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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옹이 님의 서재입니다.

인간, 인간, 인간, 사람, 짐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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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옹이
작품등록일 :
2022.08.06 20:55
최근연재일 :
2024.05.06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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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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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19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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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77

DUMMY

-천-



바닥에 누워 아무 생각 없이 천장을 바라보고 있으니 선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좀 어때?”


“조금 낫소.”


“일어날 수 있겠어?

언제부터 그런 거야?”


“이 마을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방에 들어서니 급격히 상태가 나빠지는군.”


“괴물, 뭐 그런 건 아니지?”


“예전에 내가 몸이 안 좋을 때도 말했지만, 사람 하나를 콕 집어서 건강상태를 나쁘게 만드는 괴물은 없소.”


“우리가 모든 괴물을 아는 건 아니니까.”


선이 내 옆에 앉아 이마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열이 조금 있는 거 같기도 하고.

의원한테 가보자니까.

왜 고집을 부려?”


“괜찮소.”


“사흘 후에 떠나기로 했는데 그때까지 나을 수 있겠어?”


“사흘 후가 되어봐야 알겠지.

아직 확신할 수 없소.”


“어휴, 정말.”


선이 내 옆에 앉아 보따리와 대접을 내밀었다.


약재 향이 풍겨오는 걸 보니 약인듯싶다.


“약을 타왔소?”


“어, 이 마을에서 제일가는 의원한테 타왔으니까 따뜻할 때 먹어.

그래 봤자 코딱지만 한 마을에 하나 있는 의원이지만.

뭐, 틀린 말은 아니잖아?

하나 있으니까 제일가는 의원이란 말 말이야.”


선이 키득거리며 말했다.


“고맙소.”


선의 실없는 농담에 반응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가져온 약을 들이켰다.


약의 쓴맛이 입을 맴돌아 몽롱했던 내 정신을 조금이나마 되찾게 했다.


정신을 차리게 만드는 약이라면 효험 한번 좋군.


“네가 약을 달이지 못하니까 나머지 약은 주모한테 부탁해서 달여달라고 할게.”


선이 내게 내민 보따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어디 가려고 하시오?”


“내가 너한테 종일 붙어있지 못하니까.

그리고 이 마을에 이상한 전운이 감도는 것 같아서.

소문을 확인 봐야 할 것 같아.”


전운?


다른 족장이 이 땅을 노리고 있는 건가?


이런 조그만 마을에도 눈독을 들인다고?


“그게 무슨 말이오?”


“아, 다른 족장이 노린다는 건 아니고.

짐승이 여길 습격할 거라는 정보를 어디서 얻었나 봐.”


그동안 잠잠하다 했더니.


“저기, 어디야? 푸른바람인가?

그 이후로 짐승이 습격하는 건 없었잖아.

우리가 보지 못해서 그렇지 국지전이 왕왕 있었던 모양이야.

특히 이런 소규모의 마을은 말이야.”


이런 마을은 손쉬운 먹잇감이겠지.


아무래도 큰 마을보다는 말이야.


“그런 정보는 어디서 얻은 거지?

짐승이 와서 선전포고하지는 않았을 텐데.”


“몰라, 그건 모르겠어.

내가 알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중요한 건, 우리가 짐승하고 헤어졌던 곳 근처에 그놈들의 마을이 있나 봐.

규모도 여기랑 비슷하다고 하더라고.”


“갑자기 마을이 생기지는 않았을 터.

예전부터 있었을 텐데?”


“그렇겠지? 하여튼, 난 그 소문 좀 알아보려고.”


“그 짐승 마을에 갈 거라는 말이오?”


“멀어서 굳이 갈 필요는 없을 거 같은데.

뭐, 필요하다면 갈 수 있고.

잘 모르겠다.”


똑, 똑.


별안간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 선과 내 시선이 문 쪽으로 움직였다.


누구지?


“방문할 사람이 있소?”


“없는데, 누구세요?”


“혹시 여기가 기사님이 계신 곳인가요?”


기사?


내가 노예기사란 걸 어떻게 안 거지?


선과 내 눈이 마주쳤다.


“말했소?”


“내가 그걸 왜 말해?”


“문 좀 열어주시면 안 될까요?

긴히 드릴 말이 있습니다.”


선이 눈빛으로 내 의사를 물어본다.


“무슨 용무길래 그러시는 거죠?”


“족장님의 명으로 의뢰를 하려고 합니다.”


의뢰?


나한테 의뢰를 한다고?


고개를 작게 끄덕였고 선이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어 방문자를 맞이했다.


허리춤에 칼을 찬 걸 보니 경비병인듯싶다.


“안녕하십니까?

아무런 기별도 없이 갑자기 방문하게 되어 죄송합니다. 기사님.”


방문자가 방안에 들어와 인사를 했다.


특이한 건 내게 고개를 숙이는 게 아니라 선에게 숙였다는 점이다.


“네? 아, 네. 뭐.”


“안녕하십니까?

실례지만 어느 마을에 있는 족장님의 자제분이신지···.”


이번엔 날 보고 말했다


그런데, 족장의 자제라고?


선이 어리둥절한 얼굴을 한 채 날 쳐다봤다.


나도 무슨 영문인지 몰라 아무 말 없이 방문자를 쳐다봤다.


그러자 방문자가 눈에 띄게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바닥에 엎드린다.


“죄, 죄송합니다!

기사님이 아니라 족장님의 자제되시는 분에게 먼저 인사를 해야 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내가 족장의 아들로 알고 있고, 선은 나를 보호하는 기사라고 알고 있다는 말이지?


선을 쳐다보자 본인도 이 상황을 이해했는지 나를 보고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알면 됐소.

내가 몸이 좋지 않아 이렇게 맞아서 미안하군.”


“아, 아닙니다.”


내가 용서한다는 투로 말하자 방문자의 안색이 다시 밝아졌다.


“그래서, 내 호위 기사에게 무슨 볼일이 있소?

아니지, 우선 저 아이가 기사라는 건 어떻게 알았소?”


선이 날 보고 입 모양으로 아이? 라고 말했다.


나는 애써 모른척하며 방문자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허, 허리춤에 찬 칼을 보고 알았습니다.”


“칼? 칼은 당신도 차고 있지 않소?”


“이 칼은 칼이라고도 부를 수 없는 놈이죠.

제대로 쓰지도 못합니다.”


방문자가 씁쓸히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꼴에 마을의 하나밖에 없는 경비대장이라고 족장님이 칼을 구해주셨습니다.

다른 놈들은 나무몽둥이나 죽창을 들고 있는 상황입니다.”


경비병이 아니라 경비대장이었군.


그나저나 규모가 작아 열악할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경비병에게 칼을 지급하지 못할 정도로 어려울 줄이야.


짐승이 몰려오면 대번에 쓸려버리겠어.


“그렇군.”


“이 마을에 칼을 차고 다니는 사람은 저밖에 없습니다.

이방인이 가끔 오기는 합니다만 칼을 찬 사람은 그중에서도 드문 편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소문이 퍼졌고 족장님의 귀에도 들어갔던 겁니다.”


칼을 찬 이방인이 이런 작은 마을에 오면 소문이 빨리 퍼질 수밖에.


그래도 용병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을 텐데··· 아, 무언가를 부탁한다고 했으니 일부러 기사라고 말했구나.


이런 마을이면 보수금도 좋지 않을 터이니 기분이라도 좋게 만들어 의뢰를 승낙하게 할 목적으로 말이야.


“좋소. 그렇다면 선과 얘기해보시오.

나는 듣고만 있을 테니.”


“네? 괜찮으실지···?”


“저 여자가 나를 호위한다고는 하나 엄연한 양성소 소속이오.

나에게 소속된 기사가 아니란 말이지.”


“네, 네!?

정말입니까?”


경비대장이 깜짝 놀라 반문했다.


내 예상이 맞았던 듯 선을 정말로 용병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아쉬운 상태니 일부러 기사라고 높였을 것이고.


기사는 아니지만 기사 출신이지 틀린 말은 아니지.


저들이 원하는 건 기사 후광이 아니라 기사가 가지고 있는 실력이니까.


부탁할 것도 예상이 되는데.


“이, 일단 두 분을 족장님의 집에 모셔도 되겠습니까?”


선을 쳐다보니 별 상관없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게 합시다.”



///



음식을 대접받으며 족장의 환대를 받고 있다.


열악한 마을답게 음식은 그렇게 화려하지 않지만, 족장의 성의가 느껴지는 한 상이다.


“어서 들게나.

차린 건 없지만 입에 맞았으면 좋겠네.”


“아닙니다.

이런 진수성찬을 차려주시다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하하하! 겸손도 참!

자네가 사는 마을 정도는 아니지만 내 마을도 언젠가 반드시 그렇게 될걸세.

두고 보게, 하하!”


족장이 날 보고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내 이름만 말했을 뿐 성과 마을 명도 말하지 않았다.


내가 말하길 꺼린다는 걸 눈치를 챈 모양인지 족장은 굳이 캐묻지 않았다.


단지, 기사가 호위로 쓸 정도면 제법 큰 마을이라고 생각해 지레짐작으로 저렇게 말한 것으로 보인다.


인상이 좋은 덕분인지 그 행동이 나쁘게 느껴지지 않았다.


시선을 돌려 다른 사람을 쳐다보니 용병으로 보이는 자가 둘 있었는데 두 사람 전부 새까만 옷을 입고 있었다.


저들은 대화에 참여하지 않고 묵묵히 음식을 먹기 바빴다.


“그렇지, 저 둘은 내가 고용한 용병일세.”


내 시선을 느낀 용병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제야 용병들은 내게 인사를 건넸다.


“자자, 어서 들게.

음식이 식으니까 말이야.”


족장이 선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보고가 들어갔겠지?


그러니까 필요 이상으로 우리를 환대하는 거고.


“고맙습니다. 족장님.”


선도 그런 족장의 속 보이는 태도가 나쁘지 않은 듯 보였다.


“그, 그렇지.

내가 어디서 들었는데 자네가 기사라고 했지?”


선의 기분이 좋은 걸 느꼈는지 눈치만 보고 선에게 말을 걸지 못했던 족장이 처음으로 말을 걸었다.


“부족한 실력이지만 운이 좋게 양성소에서 기사직을 수료할 수 있었습니다.”


“운이 좋다니!?

기사는 운으로 되는 게 아닐세!

설사 천운으로 양성소에 입학해도 수료는 운으로만 되는 게 아니지!

암, 그렇고말고!”


선의 겸손에 족장은 목청이 떨어지도록 큰 소리로 말했다.


족장이 저렇게 말하는 걸 보니 새삼 선이 다르게 느껴진다.


평소에는 실없이 행동하고 주책인 면이 있지만, 선은 양성소를 졸업한 기사 출신이다.


족장의 말마따나 입학은 할 수 있어도 졸업은 아무나 하지 못하는 곳이 양성소지.


용병들은 선이 자신과 같은 용병이라 생각했던 모양인지 기사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선에게 선망의 눈빛을 보냈다.


선도 그런 시선을 눈치챈 것인지 배시시 웃었다.


“봤어? 내가 이런 사람이야.

내가 경비대장을 하고 있었던 건 기사직에 환멸을 느껴서 그런거고 난 원래 기사라는 말씀.

지금 당장 아무 마을에 가도 이런 융숭한 대접을 받을걸?

그러니까 나한테 잘해.

시도 때도 없이 헤어지자고 하지 말고.”


선이 내게 고개를 들이밀어 작게 속삭였다.


“알았으니까 조용히 좀 하시오.”


호들갑 떨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선의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아 목구멍으로 삼켰다.


“어험, 자네는 짐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선과 내가, 적어도 선이 웃으며 대화를 하는 걸 본 족장이 본격적으로 주제를 꺼냈다.


“상종 못 할 것들이죠.”


“그렇지! 그놈들은 상종 못 할 놈들이지!”


선이 족장이 원하는 대답을 하자 곧바로 식탁을 탁 치며 반색했다.


“조건이 있어요.”


“으, 응? 조건?”


“족장님이 뭘 원하시는지 알아요.

그러니까 거두절미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죠.”


“마, 말해보게.”


선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족장이 당황하며 말했다.


“천이··· 천님이 아파요.

그러니까 천님이 나을 때까지 지극정성으로 간호를 해주길 원해요.”


“알았네.”


족장이 날 한번 보고 말했다.


“···그게 단가?”


선의 다음 요구가 없자 족장이 의아한 듯이 말했다.


“네.”


“허, 허허허!

여봐라, 거기 아무도 없느냐!?”


“찾으셨습니까?”


“오늘부터 이 분을 나라고 생각하고 극진히 모셔라.”


“알겠습니다.”


족장의 생각과는 반대로 일이 순조롭게 풀리자 기분이 상당히 좋아진 듯 목소리가 상당히 높아졌다.


“아, 그리고 돈도 좀···.”


시원시원하게 말한 것과 반대로 돈을 요구한 선은 자기가 생각해도 민망한듯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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