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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파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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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그머니나
작품등록일 :
2015.03.20 13:48
최근연재일 :
2018.05.20 14:26
연재수 :
165 회
조회수 :
43,026
추천수 :
935
글자수 :
1,193,004

작성
17.08.27 13:48
조회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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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7쪽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19)

DUMMY

루프와 이리나드는 에라핌 신전을 빠져 나왔다. 아까 그 문지기들이 '어떻게 이렇게 빨리 멀쩡하게 빠져 나오지'라는 표정을 숨길 생각도 없이 마구 뿌려 댔지만 이리나드는 그것을 살벌한 미소로 가볍게 무시했다. 루프는 그런 이리나드의 눈치를 열심히 보고 있었지만, 상황이 상황이라 그런지 이리나드는 그 이상 별다른 이야기를 하진 않았다.


입이 열 댓자나 나와 있었다는 점만 빼면 말이다.


"라키안은 어디로 간 걸까?"


둘은 영주관을 향해 가고 있었다. 영주관은 마을 어디에서도 잘 보이는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국경 도시다 보니 방어전에 용이하게 우뚝 솟은 언덕 위에 지어져 있었다. 영주관이라기 보다는 좀 저택같은 스타일의 성이라고 봐도 무방해 보였다.


그리고 블래냐가 질색을 하는 레파인 양식.


"몰라."


루프는 이 싸늘한 공기를 식히기 위해 조심스레 말을 걸었으나, 돌아온 이리나드의 대답은 역시 싸늘하기만 했다. 그래, 이리나드. 모르겠지. 나도 그 대답이 나올 줄 몰라서 물어봤던건 아니야. 루프는 고개를 숙였다.


분위기는 이 모양 이 꼴이었지만, 루프는 어떻게든 이리나드와 다시 대화를 시작해야만 했다. 둘은 지금 아무런 대책도 없이 다짜고짜 영주관으로 걷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서 뭘 어쩔건데? 루프의 속은 초조했지만 이리나드의 서늘한 표정은 이미 '될 대로 돼라'는 오라를 신나게 내뿜고 있었다.


"이리나드! 일단 잠깐 멈춰서 어떻게 할 지 생각을 좀 해 보자."

"무슨 생각?"


뒤도 안 돌아보고 대답한다.


"영주관에 무슨 수로 들어갈 지 생각!"

"미인계."


저거 백퍼센트 루프 들으라고 하는 소리다.


"백 보 양보해서 들어 갔다고 쳐 보자. 그 다음은?"

"미인계로 백작을 꼬실거야."

"백 보 양보해서 그게 성공 했다고 쳐 보자! 그 다음은?"

"로즈씨를 데리고 나온다."


거기까지 말하고 이리나드 역시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그제서야 몸을 돌이키고는 땅이 꺼지도로고 숙인 고개조차 들지 못하고 말을 잇는다.


"흐아하... 루프. 사실 나 지금 머리속이 너무 복잡해서 아무것도 생각이 나질 않아."


바람빠진 풍선마냥 너덜거리면서 걸어와서 루프 한 쪽 어깨에 팔을 턱 걸친다.


"이유는 묻지 말라잉."


완전 아저씨같다. 그것도 술에 취한. 그러나 루프는 그 생각을 곧이 곧대로 입 밖으로 내서는 안 된다고 믿었다.

사실 예상이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아까 루프의 이상행동도 한 몫 했겠지만, 지금 그들이 얽혀 있는 상황은 붉은 눈의 마녀,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있는 로즈에 대한 문제였다. 이리나드의 심정이 복잡한 것은 당연했다.


"... 미안."


그녀가 피식 웃는다.


"또 뭐가?"

"아까. 내 맘대로 굴어서."


이리나드가 고개를 든다. 눈 앞의 남자가 안쓰럽다는 듯이, 기특하다는 듯이 쳐다본다.


"모처럼 남자처럼 군다 싶었더니 그새 또 사과하는거야?"

"응, 뭐... 니 마음 생각을 하나도 안 한 것 같아서."


이리나드는 루프의 턱 아래에 있던 자신의 머리통을 들어서 그의 턱을 살짝 들이 박았다.


"아야."

"에이그 순진하기는. 됐으니까 얼른 머리나 굴려 봐. 시간 없어."


그야말로 아저씨같이 털털하게 웃는 이리나드를 보면서 그제서야 루프는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자, 이제부터 머리 싸움이었다.


"사실 생각해 봤는데, 아까 니가 말한게 어느 정도는 맞는 것 같아."

"뭐가?"

"미인계."

"설마 또 날 써먹겠다고?"

"아, 아니. 그건 아니고. 그냥 정면돌진 해 보면 어떨까 해서."


루프의 생각은 이러했다. 미인게는 일단 접어두고, 비슷한 방식인 정면돌파. 그냥 다짜고짜 영주관 앞에 가서 으름장을 한 껏 놓으며 마녀랑 당장 만나게 해 달라고 아우성을 치는 것이다. 그러면 당장 구해내지는 못할지 몰라도 당장 로즈랑 만나는 것은 가능하리라.


아마도 감옥 안에서 말이지.


그런 생각을 이리나드에게 찬찬히 늘어 놓는 루프. 그걸 듣는 이리나드의 표정은 영 좋지 않았지만, 그녀의 뇌 상태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달은 이제 슬슬 낮아져 가는데 시간은 속절없이 지나가기만 할 뿐. 도무지 이렇다 할 생각이 나지 않는 이리나드는 루프의 말에 동의 하는 수 밖에 없었다.


'뭐... 여차하면 라키안이 또 튀어 나와서 뭔가 해 주겠지.'


사실 루프의 저의는 바로 이것이었다. 라키안. 이 돌출분자. 어디서 뭘 해도 꼭 튀어 나와서 온몸에 아프도록 쳐박는 그 남자. 그 역시 지금 움직이고 있다. 루프가 얼토당토 않는 짓을 할 때마다 튀어나와서 더 얼토당토 않는 방식으로 그걸 매듭짓곤 하는 그 기계 장치의 신 같은 남자가 루프의 믿는 구석이었다.


그러나 루프는 그 때 라키안이 흩어지기 전 자신에게 했던 충고를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이리 오너라!"


일단 그렇게 막나가기로 한 루프는 거칠 것이 없었다. 웅장하기 짝이 없는 영주관 입구에 도착한 그는 보초 가문기사가 자신을 빤히 쳐다 보고 있는 것을 보면서도 있는 힘껏 소리를 내질렀다. 이리나드가 깜짝 놀랄 정도로 말이다.


"뭐, 뭐야? 이 놈은?"


그 가문 기사 역시 얼빠진 얼굴로 루프를 쳐다봤다. 세상천지에 어떤 천둥 벌거숭이가 오늘같은 날 밤 영주관 앞에서 저딴 소리를 내뱉어 댄단 말인가?!


"지금 당장 너희 영주..."


호기롭게 다음 대사를 외치던 그 소년은 갑자기 말을 잇지 못하더니 한껏 당황해서는 뒤에 선 선녀같은 여자에게 뭔가를 물었다.


"이 동네 영주 이름이 뭐였지?"

"여기 영지 이름이 라이발드니까 무슨무슨 라이발드 아닐까?"


큼큼. 헛기침을 해 댄다. 그 사이 보초 가문 기사는 그 소년의 뒤에 선 여자의 악마적인 매력에 정신을 홀라당 빼앗겨 있었다.


"지금 당장 너희 영주 라이발드 백작에게 전해라! 헨게나에서 마녀를 맞이하러 사신들이 왔다고!"


루프는 자신이 전에 읽었던 어떤 염세주의 세상 멸망 소설에서 나왔던 지옥의 이름을 대충 둘러대며 자신들을 사신이라 소개했다. 문제는 이 보초 가문 기사가 이리나드의, 그러니까 지금 이 특수한 상황 속에 무력감과 고뇌감으로 잔뜩 일그러진 얼굴에서 나오는 악마적인 매력에 푹 빠져버려서 그것을 반 쯤 믿어 버렸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내 이성을 회복했다. 오늘, 그리고 내일은 그의 영주가 오랜 시간 동안 준비해 온 역사적인 날이었다. 이 정도 고난에 휘둘려서는 안된다, 그는 그렇게 자신을 다잡았다.


작가의말

 루프도 이제 제법 라키안스러워져 가네요. 루프한테 이 말 해 주면 참 좋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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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21) 17.08.29 116 2 9쪽
152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20) 17.08.28 124 3 7쪽
»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19) 17.08.27 133 3 7쪽
150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18) 17.08.26 126 4 8쪽
149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17) 17.08.25 124 3 7쪽
148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16) 17.08.24 79 2 8쪽
147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15) 17.08.23 148 2 8쪽
146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14) 17.08.21 88 3 7쪽
145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13) 17.08.19 118 2 8쪽
144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12) 17.08.18 120 3 9쪽
143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11) 17.08.18 99 2 9쪽
142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10) 17.08.16 166 3 10쪽
141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9) 17.02.17 190 2 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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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6) 16.10.15 230 2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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