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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익은 글장이

세상을 파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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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그머니나
작품등록일 :
2015.03.20 13:48
최근연재일 :
2018.05.20 14:26
연재수 :
16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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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295
추천수 :
935
글자수 :
1,193,004

작성
16.09.27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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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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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8쪽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4)

DUMMY

알리오의 나무집 안에서는 곰팡이 냄새가 났다. 사람이 오랫동안 모포 위에서 일어나지 않으면 나는 누린내도 가득했다. 누가 맡기에도 흔쾌하지 않은 냄새가 진동했다. 그러나 누가 맡더라도 함부로 인상을 찌푸릴 수 없는 냄새였다.

병의 냄새. 사람과 병마가 사투를 벌이는 현장에서 흔히 나는 냄새가 집 안에 가득했다.

"매트씨, 보레인씨. 몸은 좀 어떤가요?"

로즈는 친절한 목소리로 침대에 누워 있는 한 쌍의 부부에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허리를 펴고 서 있으면 바로 위에 아슬아슬하게 천장이 덮혀 있는 좁은 나무집 한 켠에 척 보기에도 조잡해 보이는 목재 침대가 두 개 놓여져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짚을 대충 얽히섥히 얽어 만든 모포로 덮어놓은 사람 두 명이 보인다.

알리오가 쪼르르 로즈의 뒤를 따라갔다. 루프는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병자들의 용태를 보고자 했다.

"콜록콜록... 로, 로즈씨."

남자는 기침을 하면서도 어렵게 몸을 일으켰다. 매트라는 이름의 그 남성은 분명 알리오의 부친일 것이다. 그러나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루프는 저도 모르게 신음성을 내뱉어야만 했다.

얼굴이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부어 있었다. 눈은 어디에 있는지 겨우 알 수 있을 정도로 부어오른 옹이구멍같았고, 코는 콧등의 물렁뼈가 거의 문드러져 형체를 잃은지 오래였으며, 입술은 원래의 모양을 벗어나 기괴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얼굴 뿐만 아니라 몸 곳곳에는 수포가 솟아나 피가 찼는지 시뻘겋게 변해 있었으며 이미 터져버린 곳에서는 누런 진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정말로 참혹한 모습이었다. 루프는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돌려버리고 말았다. 그 때문에 루프는 알리오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부모에게 다가가려는 것을 로즈가 조심스레 가로막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런 루프에게 루미라고 불렸던 그 여아아이가 꾹 눌린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그것 봐. 안 들어오는게 좋았을거라고 후회할 거라고 했지?"

루프는 차마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하였다. 아까 로즈의 말을 들은 바로는 알리오 뿐만 아니라 루미, 더크, 그리고 다른 마을 아이들의 부모들도 상태가 비슷하다고 했는데... 만일 정말이라면 이 마을은 그야말로 저주받은 병자의 마을이라고 밖에 설명할 방도가 없었다.

"누워 계세요. 오늘은 어쩌면 두 분의 병세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을 가지신 분하고 같이 왔습니다."

로즈는 어렵사리 몸을 일으키려는 매트를 다시 침대에 눕혔다. 그 더러운 몸과 그것에서 베어나온 진물이 그녀의 손과 팔에 묻었으나 그녀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루프는 그것을 차마 보지 못하고 있었으나 이리나드는 심각한 눈빛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 이래저래 미안할 따름입니다."

매트는 침대에 누워 눈을 감으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루프는 그 말투를 통해 무언가 알 수 없는 거리감이 매트와 로즈 사이에 떠다닌다고 생각했다. 보아하니 로즈는 이 마을의 병자들을 헌신적으로 간호하고 있는 듯 했으나 정작 그 병자가 로즈를 대하는 것은 굉장히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그 이유를 예상해 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녀의 눈동자가 너무나도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알리오의 모친, 보레인은 로즈가 들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등을 돌린채로 벽만 쳐다보고 누워 있었다.

라키안은 이 상황을 보면서 이 마을에 존재하는 가슴 먹먹한 긴장감의 출처를 계산해내고 있었다.

병자들은 믿을 것이다. 그들의 병은 붉은 눈의 마녀가 가져온 재앙이라고. 그리고 세상은 그들을 악독한 전염병자로 취급하여 문명 밖으로 추방했다. 그런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 준 유일한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저주해 마지 않던 그 붉은 눈의 마녀 한 명 뿐이었다는, 그런 미어지는 사정.

병자들은 여전히 그 마녀의 호의를 감사함으로 받아 들여야 할지, 아니면 병주고 약주는 미친 마녀에 지나지 않는건지 고민하고 있음이 틀림 없었다.

"이야~. 이것 참 심각하네요. 레짜라고 했나요? 제가 지금까지 봐왔던 어떤 병보다도 지독한 증세입니다."

라키안은 로즈의 옆으로 한 걸음 나아가며 그렇게 입을 열었다. 매트는 그런 라키안을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외지인? 어째서 우리 마을에 외지인이? 당신, 여기가 어떤 곳인지나 알고 온 것이오?"

매트의 물음에 라키안은 별 것 없다는 듯한 그 특유의 표정을 유지하며 대답했다.

"저는 행상인이라 많이 걸어 다녀서 몸이 튼튼하답니다. 왠만한 전염병따위 이 몸의 면역 체계에 걸리면 코딱히 후벼 내듯이 처리 가능하죠."

"미, 미친 사람이군! 로즈씨, 이건 무슨 상황입니까? 어째서 외지인을 마을로 끌어 들인 겁니까?"

매트의 억양에는 '마을에 들어온 외지인에 대한 걱정' 보다는 그 외지인이 이후에 병을 얻게 되었을 때 '그들을 향해 퍼부을 저주'에 대한 불안과 초조가 가득해 있었다. 로즈는 어려운 문제를 푸는 듯한 표정으로 눈을 지긋이 감으며 대답했다.

"매트씨, 아시겠지만 지난 일주일 동안 당신과 보레인씨의 병세가 굉장히 악화되었어요. 저도 할 수 있는대로 모든 힘을 써 보았지만 더 이상은 차도가 없었던 것, 아시잖아요?"

로즈의 말에 매트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렸다. 어쩔 수 없었다. 누구도 그의 병을 고칠 수 없었고, 그것을 시도 해 보려는 자 조차 없었으며, 오히려 모두가 한 목소리로 끔찍한 병에 걸린 그와 그의 자식을 저주했다. 그 중에는 아픔을 함께 나눠야 할 사람인 그의 아내도 끼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유일하게 있을 곳을 마련해 주고 병을 치료해 준 사람이 바로 로즈였다. 오직 그녀만이 그에게 손을 내밀었고, 오직 그녀만이 그의 상처 부위에 약을 발라줬다. 그러나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받아 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붉은 눈, 그것이 주는 피해, 그리고 망상은 그렇게까지 사람의 마음을 쥐고 흔들었다.

"저는... 저는 이 마을 사람들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겁니다. 그 누구도... 더 이상 이 곳에서 목숨을 잃어서는 안돼요. 당신들을 쫓아낸 사람들을 위해서도, 그리고 당신들의 자녀들을 위해서도..."

알리오의 이야기가 나올 때 매트의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그것은 분노였다. 슬프게도, 그와 그의 아내는 그들의 유일한 아들인 알리오를 미치도록 증오하고 있었다. 병을 그들에게 옮겼다는 그 이유만으로...

라키안은 매트와 로즈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그의 베낭에서 무언가를 끄집어냈다. 로즈는 무언가 약 종류가 나오기를 기대하며 라키안에게로 고개를 돌렸으나 그가 가방에서 꺼낸 것은 다름 아닌 한 장의 종이와 깃펜이었다.

"자, 그럼 일단 계약을 시작해 볼까요?"

"계약이요?"

"네, 계약이요. 일단은 이걸 받으시고... 한 번 읽어 보시죠."

로즈의 손에 건네진 것은, 언젠가 루프도 받아 본 적 있는 라키안의 상식을 초월하는 그 계약서였다. 로즈의 붉은 눈동자가 계약서 위의 검은 글자들을 하나씩 훝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작가의말

 라키안 계약서 정말 오랜만에 등장했네요. 허허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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