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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山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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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山
작품등록일 :
2016.03.12 23:18
최근연재일 :
2016.04.05 21:38
연재수 :
12 회
조회수 :
4,661
추천수 :
58
글자수 :
44,610

작성
16.03.18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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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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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0쪽

5화 장미클럽

DUMMY

5화 장미클럽


아영이 악의 없는 핀잔을 주었다.

“오늘은 왜 이렇게 늦었지? 나는 기다리다 지쳐 두 사람이 몰래 데이트라도 하는 줄 알았지.”

그녀들은 똑같은 마음들이어서 아영의 말에 모두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아! 배고프다. 오늘은 누가 당번이지? 메뉴는 뭐야?”

연희는 마음의 비밀을 들킨 것도 같고 이진이 무안해 할까 봐 얼른 딴전을 피웠다.

식사는 그녀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순번제로 당번을 정하고, 각자 정성껏 솜씨를 발휘했다.

점심이 끝난 후 소파에 둘러앉아 커피를 마시며 오늘 오후는 어떻게 보낼까 갑론을박하고 있을 때였다.

전화를 받던 미설이 수화기를 든 채 이진에게 물었다.

“이진 씨! 홍콩 사람인데 통역해 줄 수 있어요?”

이진이 아무 대답이 없자 그녀는 전화를 끊고 나서 설명했다.

“홍콩에 있는 대련 그룹 왕 회장이 김포비행장에 도착했는데 오늘 저녁 개인적인 용무로 워커힐에서 만나재요. 동행 좀 해주세요.”

“……”

이진이 아무 말이 없자 미설은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을 계속했다.

“왕 회장은 외빈 장미 회원인데, 오늘은 일부러 왔답니다. 개인적인 일로 꼭 만나서 중요한 얘기가 있다는데 통역이 필요해요. 이진 씨가 동행해 주시면 고맙겠어요.”

미설과 친한 윤경이 이진 옆으로 와서 거들었다.

“미설이 좀 도와 주세요. 왕 회장은 국제적인 사업가로 홍콩의 유명한 대재벌인데, 미설이를 평소 특별히 귀여워해 주었어요, 아주 중요한 일이 아니면 이렇게 급히 오지 않았을 거예요.”

그녀들이 모두 거들고 나서자 이진은 별로 좋아하는 일은 아니었지만 거절할 수도 없었다.

저녁 7시.

미설과 이진이 워커힐 커피숍에 도착했을 때 왕 회장은 젊은 여인과 함께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미설이 가까이 가서 공손하게 인사를 하자 왕 회장은 일어나서 반갑게 맞이했다.

육십대로 보이는 호인풍의 왕 회장은 미설과 이진을 향해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극진히 대했다. 미설이 통역할 사람이라며 이진을 소개하자 왕 회장은 이진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리고는 옆에 앉은 젊은 여인을 소개했는데 그녀는 그의 양녀인 산산이었다. 왕 회장은 지금은 부인과 양녀 이렇게 세 식구가 행복하게 살고 있지만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다.

이십여 년 전 왕 회장 부부가 생활이 극도로 어려웠던 당시에 맞벌이를 하다가 어린 딸을 잃어버린 가슴 아픈 사건이 있었다. 그 후 숱한 고생 끝에 오늘의 대재벌로 자수성가를 했지만 부인은 어렸을 때 잃어버린 딸을 찾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 왔었다.

오랜 시간 애를 썼으나 결국은 찾지 못하고 몇 년 전부터는 포기하다시피 했다. 찾는 것을 포기하자 부인의 한은 더욱 깊어만 갔다.

그러던 중 왕 회장이 장미클럽에서 회원들과 함께 찍은 사진에서 웃는 미설의 모습을 보고 잃어버린 딸과 인상이 꼭 같다고 우기면서 한번 만나 보고 싶다고 했었다. 얼마 전부터 몸이 극도로 약해진 부인은 당장 서울에 가서 미설을 우리 양녀라도 삼을 수 있도록 데려오도록 막무가내로 강요를 했다.

왕 회장은 부인이 나이도 연로한데다 잃어버린 딸 때문에 마음의 상처까지 깊어져 얼마 못 살 것 같으니 가엾은 부인의 소원을 꼭 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이진의 통역으로 내용을 들은 미설은 매우 곤혹스러워 했다.

왕 회장은 인격과 품위를 지닌 훌륭한 사업가였고 장미클럽의 외빈 회원으로, 평소에도 미설에게 잘 대해 주기는 했지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양녀 문제는 미설도 쉽게 응낙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어서 난감했다.

미설의 표정을 살펴보던 산산이 이진에게 애원조로 말했다.

“저의 양모님은 천성이 선량하시고 매우 인자하신 분이랍니다. 나이가 들수록 딸을 찾겠다는 집착만이 그분이 살아가는 유일한 힘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염원을 어떻게 해서라도 이뤄 드리고 싶어요. 양녀 문제는 천천히 결정을 한다 해도 한번만이라도 양모님을 만나 주신다면 그 은혜는 잊지 않겠어요. 우선 약속만이라도 해 주신다면 양모님이 정말 기뻐하실 거예요. 제발 거절하지 않도록 이진 씨가 도와주세요.”

산산은 미설과 나이가 비슷했으나 화려하면서도 품격 있는 분위기로 매우 세련된 모습이었다. 말할 때는 매우 조리가 있고 호소력이 있었다.

이진은 미설에게 통역을 해 준 후 그의 생각을 말했다.

“미설 씨. 일단 그분을 한번 뵙는 것은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그 약속을 하고, 양녀 문제는 만나고 난 후 결정해도 늦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진 씨가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따르도록 하겠어요, 다만 홍콩에 갈 때는 이진 씨가 동행해 준다는 조건부예요.”

“그것은 그때 말하기로 해요. 별다른 일이 없다면 거절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미설은 그의 대답이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응낙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와 함께라면 홍콩행은 미설에게도 즐거운 여행이 되리라는 지레 짐작이었다.

이진이 미설의 약속을 전달하자 왕 회장과 산산이 일어나서 악수를 다시 청하면서 매우 즐거워했다. 두 사람은 얼굴 가득히 웃음을 지으면서 빠른 시일이면 더욱 좋겠다고 약속을 재차 다짐받았다.

산산은 양모님을 위해 다행한 일이었지만 왕 회장도 그토록 즐거워하는 것을 보니, 서울에 동행한 것이 정말 보람 있는 일이었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이진과 미설을 유심히 관찰하던 산산은 모든 일이 잘 되자 이진에게 재삼 고맙다고 사의를 표하면서, 나이트 클럽에 가서 한잔 사겠다고 제안을 했다. 미설과 왕 회장이 찬성을 하자 이진은 어쩔 수 없이 뒤를 따랐다.

나이트 클럽은 각양각색의 사람들로 열기가 후끈 달아올라 있었다. 젊은이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외국인도 적지 않았고 나이 든 백발의 노인까지도 눈에 띄었다. 왕 회장도 가볍게 한잔한 후 일행들을 모두 무대로 데리고 갔다. 미설과 산산은 다른 사람들이 멈추고 구경할 만큼 수준급의 춤 솜씨를 자랑했다. 왕 회장도 불룩 나온 배를 흔들면서 즐겁게 어울렸다.

그들이 테이블로 들어와 잔을 비웠을 때 블루스 음악이 흘러나왔다. 왕 회장은 미설에게 이진과 함께 춤을 추도록 권했다. 미설은 이진을 끌고 나왔다. 미설은 블루스를 완벽하게 추었다. 이진과 한 몸이 되어 물결이 흐르듯 자연스럽게 스텝을 밟아 나갔다.

이진과 함께 생활해 오면서도 이런 기회는 한번도 없었다. 눈과 마음으로만 대해 왔던 미설은 이진의 품에 안기자 마치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 가운데에 빠진 듯한 느낌과 함께 지극한 안락함을 동시에 느꼈다. 그를 가까이하면 할수록 알 수 없는 감정들이 일어나곤 했다. 그것은 몇 마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미설이 상기된 표정으로 테이블로 돌아오자 왕 회장과 산산은 박수로 칭찬했다.

왕 회장은 이번에는 산산에게 이진과 함께 춤을 추도록 떠다 밀었다. 산산은 마다하는 이진을 끌다시피 하여 무대로 나갔다. 산산은 능숙한 솜씨로 이진의 품에 몸의 중심을 완전히 기대었다. 중요한 부분들이 맞대는 교묘한 자세였으나. 보기에는 아주 자연스럽고 우아했다. 그러한 전방위 자세는 상대가 완전하게 마음에 들었거나 유혹을 하고 싶을 때 취하는 자세였다. 그러나 멀리서 보는 산산과 이진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자처럼 아름다워 보였다.

산산은 국제 도시 홍콩의 상류 사회에서 사교계의 여왕으로 군림해 온 여인이었다. 그녀는 수많은 국제 신사들을 보아 왔지만. 이진에게만은 처음부터 특별한 느낌을 받았다. 오늘은 즐거운 일이 있는데다, 양부와 함께 한 자리여서 그녀의 마음은 편안한 가운데 여유가 있었다. 그녀는 그에게 지대한 관심이 있었으나 그는 그녀에게 너무나 담담하여, 산산은 오히려 강력한 흡인력을 느꼈다. 미설은 같은 여자의 입장에서 산산이 느끼는 마음의 편린을 읽을 수가 있었고 묘한 호기심으로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

산산과 이진은 마치 다정한 연인들처럼 떨어질 줄 모르고 계속 추었다. 정말 아름답고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그들은 두 번째의 음악이 멈춘 후에야 자리에 돌아왔다. 미설이 자리에 앉는 그들의 표정을 유심히 살펴보니 이진은 담담한 표정이었고, 산산은 아쉬움이 가득 찬 듯했다. 그녀가 이진 씨를 유혹했으면 하는 기대도 했지만 결과는 반대로 그녀만 이진에게 마음 있어 하는 것 같았다.

왕 회장과 산산 일행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면서 미설은 ‘이진 씨와 꼭 함께 오라’는 산산의 말을 떠올리고는 내심 혼자 중얼거렸다.

‘산산은 세련되고 아주 매력적인 여인인데 이진이 조금도 마음을 주지 않는 것을 보며 그를 유혹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겠구나!’

어느 정도 짐작은 했지만 미설은 이진을 새롭게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신라호텔 커피 숍..

이진은 유라와의 약속 시간인 저녁 아홉시 십분 전에 도착했다. 유라에게는 첫날 사건으로 항상 미안한 감정과 함께 마음의 부담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녀는 사과할 수 있는 기회를 한번도 주지 않았었다. 그런데 오늘은 뜻밖에 유라가 밖에서 그를 불러냈다.

이진은 텅 비어 가는 커피숍에 한 시간이나 기다렸으나 유라는 나타나지 않았다. 오늘의 약속은 일부러 바람맞히기 위한 것이 아니었나 생각하고 막 일어나려고 하자 이진을 찾는 전화가 왔다.

이진은 카운터로 가서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이진 씨! 유라예요. 이곳은 1701호실이에요. 할 얘기가 있으니 올라오세요.”

그리고 그의 대답도 듣지 않고 할말만 마치고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는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가 올라갔다. 조심스럽게 노크를 했다.

“들어오세요!”

유라의 맑고 낮은 목소리가 들려 왔다. 이진은 말없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방안은 은은한 조명등만 켜 있어, 밝지도 어둡지도 않았다. 조용한 음악이 잔잔히 흐르는 사이로 그녀가 더블 베드 옆 의자에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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