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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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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창작공장
작품등록일 :
2021.11.22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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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23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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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2.01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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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시대 시즌1 - 13화

DUMMY

김인국의 표정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침을 꿀꺽 삼킨 강철수는 담담하고 단단한 그 표정에서 위안을 얻었다. 강철수의 말이 이어졌다.


“돌아가신 부모님께서는 제게 철수라는 이름을 주셨습니다. 선생님께서도 아실지 모르겠지만 저와 형님은 용산에서 형제 상회라는 쌀가게를 했습니다.”

”들어 본 적이 있습니다. 쌀 원조도 형제 상회에서 맡으면서 다들 쌀만은 그곳에서 산다는 소문 말입니다. 미국의 쌀 원조를 받는 가게가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의 가게인 줄은 몰랐습니다. 하지만 그래서 가능했을 것 같기도 하군요. 쌀값이 60배 정도 오르는 동안에도 거의 값을 올리지 않은 일 말입니다.“


김인국은 어떻게 형제 상회만 값을 올리지 않았는지 알고 싶어 했다. 강철수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 순간 어떤 예감이 들었다. 모든 것을 이야기할 수는 없겠다는 예감. 그것은 본능이 보내는 경고였다. 강철수는 그 본능이 가로막은 팻말 앞에서 우습게도 강태수와 같은 선택을 했다.


”제게는 형님이 두 분 계시는데, 큰형님께서 고향에서 쌀농사를 하십니다. 그래서 저희가 먹을 것들만 남겨 두고 싼값에 내놓을 수 있었습니다.“


김인국이 날카로운 눈으로 강철수를 훑었다. 강철수는 더욱 꿋꿋이 김인국을 바라보았다. 김인국은 고개를 딱 한 번 끄덕였다.


“흠. 그렇군요. 형제 상회라 이름 붙일 정도면 형제의 우애가 좋았을 것 같은데, 어찌하여 이렇게 틀어진 것입니까?“

“시작은 작은형님께서 미군정과 연을 가졌을 때부터였습니다. 형님께서는 제 신념을 탐탁지 않아 하셨고, 저는 형님께서 미군과 가까이하시는 게 옳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오로지 스스로의 이익만을 좇는 존재니까요.”

“철수 군이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어 기쁩니다. 그동안 미군과 경찰들을 피해 다니느라 고생 많았습니다. 오늘부터는 이 집에서 푹 쉬세요. 이제부터 이곳이 철수 군의 집입니다.”


김인국은 강철수를 데리고 다니며 집 안을 구경시켜 주었다.


끼익.


“이곳이 철수 군이 쓸 방입니다.”


넓지도, 좁지도 않은 방은 아늑했고, 원목 가구들이 방 안에 가득했다.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은 흔적들을 가구를 닦고 정리한 손길이 상쇄하고 있었다.


“내 아들이 지내던 방이지요.”


김인국의 목소리에서 쓸쓸함이 묻어났다. 강철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우리 아들은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죽었습니다.”


김인국은 오늘 저녁 일정을 이야기하는 투로 다시 입을 열었다.


“수많은 아들들이, 그리고 딸들이 죽었습니다. 나는 그 비극이 다시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 이념을 선택했습니다. 철수 군이 이 길을 선택한 동기 역시 가볍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강철수가 김인국의 말을 되새기는 동안 김인국은 문을 닫고 사라졌다.


저벅, 저벅.


발걸음 소리가 서서히 멀어지고 나서야 강철수는 의자에 앉을 수 있었다. 누군가의 맞춤으로 만든 듯한 원목은 그에게 불편함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강철수는 그 의자에 오래도록 앉아 생각했다.


‘나는 이 이념을 위해 목숨을 버릴 수 있는가? 나에게는 공산주의라는 것이, 사회주의라는 것이 그저 내 정념인 것은 아닌가?


강철수는 처음 이념을 접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왜 그것이 자신을 도망자 신세로 만들고, 이곳에 데리고 왔는지에 대해서까지도.


한참이 지나 강철수는 결론을 내렸다.


’평등한 세상을 위해 목숨을 던질 것이다.‘


*


얼마 지나지 않아 11월, 조선공산당, 남조선신민당 및 조선인민당이 연합한 남조선노동당이 창당 소식을 알렸다. 9월부터 준비되었던 3당 합당의 결과였다. 하지만 여운형은 10월에 사회노동당을 따로 창당했다.

김인국은 그 사실에 주목했다. 김인국의 집에 드물게 사람들이 모였다. 그들은 모두 김인국에게 현 상황을 논의하러 온 자들이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김인국이 낮게 침음했다.


“3당 합당이라는 중요한 목적에 지도자와 다름없는 여운형과 백남운이 빠졌으니···.”

“김 선생님, 우리는 이 일을 어찌 받아들여야 한단 말입니까?”


김인국은 미간만 찌푸릴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군중에 가까운 인원들이 모였으나 집 안은 지나칠 정도로 조용했다. 회동 내내 김인국의 맞은편에 서서 침묵하던 강철수가 입을 열었다.


“여운형 선생과 만남을 가져 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강철수의 말은 커다란 침묵을 불러왔다. 김인국이 그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의준이 네가 생각해 둔 방법이 있는 게냐.”


김인국은 강철수를 ’의준‘이라 칭했다. 자리에 모여 있던 이들 중 대개는 놀라지 않았으나, 몇몇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수군거렸다.

강철수는 그 틈에 숨어 용케 혼란을 감추었다. 김인국이 그에게 아들 같다는 말은 심심찮게 던졌으나, 줄곧 ’철수‘라 불러왔기 때문이었다.


“의준? 의준이라 하면은?”

“김 선생의 아들 이름 아닌가?”

“하지만 김 선생의 아들은···.”


김인국은 아주 중요한 일이 아니면 누구에게도 쉽사리 문을 열어 주지 않았다.

강철수에게 오늘 회담은 데뷔탕트와 다름없었다. 김인국은 강철수를 직접 호명함으로써 초석을 만든 것이다. 강철수는 바로 그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어느새 소년티를 완전히 벗고 청년이 돼 있었다.


“여운형 선생의 목적은 좌우 합작이었으나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이유가 뭐겠습니까. 바로 남로당의 박헌영 선생 때문입니다.”

“아니, 저런!”


슥.


김인국은 팔을 들어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잠재웠다. 강철수는 다시 말을 이었다.


“박헌영 선생이 북한에 다녀오기 전에는 합작 회담이 순조로웠다는 사실은 여러분 모두 아시지 않습니까?”


강철수의 힘 있는 목소리가 좌중을 압도했다.


“여운형 선생은 좌우 3당 합당을 위해 딸들을 박헌영 선생이 있는 북조선에 보내기까지 했습니다. 사람들은 몽양 선생이 딸들을 도망시켰다고 비난했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몽양 선생은 피붙이들을 박헌영에게 인질로 내준 것입니다. 자신이 허튼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도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모두가 숨을 죽이고 강철수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김인국의 얼굴에 드물게 흐뭇함이 번져 가고 있는데도 모두가 보지 못했을 만큼 강철수에게 시선이 쏠려 있었다.


“봄에 있던 정판사사건은 또 어떻고요! 그 일로 인해 우리들 전체가 욕을 먹고 있습니다! 위조지폐 발행이라니, 말이 됩니까? 조선공산당에서 무려 여섯 차례나 걸쳐 1천 200만 원이라는 돈을 발행했습니다. 이 돈을 활동 자금으로 썼습니까? 자기들 배 불리는 데에만 사용했습니다! 그러고는 혼자 월북하지 않았습니까!”


김인국은 강철수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살피며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어느새 강철수의 말에 몰입하고 있었다.


’이렇게나 달변가인 줄은 몰랐군.‘


강철수는 김인국의 시선을 느끼고 눈짓을 건넸다.


끄덕.


김인국이 얕게 고갯짓하자마자 강철수는 결연한 얼굴로 말을 마쳤다.


“이러한 상황에서 몽양 선생은 그 누구보다 중요한 위치입니다.”

“맞는 말이다. 그래, 만약 몽양 선생을 만났다고 치자. 그 후에는 어떻게 설득할 것이냐?”

“설득하지 않을 것입니다.”


강철수의 눈이 매섭게 빛났다.


“그저 보여 드릴 것입니다.”


*


모자를 깊게 눌러 쓴 강철수가 붉은 벽돌집의 푸른 철문을 두드렸다.


쿵, 쿵.


“누구요!”

“몽양 선생을 뵈러 왔습니다.”

“잘못 찾아오셨소.”


강철수는 주변을 둘러본 후 문틈으로 단단히 밀봉된 편지 봉투를 밀어 넣었다.


“용산 김 선생님께서 전하라 하신 말씀입니다.”


저벅, 저벅.


철문 너머에서 무거운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찌익!


거칠게 종이를 찢은 사내가 금방 집 안으로 다시 돌아갔다. 그림자가 다시 멀어지는 것을 확인한 강철수는 조금 물러나 문 앞에 섰다.


타다닥!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가 달려왔다.


끼긱!

철컹!


“들어오시오.”


강철수는 모자를 손으로 누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푸른색 대문을 지나자 얼마 지나지 않아 붉은 벽돌집 앞에 뒷짐을 지고 서 있는 여운형이 보였다. 강철수는 몽양이 자신의 옷차림을 뜯어보고 있음을 눈치 챘다. 강철수는 곤색의 정장을 입고 있었다.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선생님.”


여운형을 호위하던 사내가 강철수를 노려볼 만큼 자칫 방자하게 들릴 수 있는 언행이었으나, 여운형은 호탕하게 웃었다.


“패기가 있는 청년이로군. 다들 나만 보면 억지로 영광이라 하는 것도 지겨운 참이었는데, 자네 같은 청년은 처음이야. 그래, 무슨 일로 이 보잘것없는 몽양을 찾았나?”

“시간이 많지 않은 분께 실례를 할 수는 없으니,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당장 거처를 옮기셔야 합니다.”

“내 거처를 말인가?”


그때 근처에서 외침이 울렸다.


“구두 닦습니다! 구두요!”


저벅.


강철수는 여운형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간 뒤에 더욱 목소리를 죽였다.


“오는 길에 본 신문장수가 지금은 선생님 집 앞에서 구두를 닦고 있습니다. 그뿐입니까. 제가 잠시 댁 앞에 서 있는 동안 본 잡상인들의 수만 여섯입니다.”


여유로운 관찰자의 눈으로 강철수를 바라보던 여운형의 눈빛이 순식간에 날카로워졌다. 몽양은 경계심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자네 무슨 말을 하려는 거지?”

”이미 편지 내용은 확인하셨을 줄로 압니다. 일주일 전에도, 어제도, 이틀 전에도 전갈을 보낸 바가 있습니다.“


강철수는 미간을 좁히는 여운형에게 한 점의 적의도 없이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다리가 부러진 의자 위에 앉아 축배를 듭시다.‘“


휘잉.


매서운 겨울바람이 둘 사이를 한참 휩쓸고 나서야 여운형은 집 안으로 강철수를 안내했다. 여운형의 집은 어딘가 휑한 느낌을 주었다. 강철수는 몽양의 손짓을 따라 소파에 앉았다.


”용산의 김 선생에게 자네 같은 수족이 있다는 사실은 들어 본 바가 없는데. 자네는 누구지?“

”의준이라는 이름을 씁니다.“

”의준? 좋은 이름이군. 하지만 나는 김 선생의 아들이 살아 돌아왔다는 소식 역시 들은 바가 없다네.“


여운형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이야기했으나 말에 뼈가 있었다.


’역시 알고 있었군.‘


툭.


강철수는 모자를 벗어 테이블에 내려두고 다시 입을 열었다.


”주변을 모두 물러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강철수의 말에 여운형의 등 뒤에 서 있던 장정 둘이 발끈했다.


”선생님!“

”각자 자리에 있어.“

”선생님! 이 자가 누구인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괜찮다. 자리를 지켜라.“


장정들이 강철수를 노려보며 한 마디를 날린 뒤 몸을 돌렸다.


”허튼 짓 할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명심하겠습니다.“


주변에서 기척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역시 여운형이 믿고 몸을 맡기는 사람들 다웠다. 하지만 그에 비해 저택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지친 기색을 갈무리하지 못하고 있었다. 강철수는 여운형의 눈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승만은 지난 6월 전북 정읍에서 통일 수립이 어려우니 남조선만의 정부를 수립하자는 연설을 했습니다. 이승만의 타겟은 분명 선생님이십니다. 친일, 친미 경찰들은 이승만의 편입니다.“

”자네.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야.“

”선생님. 선생님께서도 그들이 침묵으로 동의하고 있다는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 선생님을 비롯한 모두가 며칠 동안 잠을 이루지 못하셨다는 사실을 압니다. 지금도 수없이 암살 위협에 시달리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래도 나는 떠날 수 없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방법을 말씀드리고자 결례를 무릅쓰고 왔습니다.“

”방법?“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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