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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무생인의 서재

읽었던 것과 다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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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무생인
작품등록일 :
2019.11.26 21:40
최근연재일 :
2022.10.23 22:16
연재수 :
132 회
조회수 :
4,754
추천수 :
85
글자수 :
529,736

작성
21.04.04 16:32
조회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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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글자
8쪽

5. 그라플로 (8)

DUMMY

*


“.....”


정호기는 피곤한 얼굴로 눈가를 문질렀다. 이유 없이 몹시 피곤했다.


‘누가 나한테 바라는 거라도 있는 건가?’


잊을 만하면 계속해서 꿈을 꿨다. 불타는 땅과 살아남기 위해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는 생존자들, 검붉은 통옷을 뒤집어쓴 사람들, 끔찍한 괴물들. 어둑한 하늘 위에서 사태를 관망하는 그라플로.


‘그냥 꿈이야? 아니면..’


정호기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 때 보았던 그라플로의 모습이 너무 충격적이었던 건가.’


정호기는 한숨을 쉬며 소파에 몸을 묻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루올이 물었다.


“잘 안 풀리는 모양이지?”


“...예. 그러네요.”


[[어쩐지.]]


정호기는 다시 한 번 깊게 숨을 내뱉었다.


[[미궁의 깊은 곳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 같아요. 나름 길을 찾기 위해서 노력한다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출구와 멀어지는 거죠... 그리고 영영.]]


정호기는 꺼림칙한 기분에 말을 멈추었다. 정호기는 가젠에게 물었다.


[[지금까지 알아낸 것들을 가지고 그리오나 안을 긁어 볼까요?]]


[[그들은 주인의 뜻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찾아 오랬으면.. 찾아갈 수 있게 단서를 많이 남겨둬야 할 것 아니에요.. 도대체 단서는 어디 있는 건지. 남겨두긴 한 건지.

우리가 못 찾고 있는 걸까요? 가젠. 혹시 뭐라도 새롭게 발견하신 것이 있으신가요?]]


[[아직 없습니다.]]


“.....”


정호기는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 보니 그 검붉은 옷을 뒤집어쓴 사람들은 주인의 뜻을 따르는 그리오에게 붉은 보석을 받았었는데.]]


정호기는 어둠 속에서도 스스로 불길한 빛을 흘리던 붉은 보석을 떠올렸다.


[[그 보석은 정체가 뭘까요? 괴물의 몸속에서 튀어나오기도 하고, 검붉은 옷을 뒤집어쓴 사람은 그걸 무기로 쓰기도 했었고.]]


정호기는 붉은 보석에 대해 떠올리다 식당에서 보았던 가루가 떠올랐다. 반짝거리던 붉은 가루.

단순히 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것이 아니라 명멸하는 것처럼 반짝거리던 그 가루를 떠올린 정호기가 물었다.


[[가젠. 혹시. 그.. 식당에서 안이 먹었던 붉은 가루를 기억하나요?]]


가젠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가루도 혹시, 붉은 보석이 아닐까요.]]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그, 붉은 보석은 스스로 빛을 내잖아요. 살아있는 것처럼 깜빡거리면서 반짝이고. 그 가루도 그랬었던 것 같아요.]]


말을 잇던 정호기는 고개를 기울였다.


[[그러고 보니 색만 다르지 그 붉은 보석이랑 가젠의 보석은 비슷한 물건인 것 같아요. 둘 다 살아있는 것처럼 깜빡거리면서 빛나잖아요.]]


정호기는 일어나 가젠에게 다가갔다. 루올은 힐끔 정호기를 보더니 이내 다시 책에 시선을 돌렸다.

가젠은 말없이 품 안에서 보석을 꺼냈다. 가젠의 손 위에 놓인 보석은 분명 명멸하며 스스로 빛을 내고 있었다. 붉은 보석과는 다르게, 은색과 청색, 보라색이 섞인 빛을 내뿜고 있었지만 말이다. 마치 투명한 유리 안에 구름이 갇힌 것 같았다. 서로 섞여들며 흐르는 오묘한 빛에 정호기는 홀린 듯 보석을 바라보았다.


[[봐요. 비슷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정호기는 보석을 조심스레 손끝으로 매만지며 물었다. 가젠이 긍정했다.


[[근원은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군요.]]


‘근원이 같다?’


정호기는 의아한 얼굴로 가젠의 대답을 기다렸지만 가젠은 대답하는 대신 침묵을 지켰다. 정호기는 제안했다.


[[라야의 몸은 장소나 사물, 인물 같은 특정한 무언가에 접촉하거나 접근하면 그것과 관련된 과거나 미래를 보여주잖아요. 우린 붉은 보석의 정체를 모르죠, 그렇죠?]]


[[안이 섭취했던 붉은 가루를 조사해보자는 말씀이십니까.]]


[[네. 본인에게 직접 말해 볼까요?]]


말이 나온 김에 정호기와 가젠은 안에게 가 보기로 했다. 가젠과 정호기가 말없이 동시에 돌아서자 루올이 책을 내려놓더니 물었다.


“어디 가?”


“위층에요.”


“나도 같이 가.”


“....”


정호기는 대답 대신 가젠을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친 가젠은 고개를 저었다.


‘하긴. 루올은 안이 그라플로 행세를 하고 있는 걸 모르지. 알아서도 안 되고...’


정호기가 입을 떼려는 순간 루올이 눈치 빠르게 먼저 입을 열었다.


“아. 내가 알면 안 되는 이야기야?”


정호기가 어색하게 긍정하자 루올이 다시 책을 집어들고 물었다.


“위험한 일은 아니지?”


“그럼요. 잠시 위층에서 영주님을 좀 만나 뵈려고요.”


“그래. 그럼. 난 여기서 기다릴게.”


정호기는 선선히 대답하는 루올의 시선이 정호기에게 한 번, 가젠에게 한 번 머무른 것을 보았다. 루올의 시선은 가젠에게 더 오랜 시간 머물렀다.


‘가젠이 있으니 위험하지는 않겠다, 판단한 건가. 어쩐지.’


정호기와 가젠은 함께 위층으로 올라갔다. 문을 두드리니 부드러운 목소리가 침입을 허락했다.


“어서 오십시오.”


안은 정말로 반갑게 가젠과 정호기를 맞이했다.


[[그리오가 없는 건.. 좀 반갑네요.]]


가젠이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호기는 안을 보았다. 안은 가벼운 차림새로 살짝 미소를 머금고 있었는데, 그 알맹이가 안이라는 걸 정확하게 알고 있으면서도 정호기는 살짝 넋을 놓고 그를 바라보았다.


‘진짜 대단하게도 생겼네. ...가젠은 저런 얼굴을 한 달 동안 보고 살았다고.’


정호기는 덤덤한 얼굴로 서 있는 가젠을 보고 픽 웃었다.


“저도 요새 잠을 좀 설쳐서요.”


“죄송합니다. 저희가 손님을 편안하게 모시는 데에 미흡한 점이 있었군요. 혹시 저희가 마련해 드린 잠자리가 불편하십니까? 불편하시다면 잠자리를 다른 곳으로 옮겨 드리겠습니다. 그 외에도 불편하신 점이 있으시다면 그 무엇이든 편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아, 아뇨.. 그런 건 아니고.”


정호기는 안의 의아한 눈빛을 받으며 입을 뗐다.


“저번에, 반짝거리는 붉은 가루를 드시면서. 그게 불면증에 좋다고..”


“아.”


안의 기색이 바뀌었다. 아주 찰나동안이었지만 정호기는 식당에서처럼 감정하듯 훑어보는 안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이 필요하십니까?”


“네. 잠을 설치고 보니... 저번에 식당에서 말씀하셨던 게 생각나서.... 저도 염치불구하고 조금 얻어먹어볼까 하고..”


정호기는 뒷머리를 긁적거리면서 멋쩍은 듯 말했다. 안은 이제 대놓고 안과 정호기를 뜯어보기 시작했다. 그 온도가 느껴지지 않는 서늘한 시선에 정호기는 시선을 피하고 싶었으나 꾹 참고 그냥 웃었다.

가젠은 아무렇지 않은 듯 담담하게 있을 뿐이었다.


“이런 걸 손님께 드려도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정호기는 눈을 살짝 크게 떴다. 안이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몹시 선선하게 가루를 내주었던 것이다.


“제가 억지를 부리는 것은 아닌가요? 불편하시다면 주지 않으셔도...”


안이 다시 부드럽게 웃었다. 정호기는 기묘한 얼굴로 안의 웃는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닙니다. 주인님께서는 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그 무엇이든 힘닿는 대로 내어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번에 이야기했던 걸? 굳이 또 이야기한다?’


정호기는 가젠을 보았다. 가젠도 정호기를 바라보고 있었던 듯 시선이 마주쳤다.


[[가젠. 이거.. 일부러 이야기하는 거 맞죠? 그 가루라는 게 그라플로가 남긴 단서 중 하나라고 간접적으로 이야기하는 거 아니에요?]]


[[그런 것 같습니다. 제대로 짚은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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