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조선인 프랑스 외인부대 [인도차이나 베트남 전쟁] 10 (完)
우기가 끝나갈 무렵, 중대 진지에 2소대 전사자 시신이 회수되어 돌아왔다. 영환이 말했다.
"거시기가 입에 물려 있었대."
그 충격적인 소식에 다들 침묵했다. 샘은 주변 마을에 가서 베트남 주민들을 향해 총기난사라도 저지를 것 같은 눈빛으로 자신의 총기를 손질했다. 종수는 귀 뒤에 꽂아두었던 담배를 입에 물었다. 영무가 목소리를 깔고 말했다.
"베트민 이 새끼들, 한번 해보자는 것 같은데 우리도 똑같이 해줘지 말입니다."
영무 녀석의 헬멧에는 총알 자국과 함께 [필승!] 이라는 단어가 적혀있었다. 영무는 헬멧에 총탄을 맞았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남았고, 무사히 조선 땅에 돌아가게 되면 그 헬멧은 가보로 물려줄 것 이었다.
종수가 담배를 피우며 말했다.
"이 정글에서 누가 가장 좆같은 놈인지 보여줘야지."
며칠 뒤, 부이용 중대 1소대는 매복 작전 끝에 베트민들과 교전을 벌였다. 크레모아를 격발하고, 정글 속으로 총탄을 쏟아부은 1소대원들은 식은 땀을 흘리며 그 자리에서 귀를 기울였다.
'...'
'다 뒤진건가?'
샤를 예거 소대장이 헛기침을 했고, 종수는 영무, 아르티욤 등과 함께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갔다. 자신의 군화가 나뭇가지를 밟는 소리가 들렸다. 종수는 M1 카빈 방아쇠울에 손가락을 넣은채로 360도 모든 방향을 눈으로 스캔하면서 조심스럽게 나아갔다. 커다란 나뭇잎에 핏방울이 맺혀 있었다.
'이 쪽으로 도망갔군...'
그렇게 종수 일행은 시신 4구와 곧 숨이 끊어질 것 처럼 보이는 베트민 하나를 발견했다.
'더 없나?'
한편, 부이용 중대장은 무전을 통해서 이번 전투에서 1소대가 과연 몇 정의 총과 수류탄을 발견하고 베트민 몇 놈을 사살했을지 귀 기울이고 있었다.
'잘 좀 찾아봐라!'
신병은 인근을 수색하다가 베트민의 수류탄을 발견했다.
'수류탄이다!! 좋았어!!"
하지만 종수는 총기, 수류탄 외에 다른 것을 찾고 있었다. 여전히 핏자국이 한 두 방울씩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종수는 도랑 속에 몸이 반쯤 잠긴채 숨어있던 베트민을 발견했다. 종수는 그 베트민의 멱살을 잡고 끌어낸 다음, 동료들과 함께 나무에 묶었다. 샤를 예거 소대장은 매복지 쪽에 있었고, 지금 주변에는 영무, 아르티욤, 바딤, 루보프 밖에 없었다.
우크라이나 출신 바딤이 베트민이 쓰던 군화를 보고 말했다.
"이거 소련군이 신던건데?"
러시아 제국군 출신의 루보프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소련군 지원 받는다는게 사실이었군?"
아르티욤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이 새끼들 전술이 소련군이 쓰던 전술 냄새가 나기는 했지."
부상을 입은 베트민은 공포에 질린 얼굴로 눈알을 굴리고 있었다. 벌써 상처에는 굵은 파리가 윙윙거리며 꼬이기 시작했다. 베트민의 군화는 소련군이 쓰던 군화였지만 철모는 프랑스 외인부대가 쓰던 철모였다. 이 베트민은 턱끈을 차지 않고 있었다. 영무가 말했다.
"이 녀석들도 턱끈 안 차네요."
아르티욤이 증오스러운 눈빛으로 이 베트민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떻게 할까?"
종수는 베트민의 철모를 벗긴 다음 그릇처럼 받치고, 단도를 이용해서 베트민의 복부를 찌르고 할복하듯 칼을 움직였다.
푸욱!!
베트민이 신음했다.
"커억...컥..."
종수는 철모에 베트민의 복부에서 쏟아져나오는 피를 받았다. 이 상태로 내버려두면 30분 내에 온갖 종류의 벌레들이 들끓을 것 이다. 더운 피 냄새가 비릿하게 풍겼고, 비위가 상한 종수와 동료들은 베트민을 묶어둔채로 그렇게 두고 왔다. 바딤이 낄낄거리며 종수에게 말했다.
"존나 잔인한 새끼야."
종수는 동료들과는 달리 마약도 하지 않고, 수색 정찰을 나갈때도 언제나 또렷한 정신 상태로 모든 안전 수칙을 철저하게 지켰다. 중대 진지로 복귀하면서 종수가 신병들한테 말했다.
"부비트랩 밟고 다같이 뒤지기 싫으면 5보 간격 유지한다!"
러시아 제국군 출신 루보프가 말했다.
"리(Lee), 저 녀석 따라다니면 오래 살 것 같단 말야."
"리(Lee)는 이오지마 솔져라 그래."
그로부터 며칠 뒤, 중대 진지는 또다시 베트민의 습격을 받았고 1소대 쪽 기관총이 불을 뿜었다.
드득 드득 드드드드득
다음날 해가 뜨기 시작하고, 종수는 동료들과 함께 시체를 확인하러 갔다. 시체는 굳은 살이 두터운 맨 발을 드러낸 채로 엎드려있었다. 다케시가 말했다.
"자세가 좀 이상한데? 부비트랩 설치한거 같냐?"
"확인해봐야지."
베트민이 퇴각하기 전에 시체에 부비트랩을 설치해뒀을 수 있기 때문에 종수는 시체의 발목에 끈을 묶었다. 그 다음 10m 쯤 떨어진 곳에서 시체를 조심스럽게 끈으로 당겼다.
쿠궁!!!!
"으억!!"
베트민이 설치해둔 부비트랩이 폭파하면서 시체가 산산조각이 났고 주변에 파편이 튀었다. 다행히 종수는 부상은 입지 않았지만 베트민의 살점이 사방팔방 튄 상태였다. 어쨋거나 종수와 동료들은 서둘러 베트민의 시체를 치우고 묻었다.
그렇게 종수와 동료들은 2년이 넘도록 이 지옥같은 곳에서 2박 3일 이상의 장기 매복, 주간 수색, 야간 경계를 하며 지냈다. 종수는 맨 정신을 유지하기 위하여 그 어떠한 마약도 하지 않았다. 다들 철모, 지포 라이터에 낙서를 하곤 했지만 종수는 철모에 그 흔한 낙서조차 하지 않았다. 야간 경계를 설 때 담요를 뒤집어쓰고 담배를 피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 어떠한 안전 규정도 어기지 않았다.
그리고 종수와 동료들은 인근에 번화한 베트남 마을로 놀러가게 되었다. 일본계 다케시는 동료들이 꽁까이와 노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매음굴에 가지 않고 바나나와 그 외 열대 과일이나 사먹기로 했다. 그 때, 한 베트남 여인의 얼굴이 눈에 익었다.
'???저 여인은?'
한참 전에 부이용 중대에 와서 샤를 예거 소대장의 아이를 임신했다고 했던 그 베트남 여인, 마이가 틀림없었다. 그 여인은 딱봐도 혼혈로 보이는 자신의 아이를 안고 있었던 것 이다. 그 여인은 샤를 예거 소대장의 아이를 임신하고서 아이를 위하여 이 먼 곳까지 오게 되었는데 하필이면 그게 부이용 중대가 새로 중대 진지를 마련한 곳 부근이었던 것 이다.
다케시는 씁쓸한 표정으로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 때, 마약에 취한 외인부대원이 베트남 여인, 마이가 혼혈 아이를 안고 있는 것을 보고는 시비를 걸었다.
"헤이!! 꽁까이!!! 레이션!! 레이션!!"
마이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아이를 안고는 그 자를 피했다. 그러자 외인부대원이 완전히 맛간 눈깔로 마이의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레이션 줄게!!"
심지어 그 외인부대원의 친구로 보이는 녀석들까지 마이를 둘러쌌다. 사고가 터지기 직전이었다. 다케시가 달려가서는 그들의 앞을 막아서고 마이에게 말했다.
"빨리 가시오."
그러자 마약에 취해있던 외인부대원이 다케시의 멱살을 잡았다.
"이 새끼가...악!!"
다케시는 그 녀석의 이마에 박치기를 날렸다.
퍼억!!
"꺄악!!"
마이가 비명을 지르며 아이를 안고 도망가려고 했는데, 이내 붙잡혔다.
"이 gook(동양인 멸칭)새끼가!"
마약에 쩔은 외인부대원이 빈정거리듯 외쳤다.
"Gook은 다 죽어야 해..."
한참 치고 밖고 싸우고 마이는 붙잡힌 채로 도망가지 못하는데, 어디선가 헌병의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다.
휘리릭!!!
호루라기 소리에 다케시를 두들겨패던 외인부대원들은 모두 달아났다. 마이는 아이를 안은 채로 놀라서 주저앉은 상태였다.
"이게 무슨 일인가!!"
헌병이 다케시에게 외치자 마이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그게 아니에요!"
그 때, 마침 인근에 있었던 엘랑 예거 대령이 걸어왔다.
"무슨 일인가?"
헌병이 상황을 설명하는데, 엘랑 예거 대령은 마이라는 여인이 안고 있던 아이를 주목했다. 딱봐도 혼혈로 보이는 그 아이에게 엘랑 예거 대령은 설명할 수 없는 친숙함을 느꼈다. 엘랑 예거 대령이 마이를 부축해서 일으켜세우고 이번 일에 대해 사과하고 마땅한 보상을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마이는 빨리 자리를 피하고 싶은 것 같았다. 엘랑 예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그 아이는..."
마이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입술이 터진 다케시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엘랑 예거 대령에게 말했다.
"프랑스군 장교의 아이입니다."
엘랑 예거 대령은 다케시와 마이를 데리고 자신의 집무실로 온 다음 자세한 상황을 들었다. 엘랑 예거 대령은 마이가 안고 있는 자신의 손자를 바라보았다. 녀석은 이 소란에도 불구하고 엘랑 예거 대령을 보며 웃고 있었다. 엘랑 예거 대령은 자신의 손자에게 인사했지만 마이는 여전히 엘랑 예거 대령을 경계하고 있었다. 어쩌면 자신의 아이를 빼앗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 이다. 마이가 베트남어로 말했다.
"밍은 제 아이에요."
엘랑 예거가 말했다.
"이번 일에 깊은 유감과 사과의 뜻을 전하고 싶습니다. 프랑스군이 아닌 아버지로서, 아니 밍의 할아버지로서 마땅히 보상을 하고 싶습니다."
한편, 이 일에 발단이었던 샤를 예거 소대장은 동료들과 함께 매음굴에서 광란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매음굴은 대마초 연기로 뿌옇게 되었으며, 베트남 여인들과 샤를 예거를 포함한 장교들은 화끈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종수와 동료들은 더 저렴한 매음굴에서 신나게 놀다가 나왔는데, 엘랑 예거 대령을 보고는 모두 그 자리에 굳었다.
'히익!!!'
잠시 뒤, 종수와 동료들은 보초를 섰다. 엘랑 예거 대령은 매음굴로 들어가기 전 최대한 마음을 가라앉히고자 심호흡을 했다. 매음굴 쪽에서 샤를 예거의 목소리가 들렸다.
"미사카!!! 넌 미사카야!!! 백인 남자의 씨앗을 듬뿍 뿌려달라고 해!!!"
"우하하하!!!"
"전 미사카에요. 강철 사냥꾼! 백인 전쟁 영웅의 씨앗을 뿌려주세요! 라고 말해!"
(작가 주석 : 왕따 이등병의 1차 대전 생존기 1부, 1차대전때 독일의 전쟁 영웅 한스 파이퍼는 미사카라는 이름의 일본계 혼혈 여성을 윤간하였음. 미사카는 엘랑 예거 대령의 부모가 키워주던 고아로, 엘랑 예거 대령과 미사카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음. 그 후 미사카는 정신적 충격으로 자살함. 그리고 일본계 출신의 외인부대원 다케시는 미사카의 조카뻘 친척.)
종수는 엘랑 예거 대령이 주먹을 꽉 쥐는 것을 목격했다.
'!!!'
엘랑 예거 대령의 얼굴이 시뻘겋게 변했고 팔뚝에는 힘줄이 보였다. 엘랑 예거는 뼛 속 깊은 곳에서부터 분노가 치밀어오르고 있었다.
"..."
종수를 포함한 외인부대원들은 모두 공포에 질렸다. 매음굴에서 샤를 예거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미사카 이 암캐년아!! &%$@"
종수는 자신과 보초를 서고 있는 다케시를 바라보았다.
"다케시?"
다케시의 손가락은 M1 카빈의 방아쇠울에 들어가 있었다. 다케시는 당장에라도 매음굴에 들어가서 샤를 예거의 머리에 방아쇠를 당길 것 같았다. 종수가 다케시를 쳐다보며 진정시켰다.
"이봐. 진정해."
종수의 말에 다케시는 천천히 방아쇠울에서 손가락을 때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엘랑 예거 대령은 매음굴 안으로 들어갔다. 다른 장교의 목소리가 들렸다.
"뭐야? 헉!!!"
잠시 뒤, 샤를 예거를 제외한 모든 장교들과 베트남 여인들이 허겁지겁 매음굴 밖으로 튀쳐나왔다. 종수와 동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궁금해서 최대한 귀를 기울였다.
그 이후 엘랑 예거의 뜻에 따라 샤를 예거와 베트남 여인 마이의 아이, 밍은 부대의 마스코트가 된다.
(이번 외전은 여기서 마무리 짓겠습니다. 디엔비엔푸 전투에 대한 보응우옌잡의 자서전을 읽고 싶은데 도서관에도 없고, 서점에는 비닐로 싸여 있어서 구입해야 해서 읽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이후 종수와 동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인도 차이나 전쟁이 어떻게 되었는지 다음 외전에 쓰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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