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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익은 글장이

세상을 파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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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그머니나
작품등록일 :
2015.03.20 13:48
최근연재일 :
2018.05.20 14:26
연재수 :
165 회
조회수 :
43,037
추천수 :
935
글자수 :
1,193,004

작성
17.08.19 15:34
조회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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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8쪽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13)

DUMMY

사무적인 말투였다. 블래냐는 대꾸도 없이 품을 뒤적거리더니 종이 조가리를 하나 꺼내 그에게 건넸다. 보초는 그것을 훑어 보았다.


“라오게디아에서 오신 행상이시군. 짐 안에는 뭐가 있소?”

“숟가락. 포크. 국자. 뭐 그런 온갖 잡동사니.”

“한 번에 보기엔 짐이 크군. 거기 짐꾼, 이리 와서 짐을 풀도록.”


순식간에 짐꾼 취급당한 루프는 약간 자존심이 상했지만 사실인걸 어쩌나. 그는 군말 없이 등짝의 그 큰 짐짝을 보초 앞에 내려놓고 펼쳤다. 다른 도시들을 지날 때에는 이렇게까지 검문하진 않았었는데, 확실히 국경이라 다르긴 한 모양이다.


“맙소사. 가까이에서 보니 정말 어마어마하게 큰 짐이군. 이런걸 어떻게 지고 다니나?”

“그러니까요. 저도 신기합니다. 아직 과로사하지 않은게요.”

“흠흠··· 어디 보자.”


보초는 짐을 꼼꼼히 살폈다. 특히 건초 같은 것들이 있으면 더 집요하게 물어왔다. 아무래도 최근 라오게디아 내에서 마약 소동이 있었다는 소문이 떠돌다 보니 그런 쪽으로 검문이 강화된 모양이었다.

그러나 검문에 걸릴만한 물건들은 자기 마법 베낭에 모조리 쑤셔박는 라키안이 위험한 물건을 거기 놔뒀을리가 없었다. 보초는 위험물을 찾지 못했고, 이리나드와 블래냐를 바라보는 그의 아쉬운 시선을 뒤로하고 마침내 일행은 라이발드에 입성했다.


저녁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을은 꽤나 부산해 보였다. 뭐냐고 따지자면 축제 분위기 비슷한 것이 감돌고 있었다. 사람들은 마을을 장식하고 술통을 나르며 왁자지껄 떠들어대고 있었다. 루프는 그것에서 묘한 불안감을 캐치했다.

그들은 우선 머물만한 여관에 방을 잡고 늦은 저녁을 먹었다. 요리가 나오고 조금씩 배를 채우는데 주변에서 술을 마시던 마을 사람들이 목소리가 들려왔다.


“크으~! 이거 진짜 기대되서 참을 수가 없군!”

“허허, 이 친구야. 그냥 이렇게 생각하게. 이미 시작 됐다고 말이야! 어차피 자네 오늘 자러 갈 것도 아니잖나?”

“물론이지! 내 미쳤다고 그 짐승같은 마누라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겠나? 오늘같이 신나는 밤에? 크핫핫핫!”

“그러니까 오늘은 이렇게 밤새 마시고 내일 화형 축제에 참여하면 되는거지. 우린 천재라니깐? 핫핫핫!”


수염이 덥수룩한 두 명의 중년 사내는 술잔을 주고 받으며 호쾌하게 웃어대고 있었다. 루프는 그들의 대화 속에서 분명하게 들리는 ‘화형 축제'라는 단어를 놓치지 않았다.


“방금 화형이라고 그랬지?”


루프가 이리나드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이리나드도 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로즈 화형식을 말하는건가? 로즈를 화형에 처한다고? 그것도 내일 당장?”

“그럴지도 몰라. 확인해 봐야겠어.”


루프는 조심스럽게 블래냐의 눈치를 살폈다. 블래냐는 별다른 대답 없이 먹고 있던 수프에 집중했다. 루프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무슨 생각인지 이리나드도 루프를 따라 일어 섰다. 그들은 방금 대화를 나누던 사내들이 테이블로 걸어갔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루프는 마시고 있던 벌꿀 증류수를 무슨 맥주라도 되는 마냥 출렁출렁 흔들며 그들에게 말을 걸었다. 뜬금없이 다가온 여행자로 보이는 놈의 호기심과, 그 옆에 헉소리 나게 예쁘장한 아가씨까지 자리하고 있자 둘 중 덩치가 산만한 사내는 기분이 좋아졌는지 호쾌하게 소리쳤다.


“좋다마다! 우리 라이발드의 오랜 숙원이 드디어 이뤄지게 됐단 말일세! 무려 15년 만에!”

“숙원이라니 무슨 큰 일이라도 있는 모양입니다?”


이번에는 약간 마른 사내가 대답했다.


“오랜, 아~주 오랜 숙원이지. 우리 라이발드에 내려 있던 저주와도 같은 장막이지!”


그는 자신이 무슨 경극의 배우인마냥 잔뜩 과장된 목소리와 표정으로 말하고 있었다.


“자네 여행객인 모양인데 아주 잘 왔네. 아주 적절한 시기에 잘 왔어. 국경 변방 도시라고 천대당하고 국가에서도 계륵 취급받던 우리 도시가 드디어 내일이면 빛을 보게 될 거란 말일세! 지금 마을은 그 경사스런 축제를 위한 준비통에 난리도 아니지! 자네도 봤겠지만.”


“어머,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그 정도로 온 마을이 난리인거죠? 정말 궁금하네요.”


사내들의 시선은 이리나드의 반쪽짜리 치마 아래로 가끔 드러나는 매끈한 맨다리를 힐끔거리며 훝고 있었다.


“츄흡, 큼큼. 아가씨 예쁜 얼굴만큼이나 호기심도 많군 그래. 와핫핫핫!”


아마 이 사내는 웃음소리의 크기나 호탕함이 사나이다움을 어필하는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칵칵칵! 아서라, 아서! 자네 그 짐승같은 와이프가 이 꼴을 본다면 자네는 끝장이라고! 와핫핫핫!”

“빌어먹을, 모처럼 기분 좋은 날인데 그 주둥아리 좀 못 닥치나?”


루프는 이 이상 이 촌극을 참고 보기 어려웠다. 그는 짐짓 남자답게 옆에 점원이 들고 나가던 맥주잔 두 개를 상큼한 미소와 함께 콱 낚아 채서는 사내들의 테이블에 쾅 올려 놓았다.


“흥이 많이 오르신 듯 하니 이건 제가 사죠. 그 보답이라고 하긴 뭣하지만 뭐가 그렇게 두 분을 즐겁게 하는지 이제 슬슬 알려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여행자로서 이런 이벤트를 놓치는 건 무지하게 억울해서 말이죠.”

“크핫핫핫! 이 친구 말이 좀 통하는구만! 그렇다면 알려주지!”

“내일 우리 마을에 오랫동안 걸려 있던 저주가 풀린다네!”

“저주요?”

“그래요, 아가씨. 아주 지독한 저주지. 병과 범죄, 전쟁과 약탈의 역사로 얼룩진 저주 말일세!”

“그런 저주가 있어요?”


루프와 이리나드는 이제 슬슬 이들이 말하는 ‘저주'의 정체에 대해 불안한 예상이 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다만 그것을 저들의 입으로 직접 듣기 전까진 확정해버리고 싶지 않았다. 이 마을의 사람들이 그것보다는 조금 더 이성적이기를 바랬다.


“있지. 자네들도 들어 봤을게야. 붉은 눈의 마녀의 저주를. 우흐후흐후···”

“붉은 눈의 마녀요? 설마 그녀가 이 곳 라이발드에 있단 말인가요?”


마른 체형의 사내가 마치 비밀이라도 발설하는 듯한 조심스런 행동으로 속닥거렸다.


“물론! 심지어 그냥 있는게 아니라 관리 받고 있었지! 현명하신 영주님과 위대한 에라핌님의 계획 안에서!”

“맙소사.”


루프의 입에서 탄식이 텨져 나왔으나 사내들은 그것을 탄식이 아닌 탄성으로 인식했다.


“알고 있는가? 이 곳 라이발드는 겉보기에는 멀쩡해 보이지만 사실은 굉장히 황량한 도시라네. 국경이라는 지리적인 이유도 있지만, 뭣보다 저 끔찍한 델뢰르 대수림과 그것 너머에 있는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은 헤링튼 요새! 그 악마같은 빌보아 크리스토퍼!”


악마같은 빌보아 크리스토퍼! 존경스런 페미루스의 머리를 들고 잔혹하게 웃었을 그의 모습이 루프의 머리속에 그려졌다.


“놈들이 자꾸 국경을 넘어 와서는 행패를 부리는 통에 델뢰르 수림은 그야말로 무법지대가 되어 버렸지. 심지어 15년 전부터는 이 지방에 레짜라고 불리는 지독한 전염병까지 발생해서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네.”

“그런데 마침 15년 전에 우리 영주님께 발견하신걸세. 그 악마의 아이를!”

“악마의 아이라면···”

“그래! 붉은 눈의 마녀라네!”


로즈씨다. 루프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내들은 여전히 신이나서는 맥주를 연신 들이키며 자신들의 서사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작가의말

저주도 나오고 장미도 나왔으니 이제 불꽃 차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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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28) 18.05.13 67 3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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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22) 17.08.30 137 2 13쪽
153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21) 17.08.29 116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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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18) 17.08.26 126 4 8쪽
149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17) 17.08.25 124 3 7쪽
148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16) 17.08.24 80 2 8쪽
147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15) 17.08.23 148 2 8쪽
146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14) 17.08.21 88 3 7쪽
»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13) 17.08.19 119 2 8쪽
144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12) 17.08.18 120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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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10) 17.08.16 166 3 10쪽
141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9) 17.02.17 190 2 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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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6) 16.10.15 230 2 8쪽
137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5) 16.10.13 192 2 10쪽
136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4) 16.09.27 302 2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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