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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익은 글장이

세상을 파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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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그머니나
작품등록일 :
2015.03.20 13:48
최근연재일 :
2018.05.20 14:26
연재수 :
16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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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023
추천수 :
935
글자수 :
1,193,004

작성
18.05.11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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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26)

DUMMY

“꺄아아악!”


그 때 들려오는 로즈의 비명소리. 루프는 정신이 몽롱한 가운데서도 그 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는 척추를 내리누르는 절망의 무게를 짊어지고 짓밟힌 지렁이와도 같은 움직임으로 소리의 발원지를 향해 기기 시작했다.


루프의 주변에 모여있던 자들은 알아서 길을 터 주었다. 마녀의 저주가 두려운 모양이다. 루프는 계단처럼 되어 있는 광장을 기어 내려가며 구르고 자빠지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그는 이내 단상 근처까지 도달했다. 천근과도 같은 고개를 들어 단상을 올려다 본다.


처음 눈에 들어 온 것은 하얗고 날카로운, 피를 뒤집어 쓴 무언가. 그것이 로즈의 다리에서 튀어나온 부러진 뼈라는 것을 곧 깨닫는다. 그녀 뒤에 헤진 자루를 뒤집어 쓴 거대한 덩치의 처형인이 그녀의 남은 한 다리를 꺾는 것을 본다. 빠드득, 하는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남은 한 다리가 부숴졌다. 처형인은 괴물같은 악력으로 부러진 뼈가 살을 뚫고 나오기까지 힘을 빼지 않았다. 나무 기둥에 묶인 마녀의 두 다리는 모두 부러진다.


“자, 마녀의 발이 꺾였다! 오늘 이곳에서 마녀가 죽더라도 그 영혼은 어디도 가지 못할 것이···”


예의 그 노인 주교가 뭐라 소리 질렀지만 루프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루프는 공황으로 흐리멍텅해진 동공을 들어 로즈의 얼굴로 향했다. 그러나 그것은 어마어마한 실수였다.


그녀의 눈동자 역시 어마어마한 절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루프의 그것과도 같은, 아니면 오히려 더 지독한 절망, 고통, 공황··· 수 많은 부정의 감정들이 담긴 그 붉은 눈과 루프의 눈이 마주쳤다. 그녀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이 동공에 반사되어 마치 피눈물처럼 보이는 그 순간,


“다음으로는 이번 사건을 통한 에라핌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한 불 제사의 제물로 삼을 고기의 각을 뜨겠소! 그대들은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바라보도록 하시오!”


장미, 장미 처럼 붉은 피. 붉꽃처럼 붉은 피. 인생처럼 진득하다가도 어느순간 죽음처럼 묽어지는 피, 이미 죽음의 문턱에 서 있는 마녀의 육체를 뒤덮은 피. 그 잔혹하리만큼 독하고 매혹적인 향기가 절망으로 일그러진 소년의 심장을 쥐어짠다.


“자! 다들 끊임 없이 기도하고 은총을 구하도록 하시오! 이 소년처럼 저주에 휩쓸리기 싫다면! 오오오, 에라핌이시여!”


노주교는 미친놈처럼 사지를 바들바들 떨며 풀린 눈으로 로즈의 처참한 모습을 지켜보는 루프를 마녀의 저주에 휩쓸렸다며 매도했다. 사람들은 그것에 선동되어 눈물을 흩뿌리며 에라핌의 은총을 구해댔다. 평상시같았다면 그들에게 경멸이 가득 담긴 저주를 한사발 쏟아 부었을 루프였으나, 그는 아무 행동도 취할 수 없었다. 그들의 두려움에 담긴 시선, 로즈의 비명, 그녀의 피, 뇌를 울려대는 노교주의 목소리··· 모든것이 혼란하다. 절망은 깊어져만 간다. 그 심연으로 소년의 혼을 끌어들여 간다.


그 때, 다시금 루프의 시야에 새로운 끔찍한 장면이 들어왔다. 두 명의 처형인들이 거대한 톱을 들고 로즈의 뒤에 서는 모습이었다. 기둥에 꽁꽁 묶인 로즈는 전신을 강타하는 어마무시한 고통에 이미 몸을 이리저리로 비틀고 있었지만, 그것에서 벗어나는 것은 온전히 불가능. 채찍에 찢어진 목덜미에서는 성대가 끊어졌는지 듣기 싫은 바람소리 같은 것이 새어나왔다.


처형인들이 뒤로 묶여 있던 로즈의 손을 푼다. 나무기둥에 묶인 허리 위 몸이 푹 꺾인다. 자루 속에 표정마저 귀신같이 감춘 그들은 잔혹하게 그 피칠갑 나체를 들어올리고, 저마다 팔을 하나씩 잡아 들었다.


‘안 돼, 안 돼··· 이 개같은 놈들아··· 인간도 아닌 것들··· 그러지 마··· 안 돼, 그러지 마."


루프가 고개를 젓는다. 땀방울과 눈물이 좌우로 튀어나간다. 하지마. 하지마. 쓰레기만도 못한 것들, 그러지 마. 루프는 절규하고 또 절규한다.


“처형인들은 뭐 하는거냐? 또 다른 저주가 내리기 전에 어서 집행하라!”

“하...지··· 하...지마··· 하지...마!!! 그러지 마!!!”


소년은 마지막 남은 이성을 짜내어 목소리를 내었다. 절망을 뚫고 하늘로 퍼져나간 목소리, 그것은 공허할 뿐이었다.


집행인들의 톱이 죄인의 양팔을 절단했다. 한 숨, 한 숨 마다 영혼을 내쉬고 빨아들이는 것은 기분 속에 루프가 본 것은 입에서 거품을 흘리며 혼절한 죄인의 모습과 자른 팔을 가지고 단상 뒤로 걸어가는 거한들의 모습. 잘려나간 양 어깨죽지에서 간헐적으로 피가 뿜어져 나오고, 감당할 수 없는 충격에 움찔거리는 그 처참한 몸뚱이는 허리를 단단히 동여맨 밧줄로 나무기둥에 여전히 매달려 있었다. 다리 사이로 노란 액체가 흘러나오자 군중의 함성소리는 더 커져만 갔다.


어, 저 여자는 왜 저기에서 저렇게 죽어가고 있지? 나는 왜 저 여자를 보면서 이렇게 혼란스러워 하는거지? 루프의 이성이 현실을 부정하기 시작한다. 그의 한 쪽 입 꼬리에 비스듬하게 걸려있는 웃음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그래, 이건 현실이 아닐거다. 이렇게 끔찍한 현실이 있을리가 없어. 루프는 고개를 저었다.


“저, 정신··· 차려··· 이 멍청아···”


그런 루프의 귓가를 울리는 목소리. 그도 고통과 절망에 몸부림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구색 햇살을 떠올리게 하는 그 목소리. 무한한 어둠, 그 꿈 속에서도 자신을 빛으로 인도하던 그 목소리. 한 번 듣고 평생 기억하겠노라 맹세했던 목소리. 이리나드의 목소리.


“이...리··· 나드···”


루프는 어렵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녀는 루프의 곁에서 그를 붙들고 있었다. 그녀 역시 정상적인 모습이 아니었다. 언제나 정갈하던 옷차림은 정신사납게 흐트러져 있고, 식은땀으로 떡진 머리카락은 안쓰러워 보였다. 무엇보다 미간에 깊게 자리잡은 그림자와 고통스러워 보이는 저 표정··· 그녀에게도 무언가 일이 있었다.


“정신 차려. 니가 여기서··· 이러면 어떻게 해···”


그녀의 목소리는 작고 힘이 없었다.


“이봐, 아가씨! 어서 그 청년에게서 떨어져! 저주가 옮는다.”

“이봐요! 거기 있으면 안 돼! 얼른 떨어져!”

“당신들 그 주둥아리 좀 닥쳐!”


이리나드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주인없는 걱정들을 향해 괴성을 질렀다.


“눈 앞에서 힘 없고 무고한 여인이 죽어가는데 기껏 한다는 소리가 그따위야? 당신들 머리속은 대체 어떻게 되먹은거야? 저 참혹한 모습을 보고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이 없어?”


이리나드는 있는 힘을 모조리 짜내서 괴성을 질러댔다. 허나 그녀의 울부짖는 읍소는 이 자리의 그 누구에게도 닿지 않고 있었다. 다들 괴물이라도 보는 표정으로 그녀를 흘겨 볼 뿐. 이내 그녀는 뇌를 찢는듯한 두통에 머리를 잡고 쓰러졌다.


“보아라! 마녀의 저주가 이젠 두 명에게 내렸다! 처형식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다들 긴장을 놓지 말고 이 라이발드가, 이 세계가 마녀의 손에서 자유로워지도록 기도하라! 어서! 기도해! 뭣들 하는 거냐?!”


노주교의 목소리는 피에 취해 있었다. 눈 앞에서 펼쳐지는 처참한 사형식. 그 주체가 되었다는 우월감과 에라핌에 대한 맹신, 사람들에 대한 지배감. 모든 상황이 그의 전신을 흥분시켰다. 당장이라도 사정할것만 같은 곪은 노인은 미친듯이 소리를 질러댔다. 좌중은 모두 그것에 응답하고 있었다.


“오오, 보아라! 태양이! 태양이 일그러진다!”


누군가가 소리쳤다. 하늘을 올려보니 태양을 검은 그림자가 집어 삼키고 있었다. 신의 장난인가, 아니면 필연인가? 두 개의 태양이 동시에 그림자에 잠식되는 그 경이로운 모습,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그 질문에 노주교는 쇳소리를 질러가며 대답한다.


“에라핌님의 분노다! 이 곳에서 당장 저주의 근원을 제거해야 한다! 처형인들! 아직 순번은 아니지만 곧바로 진행하라! 당장 그 마녀의 눈을 뽑아라!”


루프가 손을 뻗었다. 다른 손으로는 바닥을 짚고, 사시나무 떨듯 떨리는 사지를 억지로 일으킨다. 소년이 불꽃처럼 지핀 의지가 아주 작게 고개를 들어올린다. 루프는 말 그대로 죽을 힘을 다해서 단상 위로 굴러 올라갔다. 그 모습은 마치 사형대 위로 스스로를 던지는 우자의 그것과 같았다.


“루프···”


땅에 쓰러져 머리를 부여잡은 이리나드는 애처로운 목소리로 루프를 불렀다.


작가의말

잔인한건 스토리상 쓰면서도 거부감이 드는건 어쩔 수 없네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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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27) 18.05.12 62 2 9쪽
»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26) 18.05.11 71 2 9쪽
158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25) 18.05.10 86 2 10쪽
157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25) 18.05.09 95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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