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신개념 문화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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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주길은 공평한 사람이었다. 명에 전했다면 왜에도 전해야 했다. 하나는 침략, 하나는 구원으로 조선 땅에 들어왔지만 조선 백성 상대로 하는 짓은 둘 다 같았으니...
“자자. 새로 나온 소설 왔어요. 채태사부인의 은밀한 사생활!”
“자자. 새로 나온 소설 왔어요. 노무라 영주부인의 은밀한 사생활!”
같은 내용이지만 명군에 팔 때는 일본 배경으로 일본인이, 왜군에 팔 때는 명 배경으로 명나라 사람이 등장인물이었다. 가뜩이나 조선에 와서 갖은 패악질 다 부리는 자들에게 조선 배경으로 하면 문제가 더 커질 것이 아닌가? 패주길이 걱정하는 것은 오직 하나였다. 이 야설로 서로의 나라에 호감을 느끼면 어쩌나 하는... 물론 두 나라다 먼 곳의 우두머리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하니 그럴 일은 없을 것이었다.
* * *
“우리 탐락군이 왜군을 물리쳤다고 합니다.”
이제는 비서나 다름없게 된 용길의 보고였다.
“하아... 위험한 짓 하지 말랬는데... 그새 왜놈들과 싸워요?”
“뭐... 일단 무기면에서는 우리가 왜군보다 앞서지 않습니까?”
맞는 말이었다. 화승총과 수석식총. 단지 불 붙이는 방식만 다를 뿐이지만 괜히 화승총에서 수석식총으로 발전한 것이 아니었다. 거기에 탐락군은 여러 개의 작은 통을 가지고 있었다. 조릿대를 마디마다 잘라 만들고 마개로 막은 것으로 그 안에는 딱 한 발을 쏠 화약과, 탄환이 들어 있었다. 자칫 화약을 많이 넣어 총신이 파열하는 그런 불상사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 빠르게 장전하기 위해 입으로 통 마개를 열다 화약이 입 안으로 들어가는 문제점이 있기는 했으나... 그게 뱃속에 들어간다고 터질 건 아니니 크게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어쨌든 탐락군이 조선은 물론이고 왜군보다 더 발달한 총기를 가진 것은 맞긴 맞는 말이었다.
“그래도 우리 숫자가 얼마나 된다고... 대체 누가 그런 무모한 짓을 한 거요?”
“그, 그게...”
“도화요? 내 그렇게 이제 명나라 군사도 왔고, 의병들도 많이 일어나니 얌전히 있으라고 했는데... 그 나이에 무슨 젊은 혈기라고...”
“도화가 젊긴 젊잖습니까? 아하... 쇤네가 그 나이만 되었어도 두집 살림...”
“아이고! 그 말 형수님 들으면 말을 한 형님만 죽는 게 아니라 들은 나도 죽어요! 인간이 이제 그 나이면 그 버릇 고칠 때도 되었을 텐데...”
“큼큼... 아, 아무튼... 도화는 아닙니다.”
“그럼 누군데요? 암만 봐도 할 사람이 없는데...”
사실 탐락방에는 인재가 적었다. 그나마 있는 인재인 장덕팔은 명나라에 가 있고... 오죽하면 김주평과 일을 같이 도모하겠는가? 그나마 김주평이 평소 하는 짓과는 달리 능력은 써먹을 만하니 다행이었지...
“그, 그게...”
“빨리 말 안 하면 의주 기생 추월이에게 노리개 준 것 형수한테 이를 겁니다!”
“마, 마님입니다!”
“마님? 마님이라니? 우리 탐락방에 마님이란 사람이 있던가? 일단... 마씨 성 가진 사람도 없고... 마님... 마님... 마...”
순간 패주길의 눈이 커졌다. 용길이 마님이라고 할 사람은 한 명 뿐이지 않은가?
“설마?”
“그 설마가 맞습니다만...”
“아씨! 이 계집애가 어디 전쟁 무서운 줄 모르고!”
“가장 앞장서서 싸웠다고 합니다.”
“뭐어요? 가장 앞장...”
“왜군들에게 꽤 유명하다고...”
“유명? 자, 잠깐! 유명하다고 할 정도면 이번 한 번이 아니라는 건데?”
“예. 혹시...빈의豳衣장군이라고 아십니까?”
“알지. ”
빈의장군은 패주길도 많이 들었었다. 왜적을 그 외에도 유명한 것이 옷이었다. 빈豳이란 한자는 여러 의미가 있지만 그 중에 얼룩지다, 여러 빛깔로 아롱지다. 이런 의미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옷을 입으면 숲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21세기 군복의 무늬와 같은 거라 조선 사람들도 머리는 잘 썼구나. 이런 생각도 있고, 그런데 왜 그런 인물을 몰랐지? 홍의장군에게 묻혔나? 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그런데...
“그 사람이 비선이라고?”
패주길은 그야말로 뒷목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사실 그런 옷무늬가 숲 등에서 잘 안 보인다고 말 해 준 건 패주길이었다. 그야말로 요놈의 입이 방정이고 원흉이었다. 요놈의 입을 어쩌나... 그나저나 대체 조선시대에 여자 의병장이라니... 잘만하면 한국의 잔다르크란 말을 들을지도 모르겠다. 그건 그렇고...
“그럼 난 또 뭐가 되냐고!”
패주길이 명나라 군사, 왜나라 군사에게 도박 가르치고, 야설 팔 때 비선은 총 들고 싸운 것이었다.
* * *
“내가 생각이 모자랐어.”
패주길은 한탄했다. 진즉 왜국에 카지노를 세웠어야 했었다. 전국시대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힘에 굴복당한 자들은 물론, 힘으로 승리한 자들도 제대로 적응할 수 없고, 그로 인해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사회는 불안할 수밖에. 사실 임진왜란이 일어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던가? 물론 전부 그 이유는 아니어도 비중이 적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불안한 사회에서는 사람들 마음에 틈이 많을 것이었다. 원래 악의 꽃은 사람 마음의 빈틈에서 자라는 것! 즉 왜국에 카지노를 퍼트리기에 가장 좋은 적기였던 것이었다.
“하지만 아직 안 늦었어!”
침략을 당한 쪽도 나라가 힘들어지고 어려워지며 사회가 혼란스럽지만 전쟁을 일으킨 쪽도 멀쩡하지는 않는 법이었다. 더욱이 패주길의 기억에 왜국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은 후 또 한 번 혼란스러워질 테니 아직 기회는 있었다.
“흐음... 일단... 고니시 유키나가를 이용해 볼까? 그 놈이 성인이 되는 꼴도 볼 수 없으니까.”
패주길이 교도소에서 강철성에게 역사에 대해 배울 때 경악한 것이 고니시 유키나가가 천주교 일본 성인 중 한 명이라는 것이었다.
“결국 아무리 신을 믿어도 신이 직접 하지 않는 이상 사람은 한계가 있다는 거지. 소서행장이 성인이 된 이유는 박해 중에도 신자들을 보호했다는 이유야. 하지만 어떤 영주건 자신의 기반인 영지민을 보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영지민이 없다면 그 영주도 무너질 수 밖에 없으니까. 다만 그 영지민들이 천주교 신자였고, 당시 일본은 천주교를 박해했다는 것일 뿐. 만약 바티칸의 사람들이 소서행장이 조선에서 했던 일을 알았더라면 절대 성인의 반열에 올리지 않았을 거야. 히틀러가 천교인 몇 명 살려줬다고 성인으로 시성하는 것과 다름없는 짓이나 다름없으니까. 하지만 소서행장이 조선에 와서 한 짓은 히틀러는 상대도 안 될 악행들이었잖아. 문제는 이미 성인으로 시성이 되었으니 쉽게 건드리지 못 한다는 것이거든.”
이것이 강철성의 설명이었다.
“흣! 바티칸이 고니시 유키나가가 조선에서 한 짓을 모른다면 유럽에 고니시 유키나가 악명을 풀면 되는 것이지.”
유럽이 성행하는 도박을 병 들어가면 그 도박을 전파했다고 알려진 사람은 분명 많은 비난을 받을 것이 분명했다.
패주길은 한숨을 쉬었다.
- 작가의말
소서행장이 천주교 성인인 것은 실제 사실입니다.
솔직히 바티칸에서는 소서행장이 천교인인 영주민들을 구한 것은 알았지만 그가 저지른 반그리스도적이고 반인륜적인 짓은 몰랐겠죠. 지금도 모를 것이고. 어쨌든 국제적으로 인지도 높은 일본에서 주장하는 소서행장은 좋은 놈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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