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저기 있군.”
어류신은 웃었다. 기대 이상이었다. 아니 기대도 안 했었다. 그저 앞길이 창창한 사람 한 명 살리고자 했던 것이었다.
“훌륭했다. 패죽일이.”
* * *
어류신은 경악했다. 이곳이 어딘가? 물론 한복입은 사람들 적지 않게 있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저렇게 다 한복을 입고 있다니... 거기에 분명 육조거리같은데 왜놈들이 세운 돌로 된 큰 건물은 보이지 않았다. 정말 여긴 어디란 말인가? 저 많은 차들은 대체 뭐란 말인가? 아니 많은 것은 차치하고 무슨 생김새가 저렇단 말인가? 그리고 자신은 왜 여기 있는가? 자신은 분명 일본군과 싸우고 있었다. 낡은 총 한 자루와 몇 발 없는 총알에 의지해 힘겨운 사투를 벌였다. 어쩌면 이 싸움에서 죽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조국의 광복을 위해서라면 그 짝 목숨인들 무엇이 아까우랴. 한 놈의 일본군이라도 더 죽이기 위해 달리던 어류신은 순간 발밑이 허전했다. 아마도 깊은 구덩이에 빠진 것이리라. 그리고 나와보니...
* * *
어류신은 참담한 심정이었다. 무려 시간이동을 했다. 조선으로 온 것이었다. 하지만 어류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나중에 말입니다. 우리 조선 왜국에 빼앗깁니다. 왕요? 쫓겨나죠. 아니 왜놈들에게 독살 당하십니다.”
이리 말한들 누가 들어줄까? 어디서 불경한 헛소리 한다며 물고를 내지 않으면 다행이리라. 어류신은 그런 말을 할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었다. 같이 독립군에서 활동하던 아버지뻘 되는 분은 항상 어류신이 제대로 교육을 배우면 크게 될 것이라며 한탄했었을 재능이었으니... 하지만 그 재능도 조선에서는 꽃 피울 수 없었다. 조선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저 같이 묻혀 사는 수밖에. 다만 훗날 임진왜란이 일어날 테니 그에 대비하면 좋을 듯싶었다. 하지만 임진왜란이 일어나는 것이 언제인지 알 수 없었다. 일제치하에서는 제대로 된 역사를 배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독립군에 들어갔기에 조금 배운 것이었다. 결국 어류신은 포기하고 조선에서 살기로 했다. 무당 도미를 만나기 전까지는.
“서방님은 떠나셔야 하옵니다.”
도미가 죽기 전에 한 말이었다. 비선의 첫돌이 지난 지 꼭 백일이 되던 때였다. 그리고 옥패를 주었다.
“이것이 서방님의 갈 길을 열어 줄 것입니다.”
일본군과 싸우다 구덩이 안으로 떨어졌을 때 주운 물건이었다. 팔면 몇 푼이라도 독립자금이 되지 않을까 가지고 온 것이었다. 그런데 도미의 말을 듣자하니 자신이 조선에 온 것은 그 옥패때문인 듯 했다. 아니 확실히 맞았다. 옥패를 들고 길일 떠나 절벽에서 뛰어내렸을 때 대한민국으로 시간이동을 한 것을 보면. 도미가 죽은 후에도 차마 어린 비선을 두고 갈 수가 없었다. 하지만 도미의 영향이었을까? 아니면 도미의 힘이었을까> 어류신은 더 이상 늦추면 옥패는 그저 돌덩이가 될 것임을 알았다. 그 동안 어류신은 자신이 옥패를 가지고 있으면 다른 곳으로 갈까 겁이나 비선에게 주었었다. 그런데 길을 떠난다 말을 하니 비선이 그 옥패를 다시 주지 않던가? 그때 운명이라는 것을 느꼈었다. 원래대로면 비선이 잘 때 몰래 빼낼 생각이었는데...
대한민국에 온 어류신은 도미가 남긴 글을 해석하고 또 해석했다. 그리고 그 해석이 교도소였다. 황당했지만 도미의 점괘는 틀린 것이 없었다. 일부러 죄를 짓고 교도소에 가서 점괘가 그리 나오고, 해석이 그리 된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곳에서 어류신은 그 놈을 만났다.
* * *
“저 놈이지. 잘 했다. 주길아. 그런데...”
어류신은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작은 여자아이를 보았다. 비선. 배주길이야 직접 시간이동을 한 것이었지만 어류신 자신은 그게 아니었다. 그 이유로 생긴 시간이동의 피드백의 영향일 것이다. 대한민국의 어류신은 나이가 많았다. 그의 별명이었던 어르신이란 말이 자연스러울 정도로. 하지만 지금 대한제국의 어류신은 젊었다. 배주길보다 10살 정도 많을까? 그리고 도미를 닮은 여자도 만났고 비선도 태어났다. 도미를 처음 만났을 때 도미는 어류신을 보며 다시 만날 거라고 했잖냐며 웃었다. 도미를 닮은 여자가 아니라 다시 태어난 도미였다. 다시 태어난 어류신처럼. 그리고 비선도...
“그런데 저 놈이 우리 딸이랑 결혼했다는 거 아냐! 나이차이도 많은데... 양심없는 도둑놈 같으니...”
그 생각이 들자 기특해 보이던 배주길이 갑자기 미워졌다.
“와! 저 오빠 멋지다!”
아직 유치원도 들어가지 않은 5살짜리 여자애가 저 못된 양심없는 도둑놈에게 멋지다고 한다. 자신에게도 안 했던 말을... 그 말을 들으니 더 미워졌다. 곧바로 비선을 안아들고 성큼성큼 걸어가 그대로 뒤통수 한 대 갈겨버렸다.
“어...”
비선이 뭐라 하려 하자 입술 뽀뽀로 그 말을 막았다. 그리고 다시 성큼성큼 걸어갔다. 지금은 이대로가 좋았다. 인연이 있으면 다시 만나겠지. 그래 주길이 네가 만든 세상에서 잘 살아 보련다. 어류신 슬쩍 배주길을 보고 빙긋 웃고는 골목으로 들어갔다.
- 작가의말
드디어 끝났습니다.
지금까지 봐 주신분들 감사합니다. ^^
그리고 후원해주셨던
앙이20님
황금들님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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