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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가밥먹는다

먼치킨은 여동생을 잘 키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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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휴
작품등록일 :
2023.01.15 20:58
최근연재일 :
2023.01.18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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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1.16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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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입소 (2)

DUMMY

[우웩, 맛대가리 없는 것들이었어.]


헛구역질하며 오만상을 짓는 그라엘이 투덜거렸다.

한 놈도 남기지 않고 씹어 먹은 주제에, 과도한 불평.


[···아무래도 입가심을 해줘야겠는데.]


뭘 바라는 수작인지 뻔히 보이는 나는, 응수하지 않고 아카데미를 거닐었다.


이사장실에서 한 눈에 내려다보는 운치도 좋았지만.

따사로운 오후의 햇살 아래, 그 일부가 되어서 정경을 둘러보는 감상은 또 남달랐다.


다만, 정문의 테러 때문인지 한층 강화된 경계와 삼엄한 경비.

입소하는 생도들에 대한 통제가 이루어지는,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

하여 몰입은 길지 않았고, 나는 어디로 가야하는가 고민할 무렵.


“안내는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아카데미에 들어서자마자 먼발치에서 따라붙었던 남자.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저 행태를 감시하는 줄로만 알고 지나쳤었는데.


“저는 이안 트리포드, 앞으로 책임교관님을 보좌할 교관입니다.”


알아서 소개를 마친 그가 나를 인도했다. 나는 순순히 따랐다.

책임교관이라는 명칭이 걸리긴 했으나, 되묻지 않아도 곧 알게 되겠지.


“집무실로 안내하겠습니다.”


광활한 부지에 도열하듯 세워진 기관과 시설들 사이를 가로지르며 도착한, 세타관.


들어가자, 나를 마주한 이들의 경례가 연이었다.

지나치고도 아닌 척 힐끔거리는 시선들. 나는 적당히 지나치며 집무실로 들어섰다.


격식 있고, 고풍스러움이 물씬 느껴지는 내부.

자연의 냄새와 인조적인 은은한 향기가 적절히 섞인 내음.

아카데미를 상징하는 장식들. 관련 서적이 잔뜩 적재된 서가.

서류철이 쌓여있는 책상, 그 위에 놓인 명패.


―세타 책임교관, 휴이 아스포델.


세타는, 알파부터 오메가에 이르는 아카데미 소속 중 하나였고.

책임교관은, 의미하는 그대로 소속의 총책임자.


별도의 안내책이 따라붙은 시점에서 얼추 짐작은 되었다만.

하나의 소속을 통째로 맡게 되었다.


[굉장히 귀찮아 보이네.]


경력 한 줄 없는 녀석이 올라선다면 물어 뜯기기에는 딱 좋은.

세간을 의식한다면 썩 좋은 자리는 아니기에, 역설적으로 의사장의 의도가 엿보였다.


[하여간 능구렁이 같은 년들은 귀찮은 짓만 골라서 한다니까.]


보복을 두려워 않고, 처신이 화끈한 그녀답다면 그녀다운 조치.

뭐, 내게 나쁠 것은 없다.

아카데미에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은 더욱 높아졌고, 자유로워졌으니.


각설하며, 나는 의자에 앉아 서류철을 살펴보았다.

기본 업무, 세타의 의의, 연간 일정, 훈련 계획서 등등.


느긋하게 일별하던 내 시선은, 마지막으로 절도 있는 자세로 대기하고 있는 교관에게로 향했다.

잠시 눈이 맞던 그가 테이블의 한쪽을 가리켰다.


“호출벨입니다. 제가 필요한 상황이 생기시면 눌러주세요.”


그가 목례를 하고는 집무실을 나갔다.


[눈치가 빠른 녀석이네. 봐줄만한 첫인상이야.]


혼자 남은 나는 찬찬히 서류를 하나씩 들여다보았다.

대게가 보험 가입 약관에 필적하는 분량에 자질구레한 설명이었으나.

차근차근, 나는 정녕 아는 바가 많지 않으니 지루하거나 기본적인 문단을 제외하고는 정독했다.


“훈련 계획인가···.”


그러나 이 단락에서는 막힐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읽고 이해하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는, 내가 온전히 자의로 채워야만 하는 분량.


물론, 단순한 훈련 계획 수립 자체는 수월하다. 참고할 만한 교관들은 널리고 널렸으니.


그러나 내 고민은 조금 더 깊은 내막에서 비롯되고, 개인적인 욕망에 기인했다.


“미야를 위한 훈련이어야만 한다.”


엔유 아카데미는, 에이타의 서사를 관통하는 주무대였다.

판타지에 어울리는 강력한 주연들이 대거 밀집해 있고.

중심 스토리가 자주 전개되는 만큼 알찬 사건들이 주로 포진되어 있는.


아카데미 생태계는 내가 굳이 자처하지 않아도 미야를 괴롭히고 곤경에 빠뜨리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하겠지.


강도 높은 시련이 범람하는, 이 허울 좋은 아수라장 속에서 나는 실리만 건져내면 되는 것이다.


미야의 위험을 예방하고, 나와의 유대를 결속시키며, 비약적인 성장을 도모할 수 있도록.

다만 그 과정에서 편법과 편애는 마냥 허락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미야만 일방적으로 감싸고돌수록, 오히려 미야는 필연적으로 주위에서 고립될 것이기에.

언제나 예외는 있겠지만, 최대한 제한적으로 두어야 한다.


“···쉽지 않군.”


말로는 쉽지만, 구체적으로 풀어내자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장애물에 걸려 넘어지는 것 마냥 뚝뚝 끊어지는 생각들.


[당 떨어져서 그래! 우리 단 거 먹으러 가자!]


그러나 해볼 만했다.


내 부족함을 나조차도 모르도록, 철저하게 은폐하고.

내가 가진 요소들을 최대한 활용할 수만 있다면.


[생각이 끊어진다매··· 아자식아!]


나는 그 누구보다, 여동생을 잘 키워낼 수 있다.


꼭, 그러고 싶다.


[나도 꼭 단 거 먹고 싶다···.]


허나 우선은 뒷전으로 미루었다.

앞날의 내 명성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중요한 과제였던 만큼 신중하게, 만전을 다해야 했으니.


[디저트가 필요해···.]



*



정문의 테러가 공식적으로 종결되고, 집무실에서 최종 보고를 받은 이사장, 슈아가 난감한 듯 되물었다.


“정말 혼자서 전부를 말살했다는 건가요?”


그녀는 물어놓고도, 떨리는 눈동자로 보고서를 재차 읽었다.


탐지 센서에 잡히자마자 개방되었던 균열.

그리고 출몰한, 멸망을 부르짖는 듯 흉폭 했던 흑룡.

그것을 부리며, 태연하게 나타나 담담하게 종결을 선언했던 남자.


“추가적으로 조사를 진행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나온 결과로는 그렇습니다.”


연합 전용 로브로 정체를 가린 요원이 대답했다.

그녀는 부하를 앞에 두고 애써 침착했지만, 꿈틀거리는 입 꼬리를 참기가 힘들었다.


너무나 아이러니한 상황의 연속이었던 것이었다.


센서가 울리자마자, 흔한 전조도 없이 벌어진 균열도.

그 틈을 강제적으로 비집고 튀어나온 흑룡도.

추가로 증원 투입된 요원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균열이 소멸했다는 전언도.


“참, 어디서부터 짚고 넘어가야할지도 모르겠네요.”


와중에 테러범은 한 명도 없다. 용의자도, 시체도.

사후처리반이 조사한 균열에도 도망간 경로 따위는 찾지 못했다는데.


“테러범들은 정말 목격자들의 증언처럼, 흑룡이 전부 먹어버린 걸까요?”

“현재로서는 그 편이 유력합니다.”

“정말, 이럴 수가 있는 걸까요.”


현실감이 없어도 정도껏 없어야지.

이거는 무슨, 모든 대처가 매뉴얼의 골든타임을 월등하게 앞설 만큼 신속했는데도.

현장 상주 인원들의 보고를 제외하고는 보고서의 대부분이 증언으로 차있으니, 어이가 없어서 실소가 멋대로 튀어나왔다.


어떤 괴물을 수중에 들여 버린 것일까요. 이성적으로만 가늠해 보면 후회가 물밀 듯이 밀려온다.


“헌데, 정말 그 분이 전부 손쓰신 일인가요?”


고상하게 금발을 부여잡고 있는 이사장에게, 부하가 물었다.

듣자마자, 그녀가 한숨을 쉬었다.


“내가 묻고 싶은 말이에요.”

“···그렇군요.”


납득하는 그를 두고, 이사장은 똑같은 서류를 반복해서 살폈다.

달리 눈에 띄는 사안은 없지만, 일종의 버릇이었다.


“일단은··· 알았어요.”

“네. 추가적으로 보고 사항이 생기면, 바로 알려드리겠습니다.”


그가 고개를 숙이는데, 슈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뇨, 당신은 충분히 수고했어요. 이제 그만 가 봐요.”


그는 오늘부로 따로 발령 받은 임무가 있다. 그러나 정문의 사태 수습하는 동안 지체되었다.


“···알겠습니다.”


순응하는 그의 목소리가 미지근했다. 그 연유를 알고 있는 슈아가 부드럽게 달랬다.


“여동생은 걱정 말아요. 제가 잘 챙기고 있을게요.”


정곡이었던 듯, 그가 미동 없이 숨을 죽였다가 말했다.


“걱정은요. 여동생은 잘할 겁니다.”


그리고는 인사하고 떠났다. 그가 나갈 때까지 상냥하게 손을 흔들던 슈아는.

금세 안색이 뒤바뀌었다.


“하아···.”


체통을 지키느라 쓰고 있던, 가면을 벗어던지고 드러난 그녀의 본색.


“정말, 첫 등장부터 너무 화려하잖아요.”


달아오른 흥분을 주체 못하고, 희미하게나마 얼굴까지 붉혔다.

짐짓 야릇하게.


“기특해요.”


짜릿하고도, 황홀하다.


“상을 주고 싶을 정도로.”


깨물어 죽여 버리고 싶을 정도로.

그 진솔한 감정이 시선에 맺혀, 그의 활약을 자세하게 담은 보고서에 꽂힌다.


처음 그를 마주했던 날, 날뛰었던 본능이 다시금 깨어나고 있다.

진정하고 싶지만, 진정하기 싫은 마음에 잠식당해 간다.


“근데···.”


돌연, 시리도록 도도해지는 낯빛.


“이게 끝은 아니겠지요?”


아직, 그는 본심을 드러내지 않았다.

한껏 부풀어버린 기대이자, 맹신에 가까운 확신.


“또, 보여줘요.”


힘이 풀린 듯한, 달뜬 음성을 뱉으며 짓는 미소.

미약하게 발그레한 홍조가 그녀의 볼 따귀에 소복이 내려앉았다.



*



전시 상황이 종료되고, 대강당에서 통제를 받고 있던 생도들도 풀려났다.


“우와···.”


메일로 미리 고지 받았던 숙소에 도착한 미야는.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탄성이 흘러나왔다.


보육원에서 지내던 방의 몇 배는 족히 넘는 거실.

대가족이 거주해도 넉넉할 듯 나눠진 방. 화려한 장식들과 고급스러운 인테리어.

겨우 생도 한 명이 머무는 방치고는, 어마어마한 스케일에 압도된 소녀가 할 말을 잃었다.

바닥은 또 얼마나 깨끗하고 투명한지 맨발이어도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서있는 것조차 죄스러운 듯하다.


“자, 잘··· 잘못···.”


잘못 들어온 것은 아닐까. 말조차 더듬으며 그녀가 문 밖의 호수를 확인했다.


“···1101호.”


맞다.

배정된 숙소가 틀림없었다. 헷갈릴 수도 없는 숫자였고.

11층에는 애초에 문에 두 개 뿐이었다.

1101호, 1102호.


···이상하다. 1층은 20호까지 있던데. 왜 여긴 방이 두 개밖에 없는 거지.


한참을 속으로 중얼거리다가 숙소로 들어온 미야는.

물가를 피해 걷는 고양이처럼, 한 발짝마다 조심스럽고도 정성스럽게 내딛었다.

괜히 바닥 타일에 누를 끼치지 않도록.


“아, 진짜 대박···.”


연신 감탄하며, 우선 챙겨온 짐은 방 하나에 몰아넣고서.

거실의 테이블에 올려져있는 물품들을 확인했다.


생도 전용 복장, 신분증 같은 아카데미에서 필요한 여러 가지 용품들.

살펴보다가, 미야는 엔유패드의 전원을 켰다.


아카데미 생도들에게 공통적으로 주어지는 다용도 패드였다.


―반갑습니다. 미야 티아나슈 생도님.


전원이 켜지자, 분실 됐을 경우를 대비한 기본 알림음이 울렸다.

바탕화면에 설정된 갖가지 어플들. 뭐부터 눌러야 할지 고민하다가, 기숙사 숙지사항부터 확인했는데.


“이, 이런 것도 있네?”


소녀가 머무르는 숙소의 부가 기능들과 혜택, 서비스에 대한 설명을 보고는 다시 한 번 입이 벌어졌다.

갑자기 신분 상승이라도 했나 착각도 들고,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되는 것일까.


기쁨보다는 근심이 앞서는 그 눈길에 닿는 마지막 문단.



10~20층은 책임교관의 추천생도들의 방입니다.


<해당 추천생도 : 미야 티아나슈>

<담당 책임교관 : 휴이 아스포델>


<배정숙소 : 1101호>



경직된 것처럼, 고정되는 눈길.


“···휴이 아스포델.”


손바닥 뒤집듯.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한 사람의 이름을, 미야는 곱씹듯 되새겼다.


그 읊조림이 기폭제가 되었는지, 스쳐가는 잔상들.

보육원 앞에서 처음 마주했고, 그리고 오늘 사태를 진압하고 정문으로 걸어가는 모습이 두 번째.


“뵌 적이 없는 분인데.”


냉혹한 카리스마를 지니고, 무지막지한 위용을 겸비한 그는.

우연히 지나쳤더라도 모를 수가 없는 인상인데도.

그녀가 그를 회상하면, 두 가지 외에 떠오르는 장면은 없었다.


평소는 물론이고, 아카데미에서 실기를 치렀을 때도 기억에 아예 없다.

그렇기에 더욱 피어오르는 의문.


“진짜 누구실까.”


누구시기에, 왜 저를 눈여겨보고 선택하신 걸까요.


단순한 인사였던 첫 만남과는 다르게, 진심이 담긴 궁금증이지만.

현재로서는 해답이 돌아오지 않는, 까닭 모를 질문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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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3화, 여동생 (2) 23.01.16 48 1 12쪽
3 2화, 여동생 23.01.15 66 1 11쪽
2 1화, 빙의 23.01.15 74 2 10쪽
1 프롤로그, 귀환 23.01.15 79 2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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