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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부 꼰대 과장의 이세계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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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천세은
작품등록일 :
2023.01.15 15:52
최근연재일 :
2024.03.15 10:00
연재수 :
400 회
조회수 :
15,966
추천수 :
1,480
글자수 :
2,061,634

작성
24.02.18 10:00
조회
11
추천
3
글자
11쪽

374. 가출

DUMMY

은하는 시선을 돌려 이번엔 은아를 바라보았다. 왜 이렇게 식탐이 많아진 건지, 쉴 새 없이 음식을 섭취하는 은아.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은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언니, 너무 먹는 거 아니야?”

“또, 또, 또 그런다. 있을 때 많이 먹어야 한다고.”


그녀를 위해 한 마디 던진 은하였지만, 돌아오는 건 핀잔뿐. 다시금 은하의 입술이 삐쭉 튀어나왔다.

이쯤 되면 그만둘 법도 한데, 그녀는 여전히 눈동자를 돌리며 두 사람의 상태를 살폈다. 호기심도 많고, 그만큼 사랑도 많이 받고 싶어 하는 막내 은하. 그녀는 관심이 필요했다. 다른 이의 관심이 아닌 가족들의 관심이.

관심을 받고 싶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던져보았지만, 눈앞의 두 여자는 묵묵히 식사만을 이어가고 있었다. 아무리 쳐다보아도 관심은커녕 대꾸도 해주지 않는 두 사람. 끝내 화가 잔뜩 나버린 은하는, 어울리지 않게 인상까지 찌푸려가며 입술을 떼었다.


“그런데, 왜 나한테는 아무것도 안 물어봐?”


그 짜증 가득한 목소리에, 순간, 은아와 여희가 부지런히 움직이던 손을 멈췄다.


“은하야, 왜 그래? 벌써 사춘기야? 아직 사춘기 올 때가 아닌데.”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여희. 그녀는 머릿속이 복잡한 것인지, 이내 그녀를 향한 시선까지 거두었다. 그리고,


“밥이나 먹어. 안 먹어? 그럼 내가 먹을까?”


여전히 식탐만 부리는 은아. 부지런히 움직였던 그녀의 손은, 은하가 짜증을 부린 이후로 더욱 빠르게 움직였다.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꿈을 꿔가면서 모두의 미래를 알려주면 뭘 하나. 이렇게 찬밥보다도 못한 대우를 받는데. 감정이 상할대로 상한 은하는, 그대로 식탁을 박차고 일어섰다.


“현은하! 누가 밥상머리 앞에서 그런 행동을 하래! 빨리 안 앉아?!”


여희의 엄포에도 다시 자리에 앉지 않은 은하. 그녀는 곧바로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걸어가는 내내 생각했다. 자신에 대한 사랑이 남아있다면, 곧바로 달려와 자신에게 잔소리를 퍼부을 것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그녀가 방에 들어가 문을 닫는 그 순간까지 아무도 그녀에게 달려오지 않았다는 것. 은하는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 외로웠다. 가족이 모두 같은 자리에 있어도, 서로를 바라보지 않고 오직 자신의 머릿속에 처박혀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는다. 가슴속에서 눈물이 솟아났다. 자신이 불쌍하고, 또 가족들이 불쌍해서.

눈물을 흘리던 와중, 그녀는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주섬주섬 가방을 싸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간식을 넣고, 애착 곰돌이 인형도 넣고, 칫솔과 치약을 챙겼다. 이제 그녀에게 남은 건 단 한 가지, 바로 가출. 집을 나가는 걸 즐기진 않지만, 이번엔 꼭 나가야만 했다. 자신이 아닌, 가족 모두를 위해서.

마음을 정한 그녀는, 방 문을 열고 당당하게 현관으로 걸어갔다. 그렇게 대놓고 가출을 하는데도 두 사람은 요지부동이다. 거대한 집 안에 쿵쾅거리는 발걸음이 이어졌지만,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

무관심이라는 배웅을 받으며 현관을 나선 은하. 그녀는 망설임 없이 발걸음을 이어갔다. 자신의 머릿속에 가득 차 있는 ‘그’ 사람이 있는 곳으로.




“그래서 가출을 했다고?”


어이가 없다. 아니 아직 10살도 안 된 애가 가출을 했다고? 도대체 가정교육이 어떻게 되었기에 애가 벌써 가출을 실행해?


“웅! 이참에 가족들 버릇을 고쳐야 한다고!”

“뭐? 버릇?”


너무나 어이가 없어서 실소가 터져나왔다. 아니, 도대체 누가 누구의 버릇을 고친다는 건지.


“뭐가 그렇게 바쁜지 밥상 앞에서 묵묵히 밥만 먹는 게 말이 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눠야지! 유일하게 모두 모이는 자리인데, 밥만 처먹어! 그냥!”

“어허! 어디 처먹는다는 단어를 써! 떽!”


내 단호한 말투에 은하는 깜짝 놀라 날 바라보았다.


“우와! 엄마도 안 하는 걸 오빠가 하네. 역시 내 눈을 틀리지 않았어.”


나에게 혼이 났지만, 오히려 이 상황을 칭찬받은 것만큼이나 좋아하는 은하.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난 모르겠다. 우선 방에다 짐 가져다 놔. 풀지는 말고. 내일 돌아갈 거니까.”

“오호! 오빠랑 같은 방 쓰는 건가요? 개꿀!!!”


이런 그녀의 모습을 보니, 예전 여희의 모습이 떠올랐다. 누가 여희의 딸 아니랄까, 이렇게 똑같은 반응을 보이는 거야.


“네가 방 써. 난 여기 거실에 있을 거니까.”


그녀가 귀찮아진 나는, 그대로 소파로 걸어가 털썩 몸을 던졌다. 그런데,


“오빠가 여기 있으면 나도 여기 있을 거예요!”


곧바로 내 곁에 다가와 앉아버리는 은하. 몸 안에 여희의 피가 흐르는 게 아닌, 그냥 여희mk.2다. 이건 그냥 여희야, 여희.


“넌 왜 그렇게 하는 행동이 네 엄마를 닮았냐?”

“어? 오빠가 우리 엄마를 알아? 어떻게?”


순간 나도 모르게 꺼내서는 안 될 말을 꺼내고 말았다. 이거 어떻게 넘어가지?


“그건, 왜 이렇게 고집불통이냐는 말을 돌려서 말한 거란다, 은하 공주.”


내가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던 그때, 시스가 때마침 목소리를 올렸다. 그녀의 이야기 덕분에 피어나는 의심을 거둔 은하. 이 작은 말실수 때문에, 십년감수했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럼 어머님은 어디서 주무시나요? 큰 방? 작은 방? 아니면 설마 같이???!!”


은하의 눈동자가 똥그래졌다. 아니, 이 쪼그만한 녀석이 도대체 무슨 생각까지 하는 거야?!


“어머니는 큰 방, 넌 작은 방. 난 거실. 자! 해산!”


난 그대로 은하를 집어서 작은 방의 침대로 던져버렸다. 그렇게 찾아온 스위트룸의 평화. 그때까지만 해도 그런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오빠 큰일 났어.”


다시 은하가 거실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것도 무척이나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서.


“왜? 또!”

“나 잠옷을 안 가지고 왔음.”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아니, 잠옷을 안 가지고 온 게 무슨 문제인데 저렇게 심각한 거야?


“잠옷이 왜?!”

“그거 안 입으면 나 잠 못 잔단 말이야.”


기가 찰 노릇이다. 가출을 했으면 그냥 상황에 맞게 행동할 것이지, 뭐? 잠옷이 없어서 잠을 못 자?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그래서 나보고 뭐? 가지고 오라고?”

“웅!”


그녀의 당돌함에 어이가 너무 놀라 가출을 해버렸다. 뭐 이런 녀석이 다 있지? 하긴, 생각해 보니, 이런 여자가 한 명 더 있었지. 목숨을 구해주니, 복수까지 해달라고 한 개념 없는 여자가.


“그러지 말고, 그냥 집으로 돌아가자. 부모님들이 걱정하신다.”

“걱정은 무슨 걱정! 걱정을 했으면 당장 날 찾으려고 여기저기 온 동네 소문을...”

【긴급 뉴스입니다! 오늘 저녁 8시경, 현과장 대통령의 차녀, 은하 양이 집에서 사라졌습니다!】


뉴스에서 흘러나온 자신의 소식에, 그만 멈춰버린 은하. 그녀는 두 눈만 깜빡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이제, 어쩌지 오빠?”




“아니, 애가 사라졌는데 두 사람은 뭘 한 겁니까!”


현과장은 여희와 은아를 세워놓고 큰 소리로 호통쳤다. 생전 처음 듣는 호통소리에 안절부절못하는 두 여자. 언제나 마음씨 좋은 남편, 그리고 아빠로 알았던 두 사람은 눈물이 쏙 빠질 만큼 현과장에게 혼이 나고야 말았다.


“인근 CCTV 싹 다 수색해서 동선 파악해! 어서!”

“예! 각하!”


현과장의 분노 섞인 명령을 들은 수행비서는, 그대로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모두 이런 현과장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18년 만이었다.

18년 전, 자신의 몸에서 오리지널 현과장이 사라졌을 때 무척이나 당황했었던 현과장. 그는 사방팔방으로 오리지널의 흔적을 찾았지만, 작은 단서도 찾지 못했었다. 그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날의 허무함과 허탈감. 그리고 미안함과 슬픔을.

은하가 사라지자, 그날의 감정들이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감당하기 힘든 그 감정들이 말이다.


“빨리 찾아요! 빨리! 무슨 일이 있어도! 빨리! 당장!”


현과장은 다시 한번 주변 사람들에게 호통을 쳤다. 그러자, 나직이 입을 여는 은아. 그는 여희의 눈치를 살짝 보더니, 이내 현과장의 앞에 나섰다.


“아빠... 그래도 은하가 경우가 밝은 아이인데...”

“그 경우가 밝은 아이가 갑자기 사라졌잖아! 언니라는 애가 그걸 몰라?”

“모르긴 뭘 몰라! 내가 키운 아이인데!”


현과장의 윽박에 화가 나 버린 것일까. 은아도 그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은아야! 아빠한테 그게...”

“엄마도 마찬가지야! 아니, 세상 어느 부모가 딸년에게 아이를 맡겨? 그것도 이제 막 젓가락질 시작한 딸년한테!”


은아의 음성에 아무런 대답도 꺼내지 못하는 현과장과 여희. 집에 몰려온 경찰도, 현과장과 여희의 측근도 그저 고개만을 숙인 채 묵묵히 서 있었다.


“책임을 질 수 없으면, 낳지 말던가!”

“은아야!”


여희가 빠르게 은아의 입을 막으려 했지만, 이미 은아의 목소리가 사방에 퍼져버린 상황. 현과장의 가슴 깊숙이 박혀버린 그 목소리는, 그의 마음을 떠나지 못하고 여기저기로 튕겨 나갔다.

그렇게 서로의 마음에 상처만 입힌 상태로 맞이하게 된 은하 실종의 첫날밤. 가족 안에 존재했던 감정의 앙금은 전부 풀리지 않은 채, 아직 그들 안 어딘가에 남아있었다.




“그러니까, 집에...”

“싫어! 안 가!”


벌써 새벽이 다가오는데, 은하는 요지부동이다. 고집이 세도 너무 센 거 아니야? 아니 내 말은 왜 들으려 하지도 않는 거야?


“은하야, 내 말을 끝까지 듣고...”

“싫어! 안 들어!”


말이 안 통한다. 눈앞의 이 꼬마는 나와 다른 세상에 사는 동물인가? 왜 이렇게 대화가 되질 않는 거지?


“이미 경찰들이 주변 CCTV 확인하고 이 근처까지 왔을 거라고. 그러니까,”

“그러니까 빨리 도망가자는 말이지? 그렇지?”


자신의 마음대로 이야기의 내용을 해석하는 것도 참 일품이다. 어쩜 사람이 이럴 수 있는 걸까. 이렇게 사람의 속을 긁을 수 있느냐는 말이다.


“너 돌아가. 그냥 돌아가. 너랑 이렇게 노닥거릴 시간 없다. 난 내일, 아니 오늘 할 일 많아.”

“할 일은 무슨. 할 일이 많은 건 어머님이지 오빠가 아니잖아.”


맞는 말을 하니까, 뭐라 할 수도 없고. 진짜 이 녀석 사람 잘 긁네. 잘 긁어.


“아무튼! 가라고! 좀! 가! 널 만나도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

“일이란 걸 하지도 않고 되는 일이 없다는 건 좀 아닌 거 같은데요, 오빠님.”

“그러니까 좀 가라고. 나 일 좀 해보자.”

“해. 난 가만히 있을 테니까.”


그녀는 그대로 소파에 벌러덩 누워버렸다. 그러고는 이내 들려오는 새근새근 한 숨소리. 나와의 언쟁이 피곤했던 것일까. 은하는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참, 얘는 속도 편하네. 그렇게 잠옷 없으면 못 잔다고 하더니만.”


그래도 어린애를 소파에서 재울 수는 없는 법. 나는 그녀를 안고 방 안에 들어가 침대에 눕혔다.

그리고 한 시간쯤 지났을까. 거실에 앉아 동이 트는 걸 바라보고 있던 그때, 내 귓가로 작은 소음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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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4. 가출 24.02.18 12 3 11쪽
373 373. 그들의 현실 - 4 24.02.17 14 3 11쪽
372 372. 그들의 현실 - 3 24.02.16 13 3 11쪽
371 371. 그들의 현실 - 2 24.02.15 18 3 11쪽
370 370. 그들의 현실 24.02.14 12 3 11쪽
369 369. 암살 시도 - 2 24.02.13 14 3 11쪽
368 368. 암살 시도 24.02.12 10 3 11쪽
367 367. 미래를 보는 아이 - 2 24.02.11 13 3 12쪽
366 366. 미래를 보는 아이 24.02.10 14 3 12쪽
365 365. 등장! 골드 가문! - 2 24.02.09 10 3 11쪽
364 364. 등장! 골드 가문! 24.02.08 14 3 11쪽
363 363. 일상으로 침투 - 2 24.02.07 11 3 11쪽
362 362. 일상으로 침투 24.02.06 13 4 12쪽
361 361. 일대종사 +1 24.02.05 18 4 12쪽
360 360. 권력자의 딸 - 2 24.02.04 17 4 12쪽
359 359. 권력자의 딸 24.02.03 16 4 11쪽
358 358. 빌런, 아니 표절 대첩 24.02.02 13 4 12쪽
357 357. 중경 그리고 삼림 24.02.01 13 4 12쪽
356 356. 중성시대 - 2 24.01.31 12 4 12쪽
355 355. 빌런 24.01.30 14 4 11쪽
354 354. 중성시대 24.01.29 14 4 12쪽
353 353. 여긴 누구? 나는 어디? - 3 24.01.28 17 4 12쪽
352 352. 여긴 누구? 나는 어디? - 2 24.01.27 30 5 12쪽
351 351. 여긴 누구? 나는 어디? - 1 24.01.26 14 4 12쪽
350 350. 결전 그리고... - 3 24.01.25 15 4 11쪽
349 349. 결전 그리고... - 2 24.01.24 12 4 11쪽
348 348. 결전 그리고 ... +1 24.01.23 16 4 11쪽
347 347. 업데이트 - 2 24.01.22 11 4 12쪽
346 346. 업데이트 - 1 24.01.21 15 4 11쪽
345 345. 내 여자... 입니까? 24.01.20 22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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