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설익은 글장이

세상을 파는 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에그머니나
작품등록일 :
2015.03.20 13:48
최근연재일 :
2018.05.20 14:26
연재수 :
165 회
조회수 :
42,342
추천수 :
935
글자수 :
1,193,004

작성
18.05.12 17:39
조회
56
추천
2
글자
9쪽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27)

DUMMY

“뭐, 뭣들하나! 시간이 없단 말이다! 당장 저 수상한 소년을 포박하라! 처형인들은 당장 형을 집행하라! 서둘러라! 태양이 그림자에 모두 먹히기 전에!”


애쓴 보람도 없이, 루프는 간단히 교단의 위병들에게 제압당했다. 그 중 하나의 얼굴은 죄책감과 희열이 뒤섞여 괴기하게 뒤틀려있었다. 마치 이 마을 그 자체를 대표하는 얼굴이었다.


“위병들은 그 소년을 단단히 붙들고 있으라! 마녀의 처형 후에 곧바로 해주의 의식으로서 그 소년도 처형하겠다!”


노주교는 소리쳤다. 사람들은 환호하며 박수를 쳐 댔다.


목에는 두 개의 창이 교차하여 드리워져 있다. 미친듯한 사람들의 씨끄러운 함성과 박수소리, 점차 빛을 잃어가는 태양과 어두워져 가는 이른 아침의 서늘한 공기. 언제부터인가 멈춰 있던 숨, 겨우 다시 터뜨리자 폭풍처럼 뛰는 심장. 그리고 주변을 온통 수놓은 피. 피. 피.


눈을 들어올린다. 땀인지 눈물인지 흐릿하게 시야를 가린다. 산발이 된 앞머리가 그 앞을 가로막는다. 그러나 그 희미한 시야를 관통하여 보이는 마녀의 얼굴, 그 눈동자. 온갖 이물질로 범벅이 된 그 얼굴에 박힌 두 개의 눈동자를 소년은 추적했다.


그 눈동자에는 의식이 없다. 무리도 아니지. 그 상상조차 안되는 고통 속에서 마녀는 무슨 꿈을 찾아 갔을까? 그러나 소년은 바랬다. 제발, 한 순간, 단 한 순간이라도 좋다. 나를 바라봐다오. 그 눈동자에 마지막 빛을 되돌려다오.


단 한 순간만이라도.


소원이 이루어진 것일까? 여인의 눈이 마지막 초점을 소년에게로 맞춘다. 순간 이치와 시간이 밀려나고 정적이 찾아온다. 소년은 눈물을 흘리며 여인에게 말했다.


이런게 정말 당신이 원하던 결과인가요? 정말로 이런 식으로 죽어야만 했던건가요?

그래요.

아니에요, 그럴리 없어요.

아니, 이제 다 끝났어요.

당신이 끝내기를 원했던건 아니잖아요.

당신은 좌절해 본 적이 있나요?

좌절한다 하더라도 포기하지 않았어요.

나는 포기했어요, 당신. 내려 놓았어요. 이제 더 이상은 너무 힘겨워요.

안돼요. 당신은··· 당신은 단 한 번도 자유롭지 못했잖아요··· 이렇게 포기해선 안돼요.

그대는 이해할 수 있나요? 지금 이 순간 느껴지는 육체의 고통보다도 자신이 짊어진 저주 때문에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맞이하는 것이 더 고통스럽다는걸?

아니에요. 잘못되어 있어요··· 당신은 저주 따위 짊어지지 않았어요.

아아, 상냥한 사람. 이 세상 모두가 당신같이 상냥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될 거에요. 내가 그렇게 만들거에요.

고마워요. 당신을 영원히 기억할게요. 이 마지막 순간에 그대를 만난 것은 정말 행운이었어요.

제발, 제발 포기하지 말아요. 제발, 포기하지 말아요.

제발 포기해줘요, 상냥한 그대. 상냥한 그대.


마지막으로 보인 것은, 미소였다. 피와 땀과 오물로 덧씌워진 죄인의 얼굴에서 마지막으로 소년이 본 것은 틀림없는 희미한 미소였다. 그 참혹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모순적으로 입가에 떠오른 그 미소는 너무나도, 너무나도 이질적이어서 보는 소년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뭐라 눈동자 조차 움직일 틈도 없이, 두 명의 처형인이 소년과 여인의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들은 감정없는 움직임으로 여인의 얼굴을 향해 손을 가져갔다.


소년은, 어떻게든 모든것을 참고 견뎌내고 이겨내 보이겠노라 작정하고 다짐했던 소년은, 마침내 고개를 떨구었다.


비명이 녹아내린 녹슨 쇠같은 바람소리가 단상 위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더 이상 비명을 지를 기력조차 없지만, 말로 표현조차 할 수 없는 고통에 터져나온 인간의 본능은 그렇게나 잔혹한 소리를 연출해냈다. 그것은, 무엇에서 나는 소리인지 알기조차 싫은 끈적거리는 소음과 섞이며 듣는 이들의 가슴에 불을 질러댔다.


노주교는 이윽고 붉은, 하얀, 두 개의 동그란 안구를 손에 들고 대중에게 흔들어 보였다.


“여기 저주의 뿌리가 불타는 것을 지켜보아라! 에라핌님의 기적으로!”


그는 눈을 감고 마치 기도하는, 진짜 성스러운 성직자처럼 두 손을 모으로 그 위에 눈동자들을 올렸다. 그러자 마치 기적이 일어나듯이 찬란한 빛이 눈동자를 감싸며 그것을 공중으로 띄워 올리는 것이었다. 노주교는 감격에 겨운 얼굴로 그것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군중은 경외하는 모습으로 그것을 향해 예를 올린다.


“아아, 에라핌님의 기적이 부정의 저주를 씻으신다!”


순간 그것이 타올랐다. 작은 눈동자 두 개에 가해진 극심한 열은 순식간에 그것들을 먼지도 남기지 않고 태워 없앴다. 수분이 증발하며 공중에 흩날리는 수증기만이 그 곳에 무언가 있었다고 속삭일 뿐.


“저주가 사라졌다! 그토록 오래 기다렸던 숙원이, 라이발드의 꿈이 지금 이루어진 것이다! 모두 에라핌님께 경배를 돌리라!”


일대는 불타올랐다.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눈물을 흩뿌리며 그들이 그토록 바라 마지 않던 마녀의 눈동자가 에라핌의 기적으로 스러지는 모습을 떠올리며 감격스러워했다.


“자아, 이제 진정한 끝이 다가왔다··· 마녀를 죽여라!”

“마녀를 죽여라!”

“마녀에게 죽음을!”


노주교의 외침을 대중은 의미를 이해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며 복창했다. 처형인 중 하나가 나무 통에 달구어진 기름을 가져왔다. 붉게 물든 기름은 고춧가루로 저며져 있었다. 이제부터 처형당할 죄인에게 죗값을 묻기 위한 고통의 끈이었다. 그는 주저 없이 그 기름을 죄인에게 부었다.


죄인의 갈가리 찢겨진 피부에 기름이 부어진다. 죄인은 정신을 옥죄어 오는 말도 안되는 고통에 몸부림친다. 인간성이라고는 모래 한 톨 만큼도 보이지 않는 이 참혹한 처형 현장을 보면서도 사람들은 모두 고무되고 흥분하여 미친듯이 죽음을 연호해댔다. 그 뒷면에는 저주가 걷힌 라이발드의 희망찬 앞날을 기대하는 우민, 아니 그저 평범한 광신도들의 작은 바람이 담겨 있었다.


“불을...”


노주교의 요청에 다른 처형인이 홰에 붙인 불을 가져왔다. 태양이 가리워져 어두워진 이 아침을 밝히는 빛이 처형대 위에 섰다.


소년은 머리를 부여잡고 몸을 사시나무 떨듯이 떨었다. 단상 위에 제압되어 무릎 꿇려진 루프는 눈을 감고 귀를 막았다. 그러나 눈꺼풀 아래로 미친듯이 회전하는 동공은 여전히 제 갈 길을 알지 못한다. 귀를 막아도 고막을 울리는 고문의 잡음은 심장까지 핏줄을 타고 내려간다.


눈 앞에 문득 그녀의 이름이 떠오른다. 로즈. 장미. 그 이름의 붉은 눈동자는 장미를 떠오르게 했다. 사람들은 그녀를 마녀라 불렀다.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보다 약하고 힘없는 자들을 이끌고 깊은 숲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그녀를 마녀라 불렀다. 그녀는 침묵했다. 그저 묵묵히 자신이 맡은 자들을 돌보았다. 세월이 지나면, 조금 마을에도 마음에도 봄이 오면, 잊혀지리라, 그렇게 바랐다.


세월의 끝에 사람들은 다시 마녀를 찾았다. 이번에 마녀에게 주어진 것은 불이었다. 마녀는 담담하게 그것을 받아들였다. 그녀는 그것을 진정한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이라 여겼다.


저주의 마녀라 불렸던 마녀가 아니었던 여인이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로즈라 했고, 장미였으며, 불꽃에 사그라들었다.


저주와 장미와 불꽃. 루프는 마치 이성이 없는 병인처럼 눈 앞에 타오르는, 작게 움직이는 그것을 바라다 보았다. 그것은, 여인은, 죄인은, 마녀는··· 로즈는 긴긴 고통의 시간 끝에 이윽고 안식을 맞이했다.


“그 고통이 얼마나 지독했을고.”


그리고 그 자리에 문득 그 남자가 나타났다. 루프를 속박했다가 바람처럼 스스륵 사라졌던 그 남자였다. 너무나도 거룩하게 생긴 외모에 절로 경건한 마음이 들게되는 그 남자가 어느샌가 단상 위, 불타버린 희생자 앞에 서 있었다.


“너희들은 변한게 아무것도 없구나.”


남자는 웃는 것도, 슬퍼하는 것도 아닌 오묘한 표정으로 주변에 있는 자들을 둘러본다. 노주교로 시작해서 표정조차 읽는 수 없는 두건 속의 처형인들, 광기로 물들어버린 대중들, 광신으로 헐떡거리는 교단의 일원들. 남자들 그들을 관찰하듯이 찬찬히 둘러봤다.


“에, 에라핌님이시다!”


노주교는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마치 죽음을 코앞에 둔 사슴이 단말마를 내지르는 것 같은 쇳소리가 그의 성대에서부터 퍼져나왔다. 주변의 사람들은 순식간에 노주교의 말을 받아들이며 머리를 조아리기 시작했다.


“에라핌님이 강림하셨다!”

“마녀의 저주를 없앤 우리에게 축복을!”


남자는 예의 표정으로 말없이 그들을 둘러보았다. 그의 모습에서는 정말로 신과도 같은 모종의 위엄이 뿜어져 나왔다. 설명할 수 없는 압도감이 좌중을 제압했다.


작가의말

 덜덜덜...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세상을 파는 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65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2: 뜻밖의 기연 (1) 18.05.20 47 2 8쪽
164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마지막) 18.05.18 68 2 6쪽
163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30) 18.05.17 62 2 7쪽
162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29) 18.05.16 70 2 10쪽
161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28) 18.05.13 65 3 7쪽
»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27) 18.05.12 57 2 9쪽
159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26) 18.05.11 67 2 9쪽
158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25) 18.05.10 80 2 10쪽
157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25) 18.05.09 92 2 11쪽
156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24) 18.05.08 53 2 11쪽
155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23) 18.05.07 78 2 11쪽
154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22) 17.08.30 135 2 13쪽
153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21) 17.08.29 113 2 9쪽
152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20) 17.08.28 120 3 7쪽
151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19) 17.08.27 130 3 7쪽
150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18) 17.08.26 121 4 8쪽
149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17) 17.08.25 121 3 7쪽
148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16) 17.08.24 76 2 8쪽
147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15) 17.08.23 144 2 8쪽
146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14) 17.08.21 84 3 7쪽
145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13) 17.08.19 116 2 8쪽
144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12) 17.08.18 116 3 9쪽
143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11) 17.08.18 94 2 9쪽
142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10) 17.08.16 163 3 10쪽
141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9) 17.02.17 184 2 31쪽
140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8) 17.02.05 182 2 13쪽
139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7) 16.10.16 217 2 8쪽
138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6) 16.10.15 225 2 8쪽
137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5) 16.10.13 189 2 10쪽
136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4) 16.09.27 297 2 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