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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내가 잦아드는 구름 위의 청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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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윤씨네가장
작품등록일 :
2020.12.21 17:51
최근연재일 :
2021.02.19 18:10
연재수 :
6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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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15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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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030 - 돼지머리 실종사건(1)

DUMMY

낡아빠진 쇳덩이가 지면을 굴러다니고 있었다.


반파된 건물과 더는 쓸 수 없는 트럭.

길 한복판에 처박힌 버스는 기름조차 흘러나오지 않았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건물은 아무렇게나 자란 덩굴이 침식하고 있었다.


그 위에서 만들어진 공간에는 이름 모를 제비가 집을 지었다.

먹이를 달라는 듯 울어대는 녀석들을 향해 어미 제비가 날아왔다.


겨울은 추운 계절이다.

제비 일가가 이곳에서 무난히 한 해를 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겠지. 제비를 응시하던 희연이는 시선을 내렸다.


검은 원피스를 곱게 차려입은 그녀의 앞에는 한 마물이 몸을 숙이고 있었다.


흡사 악마와 같은 형상을 한 마물.


검은 날개와 우뚝 솟은 외뿔.

붉은 지옥의 갑옷으로 몸을 감싼 마물의 이름은 헬 가드(Hell Guard)였다.


「미력한 자가 모든 부정한 것의 위에 군림하는 존재를 배알합니다.」

“시답잖은 예는 집어치워. 그래. 특별한 일은 없었지?”

「패자(覇者)께서 걱정하시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지능이 떨어지는 것들이 몇 번 접근하기는 했지만, 그때마다 조용히 해결했습니다. 또한, 바다의 은혜를 입은 자는 이곳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 보이네. 만약 베히모스가 이곳에 왔다면 여기도 무사하지 못했을 테니까.”

「제 능력이 부족해 송구할 따름입니다.」

“알면 됐어.”


헬 가드의 머리가 딱딱한 지면을 파고들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희연이는 한숨을 쉬었다.


“고생했어.”

「분에 넘치는 칭찬입니다.」


어떤 인간의 비명보다 더 달콤한 목소리다.

희연이의 치하에 헬 가드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정말 귀찮은 체질이다. 멋대로 충성심을 보이는 녀석들도 마찬가지지만, 이런 식으로 이 아이들을 이용하는 자신도 문제다.


깊이 생각하지 말자. 응. 그러자. 그게 좋겠다.


헬 가드가 준비해놓은 의자에 앉은 희연이는 멍하니 무너진 건물 너머를 응시했다.


그곳에는 묘비에 하얀 국화를 올리는 전세진의 모습이 있었다.


매년 이 시기면 전세진은 이곳을 찾아왔다.

그의 가족이 살던 따뜻한 집. 게이트가 열렸던 당시 그 재앙을 피하지 못했던 비운의 장소다.


이제는 세 개의 묘비밖에 남지 않았지만, 전세진은 이곳에서 그 온기를 더듬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런 건 이제 흔적도 남지 않았을 텐데.


모처럼의 크리스마스 이브다. 좀 더 인생을 즐겨도 되는 게 아닐까?

답은 나와 있었다. 저 남자가 그럴 리 없다는 걸 희연이는 잘 알고 있었다.


“바보라니까.”


지나간 것은 다시 찾아올 수 없다. 그런 당연한 것도 모르는 걸까?


「이곳에서 서성거리는 인족의 접근은 막았습니다만. 저 인족은 괜찮은 겁니까?」

“괜찮아.”

「이 미력한 자의 눈으로 보기에는 너무 위험한 인족으로 보입니다. 한낱 인족이 갖기에는 너무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장차 패도를 걷는 데 방해가 될지도 모릅니다. 감히 간언하건대, 후일을 위해서라도 이 자리에서 처리하는 것이 어떠실련지.」

“뭐? 누굴 처리한다고?”


순간 그녀의 기운이 폭사했다.

갈무리하지 못한 힘이 주변 일대를 잠식한다.


대기가 얼어붙고, 그녀가 밟고 있던 땅이 검은색으로 죽어간다.

정기탈수(精氣脫水). 주변 생물의 정기가 그녀를 향해 빨려 들어간다. 그건 간언을 올린 헬 가드도 예외는 아니다. 조금 전과는 다른 의미로 녀석의 몸이 떨렸다.


“다시 한번 말해봐. 누굴 처리한다고?”

「부, 부디 노기를 거두어주십시오.」


단단한 육체도 희연이의 힘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헬 가드의 붉은 피부가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외부가 아닌 안쪽에서부터 터져나간다. 떨림이 심해진다. 녀석이 말조차 잇지 못하는 걸 본 희연이는 그제야 힘을 거두었다.


“저쪽으로 꺼져 있어. 기분도 안 좋은데 짜증 나게 하고 있어.”

「따, 따르겠나이다.」


헬 가드를 물린 희연이는 쳇, 하고 혀를 찼다.


괜한 화풀이다.

알고 있다. 그래도 기분이 풀리지 않는다. 무엇보다 발치에서 죽은 풀들이 눈에 밟혔다.


결국, 나는 괴물이자 병기다. 절대 인간이 될 수 없다.

두통이 이는 것 같다. 찝찝한 걸 넘어서 가슴속이 답답하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개 같은 기분을 떨쳐내고 싶다. 그럼 뭘 해야 하는가. 그런 건 정해져 있었다.


무너진 문턱을 넘어선 희연이는 전세진을 향해 발을 옮겼다.


“···특별한 일은 없어요. 그러네요. 저번에 말씀드린 친구 있죠? 승환이라고요. 노래하는 그 친구 말인데. 이번에 오디션 예선을 통과했다는 모양이에요. 본선은 내년에 있다는데, 긴장만 하지 않으면 통과하지 않을까 싶어요. 완전 단골이 된 홍장미파 아가씨들도 그대로예요. 슬슬 결혼할 나이가 되어서 그런지, 요즘 들어서는 남자 이야기도 많이 하더라고요.”


근황 보고와도 같은 이야기다.

전세진의 목소리를 듣자 답답하던 마음속이 조금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발소리를 낸 희연이는 전세진의 옆에 섰다.


“오늘은 인사가 기네요, 마스터.”

“일 년 만에 찾아왔으니까. 드릴 말씀이 많네.”

“그래요? 가장 중요한 제 이야기는 하셨어요?”

“아니, 아직.”

“흐응. 그렇죠. 원래 새 가족이 될 사람의 이야기는 가장 마지막에 하는 법이죠.”


살짝 짓궂은 목소리를 내본다.

전세진은 시선이 묘비에서 희연이로 옮겨졌다. 기분 탓인지, 그 두 눈은 살짝 젖어 있었다.


“그래. 넌 이미 우리 가족이니까.”

“네?”

“매번 고맙다, 송희연.”

“······.”


이렇게 갑자기 치고 들어올 줄은 몰랐다.

허를 찔렸다는 듯 희연이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전세진은 시선을 피하지 않는다. 똑바로 바라보는 그 눈이 역으로 부담스럽다. 평소와 달리 시선을 돌린 것은 그녀였다.


“그, 그래서 언제 돌아가실 건가요?”

“이제 돌아가야지. 너무 오래 있어도 좋을 건 없으니까.”


자리에서 일어난 전세진은 술을 묘비에 뿌렸다.

빈 잔을 희연이에게 건넨다. 얼떨결에 그녀는 잔을 받았다.


투명한 소주가 잔을 채웠다.

그녀는 전세진을 보았다.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잔이 올라갈 곳은 정해져 있다.


희연이는 묘비에 술잔을 올렸다.

이름 없는 묘비. 세 개의 묘비는 깨끗하게 관리되어 있었다. 헬 가드는 그녀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한 모양이다. 무언가 말을 올리는 게 좋겠지. 잔을 올린 희연이는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아드님은 제가 책임지고 돌볼게요. 그야···.”


거기서 말을 끊은 그녀는 전세진을 돌아보았다.


“그게 안사람이 할 일이니까요.”


겨울은 추울 계절이다.

그렇지만 그렇기에 온기를 바라는 사람의 거리가 좁혀지기 마련이다.


자신의 곁에는 이 남자가 있다.


쓴웃음을 짓는 전세진을 향해 희연이는 미소를 지었다.


마음을 짓누르던 수석(水石)은 더는 느껴지지 않았다.


*&*


후방 지원팀 「트랜스퍼(Transfer)」의 부장 정한솔은, 신경질적으로 테이블을 두들겼다.

전북대학교 캠퍼스 내. 분수대의 시계탑이 가리키는 시간은 벌써 2시를 넘어가고 있다


늦어도 1시 30분까지 온다고 했는데, 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걸까. 뭔가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진 건 아닐까.


초조함이 정한솔의 마음을 좀먹는다.

애꿎은 찬물을 입에 털어 넣은 그는 뒤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곳에는 임시로 만들어진 대기소가 있었다.

헌터 대기소.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서 대기 중인 이들이다. 2급 헌터인 파괴자는 물론이고 3급 헌터 쉐도우 캣(Shadow Cat), 헬 가이(Hell Guy)를 비롯해 붉은 마녀의 모습도 보였다.


시간이 되면 염제와 신농은 물론이고, 헌터 협회의 아이돌인 우니엘도 온다고 했지만. 이렇게 진행이 느려서야 거물이 와도 문제다.


지루하다는 듯 하품을 쉬는 헌터들은 그래도 괜찮다.


정한솔은 담배를 질겅질겅 씹고 있는 붉은 마녀 임성은의 눈치를 살폈다.


성격 더러운 저 마녀가 언제 성질을 부릴지 모른다.

팀원들의 생각도 정한솔과 같은지, 가장 고참이라고 할 수 있는 팀원이 임성은의 테이블에 시원한 술을 가져다 놓았다.


술을 본 임성은은 손을 휘둘렀다.

술병의 목이 날아간다. 퉤, 하고 담배를 뱉은 그녀는 술을 나발 채로 마시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시간이 얼마 없다.

도대체 프레쉬 미트 팀은 뭘 하는 걸까?


“왜 진행 안 하는 거야? 폭풍사냥꾼이 아직 안 온 거야? 사회자들이 다 기다리고만 있는데.”

“그러게 말이야. 동상도 안 보이는 게 영 이상하지 않아?”

“동상이야 그 돼지랑 같이 오겠지. 그보다 우니엘이야. 오늘 우니엘도 온다고 들었는데. 아직 안 온 건가?”

“아, 우니엘 보고 싶다.”


수군거리는 구경꾼들의 목소리가 아프다.

얼굴이 화끈거리는 걸 얼마나 참고 있었을까. 정한솔은 자신의 앞에 도착한 프레쉬 미트 팀의 팀원을 볼 수 있었다.


순박한 인상.

뚱뚱하다기보다는 포동포동한 쪽이 어울리는 사내.


그의 마지막 남은 동기인 김만득이었다.


“아, 한솔아. 다행이다. 아직 여기 있었구나. 그게 말이야. 수송 중에 조금 문제가 발생해서···.”

“변명은 차후에 듣겠습니다. 김만득 팀원. 그래서 물건은 도착했습니까?”

“그게, 네, 네, 도착은 했습니다.”

“그럼 됐습니다. 바로 진행하죠. 폭풍사냥꾼 님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른 이야기는 들을 필요 없다.

자리에서 일어난 정한솔은 무전기를 들었다.


“진행해.”

“알겠습니다.”


울상이던 팀원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마이크만 매만지고 있던 윤시영 사회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거울로 화장을 확인한 그녀는 무대 위로 올라갔다.


인기 리포터의 등장에 바깥이 시끄러워졌다.

지루하다는 듯 하품을 쉬고 있던 헌터들의 표정이 바뀌었다.


거의 빈 술병이 테이블 위로 내려왔다. 입가를 훔친 임성은이 목을 풀었다.


다행이다.

정말로 위험하던 찰나였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우와. 대체 오늘은 무슨 일이 있길래 이렇게 많은 분이 참석해 준걸까요? 네? 다 알고 있으면서 시치미 떼지 말라고요? 그렇죠. 하지만 이런 건 말해주는 게 예의지 않을까요? 다들 바쁜 와중에 참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금일 행사의 사회를 맡은 윤시영이라고 합니다!”


와아, 하고 관중들의 함성이 윤시영의 목소리에 대답했다.

과연 인기 리포터다. 완전히 정체되어 있던 무대의 분위기를 단번에 살렸다.


그 모습을 본 정한솔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일단 고비 하나는 넘겼다.

그는 자신의 앞에서 똥 마려운 강아지마냥 눈치를 보는 동기를 보았다.


“솔직히 말해봐. 너 그 여자 보느라고 늦게 온 거냐? 지금 중요한 게 뭔지 몰라?”

“어? 무, 무슨 말이야. 그게?”

“그 세아인가 뭐시기 하는 여자 말이다.”

“아니. 아니야. 세아 씨라면 어제 보지도 못했는걸. 가게에서도 어딜 갔는지 모르겠다고 하고. 연락이 끊겼다고 들었어. 아무래도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아서 조금 걱정···.”

“아니면 됐다. 그 여자 사정까지 알고 싶지 않으니까.”


바보 같은 놈, 하고 정한솔은 중얼거렸다.

이건 그냥 화풀이다. 아무리 김만득이 여자에 집착한다고 해도 어떤 것이 우선인지는 잘 알고 있을 터다. 그래. 최소한 그 정도의 자제심은 있다고 믿고 싶었다.


“폭풍사냥꾼 님도 여기 계셔?”

“당연한 소리를 하네. 그 돼지라면 극적으로 등장하고 싶다고 난리가 아니다.”


모처럼 자신이 주인공인 행사다.

멋있게 등장하고 싶겠지.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다만, 이 돼지는 그 정도가 지나쳤다.

자신의 이름값이 있으니 그 정도는 해야 하느니, 뭐느니. 말도 참 많다.


덕분에 윗사람들의 기분은 매일같이 언짢았고, 그 짜증은 고스란히 그들에게 돌아왔다.


“됐다. 어차피 오늘만 끝나면 한동안은 볼 일 없을 테니까. 너도 고생했다, 새끼야.”

“내, 내가 뭘 고생했다고. 고생은 네가 다 했지.”


두 사내는 씩 웃었다.

몇 달 동안 준비해온 행사다. 이 일만 잘 마무리 짓는다면 달콤한 휴가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혹시 또 아는가? 보너스가 엄청나게 떨어질지. 물론 폭풍사냥꾼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보너스는 아니다. 인색한 그 돼지가 자신의 주머니를 털 일은 죽었다 깨어나도 없을 테니까.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그럼 새로운 시대를 연 주인공을 맞이할 시간입니다. 다들 반겨주세요. 초대 헌터 오재환 님입니다!”


윤시영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하늘이 어두워졌다.

검은 먹구름이 몰려들고, 금방이라도 눈이 쏟아질 것처럼 하늘이 흐려졌다.


“위야. 다들 위를 봐!”


어느 한 관중이 낸 소리에 사람들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검은 하늘에서 하얀 점이 떨어지고 있다. 멀어서 무엇인지 잘 보이지 않던 그것은, 곧 형체가 잡히기 시작했다.


천이다. 천에 뒤덮인 하얀 물체.

그것은 분수대를 향해 일직선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관중들의 웅성거림이 커졌다.


“위험한 거 아니야?”

“저게 뭐야?”

“야. 설마 하지만···.”


그런 관중들을 보며 윤시영은 마이크를 잡았다.


“괜찮습니다. 안전하니 다들 자리에 앉아주세요. 혹시라도 있을 사태를 대비해 헌터 분들도 대기하고 있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지켜봐 주세요!”


쿵, 하고 하얀 물체가 분수대로 떨어졌다.

투명한 물이 바깥으로 튀어 올랐다. 대기하고 있던 헌터들이 힘을 발휘했다.


날아오는 물이 막에 막혀 다시 분수대로 돌아갔다.

물보라가 이는 그 안쪽에서, 그 남자는 하얀 물체 위에 서 있었다.


땅딸막한 키.

통통하게 오른 볼살.

유난히도 크게 보이는 두 콧구멍.

그것과는 반대로 눈은 작다. 더부룩한 머리를 기른 그는 탁, 하고 손가락을 부딪쳤다.


“다들 안녕하신지요. 폭풍사냥꾼 오재환입니다.”


과장되게 고개를 숙인 오재환은 빙긋 웃었다.

하얀 이가 빛난다. 충격적인 그의 등장에 좌중이 침묵했다.


“······.”

“······.”


마지못한 박수 소리가 났다.

소리를 유도하는 것은 트랜스퍼 님의 막내 안재중이다. 평소 분위기를 못 읽는다고 소문난 막내의 박수에, 관중들이 마지못해 두 손을 부딪쳤다.


“제 생각보다도 더 많이 모였군요.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 나오는 건 별로 좋아하는 성격이 아닌데. 뭐, 이것도 전부 제가 평소에 쌓은 덕이라고 생각해야겠죠.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윤시영 씨?”

“네? 아, 아···. 네. 그러네요. 이게 전부 폭풍사냥꾼 님의 명성이지 않을까요?”


윤시영 리포터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입꼬리가 파르르 떨리고 있는 것이, 억지 미소라는 것을 누가 봐도 알 수 있다. 그래도 그녀는 표정을 무너뜨리지 않았다. 과연 프로다. 그 정신은 본받을 만했다.


“이곳에 오니 게이트가 열렸던 당시의 일이 생각나는군요.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20년 전의 일이죠. 당시 저는 어디 하나 자랑할 것이 없던 남자···.”

“네! 오재환 님의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없죠. 이곳에 모인 관중들은 모두 하나같이 폭풍사냥꾼 님의 팬이니까요. 그렇지 않나요, 여러분?”

“맞습니다!”

“다 알고 있습니다!”

“물론이죠!”


재치 있는 그 물음에 관중들이 동의했다.

빨리 다음으로 넘어가자는 윤시영의 진행에 오재환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음, 20분 정도만 할 생각이었는데. 어쩔 수 없군요. 오늘은 윤시영 씨의 얼굴을 봐서 넘어가겠습니다. 대신 조금 있다가 저랑 술이나 한 잔 하시죠.”

“모두가 기다리는 순서죠. 조각상. 구시대의 동상은 가고, 새 시대의 조각상이 준비됐습니다. 어떤가요, 오재환 님? 직접 공개하실 건가요?”


억지 미소가 흔들리고 있다.

더는 버티지 못하겠다는 듯 그녀의 두 눈에는 약간의 눈물마저 맺혀 있었다.


“다들 그렇게 바란다면 별수 없죠. 공개합니다. 이것이 새로운 동상입니다!”


딱, 하고 오재환은 손가락을 튕겼다.

커다란 물체를 덮고 있던 하얀 천이 사방으로 갈라졌다.


그 아래에서 나타난 것은 하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동상이었다.

아장아장 걸을 것 같은 작은 두 발과 장난감 같은 두 팔. 통통한 살로 범벅이 된 건장한 몸. 짜리몽땅한 목을 타고 올라가자, 그곳에는 돼지머리가 있었다.


“응?”

“어라?”


폭풍사냥꾼의 얼굴이 있어야 할 자리에, 돼지머리가 있었다.


“······.”

“······.”


좌중이 싸늘한 침묵에 휩싸였다.

오재환은 예상하지 못한 반응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언가 잘못된 걸까?


그는 자신의 동상을 돌아보았다. 그 시야에 귀여운 돼지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


웃음으로 가득 찼던 그 얼굴이 구겨지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뭐야. 이거 몰래카메라지? 저게 어떻게 된 거야!?”

“크, 큰일이다!”


쿠르릉, 하고 흐린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났다.


“어떤 개새끼야!!”


분노에 찬 돼지의 목소리가 하늘에 울려 퍼졌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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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059 - 검치호 사냥(1) +5 21.02.15 380 1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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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051 - 애완용품 매장 +1 21.02.06 465 16 15쪽
50 050 - 쇼핑 +5 21.02.05 476 17 13쪽
49 049 - DOG FIGHT! +4 21.02.04 500 20 13쪽
48 048 - 우니엘(3) +3 21.02.03 533 18 14쪽
47 047 - 우니엘(2) +1 21.02.02 529 18 13쪽
46 046 - 우니엘(1) 21.02.01 531 17 13쪽
45 045 - 작은 폭군 21.01.30 555 23 13쪽
44 044 - 마이산의 산군(2) +3 21.01.29 554 19 14쪽
43 043 - 마이산의 산군(1) +1 21.01.28 552 20 13쪽
42 042 - 떡볶이를 싫어하는 여자는 없다(3) 21.01.27 590 18 13쪽
41 041 - 떡볶이를 싫어하는 여자는 없다(2) +1 21.01.26 569 20 13쪽
40 040 - 떡볶이를 싫어하는 여자는 없다(1) 21.01.25 597 18 14쪽
39 039 - 스위트 폐인(Sweet Pain) +3 21.01.24 607 21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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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035 - 커튼 콜(1) +4 21.01.20 702 22 14쪽
34 034 - 문 라이트(2) +1 21.01.19 771 18 14쪽
33 033 - 문 라이트(1) +4 21.01.18 748 23 13쪽
32 032 - 돼지머리 실종사건(3) +3 21.01.17 770 22 15쪽
31 031 - 돼지머리 실종사건(2) +2 21.01.16 758 21 13쪽
» 030 - 돼지머리 실종사건(1) +2 21.01.15 816 25 17쪽
29 029 - 희연이의 휴일(3) +4 21.01.14 817 25 15쪽
28 028 - 희연이의 휴일(2) +3 21.01.13 896 21 14쪽
27 027 - 희연이의 휴일(1) +5 21.01.12 932 22 15쪽
26 026 - 담배와 보드카 +4 21.01.11 972 23 14쪽
25 025 - 녹두파 짝검(2) +4 21.01.10 975 25 13쪽
24 024 - 녹두파 짝검(1) +1 21.01.09 990 24 14쪽
23 023 - 어느 겨울날(2) +4 21.01.08 1,019 25 16쪽
22 022 - 어느 겨울날(1) +1 21.01.07 1,099 25 13쪽
21 021 - 핫도그와 꼬마 손님(2) +2 21.01.06 1,069 26 14쪽
20 020 - 핫도그와 꼬마 손님(1) +1 21.01.05 1,051 25 13쪽
19 019 - 접수과 안세희(3) +1 21.01.04 1,145 25 13쪽
18 018 - 접수과 안세희(2) +2 21.01.03 1,100 2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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