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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서재입니다.

삼국지 유융전 - 한의 재건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퓨전

완결

흐후루
그림/삽화
문피아 제공
작품등록일 :
2014.06.05 20:50
최근연재일 :
2016.04.2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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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7.0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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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49쪽

사예 - 낙양(타(墮)-3)

재밌게 읽으셨으면 해요. 대체역사 소설이므로 역사적 사실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DUMMY

기주 - 위군 업성


유융과 황제의 명에 의해 대장군으로 진급된 서황의 별부사마로써 학소, 위연 같은 쟁쟁한 장수들을 거느리고 업에 자리하게 된 유휴는 회의가 끝나기 무섭게 한숨을 깊이 내쉬었다.

머리 속에는 전쟁에 대한 이론만 그득할 뿐, 실제 전장에서 보급을 맡은 이의 보좌 이상의 활약을 보인 적 없는 그로써 갑자기 맡게 된 최전선의 지휘관 자리는 어색하고 힘들었다.


“공자님, 어찌 그리 한숨을 크게 내쉬십니까?”

“백약. 나는 전선에서의 나를 자신할 수 없네.”


근래 강유와 깊은 우정을 나누며 자리에 함께한 문흠은 표정에 드러내지 않았지만 유휴를 한심스럽게 생각하는 마음을 품었다.

그런 문흠과 달리 대를 이어 군부와 유융에게 투신한 부첨이 유휴를 위로했다.


“이미 조가는 패전 이후 한참이 지나도록 큰 성과가 없어 기주에서 영향력을 대부분 상실한 상황입니다. 거기에 더해 옛 원가를 잊지 않은 이들이 조가를 원수라 칭하며 가병을 모아 다른 길을 걷고 있으니 조비 등 반란의 세력이 비록 경험이 많고 여력이 남았다하나 꼭 경험이 승리를 장담치 않을 것입니다. 이처럼 천운과 민심이 황실의 것인지 오래이니 별부사마께선 크게 근심하실 일이 없습니다.”


부첨의 말은 유융 진영과 하북 대부분에 퍼진 정론으로 그 덕에 전선을 지휘하는 장수들부터 창잡이에 이르기까지 사기가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문흠 또한 동의했다.


“배후라 할 수 있는 낙양의 안정은 물론 병주의 상황 또한 대장군님과 병주자사님에 의해 수월키 그지없으니 별부사마께서도 부담을 덜고 대세에 부응하시면 큰 탈이 없으리다.”


위연과 학소가 이끌고 방통이 지원하며 황제가 하내에 행차한 후 유휴마저 합류하며 본격적으로 조비 토벌령이 떨어진 기주의 전선은 한단에 머물던 조비를 쉽사리 거록까지 몰아내며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때문에 유휴는 노련한 장수들의 전공과 황제의 그늘에 묻어가는 느낌이 없지 않았다.


한편,

이제 대수롭지 않게 변한 승전보이나 분명 낭보(朗報)라, 황제가 비운 낙양성에 부지런히 날아들었다.

조정의 중론을 따라 하내로 달려간 황제와 황제를 모시고 역시 하내로 향한 양수를 대신해 국정을 운영하게 된 유융과 양습, 화흠 등 남은 보정(輔政)대신들은 함께 자리하여 정황을 살피고 유리한 공론을 형성했다.


“황상께서 직접 정치를 논하신 이후 보정대신들이 이리 모일 일이 더 없을 줄 알았거늘-, 그나마 흉사로 모이지 않고 경사로 모인 것이 다행이지 않습니까?”


태위 양습이 운을 떼자 사도 화흠이 받았다.


“해도 제도(帝都)에 황자 한 분 아니 계시니 만사를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특히 조적이 풀어놓은 천 수백의 난적이 사예 곳곳에 흩어져 길이 조잡해지고 백성들이 불안해하니 황상께서 돌아오시기 전 이것부터 정리함이 옳지 않을까 합니다.”


사공, 유융이 고개를 끄덕였다.


“화 사도의 말씀이 옳습니다. 이제 태위께서 사예의 장수들과 이를 논하시고 사도께서는 하남윤과 상의해 법을 철저히 하여 관료들의 청렴을 감사하시면 사공인 나는 그간 말을 꺼내는 것이 금기시 된 것들을 도맡아 처리하리다.”


삼공 중 막대한 실세를 지닌 유융이 단언하였기에 화흠이 놀라 물었다.


“허허, 금기시 된 일이 많으나 이 화 자어는 그 중 무엇을 콕 집어 상상할 수 없습니다.”

“가장 급한 것이 우선 과제라, 이 유융의 몸이 하나이니 모두 할 수는 없을 것이고 산양왕에 대한 처우를 다시 살피는 일과 더불어 실종된 제북왕을 소상히 수색하는 일, 더불어 허도의 황궁을 제정비하는 일이 있겠소이다. 또 전란이 인 후 군도(軍道)가 닦이며 사방에 교통이 원활하게 되었는데 사특한 이유로 위태롭게 조성된 길도 못지않게 많아 복잡하여 불필요하고 도적이 자리 잡기 좋아 미래의 화근이니 이를 정비하여 낙양을 중심으로 사방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 옳다봅니다.”


산양왕은 황제가 독단으로 처리한 이후 아무도 건의하길 원치 않아 묻어둔 일이었고 제북왕의 일은 그의 아들이 당시 병주자사던 왕신에 의해 낙양으로 보내진 후 연주와 예주 모두 전란에 휩싸였기에 따로 조사하지 못하였다.

허나 이런 시기에 황제를 대신해 황가, 그도 가장 황제에 근접한 이들을 조사하며 더불어 병사를 천하에 풀고 막대한 재화를 들여 군도를 정비하겠다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었다.

이를 염려한 양습이 조언했다.


“내, 공의 뜻을 모르지 않으나 시기가 적절한가 합니다. 오비이락(烏飛梨落)이라 하였는데 남북으로 난이 일어난 때에 군도를 정비하느라 재화를 낭비하고 길을 닦는 모습은 아군의 저력을 소모하는 동시에 적을 안으로 안내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 않을까하오. 사공의 충심과 뜻이야 가까이 있는 우리는 지극히 잘 아나 이제 하내로 나간 황상께 사특한 무리가 비꼬아 알리면 좋지 않을 것이외다.”

“태위께서 걱정하신 의미를 이 유융도 잘 알겠으나 오늘이 아니면 따로 병력을 내어 하기 힘들 일이니 미룰 수 없지 않겠습니까?”


이후 유융은 장안으로 쫓겨난 산양왕 일가를 모조리 낙양으로 잡아들이는 한편, 예주자사, 허도 태수와 상의하여 황궁을 제정비하기 시작했다.

황제가 낙양에 거하는 지금, 역적 조조가 세우고 표면상 산양왕이 주도하였다는 역모의 기반이 된 허도의 황궁은 불경해 보였으나 전대의 뜻이 오늘까지 남아있고 유융 또한 그를 잊지 않았기에 모조리 허물지 않았다.

다만 궁의 규모를 축소하는 한편 유융의 지시에 따라 궁 중앙에 새로이 아담하고 유려한 탑을 쌓았고 제도에 걸맞게 북적이던 허도의 수십만 백성들을 인근인 영천성 혹은 낙양이나 장사현으로 이주시켜 허도 자체의 규모를 축소하는 일에 힘써 조조의 쇄락과 유융의 일통(一統)을 상징하는 건축물로 남게 하였다.


“제북왕의 마지막 자취가 연주이니 연주에서 항복한 조조의 문사들이나 산양왕의 내시들 중 목숨에 연연하는 이들을 토대로 조사할 수 있으리.”


과연 산양왕을 따르다 죽음을 겨우 면하고 노비의 신세로 전락한 내시의 입에서 제북왕의 행보가 추적되기 시작했다.


“아들을 왕신에게 보내며 산양왕의 황위 정통성을 여러모로 손상한 이후 후(候)로 강등되었다가 이리저리 거처가 바뀌며 제대로 먹고 자지 못해 괴질을 앓았다합니다.”

“하여?”

“소식을 듣기에 당시의 산양왕은 그를 치료하라 명하지 않았으니 황족에 어울리지 않는 최후를 맞이하였다 들었습니다.”


유융은 능이라 부를 수 없이 소박한 제북왕의 묘를 낙양 인근으로 옮기고 낙양에 거처하던 그의 아들에게 후대를 잇도록 배려했다.

더불어,


“황상께서 저 역적과 형제였던 때를 잊지 못해 목숨을 건져주고 천민에 강등한 일이 오래되었다. 허나 지위의 고하를 가리지 않고 아직 산양왕이라 칭하니 이는 큰 잘못이라. 듣기로, 또 직접 보기로 제 잘못을 알지 못해 천민이 되었으나 왕과 같이 식사하고 거부(巨富) 못지않은 복식을 꾸리고 있으며 잡혀 죽은 첩들의 배에 달하는 여인을 끼고 잔다 한니 이는 큰 잘못이라, 사관(史官)들은 이를 반드시 기록하고 그 처벌이 잘못되었음을 강조하라. 선제(先帝)의 유지와 황상의 의지에 의해 역적 유의(劉懿)의 목숨만은 살려줄 것이나 그의 첩이 낳은 서자는 모조리 도륙할 것이요, 딸들은 시비로 삼아 공 있는 장수들에게 내릴 것이며 본인과 그 장남은 유(劉)씨가 아닌 유(宥)를 그 성으로 삼아 은혜 입어 용서받았음을 평생, 대를 넘겨 상기토록 해야 할 것이다.”


하며 대소신려들이 내려 보는 장소에서 유의를 벌하니 장안에서 황제의 배려와 제갈량의 약속으로 남부럽지 않게 살던 전(前) 산양왕은 일시에 처참히 추락하여 넋을 놓았다.

유의는 끝내지 않고,


“제북왕의 생애를 이제 가려보자니 황족이 천민에게 시해된 샘이라, 이를 판결하지 않고 사적에 남겨 수치를 얻을 수 없도다.”


사도 화흠 등에게 동의를 얻어 유의와 열두 살인 그의 장남, 이제 열 살인 차남에게 연좌된 죄를 물어 장(杖) 스무 대를, 그의 처에게는 절반인 열대를 형벌로 내렸다.

그 과정에서 덜 자란 차남이 사망하였고 장남이 크게 앓아 다리를 절게 되었으니 분통을 참지 못한 유의가,


“저 융적의 자식 놈들의 최후도 반드시 처참 하리!”


저주하였으나 이 또한 말하기 무섭게 유융의 귀에 들어가,


“불경한 자를 황상 인근에 두는 것은 결단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며 상처가 다 아물기도 전에 다시 장형을 내린 후 전쟁이 한창인 남쪽, 양주로 쫓아냈다.

이를 목도한 관료들이 유융의 잔혹함과 당당한 월권(越權) 행태에 바들바들 떨었다.

순욱의 아들 순오가 유융에게 조언했다.


“처벌을 가혹하게 생각하며 한때 역적과 부합(附合)해 두려움에 떠는 자들이 즐비한 가운데 병력을 움직여 군도를 정비하면서 오로지 관(官)의 쓸모에 따라 길을 폐(閉)한다면 이는 탁상행정이라 부를 수 있으니 실제 길을 활용하는 백성들의 원성을 사게 될 것입니다.”

“허나 전쟁이 끝나면 하고자 해도 할 수 없는 이 이상 미룰 수 없는 일이라. 좋은 수가 없는가?”

“익주는 제도에서 멀고 사공의 권위가 막강한 곳으로 다른 주와 달리 먼저 시행해 볼만 합니다. 만일 그로 시작해 이점과 단점을 확실히 가릴 수 있어 그 이치로 설득할 수 있다면 조정의 공론부터 긍정적으로 이끌 수 있으며 실수도 적으리다.”


유융은 그의 말을 옳게 여겨 성도를 중심으로 익주의 군도를 정비토록하고 더불어 남중에 이르는 길 또한 닦도록 명하니 이미 유융이 익주에 머물 당시 시행되고 유휴가 어느 정도 완성한 일이라 해가 넘어가자 빠르게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중심인 성도에는 재화가 넘쳐나 모여든 백성들이 어깨를 쉬이 돌릴 수 없을 만큼 많고 남중에 반란이 있어도 소통이 남다르고 길이 넓어 빠르게 토벌할 수 있었소. 만일 길을 관리함을 성과 같이 하고 성을 관리함에 정예로운 병력을 항시 운영하며 외적을 눈 밖에 두지 않는다면 두려워할 것이 없을 것이오.”


간단한 이야기였지만 이점이 확실하기에 그 시행을 익주 인근의 주, 군 즉 유융의 영향력이 확고한 옹주와 량주, 형주북부로 넓히기 좋았다.

더불어 유융은 은밀히 측근을 불러 명하니,


“익주의 백성과 토호들이 재화를 풍족하게 거머쥔 이후에도 변함없이 충성하는 것은 다 간사한 천주의 교리(敎理)에 있다. 만일 천하가 익주의 교화에 따르지 못할지언정 형주에 퍼진 만큼만 퍼지더라도 이 유융에게 크게 이로울 것이다.”


천하에 길을 닦는 일에 슬며시 끼어든 유융이 창건한 천주(天主)의 교리도 따라 퍼지게 되었다.

교리를 닦은 교주(敎主)가 유명한 유융이란 소문이 무성했기에 백성들로부터 믿기 시작한 익주나 형북과 달리 토호나 관료들을 중심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허허, 참 근일이 아닙니까?”

“태위께서 고민하실 정도면 얼마나 큰일이기에 그렇습니까?”

“오해치 말고 들어보세요, 사공. 듣기로 옹, 형주에 사공을 교주로 둔 사교(邪敎)가 성행한다 합니다. 무려 천주(天主)란 기치를 걸고 퍼지고 있으니 혹 사공의 명성에 누가됨은 물론 지난날 태평교와 같은 일이 일까 두렵소.”


성공적으로 퍼져 낙양에 이르렀음을 기뻐하던 유융은 모르는 척,


“하하하, 백성들이 믿고 따르는 것에 이 유융 또한 슬쩍 끼워 넣었다하니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소. 허나 사특한 교리는 백가(百家)의 가르침이 아니라. 이는 혹세무민(惑世誣民)의 시작이요, 난세의 시발점이었으니 단호히 대처함이 옳다보오.”


하며 진두에 나서서 천주의 교리를 조정의 문제점으로 대두시켰다.

백관들이 모인 자리에서 유융과 양습이 이를 묻자 하남윤 배잠(裴潛)이 나서서 의견을 내었다.


“백성들이 조정과 관료를 믿지 않고 사특한 교리에 의지함은 실체 없는 교리는 후세의 재보(財寶)를 약조하는데 비해 조정에서 파견한 법리(法吏)들은 가혹하며 불평등하여 불이익을 주기 때문입니다.”

“하여 그대는 사예까지 퍼져온 이 현상을 두고 보잔 말인가? 사수관까진 모르되 관을 넘는 순간 전쟁의 여파가 가득한 예주와 연주가 있으니 나는 그 백성들이 황건의 전적을 밟을까 저어되네.”


유융이 진심으로 심각하게 걱정하자 양습과 화흠이 동의했고 배잠이 말을 이었다.


“법리들의 청렴을 바라면 당장 이익이 없는 교리는 눈앞의 공정하고 무거운 권력에 밀려날 것이나 이는 오래 걸리는 일이요, 이미 관에 믿음이 옅어진 백성을 진심으로 설득하기 힘듭니다.”

“허면 다른 빠른 대처법이 있을까?”

“있습니다.”


양효가 나서서 배잠에 동의했다.


“듣기에 황건의 난이 폭력적인 기세를 이룬 것은 현혹된 백성들을 자애로 품어 다시 가르치지 않고 폭도로 내몰아 게으른 조정이 핍박했기 때문이라 하였습니다.”


사도, 화흠이 가르치다는 말에 반응했다.


“이제 사교를 따르는 백성은 수백만이요, 가르칠 관리는 적고 그 관리들이 신뢰받지 못한다면 빠른 결과는 물론 어떠한 결과도 얻을 수 없음은 물론 자칫 부정한 결과를 낳을 수 있으니 가르치는 행위가 곧 또 다른 형태의 핍박으로 변질될 수 있다 보네.”

“사도께서 하신 말씀이 옳으나 이 사교에서 무한히 신뢰받는 관리가 있습니다.”

“누굴?”


사도와 태위는 양효의 말을 이해하고 난처한 기색으로 유융을 바라보았다.

유융은 불편한 기색을 표하고 있었으나 양효와 배잠을 위시(爲始)한 백관들이 자신들의 의견이 옳다 여기는 기색에 포기한 듯 한숨을 내쉬고,


“내 황실과 나라를 위해 그리 하겠소.”


하며 스스로 나서 천주의 교리를 조정의 뜻에 맞게 각색(脚色), 새로이 발표하고 유융이 머리인 사공부를 중심으로 능동적으로 배포했다.

조정에서 배포한다 하여도 교리에 적힌 내용이 도리에 부합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고 배포의 대상의 신분을 가리지 않았으며 그 주체가 여러모로 유명한 유융이었기에 교리는 양지에 나서기 무섭게 배는 빠르게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하여 익주와 량주, 형남과 옹주의 일부는 각색되기 전 천주의 교리를 진실로 삼았고 그 신도들의 대다수가 백성이나 병사들인데 반해 옹주와 사예, 연주와 예주, 형북 등은 각색된 교리를 익혔으니 그 신도의 대다수가 역시 백성이었으나 믿음은 한층 옅었고 오히려 출세를 바라는 자들은 믿진 못할망정 달달 외울 정도가 되었다.

뒤늦게 소식을 접한 황제가 이를 걱정하며 가벼이 문책하였는데 유융이 빠르게 답하길,


“이는 백관이 상의한 것을 삼공이 수차례 반려(返戾)하며 심사숙고하고 또 심사숙고한 국사로 오로지 황실을 위한 것이었나이다. 이제 못난 유융이 오판하여 외지에서 험난할 황상께 심고(深痼)를 안겨드렸으니 그 죄질을 헤아릴 수 없으나 순서에 맞게 우선 관직을 내려놓고 대죄를 청할까 합니다.”


이를 받아본 황제는 황당하여,


“삼공은 일을 처리하길 짐을 대신하여 특히 믿고 맡길 수 있는 이들이다. 이제 산양왕의 일이나 제북왕의 일은 짐의 뜻에 거슬리는 부분이 없지 않으나 백관이 동의하고 종실이 함께 하였기에 이를 몇번이고 다시 생각하자 이에 동감할 수 있었다. 허나 허도를 고쳐 전시에 재화를 낭비하고 전쟁이 일지 않은 곳을 골라 군도를 정비해 백성들의 민심을 동요토록 하여 사특한 자들이 그 틈을 타 어리석은 백성을 현혹하였다 하니 그 죄 없다 할 수 없는데 어찌 상국, 아니 사공은 이런 난리를 만들어 놓고 죄를 청하며 고치지 못할 망정 쉬이 관직을 내려놓겠다 하는가? 짐은 불허한다.”


라 답했다.

차후에도 유융은 일을 처리한 후에 시간을 두고 보고했고 황제가 미약한 화를 내기라도 할 즈음이면 관직을 내려놓겠다, 하내로 달려가 사죄하겠다, 노신의 처지라 판단이 흐리니 벌해 달라, 는 등 절대 고집을 꺾지 않고 유융 본인의 처우에 관해 말을 돌리는 형식의 답을 내놓았다.

결국 마지막에 이르러 항복하는 것은 황제로 이는 유융을 옹호하는 자들이 낙양은 물론 하내의 군중에도 가득했고 황제의 어림군 마저 유융을 황제보다 존경하였으니 함부로 내색할 수 없는 탓이었다. 또 시일이 흐르기 무섭게 유융이 벌려놓은 국책(國策)이 막대한 이득과 가벼운 손실, 백성과 대다수 관리들의 긍정적인 호응을 이끌어냈기 때문이었다.

하여 이를 두고 세간에는,


“사슴 위에 오른 것은 돼지(돈(敦)-황제의 이름과 동음)이나 목줄을 잡고 끙끙거리는 것은 원숭이(융(狨)-유융의 이름과 동음)이다.”

“불길이 꺼져 연기가 무성하니 비로소 귀인이 달려가 물을 깃기 시작하는데 마침 홍수가 난 곳이 있어 귀인이 필요할 때 귀인은 없고 불 끈 사인(使人)이 와 쉬지도 못하고 치수(治水)한다. 옛적에는 귀인이라면 요 임금이요, 순 임금이셨는데 오늘은 그를 장담할 수 없다.”

“묘목(苗木)이 자라나 과실을 보려는데 목만 빼고 하늘을 바라보며 기다리는 이 따로 있고 물 길러오며 땅을 두루 살피는 이 따로 있더라.”


하며 아직 어린 황제의 옹졸함과 시절에 모자람을 타박하며 유융이나 재상들을 옹호하기도 했고,


“사슴 사냥이 다 끝났으면 사냥꾼은 활을 돌려주고 화살을 동강내어 낚시와 농사로 연명함이 옳다.”

“오뉴월 개구리보다 시끄럽게 자꾸 사양한다 하는데 그것이 권세와 직위를 사양하는 것인지, 황위를 사양하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시끄럽고 제 잘난 대로구나.”

“머리는 뱀이요, 꼬리가 용이니 잘생겼으면 뭐 하겠는가? 뱀처럼 날지 못해 기어가니 눈이 낮은 곳에 위치했고 눈이 낮아 다리만 살필 뿐이니 곧 적과 주인을 가리지 못해 주인을 물어 들고 있던 당과를 놓치게 만들어 다시 한 번 큰 사단이 날 것이요, 백성들이 고통 받을 것이 분명하도다.”


라며 유융의 월권과 은밀한 욕심을 조심스레 비난하기도 했다.

이를 들은 몇몇 관리들은 황제를 옹호하고 유융을 욕한 이들만 잡아 벌하며 유융에게 이를 자랑하듯 알렸으나 유융은 그를 칭찬하지 않고,


“선비들의 탄식이 시절에 맞고 백성들의 우문(愚問)이 시대를 대표한다. 그들의 표현이 그르다하여 뉘 감히 재상을 위해 법을 함부로 쓸까?”


라며 아첨의 경중을 가려 관료들을 좌천시키거나 삭탈관직에 처했다.

뻔히 보이는 처우였으나 유융의 언행은 분명 옳았고 그 언행이 결코 가볍지 않아 꾸준했기에 배우지 못한 자, 갖지 못한 자들을 시작으로 지방의 토호나 사예의 명문에 이르기까지 불만은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칭송은 날이 갈수록 은밀해졌다.


******


양주 - 단양군 능양성


유의는 시간을 들여 여강과 구강, 예장을 둘러보며 곳곳에 흩어져 있던 익주의 병력과 형주의 병력을 강력히 접수하고 표면적인 법정 사후(-아직 법정이 살아 있을 적), 양주에 뿌리 깊게 강제되던 법정의 정책들을 가벼이 고치거나 폐하며 각 지방의 토호들의 막대한 지지를 이끌어냈다.

양주, 특히 강의 남쪽에 위치한 군(郡)에서는 관이 백성을 다스리기보다 관은 토호와 협력하여 적당히 눈치를 주고 토호가 직접적으로 행세하며 백성을 다스리는 일이 비일비재(非一非再)했기에 법정이 다스리며 강화된 관의 공권력을 크게 떼어 토호들에게 일임한 유의의 행보는 극적이고 빠르게 양주 전역에서 보다 실체있는 명성과 권력을 가져다주었다.

이런 행보는 법정이 죽고 난 후 손권 측에서 예장군에 정치, 군사적으로 손 쓸 틈을 주지 않았고 모순적인 충심을 외치며 손가를 위해 황실에 반기하고 일어난 몇몇 가문만 가벼운 문제가 되었을 뿐이었다.

물론 그 작은 반란마저도 유의가 직접 처리할 일이 없었으니-


“수고하였소. 과연 양주에 이름 높은 고(顧)씨 가문이라 할 수 있소.”


이처럼 예장 뿐 아니라 회계, 오 등지에서 황명을 떠받들기 위해 달려온 인재들이 넘쳤고 그런 인재들과 화합한 예장과 여강의 토호들이 가병을 내어 이를 도왔기 때문이었다.

유의가 투신한 자들을 가려 쓰지 않고 모두에게 중임과 직책, 군사를 내려 외방으로 보내자 오반이 이를 근심했다.


“자사께서 귀부한 인재들을 부중 장수들보다 중히 쓰심에 이 오반은 근심치 않을 수 없습니다. 장수들은 불만이 쌓일 것이고 귀부한 자들 중 반드시 첩자가 있어 군중에 혼란을 심을 수 있습니다.”

“이제 제법 양주 출신을 존중했으니 지금쯤이면 내가 명을 내리고 내 충신들을 중용함에 양주의 백성을 차별한다 할 수 없을 것이요. 이제 말릉을 향해 출병하면 전우들이 전선에서 맹활약할 것이니 장군은 걱정 마시오.”


과연 유의가 확언한대로 귀부한 자들 중 유의가 가리고 가려 뽑은 극소수의 인물들만이 낮은 직책으로 전선에 나란히 설 뿐이었고 그 숫자도 적었는데 그간 충분히 존중받아온 귀부한 자들이나 양주의 토호들이 함부로 불공평하다 논할 수 없어 군중이 불만없어 고요했다.

이후 유의는 한때 법정이 머물며 단양에 손권보다 막대한 실력을 행세했던 능양성에 입성, 비로소 손권이 긁어모은 3만 병력과 마주하자 여강에서 유엽이 찾아왔다.


“오랜만입니다, 선생.”

“그간 자사께서 크게 출세하심은 물론 이리 강녕하셨다니 참으로 보기 좋습니다.”

“이제 손권군 중 쓸만한 것은 고작 수천에 지나지 않는데 무엇이 걱정되어 이리 먼 걸음을 하셨습니까?”

“저 또한 자사께서 능히 손권의 삼만 병세를 몰아내리라 의심치 않습니다. 다만 빠르게 정벌하고 오랜 시간을 들여 안정시키는 것과 천천히 정벌하며 안정시키는 일을 함께하는 것에 같은 시일이 걸린다면 효율적으로 선택해야하지 않을까 하여 이리 찾아온 것이지요.”

“효율적으로 말씀이십니까?”

“예, 오늘 양주의 손가는 삼대로 모두 명성이 높았고 양주의 백성과 관료들은 손가를 거부하는 것에 상당한 용기가 필요할 정도입니다. 이제 자사께선 황명을 받아 양주를 정벌하니 황명을 앞세우고 정남장군의 위치에 서서 스스로 낮추소서. 그것이 오히려 공자님을 높일 것입니다.”

“낮추라? 젊은 나는 내세울 것도, 그간 내세운 것도 얼마 없는데요.”


유엽은 품에서 조각조각난 양주의 지도를 주섬주섬 꺼내 보였다.


“선생께서 지도가 필요하다면 군중에 적잖이 있습니다.”

“아니요, 아니지요. 이제 이리 맞추면- 자, 양주의 지도가 완성되었습니다.”

“이 지도는 제 스승이신 법정 공이 새로 조사하여 만들어 놓은 것보다 조잡하고 무성의하기 그지없는데 어찌 불완전한 것으로 군사(軍事)를 논할 수 있을 지요?”

“저는 군사를 논하러 온 것이나 정확히는 군사에 따른 이후의 정사(政事)를 논하러 온 것이지요.”


유엽은 말을 하며 겨우 맞춰둔 지도를 다시 띄엄띄엄 벌리기 시작했다.

유의가 유심히 살피니 지도의 크기가 제각각이고 그림의 구분이 불명확하였으니 오군의 땅과 회계군의 땅이 한 자리에 존재하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단양의 땅은 몇 조각 세분화되어 이를 찾아 순서에 맞게 정리하기 힘들어보였다.


“이제 보이십니까?”

“혼란스럽습니다. 선생의 의중을 도저히 파악할 수 없으니 이 유의의 공부가 많이 부족한 듯합니다.”

“그간 책임 막중한 정무를 보느라 안목이 좁아지신 것을 이해합니다. 만일 자사께서 막 출세한 상황이라면 대강 알아보셨을 것입니다. 당장 눈앞에 책임이 무거운 전쟁이 없었더라면 다각도에서 양주를 살펴 공적을 쌓으려 하셨을 것이니까요.”


유의는 안목이 좁다는 말에 내심 불편하였으나 곧 고개를 휘저어 자존심을 내려놓고 가르침을 청했다.


“하여 스승이 많으면 제자가 가득한 것보다 든든하고 눈과 귀가 많아 생각이 밝으면 손발이 적어도 바쁘지 않다 하지 않습니까?”

“하하하, 자간(字間)이 유들유들하여 부드럽지 않은 곳이 없으니 이제 공자께 윗사람의 자질이 보이는 듯합니다.”


유의를 일면 칭찬한 유엽은 본격적으로 말을 꺼냈다.


“이 양주는 비옥하고 드넓으나 황실과 멀고 산월이 강성하며 그에 비해 한의 백성이 적어 만사가 중원과 같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다만 인근의 형주와 비교해도 백성들의 생활방식과 관리들의 생각에 큰 차이가 있으니 황실의 법도를 내세워 다스릴 수 있는 범위가 애매합니다.”

“이는 교주도 한 치 다를 바 없습니다. 하여 양주를 평정하면 교주와 소통하기 유난히 원활한 것입니다. 상식의 수준이 비슷하니까요.”

“음.”

“하여 이공자께서 양주를 평정할 때 양주에 큰 맹위를 떨쳐 손가의 명성을 넘어야 이 양주가 공자께 힘이 될 것이요, 그리하지 못하면 곧 묻힐 공적에 지나지 않으리다.”

“양주의 손권은 강군이고 내 조인의 일방을 격파한 공이 있소. 어찌 가벼이 묻힐까요?”

“앞서 말씀드렸지만 양주는 만사가 중원 같지 않습니다. 이는 식자가 모두 아는 사실로 양주를 향한 황실의 처우도 다를 바가 없었지요. 애초 양주로 부임 오는 자들은 대부분 양주나 형주 출신이고 설사 삼보 출신이 정쟁에 밀려 귀양 오듯 부임해도 그저 감투만 쓸 뿐, 강력히 통치하지 않습니다. 이는 거리의 차이로 이름만 한(漢)을 달고 있을 뿐이라 옛 주(周)왕실의 예를 잊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내가 만일 지금 다시 토호들을 제제하기 시작하면 말릉으로 진격하기도 전에 예장의 절반을 잃을 것이니 이는 논외라 생각합니다.”


단호함에 유엽이 유의의 눈을 날카롭게 마주했다.


“공자께서 그리 생각하시고 임하셨기에 양주정벌이 외방의 전쟁에 지날 뿐, 공자께 힘이 될 수 없다 말씀드린 것입니다. 이번 전쟁으로 인해 황명을 명분으로 세 주의 정예 병력을 무릎아래 두셨습니다. 만일 오늘을 놓치면 그만한 병력을 지닐 기회가 요원할뿐더러 미래 평정된 양주의 토호들과 마주할 적, 주인과 종복의 예가 아닌 주와 객의 예로만 양주를 거느릴 수 있을 진데 그마저도 시간이 조금만 더 흐르면 누가 주이고 누가 객인지. 말 그대로 주객전도(主客顚倒)를 목도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유의는 그제야 먼 곳을 확인하고 조급함에 시야가 좁아 졌었음을 느껴 식은땀을 흘리며 한 치 앞만 생각한 것을 후회했다.


“내 이미 예장을 벗어났고 예장에서 스승의 법도를 바꾸어 위엄을 잃고 호의를 얻었소. 지금 이미 늦지 않았을 런지요?”

“이미 익주의 예가 있지 않습니까? 사군께선 적장자가 아닌 몸으로 외로운 가운데 끈 하나 없는 외지에서 뜻을 찾으셨으며 외지에서 일군 군벌로 황명을 받들어 수년을 소모하며 조급해하지 않고 차근차근 익주를 정벌하셨습니다. 물론 공자의 안중에는 그만한 시간이 없는 듯 보이지만-.”


유의가 무언으로 긍정하자 유엽은 그 야망으로 맑은 눈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익주가 가까스로 정벌되었으나 상황은 비슷하여 사군의 자리는 적었고 공신들은 부귀를 누리며 막대한 금력과 군력을 자랑함에 거리낌 없었습니다.”

“하여 아버님께서 혼인하고 장인과 손을 잡아 그의 정적들을 쳐내며 결코 그 이상의 존재로써 우방인 토호들을 거스르며 군림하려 하지 않으셨지요.”

“예. 허나 그도 잠시 잠깐이라, 가지를 쳐내다보면 순간 자신이 가위인지 가위를 부여잡은 손인지 애매하게 될 때가 자연스럽게 옵니다. 심지어 어느 날 손이 잘릴 처지의 가지가 될 수도 있고 가위가 일순 대체되어 팽(烹) 당할 때도 있지요.”

“허나 아버님께서 익주에 비대해진 방씨와 일순이라도 사이 좋게 양립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조부에서 시작해 대를 이었고 아버님 스스로의 힘을 외부에서 충분히 다독인 후에야 다스렸기 때문입니다.”

“예, 손가 또한 그와 같았지요. 대를 이어, 출신이 양주임을 이용해서. 손무의 후손임을 천명하여, 더불어 적당히 강력한 토호나 군벌과 혼약하며 핏줄의 존엄을 남들과 다른 선에서 결코 낮지 않고 높지도 않은 곳에 두었으며 주인을 자처한 이들의 실력 또한 출중하여 반대하는 이들을 냉큼 처단하고도 반발을 사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이는 곧 양주나 익주의 질서가 그와 같다는 것입니다. 토호들은 서로 싸워도 결국 같은 토호만을 인정할 뿐, 결코 외지인을 쉬이 우두머리로 두지 않으려 하지요.”

“황족이며 막강한 권세를 배후에 둔 접니다. 재능 또한 남들 못지않다 자신하는데 손가를 대체하기 충분치 않겠습니까?”

“유요는 먼 땅의 황족이며 황명을 들어 양주의 많은 선비들과 양주 성주들의 지지를 업고 수만 병력을 거느려 잠시 강동을 다스렸으나 고작 수천 손책의 병력이 들어오자 이에 내응하는 자들이 생겨나 사방에서 승리 한 점 없이 패했습니다. 반면 손책은 유요와 달리 양주 군벌 출신이었기에 양주 곳곳에서 환대해주어 쉬이 정착할 수 있었고 유요의 편에 섰던 토호들의 협력도 그리 어렵지 않게 빨리 얻어낼 수 있었습니다. 자, 공자께선 먼 인척의 예를 답습하고자 하십니까?”


유의가 더욱 자세를 낮추고 예를 다해 말했다.


“자양 선생께서 한중에 기거하며 성도의 아버님을 도움 주셔 지금의 익주가 황실에 올곧이 있듯, 이제 이 유의를 도와 양주 평정에 함께 해 주십사 합니다.”

“자고로 전장에 임한 장수는 먼 왕좌의 허락을 일일이 받을 수 없나니 사후(事後) 보고한여 책임 막중함을 증명한다 하였습니다. 이제 자사께선 전장에 임하시며 많은 역적이 비운 자리를 채움이 우선입니다. 지금이 뜻대로 양주를 주무를 적기이니 인사(人事)뿐 아니라 양주의 모든 일에 황상의 뜻보다 공자의 뜻을 우선하소서. 존귀한 황명은 정벌이요, 그 아래 공자께선 충신열사이자 청렴한 관리로 오로지 백성들을 생각한다 보여야 합니다.”

“흠, 우선 인사부터 살피자면 양주의 인사들에게 큰 권한을 쥐어 줄 수 없으니 외지에서 사람을 청해야 합니까?”

“양주의 인사들이 곧 공자의 힘이 될 것인데 어찌 그러십니까?”

“허면?”

“사군과 같이 하십시오. 이제 손가에게 핍박받은 토호들을 찾아내어 권세를 내어주고 그마저 가려 기존의 강력한 토호들은 명예로우나 실권 없는 자리를 약속하고 약세 토호들에겐 실속있는 자리를 내려 그들을 앞세워 양주를 대표하라 하십시오. 허면 공자께선 결국 황명에도 그들의 편을 들어준다고 좋아할 것이요, 설령 공자의 속내를 의심한다 하여도 명분이 없고 이해에 충돌도 없으니 힘을 모을 수 없어 함부로 움직일 수 없으리다.”

“이미 내게 아내가 여럿인데 아버지의 선례를 따라 혼약으로 토호와 손을 잡아야 확고한 내 편을 둘 수 있을까 합니다.”


잡스런 가문의 여식을 취하는 일에 유의가 조심스럽자 유엽이 근심 말라는 듯,


“사군께서는 익주를 정벌한 후 가장 강력한 토호들 중 그간 핍박받은 방씨를 잡아 혼약해 익주내 세력의 균형을 잡았음은 물론 이후 홍롱에서 원소를 상대로 승리해 지위가 대외적으로 확고해지자 그를 이용해 방씨마저 몰아낼 수 있었습니다. 이제 이공자께선 양주의 일방을 겨우 잡았을 뿐이고 지위도 불안정하니 듣기 좋은 말만 앞세우고 잔 것으로 인심을 베풀며 헛 된 희망을 줄 뿐, 실제 행동을 보이진 마소서. 세인들은 말만큼 무서운 것이 없다 하나 결국 말보다 행동이 무거운 법입니다.”

“양주에서 내 편을 어찌 만들어도 오래 붙잡아 둘 수 없으니 그저 급한 불을 끈 것뿐입니다. 장차 그들을 오래 수족으로 부리려면 어찌 행동해야 하겠습니까?”

“소인이 준비한 지도들은 난잡하고 부실해 전쟁에 쓰임이 적어보이나 쓰임을 달리하면 귀한 자료가 됩니다. 대저 사람은 아무리 귀하고 뛰어나도 사람만을 다스릴 수 있을 뿐, 치산치수(治山治水)할 때 기후가 변화하고 지리가 뒤바뀌는 일은 항시 하늘에 맡깁니다. 하여 이 지도 또한 백성이 몰려 사는 곳을 표했을 뿐, 지형과 수로가 간단하기 그지없는 것이지요.”


잠시 세세히 지도를 살펴본 유의가 다시 경청하자 시간을 둔 유엽의 말이 이어졌다.


“지금 한의 군현은 수 백 년 전의 기준에 의거해 나눈 것으로 많은 땅들이 기울거나 솟았고 많은 물길이 꺾이거나 사라졌습니다. 하여 사람들은 살기 좋은 곳, 번화한 곳을 찾아 몰려들고 또 번화한 곳에 팽배한 부정(不淨)에 질려 흩어지길 반복하였지요. 이제 난세를 맞이해 백성들이 사방에 흩어짐이 다분하나 곧 전쟁이 그치면 그들의 대다수는 번화함을 찾아 발길을 돌릴 것입니다. 귀향(歸鄕)의 의미보다는 숨은 곳에서 나와 교류(交流)한다 봄이 옳겠습니다.”

“해서요?”

“주인이 없어져 주도(主都)가 사라진 양주에서 새로이 측근으로 자리매김한 토호들의 땅 중 한 곳을 엄선하고 그 위에 공자만의 기치를 높이 세워 번화함의 상징으로 삼으시며 다스리길 기존의 법을 준수함에 해석을 달리하며 선정(善政)을 표방(標榜)하는 듯 꾸미소서. 허면 양주 명문의 자제 중 유난히 뜻 있고 청렴을 외치는 자들이라면 적아를 가릴 것 없이 한 자리에 모을 수 있을 것이요, 그들이 서로 견제하게 만든 후 한의 법을 집행하는 최전방에 세우소서. 이는 따로 기일이 필요한 일이 아니니 당장 시작하여도 무방합니다. 이는 유표가 연고(緣故) 없는 형주를 맨손으로 취할 때 괴씨와 채씨를 내세우며 쓴 방법입니다. 이후 괴씨와 채씨가 강력한 실력을 행세함에 유표를 외면할 수 없었으니 이는 주인의 이름이 선명히 적힌 권력과 명분을 주는 동시에 고삐를 둘러 한 가문에 충성을 무언으로 요구하며 길들이는 방법입니다.”

“그렇다 하여도 어찌 너른 양주를 성 하나로 다스릴 수 있을 지요? 또한 그는 토호들에게 막강한 권력을 쥐어주며 천천히 먹히는 꼴이 될 수 있어 난감한 방법입니다.”


유표의 최후가 실제 그러하였기에 유엽이 동감하며 이어 답했다.


“손책과 유표, 유요가 비슷한 방법으로 토호들의 지지를 요구하며 그를 이용해 자리잡되 결과가 다른 것은 유표나 유요는 상관이었고 손책은 같은 토호요, 친우로써 그들의 우두머리를 자처하였다가 시간을 두고 상관의 위엄을 갖추었기 때문입니다. 실제 손가의 형제들은 그들이 부리는 수하들과 같은 한(漢)의 신하임을 항시 선전하며 조정의 명을 중시 여기지 않았습니까?"

"그렇지요. 아주 미세한 차이입니다. 허나 나는 친우로 부를 토호가 없을 뿐더러 출신도 이곳이 아니어서 같은 처지라 자청하기 어려운데-."

"그래서 황명 아래 스스로 낮추라 거듭 강조드리는 바입니다. 이제 토호들을 가려 그들의 고향을 임시주도로 삼고 소정(所定)의 양주 세력을 갈무리하셨으면 새로 취임한 양주의 자사로서 군, 현의 경계를 다시 살피소서.”


유의가 골치아파하며 난색을 표했다.


“군, 현의 경계를 손대는 일은 매우 복잡합니다. 만일 혼잡이 생겨 한 현에서 세금이 두 번 걷히거나 풍족한 현을 두고 군이 다투면 없는 일을 만들어 하는 것과 같습니다. 민심을 크게 잃을 뿐 아니라 어느 계층에서도 환영받지 못할 정책이 될 것이니 실행 가능성도 적습니다. 아버님께서도 익주를 모두 평정하고 방가와 혼인한 후에야 군현을 새롭게 정리하지 않으셨습니까?”

“말씀처럼 부작용도 많아 보이고 오해와 다툼의 여지가 충분해 보입니다.”

“보이기만 그럴 뿐 아니라 실제 또한 그럴 것입니다. 허나 이유에 따라 귀히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사예는 주(州)가 아닌 윤(尹)이라는 특이한 행정 형태를 띠고 있으며 세금으로 걷히는 재보는 곡물 한 톨 가릴 것 없이 재상이 직접 관리합니다. 이처럼 공자께서 자사의 이름과 전시의 특성을 활용하여 양주의 재보(財寶)와 양주 각지의 크고 작은 정보를 오로지 관리하신다면 부귀한 현을 두고 군의 장(長)들이 서로 다투는 일도, 피 튀기는 다툼을 실행할 실력을 보유하고 있거나 손권을 향한 거침없는 이탈의 염려도 없을 것입니다. 이는 왕이나 제후의 예이지만 이미 손권은 물론 많은 자사들이 자연스레 행하고 있던 정책이나 군, 현의 형태를 바꾸는 것은 번거러움과 황실의 눈치를 봐야하는 상황이라 실행치 않은 것뿐입니다."

"그들이 쉬이 못한 일을 새로 온 내가 할 수 있겠소?"

"자사의 성은 유씨이지 않습니까? 스스로 낮추느라 꺼내지 않던 이것을 꺼낼 때가 있다면 바로 이때입니다. 만일 공자께서 이것 하나에 의지해 강행하신다면 남들은 비웃느라 견제하지 않을 것이나 공자께서 지닌 강대한 병력으로 이를 강제한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양주의 자사이나 양주의 왕과 같은 권위와 금(金)과 군(軍), 정(政)의 실력을 하나 빠짐없이 두루 누릴 수 있으리다. 이쯤에 이르면 작은 이익과 명분에 팔려 뭉치고 흩어지는 토호들은 더 이상 염려가 될 수 없습니다.”


유의는 유엽의 말을 들을수록 시간이 오래 걸리는 계획처럼 느껴져 고개를 갸웃했으나 실제 유융이 익주의 구역을 마음먹은 그 순간에 새로 나누고 반발을 게의치 않고 강제하여 그와 같은 효과를 누렸기에 말을 막지 않았다.

유엽 또한 유의의 불편함을 눈치 챘으나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으니,


“오랜 시간 소모전을 치른다면 강동은 제 터전이니 반드시 안정할 수 있다 자신하고 있을 손권은 근래 대장 주유를 잃고 여몽은 회계-산월의 반란에 투입되며 크게 믿고 맏길 장수가 없으니 반드시 스스로 군을 이끌고 판단하여 군사적 틈을 보이지 않으려는 공자의 태도에 군사적 틈은 찾지 않고 양주에 연고가 없는 공자의 약점만 물고 늘어져 흩어진 토호들을 설득해 공자의 발 붙일 곳을 없애려는 정치술수를 우선할 것입니다.”

“정치술수가 한 번의 승리보다 뛰어난 도움이 될까요?”

“손권의 자신감은 손씨 가문에 의지하는 것이 결코 작지 않습니다. 손씨와 함께 내달렸던 충신들과 명장들, 그 후손들. 손씨의 깃발아래 모여든 재사들과 장수들. 손권은 반드시 전선뿐 아니라 그런 곳에도 의지하려 할 것이고 확실한 효력도 있기에 그곳에 의지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물론 아군이 행정에만 몰두한다면 일시에 공세를 강화해 대치를 깨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허면 앞서 말씀하신 모든 것들은 그저 침낭비가 아닙니까.”

“'만일 토대를 닦는 것을 욕심내어 시작부터 조심스러운 대치상황을 이으려 한다면-' 이란 전제가 있습니다.”

“허면 전쟁하여 승리하되 손가의 명줄은 아슬아슬하게 살려두라?”

“예. 그것도 발빠른 한수를 이용한 대승이 필요하지요. 즉, 공자께선 대승한 후 자만하여 황제의 예를 따라 양주의 군현을 재편하고 토호들을 압박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입니다. 승리로 강력한 군대를 증명하였으니 반발하는 토호들도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고 이미 공자와 손을 잡은 토호들을 더욱 잘 이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황실에서 가만히 보고만 있을 지요?”

“공자님의 아버님은 대신들과 황상의 이목을 하북으로 돌린 지 이미 오래입니다.”


순간 전쟁이란 단어에 눈이 크게 뜨였던 유의의 눈이 무성의한 지도를 훑어 석성으로 향했고 유엽도 이를 보고는 웃음을 내보였다.


“그렇습니다. 공자의 긴-, 긴- 계획을 실행하는 동안 손권이 죽지도, 살지도 못한 채 질질 끌려 다니며 잡수에 의지하게 되는 것은 다 그를 석성까지 몰아붙인 이후가 될 것입니다.”

“조인에게 대패하며 말릉 함락 코앞까지 도달했던 전적이 있는 석성이라면 손권이 받을 정신적 압박이 굉장하겠습니다.”

“예, 거기에 더해 지난번 전쟁을 가까스로 유지하던 두 명의 대장 중 하나를 잃은 지 오래임을 다시 말씀 드립니다. 그는 이번에야말로 여력을 낭비하여 끝자락에 몰릴 것이며 그가 내실 없는 쭉정이로 남아 공자님이 여전히 대군을 운용할 수 있는 상황에서 군현을 정리하는 일을 시작하십시오. 단양에서 시작하여 오군, 회계군을 거친 후에야 예장과 여강군을 거쳐 구강에 다다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렇다 하여도 군현 정리를 선포하는 것이 이번 전쟁의 시작 신호가 될 것이고요. 이는 양주자사를 자처하는 손권의 존재를 도발하는 방법이라 여겨지며 군현 정리에 대한 토호들의 반발도 줄어들 것이겠지요.”

“현명하십니다.”


유의는 일을 행함에 새로운 양주의 토호로 자리매김할 먼 황족, 유선을 불러올려 그의 병력을 새로운 양주의 주도를 지킬 일익으로 삼았다.

물론 그를 주도에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병력을 전방에 두기 위해 ‘내가 명령을 내리는 상관이고 중앙에 출세하고 싶은 넌 나의 명에 복종해야한다.’는 것을 좋게 말하는 것에 불과했다.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유선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이를 냉큼 받아들였고 유의는 이풍의 조언에 따라 그에게 잡호장군의 관인을 하사하는 동시에 정식관직인 노릉 태수 직인을 거둬들였다.

이후 유의는 유선과 함께 구(寇)씨, 고(顧)씨, 육(陸)씨에게 큰 권한을 내리고 능양을 자신의 이름을 딴 의(擬)양이라 명명하며 양주의 새로운 중심으로 선포했다.

이후 내정에 집중하는 듯, 양주 전역에 고하여 인재를 탐하고 그들을 두루 활용해 법에 자세한 주해(註解)를 달아 토호들을 통해 백성들에게 돌렸다.


“법으로 백성들을 돌보길 각 군현마다 제 각기 달리 하여 억울하고 핍박받는 이가 많았다. 이제 오랜 악습을 버리고 새롭게 다스리고자하니 귀가문의 도움이 절실함을 알리는 바이며 이 뜻에 오해가 없도록 하라.”


몇몇 불응한 토호들이 이 사실을 몰래 낙양에 전하였지만 낙양에 찾던 황제는 없고 유융이 전권을 누리고 있는 실정이었으니 오히려 그들의 이름만 족족 유의에게 닿는 셈이라, 유의는 이런 사람들을 가리지 않고 주연을 마련해 한 때 불러 모아,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일은 항시 두려움이 앞선다 합니다. 이는 성현의 예를 따르지 않는 반항처럼 보이기 때문이라, 다 우국충정하는 마음이라 생각합니다. 허나 오늘날 어떠합니까? 저 역적을 따르는 지식인이 세상의 절반에 이르니 이는 과감히 고인 물을 덜어내고 그것을 담았던 그릇의 흉을 잡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여 이 유의는 양주를 아름답게 하고자 이 놋그릇을 과감히 단련(團練)할까 하니 부디 어려워 마시고 가(可)와 불가(不可)하는 목소리를 크게 내어 도움주시기 바랍니다. 하고 고인 물을 고친 그릇에 담는 일은 없을 것이니 과거의 일일랑 이 술잔에 담아 목 넘겨 오늘 이후 소변처럼 시원하게 흘려보냅시다!”


하며 대인배의 풍모를 자랑하고 과거의 속함과 실정에 연연치 않겠다는 선정의 뜻을 내보였다.

물론 그 뒤에서는 유엽과 이풍, 구봉 등 유의의 측근을 중심으로 이곳 단양군과 인근 오군, 회계군의 현들 몇몇에 대해 재편을 구상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이제 크게 떠드는 자들은 한의 법률을 깨끗이 행하자는 토호의 자제들뿐이고 실제 가용인력과 움직임은 군현의 재편에 몰려있으니 내부에서 비밀리에 진행되는 이 일은 곧 실수로 내비친 소식이 되어 손권에게 흘러들어갔다.


“그 애송이가 단양에서 세금을 걷자하면 능양성에서 튀어나와야 할 것이야!”


손권은 이를 두고 보면 지금 손가를 응원하는 많은 성주, 토호, 군벌들이 손가를 가볍게 볼 것임을 잘 알았기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손권이 움직이려하자 아무도 막지 않았으나 노숙이 급히 달려가 막았는데,


“주군, 이제 아군이 먼저 움직인다면 이는 반역을 대대적으로 시인하는 것입니다. 이는 현 상황 불가한 일로 유의가 움직이길 기다려야 할 줄 아룁니다.”

“그대는 앉아 잃겠다하는 것인가! 설령 그들이 먼저 공격하여 아군이 반격하여도 반역의 굴레는 여전하니 그럴 일은 없을 줄 알게나!”


손권이 역정하며 노숙을 회계군으로 보내는 것으로 답이 났기에 이후 노숙과 같은 진언을 하는 이는 없었다.

이후 스스로 자신하길,


“조인의 군세도 넘지 못한 단양의 강병이다! 감히 촌구석(-익주) 잡병들이 얼마나 버틸까?”

“양주의 백성과 정병들은 들어라! 나 손권은 기우는 황실을 다시 세우기 위해 십 년 힘씀에 아쉬움 없이 하였다. 허나 이제 난잡한 소리로 역적이라 몰리니 이 손권은 억울함을 풀고 음흉한 무리를 처단하기 위해 승리를 쟁취할 것이다!”


하고 손권은 당당히 진군을 시작하였으나 이미 유의가 선수를 쳐두어 손권의 명분은 손권군 수뇌부에서만 통하는 것이었다.


이를 맞이하는 유의는 7만이 넘는 병력을 크게 넷으로 나누어 하나는 유엽과 함께 능양을 지키며 손권을 맞이해 사방을 지원하고 구봉과 육씨의 육준(雋)이 지휘하는 일군은 길을 둘러 강가로 말릉을 향해 천천히 나아가고 오반과 고씨의 고제(俤)가 지휘하는 하나는 그 뒤를 따르며 위치한 항구들을 확실히 재점령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남은 하나의 병력은 유의가 유선들을 거느리고 직접 이끌어,


“오로지 승리만 있을 뿐이다!”


하며 손권이 나오는 길목으로 진격하니 모두 익주의 병력으로 구성된 병력이었기에 사기가 남달랐다.

한편 이를 들은 손권은 순식간에 안색이 바뀌며,


“반장과 제갈근은 일군을 이끌고 석성으로 향해 말릉의 길목을 단단히 하라!”


하고 병력을 나눈 후 2만 병력만을 대동하고 다시 능양을 향해 진군하기 시작했다.

헌데 구봉 등이 이끄는 일군을 뒤따르며 항구를 단단히 정리하던 오반의 병력이 대뜸,


“손권군은 수군이 일품이어도 수성에는 계집 같다 하더라. 어찌 대공을 세울 길이 이와 같이 항구를 다독이는 일뿐일까?”


하며 중도 이탈하여 경(涇)현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이는 능양과 경현 사이에 손권군을 가둬둔 모양과 같았다.

손권이 이를 파악하고 이를 바득바득 갈기 시작했다.


“어찌 손가가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이 3만에 그치리오!”


오히려 말릉성과 석성, 단양성에 준비해둔 방어병력을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해 손권과 석성 사이에 구봉과 오반의 병력을 끼워둔 형세를 취하였다.

물론 그러하기엔 병력이 매우 아쉬웠고 유의가 한 발 앞서서 기다렸던 행동이었으니,


“손권이 발악하니 이 유의도 발악해 주겠다. 그래야 석성으로 도망가면 오래오래 못 기어 나오지 않겠는가?”


능양성을 텅 비울 기세로 병력을 탈탈 털어 애매하게 멈춰선 손권의 본영으로 진격하기 시작했다.

때에 맞춰 경현을 공격할 기세였던 오반도 밤을 틈타 경현에서 모습을 감추니 유의가 손권과 마주하기 무섭게 군을 둘로 나눈 오반이 손권의 측면, 후면에 나타나 손권군을 어지럽게 휘젓기 시작했고 유의 또한 병력의 우세를 이용해 다섯 방향으로 나뉘어 아낌없이 몰아치니 손권은 한나절을 버티지 못하고 경현까지 밀려났다.


“우세를 이용하지 못하면 사내로 아니 살겠다.”


유의는 3천의 병력을 갈무리해 텅 빈 능양성으로 보내고 5만에 가까운 병력을 이끌고 경현을 횡 돌아 완릉(宛陵)으로 진격하기 시작했다.

손권은 이를 두고 볼 수 없어서 빙 둘러 무호(蕪湖)로 향하니 단양성의 병력은 물론 석성의 병력과 세 방향에서 구봉의 병력부터 처리할 생각이었다.

허나 이 또한 유의의 예상 속에 있어서,


“나뉘었다 합친 병력은 금세 다시 나뉠 수 있지.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병력이 훌륭한 전쟁을 실행하지 않겠는가?”


하며 오반과 고상, 오란, 유선에게 명하여 완릉을 점하고 율양(溧陽)으로 진격하게 하는 한편 자신은 5천 병력을 이끌고 당당히 손권이 머무는 무호 인근에 당도했다.

이를 본 손권은 유의가 다시 병력을 나눈 것을 염려하여 구봉을 다급히 공격하니 구봉은 애초에 공격이 아닌 방어가 목적이었던 듯 꼼짝하지 않았고 유의 또한 구봉의 병력을 구원하지 않았다.

그제야 손권은 유의의 병력이 다른 곳을 향해 빠진 것을 깨닫고 만만치 않게 준비한 구봉보다 수적 열세인 유의를 잡길 욕심내어 공격을 급히 멈추었으나 이미 손권군은 지쳐 유의의 병력을 두려워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때를 함께해 해가 지기 전 유의가 선공하고 구봉이 함께 손권의 진영만 집요히 괴롭히니 놀란 단양성과 석성에서 바삐 군을 내어 구봉을 노리며 손권의 구원을 빌었으나 전투는 해가 뜰 때까지 끝을 보지 않아 손권 본대가 괴멸에 이를 지경이 되었다.

이에 유의는 제 의형제 구봉을 구한다는 핑계로 단양 성주 손환에게,


“지난날 환성에서 뵈었을 당시 참으로 의가 좋았거늘 잦은 오판으로 척을 진 것이 여러 번이 되어 오늘에 이르렀소. 이제 손 장군의 병력이 수백 남았고 나의 의형의 병력이 수천 남았는데 이 유의는 의로운 사내라, 의형을 걱정하는 의부모를 한시도 잊은 적 없으니 굳이 두 인물이 모두 상할 것 있겠소? 서로 양보하며 적절한 예를 보여 일세의 영걸답게 제대로 싸워 결판을 보길 원하오.”


하였다.

손환은 서한을 보다가 눈을 돌려 구봉의 병력을 바라보니 과연 8천이 넘는 병력도 수천이라 표현할 수 있다 하였고 유의의 여유로운 도발에 이를 갈았으나 일신의 수치를 짊어지고 제 주군을 구하기 위해 장수들이 몰던 군마 다섯 필과 손환의 장군기 하나를 약속의 예로 보내어 궁지의 손권이 손환과 합류할 수 있는 길을 빌었다.

유의는 그제야 의형제를 걱정하던 표정을 지우며 손환의 사자에게,


“대의를 위해 수치를 감수하는 손 장군은 참으로 영웅이다!”


하여 이를 허락했다.

손권이 돌아가면 월왕 구천의 예를 본받을 것이라 좌우의 장수들이 말렸지만 유의는 곧,


“어찌 본받을 이가 구천 뿐이 없으리오. 나는 경황제와 주아부의 예를 빌어 반란하는 제후의 뿌리를 뽑아내고 황실의 태평성대를 빌어 주겠다!”


하며 손권이 도망쳐간 단양성을 여유롭게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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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ㅇㅅㅇ 유의와 유엽의 분량이 유융보다 많......

유의의 이름을 정하고 난 후 분량이 꽤 되는 삼황자의 이름일 유의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ㅇㅅㅇ;; 혼란이 있었다면 나름 한자를 병기해 피하도록 노력했능데요.(뻔뻔)


유의와 유엽의 대화를 최대한 풀어 쓰려 했지만 작가의 손이 발같아서;; 투박한 김에 간략히 요약하자면(ㅜㅠ) ‘전공에 욕심내어 서두르지 말고 길게 보자. 더해서 네 아빠 따라하면 네 아빠가 좋아할 듯.’입니다.


+지적 받고 다음에 뵙죠!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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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 오랜만입니다! ㅇㅅㅇ;; +10 15.07.31 1,588 13 1쪽
» 사예 - 낙양(타(墮)-3) +6 15.07.03 2,084 27 49쪽
176 사예 - 낙양(타(墮)-2) +8 15.06.30 1,804 27 33쪽
175 사예 - 낙양(타(墮)-1) +6 15.06.16 1,979 27 45쪽
174 사예 - 낙양(천의(天意)-6) +4 15.06.03 2,113 27 38쪽
173 사예 - 낙양(천의(天意)-5) 이어서! +6 15.05.13 2,067 21 15쪽
172 사예 - 낙양(천의(天意)-5) 15.05.13 1,860 23 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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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 사예 - 낙양(유협(劉協)) +4 15.04.01 2,291 33 19쪽
161 옹주 - 함양(마초-2) +8 15.03.27 2,215 37 16쪽
160 옹주 - 함양(마초-1) +6 15.03.26 2,418 37 17쪽
159 사예 - 낙양(추(錘)-3) +4 15.03.25 2,377 34 18쪽
158 사예 - 낙양(추(錘)-2) +4 15.03.20 2,278 30 18쪽
157 사예 - 낙양(추(錘)-1) +8 15.03.19 2,414 34 18쪽
156 사예 - 낙양(천도(遷都)-4) +4 15.03.18 2,484 33 17쪽
155 사예 - 낙양(천도(遷都)-3) +6 15.03.13 2,622 40 14쪽
154 사예 - 낙양(천도(遷都)-2) +8 15.03.12 2,374 38 15쪽
153 사예 - 낙양(천도(遷都)-1) +2 15.03.11 2,770 34 16쪽
152 형주 - 남향(공명(孔明)) +7 15.02.26 2,815 40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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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형주 - 남향(작위(爵位)-1) +10 15.02.13 2,863 41 18쪽
149 형주 - 남향(흐르는 세월) +4 15.02.12 3,049 43 19쪽
148 익주 - 백제(유비의 추락) +4 15.02.11 2,948 45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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