어도 오늘은 추천서로 미야의 밤이 따뜻하겠지.

지금은 다만 이것으로 되었다. 나는 관음 하던 눈길을 거두었다.


깊어지는 밤과 함께 잠들어가는 도심.

거리에 수놓아진 술집의 불빛에 비춰지는 다양한 군상들.

현실에서 수도 없이 봐왔던 순간들과 다름이 없는데도.

신이 존재하고, 환상이 살아 숨 쉬는 판타지의 야경은 퍽 낯설었다.


매일 피보라가 몰아치는 사지를 전전하던 휴이로서도, 그 캐릭터를 플레이하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나로서도.


어쨌든, 이제는 여기에서 흘러가는 세월을 보내야만 한다.

언제까지인지는 알 수 없다. 기약은 없었고, 어쩌면 영원할지도 모르지.


그래도 길었으나, 돌이켜보면 짧은 듯하기도 했던 에이타에서의 하루가 드디어 지나간다.


첫 단추는, 그럭저럭 맞춘 듯했다.


아카데미 이사장, 슈아는 내가 원하는 대로 요구를 들어주었고.

나는 이제 교관의 신분으로서, 미야를 지켜보며 돌볼 것이다.


[야, 야.]


자금이 필요하다면 아낌없이 지원하고, 성장이 필요하다면 따끔하게 조언할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모든 방면에서 미야를 조력할 수 재주와 능력을 지녔으니.


[애들 온다.]


미리 그려보는, 함께 생활하며 성장해 나가는 미래.

별 탈이 없기를 바란다만, 아마 내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었다.


원인이 무엇이든.

위협적인 사건과 사고가 끊임없이 터지는 에이타 특유의 세계관 설정이 가만두지를 않을 테니까.


지금처럼.


[그냥 무시하게?]


어떤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별안간 부산스러워지는 주위.

나는 상념에서 깨어났다.


야경에서 눈을 떼고 돌아본 산자락은 시커먼 어둠에 물들어 고요하기 그지없었으나.

나를 속일 수는 없다.


“그라엘.”

[응?]

“왜 미리 말하지 않았지?”


그들을 불러내기에 앞서, 나는 우선 그라엘을 질책했다.

휴이는 막강한 무력을 지녔지만, 생존에 극도로 치우친 성장을 거듭한 탓에 세밀한 디테일이 부족했다.

탐지, 은신, 치유 같은 거의 대두분의 조작 계열에 약했는데.

가르쳐줄 마땅한 스승이나, 독학으로 숙련할만한 여유도 없어서 그라엘에게 의존해왔다.


[아니, 이 개뼉다구 같은 놈이!]


사실 배울 필요성도 없었다. 오직 적의 섬멸. 휴이는 그 위력이면 충분했으니.

또, 그라엘이 알아서 잘해주기도 했고.


[지가 잡생각하느라 씹어놓고 왜 나한테 화풀이야!]

“···그랬나.”

[네 놈은 맨날 그런 식이야! 알아? 아냐고!]

“알았다.”

[뭐? 알았다? 알았다아?]


씩씩거리는 그라엘을 제쳐두고, 나는 숨은 녀석들을 불렀다.


“나오너라.”


경계는 하지 않았다. 애초에 위험하지도 않았다.


바스락― 바스락―.


부름에 응하듯, 수풀 너머로 등장하는 다섯의 형체.

전신을 가리는 로브를 뒤집어쓴 그들은, 어둠에서 벗어나 월광을 받으며.

내 앞으로 몰려와 경건하게 무릎을 꿇었다.


모르는 사람이라면 당황스러울 법도 하지만, 나는 태연하게 눈짓으로 정렬한 그들을 일별했다.

익히 잘 알고 있는 수준을 넘어, 친숙하기까지 한 녀석들.


“너희들도 넘어왔느냐.”


막바지의 굵직한 에피소드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던 조연들이자.

에필로그에도 잠시나마 출현했던 휴이의 수족들.


아는 이 하나 없는 세계에서, 녀석들을 만난 나는 반가웠다.

녀석들도 여기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자유를 주었거늘, 미련하구나.”


휴이가 다른 차원에서 에이타로 넘어오기 직전 최종 에피소드를 마무리하며, 수족들에게 채워뒀던 족쇄들을 풀어주었다.


그런데도 본신의 모습으로 나타났다는 것은, 자발적으로 차원을 넘어온 것이겠지.


직접 포탈을 열어낼 재량까지는 없을 테니, 휴이가 타고 왔던 포탈에 슬쩍 끼어든 모양이었다.


“왜 넘어왔지.”


내가 물었지만 이미 나는 그 진위를 꿰고 있다.

다섯의 수족들은 족쇄를 차고 있었어도 휴이를 자발적으로 섬겨왔다.

명령을 이행하는데 불복도 없었고, 휴이의 말은 그들에게 법이자 진리였다.


그러니 나는 이들이 반가울 수밖에.


“그야, 당연히 서방님을 보필하러 왔답니다.”


고개마저 조아렸던 다섯의 중심에 잇던 인물이 대표로 발언했다.

우아하고도, 간드러진 그녀의 음색에 여우가 꼬리치는 듯한 콧소리가 한 방울.


“그것으로도 족한 삶이었더냐.”


내 목소리에는 노기가 섞였다. 휴이라면 응당 했을 언행들.

그러나 나 만큼이거나 나보다 더 휴이에게 맞춰져있는 수족들은 움츠러드는 기색조차 없었다.


“노여워마세요. 저희에겐 충분히 고결한 삶이랍니다.”


그녀는 물러서지 않았다. 수족일지라도, 그들은 진정으로 휴이를 추앙하며 신실하게 섬기는 것이었다.


참 신기했다.

스피커 너머로만 듣던 목소리가, 어떤 장치를 거치지 않고 순수하게 내 귓가로 스며드는 생생함.

오묘한 설렘이었다.


“너희가 딛고 있는 이 땅은, 완전히 새로운 세계다. 이전의 세계와는 다른 법칙, 보다 엄격한 규율로서 너희를 다스릴 수밖에 없다.”


휴이가 이들과 삶을 영위했던 세계는, 흔히 표현되는 지옥도와 다를 바가 없었다.

야성과 공포가 울부짖는 매일. 생존보다 만연한 죽음.

오늘의 한낮이 찬란했더라도, 밤의 장막이 드리워지면 내일을 기도하며 잠드는.

살생이 정당하고, 희생이 멍청한 세계.


그러나 에이타는, 비교적 평화롭고 우호적이었다.

내막을 따지고 본다면 크게 다르지는 않다만.


“물론이랍니다. 서방님 말씀이라면 무엇이든···.”

“혓바닥이 길다 이 년아.”


그녀의 말을 자르는, 다른 수족의 거칠고도 단호한 독설.

이 또한 익숙하기에 나는 무시하고서 나머지 수족들을 일별했다.

미동도 없는 그들. 이견은 없는 듯했으니, 나는 결정을 내렸다.


“내 고향에 온 것을 환영한다.”


다섯에게는 각자마다 고요한 능력이 있다.

위력은 휴이나 그라엘에 미칠 바는 아니었으나, 적어도 도시 하나쯤은 거뜬하게 반파시킬만한 전력들.


그렇기는 해도, 그들이 유독 반가운 데는 불시에 떨어져버린 이 땅에서의 여정이 조금은 덜 외로워진 덕분이겠지.


천군만마를 얻은 듯하다.

환호라도 지르고 싶었으나, 좀처럼 기뻐할 줄 모르는 이 몸은 설핏 웃어대는 꼴이 고작이었다.


[또 시끌벅적하겠네.]


그림자에서 고개를 내미는 그라엘. 귀찮은 듯 툴툴거리지만, 세차게 팔랑거리는 꼬리.


“···지루하진 않겠군.”


난 작게 중얼거리며, 야경에 도로 시선을 두었다.

식구가 늘어난 만큼, 예정보다 큰 저택을 물색해야 했다.



*



그로부터 열흘이 지났다.


땅― 땅―!


앞치마를 두른 천사가 식탁에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프래이판을 국자로 두드렸다.

가녀린 몸집에 신성하게 펄럭이는 날개. 조막만한 얼굴 위에서 영롱하게 발광하는 금빛의 링.


보호 본능을 절로 자극하는 소녀는, 말 그대로 ‘천사’였다.


“모, 모두 일어나서 아침 드세요!”


나는 진작 앉아있었다. 천사의 음식 간을 봐주고 있었다.


“좋은 아침이네요, 서방님.”


나른하면서도 부드러운 인사. 제일 먼저 나타난 수족은, 머리에는 짐승의 귀가 엉덩이에는 짐승의 꼬리가 달려있는.

이질적이며 매혹적인 여인. 그녀가 눈을 비비적거리며 조신하게 다가와 나를 살포시 안고자 했다.


“그래.”


목을 축이고 있던 나는 굳이 제지하지 않았다.

어차피 여우를 닮은 그녀는, 내게 닿지 못할 것이다.


“아침부터 염병한다.”


부지불식간에 마룻바닥에서 솟아나는 굵직한 나무줄기가 여우를 포박했다.


“···아쉬워라.”


잠시 눈을 깜박이다가, 아까운 듯 탄식하는 여우의 뒤로.


“아쉽기는 개뿔.”


청록의 싱그러운 아우라를 풍기는 금발의 여인이 등장했다.

막 일어났는데도 결점 없는 외모와 청결한 차림.


“좋은 아침입니다.”


여우를 제쳐두고 식탁에 앉은 그녀가 내게 정중히 인사했다.


“그래.”

“···나무. 좀 풀어주시겠어요?”

“가출한 네 년의 버르장머리부터 찾아와라.”


작명이 귀찮았던 휴이는, 수족들의 이름을 직관적이고 외우기 쉽도록.

···아무렇게나 지었다.

소설의 설정이 그러했다.


“너무해요. 내가 서방님을 안지도 못하나요?”

“꼬라지 부리는 꼴 보니 아침 먹기는 글렀네.”


양보하지 않는 여인들이 언쟁하는 동안, 여우와 똑같은 짐승의 귀와 꼬리를 달고 있는 소년이 다가와 차려진 음식을 살폈다.

여우가 여우이듯, 소년은 늑대였다. 그러나 소년의 생김새로 오히려 강아지에 어울리는 인상.


“엑, 또 나물이야? 고기만 잔뜩 먹을 수는 없는 거냐고···.”


식탁의 중심에 놓인 큰 접시에 육즙이 흥건하게 흐르는 고기가 한 가득 쌓여있는데도, 늑대는 입술을 삐죽였다.


“아, 그게··· 아무래도 아침부터 고기만 먹으면··· 속이 좋지 않으니까···.”


착하게도, 반찬 투정을 달래주는 천사. 그리고 마침 식탁에 앉은 우락부락한 근육으로 무장한 사내.


이마에 박힌 우람한 두 개의 뿔. 찢어지듯 날카로운 눈매.

그는 악마였다.


“불만이라면 먹지 않아도 좋다. 안 그래도 양이 부족한 참이었는데, 잘 되었군.”


악마가 늑대의 밥그릇에 가로채려고 했다.


“누가 불만이랬어! 내가 먹을 거야!”


으르렁거리며 밥그릇을 사수하는 늑대.


나는 가만히 지켜보았다. 식욕이 왕성한 수컷 둘. 곤란하지만 만류하는 천사.

와중에 아직까지도 투닥이는 여인들.


실로, 눈 뜨자마자 정신없는 하루.

게임에서도, 현실에서도, 그들이 등장하고부터 늘상 겪는 풍경.

진득하게 진동하는, 섞여 사는 냄새.


“그쯤하고, 식사하지.”


내가 타이르자, 거짓말처럼 잠잠해지는 소동. 모두가 식탁에 착석하고서, 나는 곧바로 포크를 들었다.


오늘은 아카데미 입소 당일.

그들의 난장을 보느라 시간을 약간 지체했으니, 조금 서둘러야 시간을 얼추 맞출 듯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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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3화, 여동생 (2) 23.01.16 48 1 12쪽
3 2화, 여동생 23.01.15 66 1 11쪽
2 1화, 빙의 23.01.15 74 2 10쪽
1 프롤로그, 귀환 23.01.15 77 2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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