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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펭귄의 서재입니다.

천재 화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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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청(群青)
작품등록일 :
2020.12.28 17:09
최근연재일 :
2021.01.28 07:05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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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79,402

작성
21.01.0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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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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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글자
12쪽

#2 - 디오게네스 (8)

DUMMY

{작품 <디오게네스> 추정가 오천만 원.}


<낭만>의 낙찰액이 오백만 원이었다. 가격이 무려 10배로 뛰었다.


“맙소사···.”


헛웃음이 나온다. 겨우 하룻밤 만에 오천만 원을 벌게 되었다. 그 검은 바탕에 사람 하나 그려 넣은 그림이.


박정인은 웃음만 지었고, 치킨을 씹던 백현우가 입안의 고기 조각을 튀기며 말했다. 더럽다.


“좋냐? 와, 나도 작품 하나로 천을 넘겨본 적이 없는데. 세상 참 불공평해.”

“저도 얼마 전까지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치?”

“이젠 좀 불공평해도 괜찮은 거 같아요.”

“······니 똥 굵다.”


백현우는 홱- 고개를 돌리곤 닭다리를 집었다. 내가 똑똑히 봤다. 저거 두 개째다.


“근데 이게 오천만 원이나 나가는 이유가 뭘까요.”

“내가 어찌 아냐.”


토라진 말본새, 닭다리를 두 개나 먹었음에도 찌질하게 군다. 하지만 어쩌랴 이번 작품에는 저 인간의 지분도 있다.


조금, 아주 조금 아깝지만···.


“이거 이등분해야겠죠?”

“엉? 뭔 소리야.”

“형이 손 만들어줬잖아요. 저거 등불도 형이 사 오고.”

“···짜식. 싸가지는 없어도 인정은 좀 있네? 그래도 그리 걱정하지 마. 내가 그리 도둑놈은 아니니까. 다 네 거 해.”

“하지만 저한테는 3D 프린터를 다루는 기술이 없어요. 기술 소유자에 대해선 마땅한 대우를 해줘야 해요. 아, 이거 기사도 정정해달라고 해야 하는데. 단독 작업물이 아니잖아요.”

“고건 좀 땡기네. 도움을 준 사람 정도로 적으면 좋겠는데.”


그 말에 가만히 캔맥주를 들이키던 박정인이 말했다.


“그렇게 하고 싶으면 3인으로 정정해야지.”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3인이요?”

“이미나씨도 도와줬잖아.”

“이미나씨가 누구에요?”


고개를 갸웃거리자 박정인이 벽을 가리켰다. 저 너머에는-


“옆 작업실에 이미나씨 살잖아. 유리 램프, 그거 이미나씨가 유리공예로 만든 거야.”


몰랐다. 밤중에는 몽롱한 상태로 그림만 그렸는걸. 중간에 백현우가 왔다 갔다 한 것만 기억난다.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박정인이 백현우에게 핀잔을 줬다.


“백현우씨 말 안 해줬습니까?”

“굳이 말할 필요 있나?”

“그래도 감사를 표하는 게 도리지 않습니까. 민폐도 적당히 끼쳐야죠. 오밤중에 문 두들기고, 무작정 내놓으라 하셨을 거 눈에 훤합니다.”

“에이- 그렇게까진 안 했다.”

“글쎄요···. 아! 그리고 팬티바람으로 복도 돌아다니는 것도 하지 마십쇼. CCTV에 다 찍힙니다.”

“에이- 작가 담당팀이 뭘 그리 딱딱하게 굴어. 예술가는 자유로운 영혼이야. 그걸 막으면 어떻게 해.”

“저희는 다른 작가의 눈을 보호할 책임도 있습니다.”


역시 나체로 돌아다니는 게 서울의 트렌드일리 없었다. 잠시나마 의심했던 지방 촌놈의 기억은 깊숙이 묻어두자.


저들의 실없는 대화에 관심을 두기보단, 작품의 가격이 월등히 뛰어오른 이유를 알아보는 것이 실속있어 보인다.


일단 인터넷상의 반응을 보면 비평가들의 반응은 호의적이다.


{디오게네스의 등불 일화}

{김도진 작가가 바로크 양식을 사용한 이유······}

{대중과 비평가를 알렉산더로 대입하면···}

{김도진 작가는 세상과 소통하기를 선택했다.}

{김도진 작가가 단체전 오픈 하루 이후에 전시한 이유}


인터넷이 정보의 바다 아니랄까봐 온갖 해석이 넘쳐난다. 틀린 것도 있지만 내 의도를 이해한 것도 제법 많다. 운 좋게 시기적으로 맞아떨어진 것도 있고······.


아무리 생각해도 통일된 이유보단. 많은 정보를 하나의 작품에 때려박은게 호평받는 이유인 것 같다.

저 변태 같은 비평가들이 뭐라 떠들 요소가 많은 것이 작품의 가치를 높인 것이 아닐까.


이전 위대한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 분명 논의할 점이 많다. 시대적, 역사적 흐름을 뒤트는 작품에 의해 도달한 문화가 현재이니까.


{<디오게네스>의 미술사적 가치}


······뭘, 미술사적 가치까지야. 직접 귀로 들은 것도 아니건만 괜히 얼굴이 화끈거린다. 화가가 되려면 어느정도 얼굴에 철판을 까는 방법도 배워야 하는 걸까.


“아! 날개는 제겁니다!”

“먼저 먹는 사람이 임자지!”


······그렇다고 저 철없는 어른들을 본받고 싶지도 않다.



*



AM 갤러리 스튜디오 뒤편.


기자회견을 대비해 박정인이 빳빳한 종이를 건네줬다. 대충 보니 기자들이 할 질문을 미리 적은 것 같다.


“이거 질문지야. 읽어보고 대답 대충 생각해놔. 민감한 사항들은 배제했으니까. 그냥 편안하게 대답하면 돼.”


질문지라니! 이거 짜고 치는 고스톱 아닌가. 기자회견이라기엔 구색만 맞춘 연극 같다.


어쩐지 티비 속 국회의원들한테 기자회견에선 정중하게 묻고, 법원이나 국회의사당 앞에서는 질문을 막 던지더라.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앞으로 나섰다. 박정인이 커튼을 걷어 주었다.


커튼을 걷고 나서니 하얀 조명과 플래시 세례가 쏟아졌다. 눈을 못 뜨겠다.

혹시 기사에 뜬 내 얼굴이 불독처럼 일그러졌으면 어떡하지. 그건 안 된다. 부끄러움에 정수리부터 녹아내릴 것이다.


눈물이 핑- 도는 감각을 버티며 눈을 부릅떴다.


어찌어찌 단상에 올라, 자리에 앉았다.

총구처럼 날 가리키는 마이크들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안녕하세요. 김도진입니다.”


다시 플래시 세례가 쏟아졌다. 앞이 안 보인다.


눈을 어지럽히는 빛의 세례가 잠잠해지자 한 기자가 손을 들었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옆의 정장을 입은 남자가 한 기자를 지목했다.


“보아예술의 김이진입니다. 먼저, 성공적으로 두 번째 작품을 출품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이번 <디오게네스> 출품을 통해 세상의 많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미술평론가들은 김도진 작가가 처한 특수한 상황에 대응하는 일종의 개념예술이었다고 하는데요. 김도진 작가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맞습니다. 인터넷에 제 이름을 검색하면 그런 이야기가 많습니다. 실력 없는 사람, 자격 없는 꼬마. 맞는 이야깁니다. 제가 봐도 작가 취급을 받기 힘듭니다. 다른 사람들이 열심히 그림 그리고, 공부해서 대학을 가고, 더 노력해서 작가가 되는 건데. 저는 아직 고등학교 졸업도 못 했으니까요.”


하지만 세상이 불공평하지 않은가.


“······그러면 저는 어떻게 화가가 되어야 할까요. 저는 고아입니다. 만 18세가 되면 보증금 오백만 원을 들고 새집을 찾아야 하죠. 그런 상황에 제가 미술대학에 가는 것도, 작가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금전을 소비해야 하는지 상상도 안 됩니다. 예체능은 부자들의 전유물이라는 말이 있죠. 꿈만으로 노력하기에는 현실이 너무 힘듭니다. ······그래서입니다. 작가가 부족하기를 따지기 전에 작품으로 자격을 봐주시기 바랍니다. <디오게네스>는 그를 위한 작품입니다.”


기자들이 노트북에 처박은 손을 바삐 놀린다. 말이 너무 많았나 보다. 조금 미안해진다.


옆의 진행자가 다른 기자를 가리켰다.


“내일미디어의 박수근입니다. 작품 <디오게네스>와 <낭만>은 화풍부터 평면 회화와 입체 회화라는 차이점이 많이 있는데요, 일각에선 다른 사람의 작품이라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맞는 말이기도 하고, 틀린 말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디오게네스>는 혼자 만들지 않았습니다. AM 갤러리 단체전 [인간 : 표면, 그 너머]에서 영감을 받은 것도 있고, 백현우 작가의 도움을 받아 작품의 손을, 이미나 작가님의 도움을 받아 등불을 구했습니다.”

“화풍에 관해서는?”

“모두 제 그림입니다. 공개된 작품은 겨우 두 작품입니다. 아직 저는 예술적 가치관이 확립되지 않았고, 더욱 많은 시도를 해보려고 합니다.”


겨우 화풍 하나 다르다고······. 작품 하나하나에 사람들이 이리 극적으로 반응한다. 실패하면 나락으로 떨어질 거라는 불안감도 있다.


“헬로디자인의 이진우입니다. 하루 늦게 작품을 출품하셨는데, 이 때문인지 갤러리 작품 도록에도 <디오게네스>가 게재되어있지 않습니다. 일부에선 작품에 담은 의미를 극대화하기 위한 행위라고 해석하였는데, 어떤 이유입니까.”

“그리 해석해주신 건 감사하지만, 우연입니다. 단체전 오픈식에 초대되어 간 상황에 전시 작가님들이 갤러리에 제 두 번째 작품을 전시하자는 의사를 표했고, 갤러리 측에서 승낙해주신 겁니다.”

“그렇다면 작품은 미리 완성되어 있었다는 건가요?”

“아뇨, 그날 만들었습니다.”


갑작스레 분위기가 바뀌었다. 뭔가 싸한 분위기.


멀리에서 박정인이 흐뭇하게 웃고, 옆의 갤러리 관장이라는 사람이 손뼉을 치며 자지러지게 웃는다.


말실수했나. 고민할 새도 없이 기자는 질문을 이어나갔다.


“그날이라 하심은 단체전 오픈 당일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네-에.”


대답에 힘이 안 들어갔다. 기자들의 눈이 부리부리하게 밝혀져 날 쳐다본다. 꼭 눈으로 빔이라도 쏠 것 같다.


타다다닥-


아까와 비교해도 더 빠른 타건 소리가 회견장에 울려 퍼졌다. 플래시도 다시 터지고, 공중을 가로질러 카메라가 움직이고.


정신을 못 차리겠다. 누가 여기서 꺼내줬으면.



*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메드베데프 스튜디오


스마트폰을 두들기던 이리나가 흥미로운 것을 발견하곤 아나스타샤를 불렀다.


“아냐, 이것 봐. 한국의 꼬맹이가 그린 그림이라는데?”


거대 캔버스 너머에서 작업하던 아나스타샤가 왁! 외쳤다.


“꼬맹이?!”

“너 말고, 한국 꼬맹이.”


아나스타샤는 물감이 덕지덕지 묻은 상태로 이리나를 향해 걸어갔다. 뚝- 뚝- 유화 기름이 떨어지는 모양새에 이리나가 질겁했다.


“아냐, 조심해! 튀잖아.”

“묻으면 씻어.”


시니컬한 아나스타샤의 대답에 이리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게 어딜 봐서 메드베데프가의 아가씨야.”


아나스타샤는 볼이 간지러웠는지 손등으로 볼을 훔쳤다. 하지만 덕지덕지 묻은 물감은 결국 고운 볼살에도 흔적을 남기고 말았다.


이리나가 스마트폰의 화면을 보여주며 말했다.


“한국의 꼬마래. 아직 17살이라는데? 한국에 피카소가 나타났다고 떠들썩하대.”


눈을 가늘게 뜨고 기사를 살피던 아나스타샤가 말했다.


“뭐야, <디오게네스>? 어떤 멍청이가 저런 그림을 그려?”

“왜 그렇게 말해. 17살 치고는 대단하잖아.”

“하! 그냥 있어 보이는 거겠지. 원래 신이든 위인이든 그럴듯하게 그리면, 있어 보여. 저런 게 피카소? 웃기는 소리 말라 그래.”


아나스타샤는 어깨를 으쓱이곤 다시 작업하러 돌아가려 했지만, 이리나의 말이 발을 붙잡았았다.


“하지만 여기 그레고리 도브리긴의 평가는 엄청나. ‘그야말로 새 시대의 피카소!’ 이러는데?”

“뭐? 그 인간이?”


아나스타샤는 본인이 내는 작품마다 혹평을 일삼는 그레고리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 인간이 호평하는 작가도 있다고?”

“아냐, 그레고리라고 다 혹평만 하는 건 아니야.”

“하지만 내 작품에는 혹평만 했다고!”

“아니야, 옛날에는-.”

“몰라! 기억 안 나!”


아나스타샤와 그레고리는 유독 상성이 안 좋았다. 그 때문에 아나스타샤가 화를 내는 것이 한두 번도 아니기에 이리나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아무튼, 제법 평이 좋아. 여기 밑에 줄줄이 쓰인 거 보면 온갖 해석이 있어.”

“줘 봐.”

“아, 안돼! 아-! 아냐! 그거 얼마 전에 새로 산 거란 말야···.”

“요즘 제품은 방수도 될 거야.”

“방수가 문제가 아니잖아······.”


물감이 묻은 손으로 이리나의 핸드폰을 빼앗은 아나스타샤가 눈을 가늘게 뜨고 텍스트를 눈대중으로 읽었다.


수십 줄에 달하면서, 찬사로 시작해 찬사로 끝나는 그레고리의 감평에 아나스타샤가 눈살을 찌푸렸다.


“이 미친 인간이 고작 17살 동양인의 작품에 호평한다고? 안 되겠어.”

“맞아, 안 되겠어. 아냐, 내 폰은 네가 사줘야 해. 새 걸로.”

“한국으로 가자.”

“내 말 듣고 있어?”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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