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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서재입니다.

삼국지 유융전 - 한의 재건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퓨전

완결

흐후루
그림/삽화
문피아 제공
작품등록일 :
2014.06.05 20:50
최근연재일 :
2016.04.2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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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4.2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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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쪽

終 - 낙양(감(鑑)-1)

재밌게 읽으셨으면 해요. 대체역사 소설이므로 역사적 사실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DUMMY

천려 8년(239년) 가을.


백발이 성성하나 풍채는 여직 단단한 황제 융은 높은 자리에 앉아 북방전선 승리의 주역들인 수 십 공신들을 내려 보며 크게 칭찬했다.


“멀게는 요동부터 가까이는 상당에 이르기까지 저 북방 외적들은 근 3년간 짐(朕)의 큰 고민거리였다. 이제 흉노는 말이 모자라 당나귀도 탈 수 없을 것이고 선비는 오랜 내분으로 의심이 깊어져 씨족 간 인재들을 견주어야할 것이며 세력이 쫄아든 오환은 두 세력의 원수가 되어 황실의 충실한 심복이 되길 자처할 것이니 이 모두가 하늘이 내려 이 자리를 빛낸 장군들의 공이라.”


황제 융의 찬사를 듣는 공신들 중 나이가 젊은이는 찾을 수 없었고 그만큼 그 의복과 꾸밈이 귀하지 않은 이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이 기라성(綺羅星)같은 노년의 공신들 중 가장 앞서 있던 요동태수 위연이 대표로 황은에 답했다.


“이제 천하가 안정되고 백성들이 부귀를 누림에 오로지 존귀한 황제폐하의 심모원려가 있었을 뿐이니 소장들은 그저 황명을 받아 군기를 높이 세우고 앞서고 뒤선 일 뿐이 없나이다.”


위연의 답례가 끝나자 공신들과 좌우에 늘어선 관료들이 외치는 만세가 땅과 하늘을 가득채웠다.

노년의 주인과 그 수족들이 이처럼 서로 훈훈한 가운데 유독 눈치를 살피던 젊은 시랑(侍郞), 수염도 나지 않은 종회가 유융의 은근한 손짓을 받고 총총총 달려와 자신의 뒤에 선 젊은 내관들과 앞으로 나서며,


“황상께오서는 지난날 전장의 축배(祝杯)를 잊지 못하신 바, 전선의 용사들과 함께 젊은 날의 영광과 오늘의 영광됨을 기꺼이 즐기고자 하십니다.”


하며 고위(高位)관료들과 공신의 증표를 지닌 노장들을 안내했다.

노장들이 살피기에 유융의 안색이 밝고 이미 손에 귀한 옥잔이 쥐어져 있었기에 앞으로 즐길 마음만 품고 황은에 다시 감사한 후 어린 관료의 안내를 따랐다.

과연 황궁 심처, 길의 끝에는 높이 지어 아름다운 누각이 있었고 누각 사이사이 자리한 동남동녀들은 귀한 비단으로 옷을 입고 있었기에 그 화려함과 사치가 높낮음을 모두 겪은 노장들의 눈에도 귀한 것으로 다가왔다.

위연의 뒤에 서서 안내를 따르던 장수 하나가,


“과연 황상께선 천하의 인재를 아끼시길 이리하시는 구나.”


하며 음(音), 주(酒) 없이도 벌써 어깨를 들썩였다.

이후 유융은 사흘 밤낮 동안 쉼 없이 주연을 열고 천하에서 가려 뽑은 일색(一色)의 궁인들로 하여금 노신들을 수발들게 했다.

장수가 되어 평생 손에 굳은살을 박고 살았던 자나 관리가 되어 손끝이 까맣게 먹으로 물들었던 자나 황은에 거듭 감사하며 잔뜩 취하길 게을리하지 않았고 주정을 부리며 시끄럽게 굴길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이 주연이 칠 주야(晝夜)를 넘어 팔일 째에 이르렀을 때 공무와 나이, 황후, 비들을 핑계로 듬성듬성 주연에 참가하던 유융이 한손에 술병을 들고 달달한 술과 낭낭한 여체에 푹 절어든 노신들을 찾았다.


“이제 짐이 보기에 천하의 쓸모를 위해 자리했던 영웅들은 모두 백발이 성성하고 봄과 겨울을 가리지 않고 땅에 새싹이 움트는 것은 모두 저 이와 같은 젊은이들을 위함이 아닐까 하네.”


유융이 종회의 무리를 친히 손짓하자 종회의 뒤에 서서 팔일 간 장수들의 시중을 들던 젊은 내관들이 겉옷을 벗고 과하게 두툼한 관복을 드러냈다.

자리한 이들이 비록 노쇠하고 술에 절었을지언정 모두 팍팍한 삶을 헤쳐 온 인물들이라, 저 두툼한 관복 속에 또 무엇을 받쳐 입었을지, 이 자리가 어찌 변할 수 있는지 떠오르자 안색이 파리해졌다.

유융은 좌중이 술렁임을 알았으나 내색치 않고 시간을 끌다가 인자한 목소리로 어느새 불콰한 술내를 풍기는 자신의 입을 다시 열었다.


“이제 저런 젊고 싱싱한 인재들을 조당 높이 앉아 살피니 안타깝게도 모두 단 저 말미에 서서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음이라, 하여 짐이 문득 안타까운 마음에 자식들의 나이를 계산해 보니 그들 또한 영영 젊지 않음이라. 이제 왕을 낙양에 불러올리고 짐의 위를 물려줌이 옳지 않을까? 경들의 생각은 어떠한지?”


너나할 것 없이 고조 유방의 세 공신들의 말미를 떠올리느라 빠짐없이 혼란스러운 가운데 유융이 조곤조곤 말하니 노련한 이들도 선양이란 단어의 무거움에 충격 받아 황제의 물음을 들었음에도 함부로 나서 답하려는 이가 없었다.

향긋한 술내음을 풍기며 취한 듯 혀를 꼬면서도 유융이 재빨리 말을 이었다.


“노장들 또한 짐과 같은 생각이라, 황위를 선양(禪讓)하겠다는 말에도 이리 깔끔히 반대가 없음이라. 이만큼 세월이 흘러서도 군신간의 마음이 통하니 어찌 황실 만대에 홍복이 아닐까?”


선양이란 무시무시한 단어에 놓았던 정신을 얼추 수습한 노장들이 너나 없이 납작 엎드리기 시작했다.

이 모양을 두루 살핀 유융이 친히 자리를 옮겨가며 노신들을 하나하나 일으켜 새우니 큰 충격으로 비틀거리는 노신들을 유융을 뒤따르던 젊은 관리들이 좌우에서 부축했다.

부축을 받은 노신들 중 제법 정신이 맑은 이들이 은근슬쩍 휘청거리는 척, 젊은 관리들의 두툼한 의복을 더듬으니 모두 몽실몽실한 솜뭉치라.

안심하는 가운데 문득 깨닫는 바가 있어서,


“폐하!”


하고 마른 숨을 토해내며 다시 납작 엎드리는 이가 적지 않았다.

유융은 스스로를 부르는 소리에 담담히,


"나도 이젠 그대들이 나를 부르는 목소리 만큼 늙고 지쳤지. 허허허."


하거나,


"이정도 술에도 이리 휘청이니 근래에는 술보다 약발이 더 잘 받고 젊은 여인을 품기보다는 오랜 여인의 품에서 쉬는 것이 더 편하다오."


또는,


“낡은 것이 가야 새 것의 태동이 더 빛나 보이는 법이오. 모두 짐의 뜻과 같지요?”


라며 모두 들으라는 듯 물었다.

그제야 멍하니 침만 흘리며 비틀대던 노신들 중 몇몇이 황제의 숨은, 허나 노골적인 말 뜻을 알아채고 허리춤을 장식하던 요대를 풀고 머리위에 어지럽게 얹어져 있던 관모를 벗어 땅에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몇몇 정신없는 노신들을 돕는다는 구실로 젊은 관리들이 관복의 주인들을 대신해 이를 행하기도 했으나 말릴 수 있는 이는 없었다.

이를 바라보며 흡족한 웃음을 지은 유융이 하얀 수염을 쓰다듬다가 가까이 선 종회에게 손짓했다.

고개를 끄덕인 종회가 품에서 작은 종을 꺼내 울리기 시작하자 노신들을 부축하던 몇몇 젊은 관리들도 품을 뒤져 종을 울리기 시작했고 술잔이 깨질 정도로 누각이 시끄럽게 울릴 즈음 단단히 무장한 어림(御臨)군을 대동한 인물들이 등장했으니, 단 일각 만에 수만 대군의 수장 자리에서 '자의(自意)로' 내려와 한낱 공신이 된 노신들을 정중히 궁 밖으로 모시기 시작했는데 그 인물의 외양이 수십 년 전의 유융과 똑 닮은 것을 깨닫지 못한 인물은 단 한사람도 없었다.

개 중 비교적 정신이 맑은 이가 삼키듯 웅얼거렸으니,


“황상께서는 진즉 오왕을 불러들이셨구나.”


반년 전, 교주의 역적을 토벌하고 그 위를 공고히 하는 한편 여직 외지에서 불려오지 못해 그 미래를 의심받던 왕들이 마침내 낙양의 심궁 누각에 조용하게 등장했으니,


“아바마마. 그간 기체강녕하셨나이까. 촉왕 휴, 지엄한 황명을 받자와 한중 잔도를 날듯 건너 바삐 왔나이다.”

“아바마마. 그간 기체강녕하셨나이까. 오왕 의, 지엄한 황명을 받자와 장강과 회수를 땅처럼 달려 급히 왔나이다.”


마치 흐리게 빛나던 청동거울을 통해 젊은 날을 본 듯 자신을 똑 닮은 두 아들이 유융의 맑은 눈에 두껍게 비쳤다.


너무나 충격적이게 조용히 나타난 천리 밖 두 왕의 등장에 근 사십이 넘는 노장들, 대신들의 은퇴는 모든 사람들이 알지만 그저 몇몇 사람들만 안주삼아 떠드는 지나간, 과거사의 먹물 몇 방울, 몇 장뿐인 역사가 되었다.


북방의 영광된 승리로 들떠 천하태평을 외치며 소란스러웠던 황궁은 고작 열흘만에 두 사람만 모이면 조심스럽게 떠드는 분위기가 형성 되었으니-

두 왕이 일순 도읍에 모였으니 황은은 누구에게 기울 것이며 황은을 받지 못한 자는 어찌 쇠락할 것인가?


******


지난날.

익주와 양주에서 형주의 도움을 받아 각기 교주와 광주를 정벌할 것을 명받은 촉왕과 오왕은 각기 칼을 앞세운 위엄(威嚴)과 꾀를 앞세운 모략(謀略)을 무기로 일진일퇴(一進一退)하며 빠르게 유회일당을 압박했다.

이로 유회는 또 다시 배반과 패배에 시달렸으니 한때 그의 본거지였던 교주의 교지군 등지에서는 칼을 앞세우며 진군하던 촉왕의 무력도 아닌 금력(金力)에 성문을 바삐 열어 댔고, 유회 스스로의 군사력을 집중해 양주로의 진출을 꾀하던 광주 전선에서는 계양의 백성들을 인질로 오왕을 대패시켜 전초전에서 승리했다 자신한 유회의 계산보다 수배는 더 많은 정예 병력을 온전히 유지, 이끌고 나타난 오왕의 기만(欺瞞)에 철저히 당했다.

더불어 정남대장군 서서가 이끄는 형주의 정예 병력이 정석을 따르듯 근면히 남하하니 유회의 수하들은 그 주인과 같이 자신만만하게 나섰다가 패하고 자신은 다를 것이라며 나섰다가 또 패배하길 반복했다.


마침내.

군을 물리고 물려 최종방어선이라 불러도 좋을 것을 남해군성에 마련한 유회는 자신의 서자인 력(力)에게 금은보화를 쥐어준 후 형주군에 사자 겸 볼모로 보내어 새로이 선 유융 황실의 광주자사이자 신하됨을 자청하며 화평을 청했다.

이에 서서는,


“황명의 지엄함에 고개를 숙인 것은 좋으나, 때가 늦었구나. 이제 돌아가면 싸우다 죽을 뿐이니 그대의 어리석은 부군(父君)을 원망하되 황은에 다시 감사하도록.”


하고 유력을 군중에서 포박, 얼굴에 자자(刺字)를 세긴 후 역모의 죄를 적용해 만리(萬里)에 이르는 길을 걸어 황도로 이송하게 할 것을 명했다.

그는 력이 가져온 금은보화를 사사로이 하지 않고 부러 자신의 사재를 더해 넉넉히 풀어 군사들을 위무함도 잊지 않았다.


이 소식이 남해성에 닿기도 전, 유회는 유력한 수하 장수이자 토호에게 시집간 친딸을 촉왕에게 보내어 교주에서 밀(密)왕이라 불리게 된 촉왕의 악명을 이용하려 했다.

이에 촉왕 휴(休)는,


“귀인(貴人)의 부군(夫君)은 교지에 있다 들었는데 어찌 아녀자의 처우를 외간 남자가 할까.”


라며 그녀를 교지로 보내니 이미 촉왕의 수중에 들어와 있던 교지에서 낮은 관리를 해먹던 그녀의 시숙(媤叔)은 매우 놀라며 촉왕의 뜻을 짐작, 지래 겁먹고 그녀를 교살하고 조용히 장사까지 지냈다.


유회는 이제 강보에 쌓인 자신의 손자를 백성들의 아이들 속에 섞은 후 오왕에게 보내어 음흉하다 정평난 오왕 유의의 인정에 호소하는 시늉을 했다.

이에 게슴츠레 눈을 뜬 오왕 의(議)는,


“본 일 없는 이를 종친이라 부르며 인척으로 여긴다면 세상에 품을 여인이 적고 역적의 씨를 정(情)의 이름으로 감싼다면 만고충신도 없으리.”


하고 이미 적당히 나이 먹고 죽은 아이의 시신 한 구를 구해 얼굴을 친히 헤집은 후 누런 강보에 둘러 유회에게 보냈다.

이 모든 소식을 겹치듯 접한 유회는 일면 화나고 일면 두려워하며 측근에게 말했다.


“세 장수가 모두 전장에 나선 지 오래인데 그 뜻이 흔들림이 없고 황도에서 이곳이 만리에 달하는데도 지침이 적어 여직 총기가 뚜렷한데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분명 외강내유할 것이니 조금만 버티면 지쳐 스스로 물러나리.”


유회는 더 이상 꾀를 내어 활로를 열 생각을 접고 사섭이 쌓고 유회 스스로 박박 긁어모은 남해군성의 높고 단단함과 개인의 부유함에 기대어 수성에 전력을 기울였고 잠시 서로 견제하며 공을 다투던 유융의 두 아들은 자식들마저 이용해 먹은 유회의 성정이 결코 곱지 않고 남해군성에 백성들이 많은 것을 알고 서로 합의하여 성의 군민이 두루 고사(枯死)하길 기다릴 것을 합의했다.


이에 병력이 많은 촉왕의 진에는 둔전을 위한 움직임이 활발했으니 해가 지나 교주의 기름진 토지는 풍작을 맞이했고 촉왕은 이 이득을 주변 백성에 베푸니 백성들이 말하길 ‘밀왕이 지나간 자리에는 그 시신의 수만큼 많은 곡식이 여문다.’ 하였다.


회계의 소란을 잠시 뒤로 했던 오왕의 진영은 형주군과 긴밀한 형세를 유지했으니 곧 형주군의 도움을 빌어 자리를 비운 후 회계로 진출해 후방을 어지럽힌 손등을 격퇴, 그 목과 그를 따랐던 수백 장졸들의 목을 끊어 유회에게 보냈다.

이를 본 서서가 시신들의 입을 열어 찐쌀을 가득 담아 보내니,

유회는 이 보고를 받고선-


“광주와 교주의 백성들은 사섭에게 깊은 은혜를 입고도 해를 넘겨 잊더니 이 유회의 은혜는 낮과 밤이 바뀌기 무섭게 잊는구나. 벌써 숨어든 산에서 나와 곡식을 꾸려 세를 바친단 말인가!”


하며 분개하였다.

서서는 이에 그치지 않고 두 왕을 불러 모아 말하길,


“예로부터 높고 너르며 부유한 성을 함락시킬 때는 항시 안에서부터 고립감을 느껴 스스로 무너지게 했습니다. 성 밖에는 조상의 묘가 있고 산 너머에는 적병들의 인척이 있으며 강을 따라 숨어든 이들과 그들의 고향이 가득합니다.”


하였으니 촉왕이 우려하며 말했다.


“황도에서 먼 지역의 민심은 항시 바람에 따라 흔들리듯 변함이라. 당장 성이 무너지길 바래 저들의 성역을 침범하면 십년도 다스리기 어려울 것일세.”


오왕 또한,


“설사 남해 인근의 백성들을 설득해 좋게 이용코자 해도 그 세월이 결코 짧지 않을 것이며 군사들이 선 이 땅은 그 자리에 남아 성이 문을 열길 기다려줄지 몰라도 이 의는 젊어 기다려줄 수 없네.”


두 사람의 반대에 서서가 다시 말했다.


“어머니가 계신 곳에서 연기가 나면 밥을 짓는 것이요, 아버지가 계신 곳에 연기가 나면 밭을 일구는 것이며 형제가 있는 곳에 연기가 나면 생선을 굽는 것이요, 자식이 있는 곳에 연기가 나면 부모의 속이 타는 것입니다. 어찌 모든 연기가 화재(火災)의 징후가 될 수 있겠습니까? 대저 처한 상황에 알맞게 느끼며 느끼는 것이 사실이라 믿는 것이 보통의 사람들입니다.”


곧 촉왕군과 오왕군은 남해 인근의 백성들을 동원해 걷고, 일하고, 먹고, 마시고, 떠들게 만들었다.

다만 어느 날은 여인들을 병사들과 함께 깊은 숲으로 보내어 나물을 캐도록 했고 어느 날은 아이들을 군선(軍船)에 태워 소리 지르며 놀도록 했으며 어느 날은 남자들을 묘지로 보내 그 일대의 흙을 파고 쌓게 만들었다.

또 노인들을 모아 헐벗긴 후 성 주위를 뱅뱅 돌며 서럽게 울게 하고 그 행렬 사이에 병사들을 섞어 겁박하는 모양을 보이니 남해군성의 민심은 열흘이 채 지나지 않아 남녀노소, 관민, 모두 알게 되었고 빠르게 사나워졌다.

보고를 들은 유회가 적이 겁박을 시작한 것이라 오해하고 겁을 먹기보다 분노하라고 일부러 성 밖의 모양을 과장해 퍼트린 때문이었다.


이 희한하고 분(忿)한 소문은 남해군은 물론 인근 군현으로 빠르게 퍼져나갔고 이를 몰래, 혹은 노골적으로 구경하러 오는 백성이 생겨날 정도였다.


시간이 보름 더 흘러 성루에 선 병사들은 물론 일개 백성마저 성 밖으로 살기를 쏘아낼 지경에 이르자 촉왕군과 오왕군은 행동을 조금 달리했다.

여인들은 더 이상 병사들과 깊은 숲에 들어가지 않았고 인근 숲에서 솎아낸 나물들을 한 짐 지고 강가에 가 물에 씻어내는 모습을 보였으며 뱃놀이를 마치고 병사들이 잡은 물고기를 잔뜩 얻은 아이들과 나물을 씻어 식량을 장만하기 시작했다.

남자들 또한 묘지 이근에서 파낸 흙과 돌로 전쟁과 세월로 인해 흉흉해진 묘지를 단장하기 시작했으며 여인들을 따라 숲에 들었던 병사들이 해온 나무를 보태어 먼 성루에서도 그럴듯하게 보이게 만들었다.

묘지 인근에 몇몇 번듯한 집도 들어섰다.

마지막으로 세상을 다 잃은 듯 울며 성 인근을 배회하던 허름한 복색의 노인들은 어느 날부터 그 수가 절반으로 줄어 비단 옷을 입고 병사들의 감시가 아닌 호위를 받으며 성 인근을 배회하며 줄어든 노인의 수만큼 더욱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남해군성에서 이를 굽어보던 백성들은 일시 혼란에 휩싸이니 이를 보다 못한 어느 성루의 장수 하나가 성 가까이 다가온 비단옷의 노인에게 조심히 물었다.


“노인께선 어찌 좋은 비단옷을 얻으셨소?”

“자애로운 촉의 밀왕께서 성내에 자식이 잡혀 있음을 아시자 곧 그 희생 헛될 것임을 불쌍히 여기셔서 내린 은혜일세.”

“그 많던 다른 노인들은 그세 다 말라 죽고 요만큼 남았소?”

“이곳에 없는 그 노인네들의 자식들은 우리의 소문을 듣고 숨어 들었던 산과 친지의 집에서 돌아와 무사히 발견되는 복을 누렸으니 어찌 비단이 탐나 거짓으로 왕을 속이고 산 자식을 죽이겠는가? 그저 성 주위를 돌며 울다 이제 웃으며 지내니 천 필 비단 속옷보다 그네들이 걸친 거친 속곳이 부러울 뿐이지.”

“노인은 다른 가족은 없소? 어찌 다른 가족들을 돌보지 않고 아들 하나만 부르짓소?”

“북방의 튼튼한 병사들이 땅을 일구니 노인들은 씨 뿌릴 일도 없고 며느리 딸들이 모여 손주를 돌보니 이 노인이 아쉬울 것은 당장 없는 아들이라. 어허헝헝”

“....... 어찌 묘지는 저리도 요새 같아졌소?”

“노인들의 슬픔을 듣고 훗날 시신으로 보게 될 자식들 좋은 곳에나마 눕히라는 오왕 전하의 배려가 아닌가! 어허허헝”


울음을 그치고 빽 화를 내던 노인은 더욱 서럽게 울며 어기적 어기적 물러났으니 이와 같은 문답이 성벽을 타고 넘는 일은 그저 시간 문제였다.


이로 인해 성내가 자못 소란스러워졌으나 전장의 큰일은 모두 병사(兵事)인지라, 촉왕과 오왕은 다시 서서를 찾았다.


“자사, 민심을 얻는 것은 성을 얻는 것과 같으나 결코 성을 얻었다 할 수 없는 상황이니 실제 성문을 열 수 있는 것은 군무(軍務)가 아닐는지?”


오왕의 물음에 서서가 답했다.


“그간의 총명함은 공명심에 묻혔나이까? 그리 크지 않은 나무의 뿌리를 흔들었으니 가지가 떨고 가지가 떨리면 높은 곳에 달린 잎도 무사치 않으리다. 다만 아래에서 위로 향하는 모든 것은 위에서 아래로 향하는 모든 것보다 많은 시간이 걸릴지니.”


성내로 퍼져나가는 혼란에 모든 것이 오왕과 촉왕의 간계(奸計)요, 눈속임이며 실제 백성들이 핍박받고 협박받아 억지로 꾸며낸 모습이라 백성들에게 발표하고 비로소 한숨 돌린 이는 유회 하나 뿐이었고 그 일당은 곧 스스로 혼란에 빠졌다.

하나.

꾸며내는 행동들을 보니 촉왕과 오왕 등의 군세는 결코 쉬이 물러갈 모양이 아니었다.

둘.

성내 백성들을 설득하기 위한 말들은 모두 자신들의 입과 머리에서 나왔으니 더 설득할 근거가 없었다.

셋.

백성들이 성 밖의 일에 의구심을 갖는 만큼 자신들의 말에도 반드시 의구심을 품고 있을 것이었다.

넷.

백성들은 천하의 근본이나 이는 명분이요, 짧고 듣기 좋은 문장일 뿐. 결코 그들의 의지는 역사에 표현되지 않는다. 즉, 자신들이 그들을 다스리는 자인 것.

허나 그들이 먼저 나서서 의구심을 풀어준 이후 흔들림 없이 군림하는 지배자의 자리가 외세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고 이를 깨달을 백성들이 의문에 안주하길 그치고 모이고 뭉쳐 행동하기 시작했다.

다섯.

앞선 네 가지에 정황에 의해 결국 백성들이 크고 작은 난을 일으킨다면 딱 내우외환(內憂外患)이라. 난은 둘째치고 저리 강대한 외적을 혼란한 상황에서도 이길 수 있을까?


아니, 이 전쟁이 과연 승리할 수 있는 전쟁인가?


결론을 내린 성내 몇몇 이름 있는 장수들이 모여 빠른 만남을 가졌다.

우리에게 못 박힌 역적의 이름을 쓰고도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

없다.

허면 역적의 이름을 벗을 수 있는 방법도 없는가?

만일 방법이 있다면 가장 효과적이고 빠른 방법은 무엇인가?


서서가 촉왕과 오왕에게 건의해 백성들을 동원하는 계획을 시작한 지 3개월하고도 스무날 남짓.

그 밤이 흘러 해가 뜨자 남해군성의 주인이 절로 바뀌었다.


“대(大)한제국의 정남대장군을 뵙습니다. 소장은 남해군성의 졸장 정립이라 합니다.”

“남해군성의 역적이 보내어 온 것인가?”

“어찌 남해에 역적만 있겠나이까?”


배반한 남해군성의 장수들은 잔인하다 알려진 촉왕이나 음흉하다 소문난 오왕이 아닌 비교적 정도가 있어 보이는 정남대장군 경 형주자사 서서에게 남해군성과 유회 일가를 들고 귀의의 뜻을 표했다.

이에 서서는 크게 웃었다.


이 소식이 좌우 진영에 전해지기 무섭게 촉왕과 오왕은 서로 먼저 남해군성에 들기 위해 군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물론 일찍 상의한 대로 그들의 앞에 선 것은 기쁨의 눈물을 쏟으며 성내 자식들을 보려 내달리는 노인들 수백이었고 이를 확인한 성루의 장수와 병사들은 머뭇거리면서도 그간 듣고 본 것이 많은 지라 성문을 활짝 열 수밖에 없었다.

노인들 이후 성안으로 당당히 들어온 촉과 오의 병력은 관을 점할 뿐, 다른 소란을 일으키지 않았으나 오로지 유회가 억류되어있던 남해의 화려한 왕궁만이 그 영광되었던 모습을 빠르게, 순식간에 잃어갔다.


본래라면 교주자사와 광주자사가 임명된 상태에서 출병을 한 만큼 승리이후 촉왕군과 오왕군, 그리고 그 주인들을 본 지위에 충실해야 했으나 수 개월이 흐르도록 교주의 주인은 촉왕이었고 광주의 주인은 오왕이었다.

이에 낙양에서는 종육이 황명을 전하고 분란을 잠재우기 위해 남해성을 방문해 두 사람을 설득했고 욕심 많고 전공도 많은 두 왕은 애당초 임명했던 자사들이 아닌 자신의 측근으로 하여금 자사 위를 갖도록 했다.


서서는 사섭의 일가 중 유(裕)한 성격과 외모, 나이의 인물을 찾아 그로 하여금 전면에 나서도록해 사섭이 교주를 온화하게 다스리던 시절의 향수를 일깨우게 만들었고 이로 혼란스러웠던 남해와 교주 인근을 안정시켰다.

또한 유융이 황위에 오르면서 조금씩 바뀐 관복과 관례 따위를 따를 것을 칼 같이 강요하니 관에 속한 이들 뿐 아니라 일반 백성들마저도 일순이나마 한(漢)의 예를 따르는 것을 자신들의 풍습보다 우선했다.

이후 서서와 두 왕이 차례대로 물러나자 사섭의 후예이자 남해의 성주 사반은 제제를 풀고 그 성격답게 그간 살아오던 방식으로 돌아가는 것을 눈감아주며 명성과 인망을 얻었다.


두 왕은 물러날 때 자신들에게 귀의하여 교주와 광주에서 부귀와 영광을 약조 받은 이들을 그냥 두고 물러나지 않았다.

우선 남해군성을 함락한 이후 축하의 주연을 베풀며 인근의 멀고 가까운 토호들을 모조리 초청이란 형식으로 불렀으나 초청에 대한 답 결코 자유선택이 아니었으니 억지로 온 손님들의 아들 혹은 손자 심지어 여식이나 며느리에 이르기까지 볼모로 삼고 군에 기부하고 백성들에게 나눌 것을 약조하라 압박하며 이를 외부에 감추지 않았다.

너른 땅과 이질적인 기후, 쉬이 섞이지 않는 민족성을 무기로 삼아 훗날, 손자의 손자 대를 꿈꾸며 한황실에 협력했던 교주의 토호들은 남해성에서 마주한 칼날에 의해 가깝게는 익주, 양주, 형주의 북부로. 또는 공이 드높다는 핑계로 사예로 이주할 것을 강요받았다.


두 왕의 강력한 행동에 반란 진압 이후 새로운 반란을 걱정하던 이가 많았으나 촉왕의 모신 사마소가 나서서 말하길,


“왕께서는 혼란한 교주의 근심을 천하가 나누길 바라신다. 한데 어찌 썩은 부분을 도려내며 보는 피를 두려워하리. 이는 당당히 앞에 서 백성을 선도하고 부황에 충성하려는 황자된 도리이며 진정한 왕자의 근심이 내린 결론이라 할 수 있다.”


하는 정론을 펼쳐 식자, 신생 호족들의 지지를 얻었고

오왕의 총신 왕우는 사마소의 소식을 듣고 자신에게 모여든 이들의 물음에 답하길,


“혹자는 왕의 성정이 음흉하다 하겠으나 실제 나의 왕께서는 참으로 의리가 넘치신다. 그들은 항장이 되어 말하길 ‘낙양의 영광된 번성과 산과 같은 재화를 꿈꾸어 잊지 않은 때가 없었다.’ 하였는데 왕께서 그들을 이끌어 주셨으니 이제 그들은 누추하고 명예롭지 않은 항장의 신세를 귀하게 바꾸지 않았는가?”


하며 토호들을 비하해 오왕이 먹을 욕을 죽지 못해 끌려가는 이들이 먹도록 만들었다.


-----바로 다음 편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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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ㅇㅅㅇ!

뭔가 휚! 지나간 이유는 작가가 기억이 흐릿하기 때문입죠;;;

그래도 정성을 들여 살펴썼답미다.

이제 정말 끝을 향해 달립니다!(몇달 전에도 했던 말 같은뎅;;)


+저 제목 속의 감鑑은 거울이란 뜻입니다.

++종終은 마지막장이란 뜻이고요.

+++그렇습니다. 작가는 마지막 한 장을 남겨두고 수 개월을 잠수탔던 것입니다.

(작가가 빠르게 도망가서 찾을 수 없다.)


지적 받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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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 오랜만 입니다!!ㅇㅅㅇ!! +10 16.04.20 1,421 17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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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 사예 - 낙양(천하(天下)-1) +4 15.09.16 1,897 23 36쪽
181 사예 - 낙양(단(斷)-2) +6 15.09.03 1,728 22 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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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 오랜만입니다! ㅇㅅㅇ;; +10 15.07.31 1,588 13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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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 사예 - 낙양(타(墮)-1) +6 15.06.16 1,979 27 45쪽
174 사예 - 낙양(천의(天意)-6) +4 15.06.03 2,113 27 38쪽
173 사예 - 낙양(천의(天意)-5) 이어서! +6 15.05.13 2,067 21 15쪽
172 사예 - 낙양(천의(天意)-5) 15.05.13 1,860 23 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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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 사예 - 낙양(천의(天意)-2) +4 15.04.15 2,365 32 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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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 사예 - 낙양(천의(天意)-1) +2 15.04.08 2,309 34 39쪽
164 사예 - 낙양(추(錘)-5) +6 15.04.03 2,167 33 20쪽
163 사예 - 낙양(추(錘)-4) +2 15.04.02 2,095 35 19쪽
162 사예 - 낙양(유협(劉協)) +4 15.04.01 2,291 33 19쪽
161 옹주 - 함양(마초-2) +8 15.03.27 2,215 37 16쪽
160 옹주 - 함양(마초-1) +6 15.03.26 2,418 37 17쪽
159 사예 - 낙양(추(錘)-3) +4 15.03.25 2,377 34 18쪽
158 사예 - 낙양(추(錘)-2) +4 15.03.20 2,278 30 18쪽
157 사예 - 낙양(추(錘)-1) +8 15.03.19 2,414 34 18쪽
156 사예 - 낙양(천도(遷都)-4) +4 15.03.18 2,484 33 17쪽
155 사예 - 낙양(천도(遷都)-3) +6 15.03.13 2,622 40 14쪽
154 사예 - 낙양(천도(遷都)-2) +8 15.03.12 2,374 38 15쪽
153 사예 - 낙양(천도(遷都)-1) +2 15.03.11 2,770 34 16쪽
152 형주 - 남향(공명(孔明)) +7 15.02.26 2,815 40 20쪽
151 형주 - 남향(작위(爵位)-2) +4 15.02.25 2,906 35 18쪽
150 형주 - 남향(작위(爵位)-1) +10 15.02.13 2,863 41 18쪽
149 형주 - 남향(흐르는 세월) +4 15.02.12 3,049 43 19쪽
148 익주 - 백제(유비의 추락) +4 15.02.11 2,948 45 16쪽
147 익주 - 백제(한수 너머-3) +6 15.02.06 2,693 48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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