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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山 님의 서재입니다.

위대한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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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山
작품등록일 :
2016.03.12 23:18
최근연재일 :
2016.04.05 21:38
연재수 :
12 회
조회수 :
4,654
추천수 :
58
글자수 :
44,610

작성
16.03.24 21:12
조회
292
추천
5
글자
8쪽

9 화 세상 밖으로

DUMMY

세상 밖으로








의상대는 험준한 기암괴석을 두르고 동해를 향해 산자락에 펼쳐진 안개 위로 의연히 솟아 있었다.

가을의 서늘한 바람이 옷깃을 스치는 의상대의 투명한 아침. 일찍 의상대에 도착한 희선은 자기보다 한 발 먼저 올라온 청년을 발견했다. 아득한 동해를 향해, 망연히 서 있는 청년은 금방이라도 만장 절애로 뛰어내릴 것만 같은 자세였다. 희선은 가까이 다가갈수록 문득 자신의 느낌에 확신이 들었다.

하나 둘 등산객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의상대의 절경을 감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고독한 청년은 바다 멀리 시선을 던진 채 망부석이라도 된 듯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희선의 눈에는 말할 수 없이 고독한 모습으로 바다를 응시하고 있는 청년의 초연하고 표연한 기상이 돋보였다.

가을 여행길에 만난 사람은 특별한 정서로 통할 때가 있음을 희선은 그 간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희선은 가을이 찾아오면 벌써 몇 년째 연례 행사처럼 정처 없이 홀로 가을 여행을 떠났었다.

관광객들이 모두 떠나고 산정의 가을 햇살이 서산으로 기울어졌을 때에야 청년은 의상대를 내려갔다. 희선은 마음을 굳힌 듯 망설이지 않고 그를 뒤따르기 시작했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려고 하는 그에 대한 호기심도 작용했지만 일단은 보호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는 설악산에서 속리산으로, 속리산에서 경주로, 경주에서 통도사, 내원사 등 이름 있는 명승지를 떠돌았다. 그에게는 찰거머리 같은 희선을 따돌리려는 의도가 엿보였지만 희선은 더욱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이런 두 사람의 기묘한 여행은 계속되었다.

희선은 부산에서 광주행 고속버스에 탑승할 때 그의 옆 좌석 표를 샀다. 차창 밖으로 남해의 수려한 정경을 보면서도 희선의 관심은 온통 그에게 집중되었다. 가까이서 본 그는 무척 단아한 편이었다.

고속버스가 휴게소에 도착했을 때 창 쪽에 앉아 있던 청년이 화장실을 갔다. 그 사이에 희선은 계획했던 대로 청년의 안주머니에 있는 물건을 흔적도 없이 빼냈다. 그녀의 소매치기 솜씨는 천하일품으로 완벽했다. 평소에도 습관적으로 도벽이 발동하면 솜씨를 발휘했다가 다시 주인에게 몰래 되돌려 주고 할 정도였다. 희선의 이러한 비밀스러운 솜씨는 어렸을 때의 쓰라린 추억의 흔적이었다.

그녀가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일이었다. 학교가 끝나 혼자 집으로 오던 중 무섭게 생긴 외팔이 할아버지에게 납치를 당해 인적도 없는 어느 산골로 끌려갔었다. 그 노인은 우리나라 최고의 솜씨를 자랑하는 전설적인 소매치기였다. 십 오 년을 형무소에서 복역하고 나온 후 자신이 너무 늙은 것을 알고 후계자를 물색하던 중 영리하게 생긴 희선을 납치했다. 그는 희선에게 수백 종류의 소매치기 기술을 가르쳐 주었다. 기술 전수는 냉혹하고 혹독한 방법이어서 일 년만에 완벽한 솜씨를 익힐 수 있었다.

그 후 그 할아버지는 고질의 악화로 병고에 시달렸다. 심성이 고운 희선은 외팔이 할아버지를 극진히 간병했다. 외팔이 할아버지는 죽어 가면서 때묻은 통장을 남겨 주었고 젊은 시절 자신의 잃어버린 딸을 혹시라도 만나게 되었을 때 통장 금액의 반을 전해 주면 고맙겠다는 유언을 남겼다. 통장에는 무려 23억 원이 넘는 금액이 입금되어 있었다.

외팔이 할아버지가 죽은 후 집으로 돌아온 희선은 본래 부유한 가정이어서 통장은 기념으로 간직하고 있었다. 그 후 그녀는 성장하면서 소매치기 솜씨를 발휘하여 주인 몰래 되돌려 주는 버릇이 생겼다. 그녀의 솜씨는 정교하여 한번도 발각되지 않아 혼자만의 비밀이자 취미가 되었다.

그 비밀 솜씨가 오늘은 뜻밖에도 긴요하게 사용되었다. 그에게서 빼낸 것은 한 장의 편지 봉투였다. 희선은 청년이 밖으로 나간 것을 확인하고는 봉투 안의 내용물을 펼쳐 들었다. 글씨는 보기 드문 달필이었다.


내가 잠든 곳은 양지 바른 곳이면 아무 곳이나 좋습니다. 수고해 주신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에서 수표를 동봉합니다. 감사합니다.

가을에 이진


단 세 줄의 유서였다. 유서와 함께 일천만 원의 보증 수표가 들어 있었다. 희선은 내용을 읽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이미 자살할 곳을 찾아 헤매고 있다는 것을 짐작하고 일부러 방해하기 위해 따라다녔지만 그가 이진이라는 인물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었다.

이진이란 이름은 희선이 오래 전부터 마음속 깊이 새겨 온 인물이었다. 희선은 이진이 버스로 돌아올 때 전에 훔쳤던 유서를 감쪽같이 제자리에 넣고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안타까움과 반가움이 교차된 감정을 가라앉히기 위해 심호흡을 했다. 희선은 인간사의 허무, 인연의 오묘함을 다시 한번 느꼈다. 그토록 만나기를 갈망했던 사람을 만났는데 그는 지금 자살을 하려고 자리를 찾는 중이었다.

희선은 캔맥주와 먹을 것을 사 가지고 돌아왔다. 버스가 출발한 후 고속도로에 접어들었을 때 이진에게 말을 걸었다.

“여행은 혼자가 좋지만, 때로는 친구가 필요해요. 맥주 한잔하세요.”

상대방의 의사도 묻지 않고 캔맥주를 따서 내밀었다.

“······”

흑백이 분명한 눈동자가 그를 향해 열려 있었다. 그는 희선의 호의에도 아무 말이 없었다.

“설마 맥주 한잔에 죽지야 않겠지요? 성의를 봐서라도 마시세요.”

그녀의 낮고 고운 목소리는 애교가 넘쳤으나 일방적으로 강요하고 있었다. 마치 오랜 친구 같은 말투였다.

그는 결국 거절하지 못하고 고개 숙여 감사의 표시를 한 후 맥주를 받았다. 그녀는 그가 일단 맥주를 받아 들자 쉴새없이 말을 걸었다. 광주에 도착할 때까지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터미널에 도착하여 버스에서 내리자 이진은 희선에게 손을 내밀어 작별을 청했다. 그녀는 악수하면서 물었다.

“어디로 가세요?”

“오늘은 백양사에서 묵을 예정입니다.”

“어머! 그럼 잘 됐네요. 나도 그곳에 가 보고 싶었어요. 악수는 했지만, 아직 헤어질 필요는 없네요.”

그녀는 그의 대답도 듣지 않고 팔짱을 끼었다.

그는 오늘이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밤임을 생각하면서도 그녀의 팔을 뿌리칠 수 없었다. 그들이 백양사 관광호텔에 도착했을 때는 저녁 9시가 지난 늦은 시각이었다.

먼저 각자의 방을 잡은 그들은 저녁을 함께 했다. 식사를 마치고 희선을 방으로 안내해 준 뒤 홀로 앉은 이진은 마지막 여행을 그녀와 동행하게 된 것에 감사했다.

그가 홀로 지금까지 세상에서의 삶을 정리, 관조해 보면서 시작도 끝도 없는 사색에 빠져들었을 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연 그는 맥주를 한아름 안고 있는 그녀를 보았다.

그녀는 목욕을 한 듯 청결하고 감미로운 향기가 물씬 피어올랐고 목소리는 술에 약간 젖어 있었다.

“잠자는 것보다는 밤새 술 한잔하며 고된 인생을 논하는 것이 훨씬 재미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세요?”

대답 없는 그를 그녀는 밀고 들어왔다.

“여행에서 만나면 영원한 친구가 된다는데 우린 벌써 며칠간이나 동행했으니 친구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서로 이름도 몰라서 되겠어요. 나는 희선, 정희선이예요.”

의자에 앉자마자 통성명을 요구하는 그녀에게 그는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진입니다.”

그녀는 일부러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어머나! 이진, 이진 씨예요? 혹시 대학 다닐 때 총학생회장이지 않았어요?”

“옛날 얘기입니다. 모두 잊혀진 일들인데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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