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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서재입니다.

삼국지 유융전 - 한의 재건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퓨전

완결

흐후루
그림/삽화
문피아 제공
작품등록일 :
2014.06.05 20:50
최근연재일 :
2016.04.21 20:20
연재수 :
189 회
조회수 :
1,001,809
추천수 :
16,348
글자수 :
1,484,072

작성
15.02.12 20:00
조회
3,049
추천
43
글자
19쪽

형주 - 남향(흐르는 세월)

재밌게 읽으셨으면 해요. 대체역사 소설이므로 역사적 사실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DUMMY

형주 - 양양군 양양성


허도에서 돌아온 유융은 유기와 유종은 물론 형주의 관료들을 한자리에 모아 황명을 직접 전했다.

그 중 중요한 내용은 대략,


“강하 태수 유기를 형주자사에 임명하여 어지러운 형주를 평탄케 하고자 한다. 유기는 황명을 받들어 만사를 대사마와 상의해 형초를 다스림에 불민함이 없도록 하라.”

“간의대부 경 맥성 태수 유종을 사예의 회음 태수로 임명한다. 대사마가 직접 안정시킨 권역이니 그대 또한 다스리는 일에 별 탈이 없으리.”

“백제 태수 조작의 공이 천하를 울리는 바, 그를 남군 태수에 임명한다.”

“편장군 감녕의 공이 짐의 가슴을 울리는 바, 그를 강하 태수에 임명한다.”

.

.

.


말 그대로 유일무이한 천자(天子)의 엄명이요 당장 실세인 유융의 의지라, 불만이 있되 입을 여는 자들은 색출되어 처벌받았고 속으로 삭히며 따르는 자들은 보상을 받았다.

겉으로나마 황명을 진심으로 따르는 자들은 형주자사부가 아닌 대사마부로 달려가 황은에 대한 감사와 충심을 고하고 형주의 부귀와 지리를 논하니 채모가 그토록 공들여 쌓고 헛되이 노렸던 형주자사 후견인의 자리는 돌고 돌아 유융의 손에 쥐어졌다.


또한 유융은 익주자사보다 대사마의 임무에 더욱 무게를 두라는 황명에 따라 그의 적장자인 휴(休)에게 익주자사의 대리를 맡기고 법정과 두경, 황권과 방균으로 하여금 이를 안팎으로 보좌하게 했다.

허나 지난날 성도에서 벌어졌던 화재사건에서 낙마와 자상으로 인한 과다출혈로 하반신을 쓸 수 없어 거동이 불편한 방균은 이름만 있을 뿐, 실제는 세 사람이 권세를 나눠 서로 경계하며 익주를 다스리게 되었다.

또 제법 안정된 남만에서 불러올린 고순과 팽양에게 한중의 군사와 내정을 나누어 맡기니 그간 한중을 지키던 유엽과 위연을 불러들여 각기 대사마군부의 군사와 장군으로 삼았다.


유융은 왕여가 약탈하며 크게 망가트린 남향을 새로운 본거지로 삼으며 형북의 민심을 모아 백성들과 토호들을 돕는 한편 대사마부를 새로 설치했는데 이미 황명으로 인수를 받아 지위가 공고해진 옹, 익주와 사예의 요직에 자리한 인물들이 스스로 발걸음 해 대사마부의 말직을 청하며 진정한 충심의 방향을 선보였다.

물론 그러지 않는 자들도 있어 유융의 측근들과 아부하기 좋아하는 자들이 처벌을 주장했으나 유융은 황실의 충심이 다 같은 법이라며 처벌하지 않고 사절을 보내 그간의 공을 다시금 치하하고 적지 않은 재물을 전했다.


“남향은 형주의 오랜 땅이라 새롭지 아니하나 그 쓰임이 분명하여 쉬이 목적에 맞게 다스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사옵니다.”


새로이 남향에 자리한 대사마 군부의 의당에서는 예속된 인물들이 자리하고 있었고 그 중 한자리 차지하고 있는 이, 잠시 침을 삼킨 마량이 흰 눈썹을 한번 씰룩인 후 차분히 말을 이었다.


“남양성(완)과 양양성, 상용성과 거리가 비슷하며 북서로는 경조윤(장안)에 닿고 정서로는 한중에 닿으며 정남으로 남군에 닿습니다. 또한 낙양과 허도를 잇는 세 주요 요새인 육혼현, 양현, 겹현의 성이 오늘날 모두 사군의 것이라 동서를 다스리시며 주요 도시를 견제하는 일도 손에 쥔 듯 쉬울 것입니다.”


마량이 물러나자 서서가 나섰다.

그는 방통과 마량의 강력한 추천으로 지금은 대사마부의 말단에 위치했으나 그의 과거 행적을 아는 유융은 서서의 사소한 의견에도 귀기울이는 모습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서북과 북부에 드넓게 펼쳐진 산맥은 비를 막는 지붕이 되어 줄 것이고 동부와 남부에는 거대한 해자인 한수와 단수(丹水)가 있으며 그 중 단수 호(湖)를 사이에 둔 영류성과 그 앞 비옥한 농지는 병사들을 배불리 먹일 식량을 생산해 낼 것입니다.”


서서가 물러나자 방통이 나섰다.


“새로 취임한 형주자사 유기가 대사마께 형주의 군 운용에 대한 조언을 청하니 마땅히 채모가 모으고 훈련한 형주군을 표면상 모두 해산하고 새로 뽑아 쓰심이 옳습니다.”


유엽이 방통의 말을 이었다.


“사군께서 형주군이 아닌 익주에서 넘어온 군세와 장수를 주축으로 각 주성(主成)의 정예군사를 우선 재편하시고 비교적 허술한 강하의 병력을 양양으로 보내 양양에서 군란이 일어나는 일을 방지하는 한편 대사마의 군대로 다시 교육하고 훈련시키며 정예로운 양양의 병력을 강하로 보내고 위연 장군이 이끄는 4천 병력을 신야로 보내어 그에게 신야의 군무를 나누어주고 그간 남양에 절대적으로 군림했던 남양 태수 왕탁의 권한을 일면 축소해야 합니다.”


이적이 유엽 다음으로 나섰다.


“이제 사군께서 형주와 익주, 옹주 사이에 자리하시니 그 위명이 고고한 바, 이곳 남향을 중심으로 새로운 풍속을 형성해 천하 명사들을 불러 모아 쓰심이 현명합니다.”


유융은 방통이 빼돌린 남향의 물자를 이적이 건의한 일에 고스란히 쏟아 붓고 그 책임자로 이적과 왕찬을 임명했다. 이미 형주에 이름 높은 이적이 큰 누각(樓閣)을 쌓아 제자를 모집하자 천하의 뜻있는 선비들이 남향성과 대사마부를 주목했다.


국연이 고했다.


“대사마께서 형주의 혼란을 종식함에 천하의 백성들이 한 마음으로 천하의 혼란도 끝내주길 바라고 있사옵니다.”


국연의 눈짓을 받은 엄준이 나서 말했다.


“이제 사군께서는 서부로 사람을 보내 옹주자사 위강을 불러들여 서부의 일을 의논하고 양주자사 손권을 불러들여 동부의 일을 의논하실 때입니다. 그 누가 명을 거역하겠나이까? 또 잊지 마시고 형주자사를 불러들여 교주의 처리 되지 않은 일들에 힘쓰게 해야 합니다. 또 사예는 황실의 것이라, 어찌 사군 이외의 인물에게 맡길 수 있겠습니까?”


엄준이 말하는 교주의 일이란 곧 유모에 대한 것으로 사섭이 그에게 대사를 맡겨 세력을 일굴 기회를 준 것을 처벌하길 권한 것이었다.

이에 유융이 사예에 관한 일을 제외하고 엄준에게 이를 일임하니 엄준은 곧 양양으로 향했고 좋은 말로 유기를 핍박해 형주자사의 이름으로 교주에 사람을 보내어 따지도록 했다.


마지막으로 사마의와 동윤이 나섰다.

우선 동윤이,


"지난날 세력을 잃고 도망한 유비는 교주의 사섭에게 의지하고 있다 밝혀졌으나 근래 손권과 계양을 두고 다툰 전투에서 다시 한 번 패하고 몸도 크게 상했다 합니다. 사군께서는 황상께 표를 올려 두 주가 다툰 것을 곧 죽을 유비탓으로 돌리고 그를 벌하길 청하소서."


이는 근시일 형주의 혼란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난 사섭의 야망과 유비의 재기하고자 하는 급박한 마음이 하나로 합쳐져 벌어진 일인데 이미 유모의 교지군 정벌로 재미를 본 사섭은 지난날 유표마냥 유비를 번장으로 임명해 군을 쥐어주고 형남을 점령, 세력을 늘리고자 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마의가,


“사군께서 오랜 시간 의를 위해 종군하사 그 침전(寢殿)이 냉랭해 마음이 좋지 않았는데 사군의 은혜에 감복한 남향의 토호들이 자진해 사군께 무희를 바치니 이를 기쁘게 받아들임이 좋을 듯합니다.”


유융은 잠시 생각한 후에야 숙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동윤을 남군으로 보내 유비를 강력히 문책하게 한 뒤 곧 사마의를 뒤따라 이동하니 당도한 미희(美姬) 십여 명을 볼 수 있었다.

유융은 그녀들 중 유난히 옷차림이 수수한 여인을 골라 밤 시중을 들게 하고 나머지 미희들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그녀를 시중들게 했다.

이를 보고 사마의가 웃으며 혼잣말했다.


“과연 사군께서는 그녀들 중 괴가(家)의 여식을 골라내셨구나. 실로 세월에 걸맞은 심미안(審美眼)이라 아니할 수 없다.”


건안17년(213년) 가을.

유융은 형주 정벌 후 첫 추수를 기념해 이미 배가 산처럼 부른 괴가의 여식을 정식으로 맞이하니 황제가 이를 직접 축하했고 연락이 뜸하던 조조 또한 사절을 보내 예의에 맞는 축사(祝辭)와 예물을 전했다.

유융은 축하 사절로 방문한 순욱의 아들, 순운에게 순욱의 건강을 물었다.


“순욱 공의 청아한 식탁은 근래 어떠하신가?”

“대사마께서 걱정해주신 덕에 보드라운 채소(菜蔬)와 간소한 어육(魚肉)이 늘 싱싱합니다.”

“순욱 공은 어찌 나이 들어 정후(亭候)에 봉해지고도 격식에 맞지 않게 식사한단 말인가? 이가 탄탄하고 위장이 활발해서 질기고 맛난 고사리와 쫀득하고 육즙 풍부한 양고기를 즐기셔야 하거늘. 내 공의 건강이 염려되니 그대 돌아가는 길에 귀한 약재를 보내겠네.”

“그저 정정하신 분의 건강까지 챙겨주시니 대사마의 은혜가 하해(河海)와 같습니다.”


순운은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조조에게 오해받을까 걱정해 느리게 이동하며 일부러 약재를 상하게 만들어 이를 핑계로 유융의 약재를 내버렸다.

느즈막히 허도에 도착해서 정정하던 순욱의 급작스런 부고(訃告)를 듣고 탄식하며 말하니,


“대사마께서는 하늘에서 낸 인물이라 식탁만 보고도 일세를 일군 대인의 수명을 안다. 그의 말을 무시한 덕에 나는 막심한 불효를 저질렀으니 어찌 관에 얼굴을 내밀고 황상을 보좌하여 백성들의 본보기가 될까.”


하며 관직을 내려놓고 영천으로 돌아가 시묘살이를 시작했고 한편으로는 작은 아들 익(霬)과 어린 동생 의(亄)를 이적에게 보내어 수학하게 했다. 이 일로 인해 조조에게만 향하던 관동(關東) 재야선비들의 마음이 유융에게도 크게 기울어 청주와 서주, 연주와 기주의 재사들이 멀리서라도 유융을 만나보고자, 혹은 유융이 다스리는 땅의 풍토를 관찰하고자 찾아오는 일이 매우 잦아졌다.

또한 이를 들은 황제도 크게 놀라 순운을 본받아 유융을 밖으로는 칭찬하며 속으로는 경계하기 시작했다.


건안 18년(214년) 여름.


한참 어린 유융의 사자는 물론 전쟁에서 승리한 손권이 보낸 사자에게마저 번갈아 모욕을 당해 건강이 극심히 악화된 유비가 소식을 접하고 그를 방문한 사섭의 동생 사일의 비꼼을 참지 못하여 교주 남해군 번옹현에서 분사했다.

그의 지위와 병력은 사섭의 배려로 어린 아들, 유선이 잇게 되었으나 사섭과 사일이 일일히 참견하니 유비의 위명은 잇지 못했다.


남향의 괴씨에게서 딸이 태어났다.

비록 아들이 아닌 딸이나 권세가의 자제가 탄생했음이라, 황제만 조용히 축하하고 세상의 모든 사람이 떠들썩했는데 양주에서 사절이 찾아와 유융을 졸랐다.


“일대의 영웅이신 대사마께서 큰 덕으로 원소를 몰아내며 사예를 평정할 때에 첫 딸을 보시고 채모를 벌하고 형주를 평정할 때에는 막 딸을 보셨습니다. 하여 양주자사 경 토로장군 손권님께서는 이를 기이하게 여기고 한 가지 청을 올리고자 하셨습니다.”


손권의 사자인 보즐은 이 딸이 막 딸이라며 아첨하느라 본론을 미뤘다.

이제 제법 귀에 익은 아첨이 불쾌하지 않은 유융이 웃으며 물었다.


“허허허, 그 청이 무엇인고?”

“마침 손자사님의 장남인 등(登)공자께서 딱 5세이시며 총명하기 그지없나니 그 짝으로 어울리지 않을까 하셨습니다.”

“강보에 싸인 귀한 여식이나 강동에서 난 귀인에 대한 소문은 들었으니 내 생각해 보겠네.”


당시의 손권은 형주에서 유융에게 밀리지 않기 위해 강하군의 악성을 크게 보수, 증축하고 격상해 무창이라 명명하고 형남 3군에 군량미를 풀어 민심을 달랬으며 도적을 잡는 다는 명분으로 불어난 이민족을 척결하여 유융과 동맹한 채 유융의 밀명으로 형남을 들쑤시던 사마가를 퇴치, 서북으로 몰아냈다.

또한 동으로는 회남의 굶주리고 집 없는 백성들을 크게 받아들여 모조리 강동으로 이주시켰는데 이 속 보이는 정책이 적잖은 무리를 불러와 수춘 태수 조인과 욕설을 주고받아 사이가 벌어졌다.

남으로 사섭에게 유비의 일을 걸고 넘어져 그를 크게 압박하니 사섭은 형주자사의 부탁보다 양주자사의 농담을 우선으로 처리했다.

이 같은 상황을 세세히 관찰하며 양주를 주시하던 마량이 고했다.


“명분과 실리를 취하며 세력을 넓히는 모습이 자연스러우니 이는 손권의 외교력이 상당히 뛰어남을 보여줍니다. 그가 걸출함만 아니라 그의 밑에 훌륭한 인물이 많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니 사군께서는 이에 응해 형주와 양주의 친교를 단단히 하소서.”


공무로 남향에 방문해 곁에서 이를 듣던 장완이 고하길,


“그들의 속내가 너무 빤하니 대사마께서는 나이가 적음을 핑계대시고 사윗감의 인물을 보고자 전하소서. 이후 손가의 적자가 도착하면 역병에 걸렸다는 핑계로 삼년을 붙잡아 두고 외교에 우위를 선점하신다면 형주를 다스리는 일에 큰 이로움이 있을 것입니다.”


당시 한수(漢水)이남의 형주, 즉 양양군은 유융이 평정한 지 오래이나 유기를 따르는 소수의 인물들과 유융을 따르는 다수의 인물들로 회장(會場)이 양분되어 하나같지 않은 형국이었기에 유융 또한 마량과 장완의 조언에 따라 손권에 응답했다.


이후로도 손권은 1년 동안 조조와 유융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며 명분을 취했는데 그가 유융과 손을 잡아 손에 넣은 회남의 크고 작은 현이 무려 8개고 조조와 손을 잡아 얻고 지은 형남의 성이 무려 6개에 달했다.


또 손권은 약속과 달리 장남이 아닌 3살 먹은 차남, 려(慮)를 보내었는데 장완의 말에 따를 생각이었던 유융은 오히려 잘 되었다며 이를 흠잡지도 않았고 돌려 보내주지도 않았다.

그 해 가을, 유융은 양수의 두 딸을 맞이해 각기 장남과 차남의 정실로 삼고 차남 의(擬)를 남향으로 불러올린 후 양수에게 보내어 교육받게 했다.


이 소식들을 접한 병주의 자사 왕신은 그간 소통이 매우 빈약하던 유융에게 사절을 보내어 빈번이 교류할 것을 청하고 겸사겸사 유융의 삼남 희(熙)와 자신의 조카딸이 혼약할 것을 청했다.

이 사안을 둔 유융의 물음에 사마의가 조언했다.


“이제 소신이 보니 병주의 왕씨의 위세가 지난날 동중영의 시대 당시의 왕윤이 가졌던 번영과 맞먹음이라, 필시 크게 일어설 것이니 사군께서 삼공자의 내자로 들여도 흠이 되지 않으리다.”


이 소식을 듣고 예주 형양현에서 한달음에 달려온 비의도 한마디 했다.


“사군께서 슬하 자식들의 혼사를 단 일 년 사이에 급히 해결하니 보기 좋지 않습니다. 그나마 강동의 손가는 궐기한 역사가 깊고 뿌리가 단단하여 볼 만한데 병주 왕가는 남의 녹 먹으면서도 대대로 배신하던 자들이라, 신중에 신중을 기하길 권합니다.”


이에 유융은 왕신의 사절, 염지를 불러 말했다.


“아직 내 아들이 나이가 차지 않아 혼사를 정하기 힘들다. 허나 내 둘째 아들이 이곳에 있는데.”


염지가 황당해하며 말했다.


“대사마께서 딸들을 혼사 보내시길 모두 강보에서 결정하셨습니다. 듣자하니 삼공자 또한 명석하고 우량하여 약관의 사내와 다름없다하는데 어찌 내자를 들인지 몇 달 지나지 않은 둘째 공자님께 병주자사의 조카 따님을 주려 하십니까?”


곁에서 듣던 사마의가 염지에게 소리쳤다.


“병주자사의 위세가 암만 대단해도 그 사절이 대사마 앞에서 고개를 꼳꼳이 들고서 망발할 정도는 아니다. 두 세력 사이에 친목은 오로지 예의 없는 사절로 인해 흐려졌으니 그리 알라.”


씩씩거리며 물러난 염지는 곧장 병주로 향해 이를 전했고 매우 노한 왕신은 조조에게 오환을 소개해주고 군사를 빌려주며 조카딸을 조조의 첩으로 보냈다.

훗날 이를 전해들은 유융이 매우 노해 말했다.


“나와 약조한 조카딸을 조조 본인에게 내어줌은 어떤 무례인가! 내 젊은 아들이 다 늙은 조조만 못하단 것인가!”


이후로 왕신과 유융의 공적, 사적인 사이는 좁혀지지 않았다.


건안 19년(215년) 초여름.

마침내 조조가 병주자사 왕신과 요동태수 공손강의 도움으로 원상과 원희를 잡아 죽이고 하북을 일통했다.

조조는 여직 불안한 하북의 민심을 잡기위해 유융이 그러했듯 업성으로 근거를 옮기고 유주, 청주, 기주와 병주를 다독였으며 황제에게 표와 막대한 전리품을 진상해 공적과 위세를 자랑했다.

또한 유융에게 사절을 보내어 십년 전 약혼을 다시 확인하니 유융도 형주와 사예가 완벽히 안정되지 않은바, 정중히 맞이해 조표를 사위라 부르며 조조와 함께 황제에게 표를 올려 관직을 수여해주길 청했다.

이에 황제는 두 사람의 화친이 내심 못마땅하면서도 조표에게 도위의 직책을 하사했다.


조조가 따로 표를 올려 병주자사 왕신에게 거기장군을 더하고 그 동생 왕릉에게 군사장군의 직책을 수여했다.

더불어 요동 태수 공손강에게 공손도의 지위였던 영녕향후를 잇게 하고 표기장군을 더했다.

재야의 선비들은 조조가 창검이 아닌 관직을 이용해 동북을 평화롭게 안정시켰다며 높이 칭송했다.


교주의 사섭이 손권을 통해 유융에게 유모의 죽음을 알려왔다.

유융은 이를 믿지 않고 사섭에게 사절을 보내 그 시신을 인계받으려 했으나 사섭이 이를 단호히 거절했고 손권 또한 사섭의 편을 들어 유융은 의외로 조용히 이 일을 묻어둔다.


그 해 겨울, 요동 태수 공손강이 원상과 원희의 원혼에 시달리다 사망했다.

아직 어린 공손강의 자식들을 대신해 그의 형제인 공손공이 영녕향후를 이었다. 공손공이 유약함을 아는 조조는 그의 임명장에서 은근히 표기장군의 직책을 삭제했으나 역시 공손공은 이를 지적하지 않았다.


역시 겨울이 지나기 전에 옹주자사 위강이 사망했으며 유융은 위강에게 아들이 없음을 안타까워하여 그 처자식을 남향으로 불러들였다.

유융은 자신의 셋째 아들에게 위강의 딸을 보내 혼인하게 했다.

유구의 처가에 남아가 없어 힘이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한 행동이었으니 익주의 관료들은 익주자사 대리인 유휴를 보필하는 일에 다른 생각을 품지 않았다.

또 조정에 표를 올려 반준을 옹주자사로 임명할 것을 강하게 권했다.


건안 20년(216년) 겨울.

당해 봄부터 시작되었던 조조의 공(公)작위 수여에 대한 들끓는 여론은 마침내 황제의 두 손을 들게 만들었다.

마침내 조조에게 위공(魏公)의 작위가 수여되었고 하북의 빠른 안정이 공표되었다.

이미 세 번 사양했던 조조는 스스로 겸허함을 다시 선전하기 위해 구현(求賢)령과 술지(述志)령을 널리 공포하고 수여받은 식읍의 대부분을 황제에게 반납하니 천하에 칭송이 자자했다.


조조에 대한 칭송과 중앙에 급격히 불어난 그의 수하들에 겁먹은 황제가 급히 해가 지나기 전 다시 유융과 소통하며 그에게 조조와 비등한 공작위를 수여하려 했다.

이에 4년여 평화롭던 남향에 칙사가 분쟁거릴 들고서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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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ㅇㅅㅇ;;

세력의 숫자가 줄어드니까 아주 휙휙 넘어가죵;;

한 4년(+유비)을 날로 먹은 듯한 느낌적인 느낌.

그 기간 동안 유융이 각 지방에 갖는 통제력 혹은 통치력이 상승했다고 생각해 주세요!


+이제 유융도 장년으로 넘어가고 후반에 들어섭니다. ㅇㅅㅇ; 많은 이야기가 생략되어 반쪽이 되어버린 중반이라 좀 얼떨떨 하실 듯.

ㅇ0ㅇ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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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4

  • 작성자
    Lv.99 Bilene
    작성일
    15.02.12 20:34
    No. 1

    스토리가 휙휙 넘어가고 익숙한 인물들이 사라지고 후계들이 등장하네요.
    삼국지에서 후반부를 좋아하기에 후기 장수도 많이 등장하면 좋겠네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93 흐후루
    작성일
    15.02.12 20:41
    No. 2

    ㅇㅅㅇ;; 휙휙 넘어간다는 부분에서 뜨끔하는 작가....
    그 휙휙 넘어가는 부분이 대부분 타세력vs유융군의 변방 장수 즉 천수전투와 같은지라 어쩔 수 없이 잘라내고 짧게 짧게 넣었답니다.
    후반부는 장수들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만큼 많은 장수들이 등장할겁니당
    무게 있는 인물들 들러리로용.ㅇㅅㅇ;;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RockHear..
    작성일
    15.02.12 21:01
    No. 3

    유비 세력이던 장수들은 다들 어디로.... 언급도 없이 사라진(?) 운장, 익덕, 자룡, 숙지.... ㅠ0ㅠ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93 흐후루
    작성일
    15.02.12 21:11
    No. 4

    ㅇㅅㅇ; 독자님들의 마음속엥....
    물론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먼 미래의 스포라 말씀드리는 거지만 꽤나 당당히 또 등장할겁니당.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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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 사예 - 낙양(단(斷)-1) +8 15.08.26 1,779 25 33쪽
179 사예 - 낙양(타(墮)-4) +6 15.08.18 1,720 26 35쪽
178 오랜만입니다! ㅇㅅㅇ;; +10 15.07.31 1,588 13 1쪽
177 사예 - 낙양(타(墮)-3) +6 15.07.03 2,084 27 49쪽
176 사예 - 낙양(타(墮)-2) +8 15.06.30 1,804 27 33쪽
175 사예 - 낙양(타(墮)-1) +6 15.06.16 1,979 27 45쪽
174 사예 - 낙양(천의(天意)-6) +4 15.06.03 2,113 27 38쪽
173 사예 - 낙양(천의(天意)-5) 이어서! +6 15.05.13 2,067 21 15쪽
172 사예 - 낙양(천의(天意)-5) 15.05.13 1,860 23 48쪽
171 사예 - 낙양(천의(天意)-4) 이어서 ㅇㅅㅇ♣ +4 15.04.29 2,149 33 27쪽
170 사예 - 낙양(천의(天意)-4) 15.04.29 1,899 28 39쪽
169 사예 - 낙양(천의(天意)-3)이어서 ㅇㅅㅇ★ +4 15.04.23 2,035 27 31쪽
168 사예 - 낙양(천의(天意)-3) +2 15.04.23 1,914 26 37쪽
167 사예 - 낙양(천의(天意)-2) +4 15.04.15 2,365 32 52쪽
166 사예 - 낙양(천의(天意)-1) 이어서 ㅇㅅㅇ;; +6 15.04.08 2,129 34 21쪽
165 사예 - 낙양(천의(天意)-1) +2 15.04.08 2,309 34 39쪽
164 사예 - 낙양(추(錘)-5) +6 15.04.03 2,167 33 20쪽
163 사예 - 낙양(추(錘)-4) +2 15.04.02 2,096 35 19쪽
162 사예 - 낙양(유협(劉協)) +4 15.04.01 2,291 33 19쪽
161 옹주 - 함양(마초-2) +8 15.03.27 2,215 37 16쪽
160 옹주 - 함양(마초-1) +6 15.03.26 2,418 37 17쪽
159 사예 - 낙양(추(錘)-3) +4 15.03.25 2,378 34 18쪽
158 사예 - 낙양(추(錘)-2) +4 15.03.20 2,278 30 18쪽
157 사예 - 낙양(추(錘)-1) +8 15.03.19 2,414 34 18쪽
156 사예 - 낙양(천도(遷都)-4) +4 15.03.18 2,484 33 17쪽
155 사예 - 낙양(천도(遷都)-3) +6 15.03.13 2,622 40 14쪽
154 사예 - 낙양(천도(遷都)-2) +8 15.03.12 2,374 38 15쪽
153 사예 - 낙양(천도(遷都)-1) +2 15.03.11 2,770 34 16쪽
152 형주 - 남향(공명(孔明)) +7 15.02.26 2,815 40 20쪽
151 형주 - 남향(작위(爵位)-2) +4 15.02.25 2,906 35 18쪽
150 형주 - 남향(작위(爵位)-1) +10 15.02.13 2,863 41 18쪽
» 형주 - 남향(흐르는 세월) +4 15.02.12 3,050 43 19쪽
148 익주 - 백제(유비의 추락) +4 15.02.11 2,948 45 16쪽
147 익주 - 백제(한수 너머-3) +6 15.02.06 2,693 48 16쪽
146 익주 - 백제(한수 너머-2) +10 15.02.05 2,367 43 16쪽
145 익주 - 백제(한수 너머-1) +10 15.02.04 2,586 48 17쪽
144 익주 - 백제(형산 너머-4) +12 15.01.30 2,694 41 20쪽
143 익주 - 백제(형산 너머-3) +12 15.01.29 2,265 45 16쪽
142 익주 - 백제(형산 너머-2) +4 15.01.28 2,611 43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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