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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시대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창작공장
작품등록일 :
2021.11.22 10:37
최근연재일 :
2022.03.23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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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8,619

작성
21.12.01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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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격동의 시대 시즌1 - 12화

DUMMY

강철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이 집은... 독립군과 공산주의자를 가두고 죽이기 위한 집이다.”

“뭐, 뭐라고요! 형님께서는 지금까지 그런 일을 벌이신 겁니까?”


강철수의 두 눈에서 불꽃이 번뜩였다.

강태수의 말은 꼼짝없이 공산주의자들을 잡아 죽이겠다는 것처럼 들렸다.


“내가 아니다. 이 집의 원래 주인이 누구인지 아느냐?”

“누구입니까?”

“배경석의 집이다.”

“...!”


강태수 대신 쌀가게에 나갔을 때 국밥집 오 사장이 이야기했던 말들을 기억해 낸 강철수의 눈이 점점 커졌다.


‘배경석 그놈 집이랑 명동상가 모두 미군에 넘어갔다고 하던데, 혹시 뭔 일 있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배경석이요?’

‘철수 자네도 들어본 적 있지? 저 명동상가 말이여. 거기 주인이 요즘 안 보인다더구만. 뭔가 묘~하게 이상하단 말이지···. 돈은 다 나눠 주고, 지는 사라지고···. 어디서 확 뒈진 거 아녀?’


강철수가 기억을 떨치려는 듯 거칠게 고개를 털었다.


“배경석이 사라졌다고 하던데, 설마 배경석도 형님이 죽인 겁니까?”

“그래. 내가 죽였다.”

“아니라고 해 주십시오!”

“네가 명동상가에서 돈을 받지 못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

“그래서 내가 손을 썼어. 배경석 그놈은 이곳에서 독립군들을 수도 없이 죽이고, 일본에 팔아넘겼다. 그러면서 부를 쌓았지. 광복 전에 말이야. 광복 후에는 어떻게 됐는지 아느냐?”


철컹!


강태수가 녹슨 철창에 등을 기댔다.


“미국에 붙었다. 미국에 붙어서 다시 우리 민족들을 핍박했지. 죽어도 싼 놈이었어.”

“하지만 형님이 그걸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그럼 어떻게 했어야 했는지 이야기해 봐라.”


강철수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핏대를 세워 가며 소리쳤다.


“배경석이 아무리 친일파였어도 공정한 기회를 줬어야 합니다! 인민재판을 거쳤어야 했단 말입니다! 형님 맘대로 하시는 것은 그저 독단적인 살인일 뿐이라고요!”

“그럼 이놈이 한 것은 무엇이지? 이놈이 행한 일을 똑같이 했을 뿐인데 왜 나는 네게 비난받아야 하는지 모르겠구나. 철수야, 저기 저 문이 보이느냐?”


강태수가 반쯤 열린 철문을 가리켰다.


“소각장이다.”


강철수는 턱이 아릴 정도로 이를 악물었다. 감옥과 소각장. 이 둘의 상관관계는 명백했다. 반쯤 열린 문틈 사이로 타다 남은 천 조각이 보였다. 강철수는 그을음이 묻은 옷 조각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일국회··· 아니지, 이제는 ‘향미회(向美會)’겠구나. 그들의 다음 목표는 공산주의자들이었다. 물밑 작업이 거의 완성되고 있었어. 그래서 나는 줄곧 네가 원하던 대로 했다. 배경석, 이준철, 박창수에게 핍박받은 자들을 찾아서 재산을 나눠 주었고, 너처럼 임금을 받지 못했던 노동자들까지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게 했다. 한두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나 또한 쉬운 일이었을 것 같으냐.”

“하지만!”


철컹!


강태수가 철창에서 등을 떼고 강철수에게 다가갔다.


“내가 배경석을 죽이지 않았다면 네가 저곳에 들어갈 수도 있었어! 말하지 않았느냐! 이 형은 너까지 잃을 수는 없다! 네가, 그리고 너의 사상이 원하는 친일 청산이 이런 것 아니었느냐!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야!”

“형님은 틀렸습니다. 방법도! 목적도! 전부 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것도 다 너를 잃지 않기 위한 일이었다. 배경석은 공산주의자들을 하나, 둘 잡아들여 죽였단 말이다!"


강태수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리고 그는 오래도록 동생을 떠올릴 때마다 생각했던 말을 입 밖으로 꺼냈다.


“철수야. 너의 그 이념은 틀렸다. 내가 아니었다면, 넌 이곳에서 죽고 말았을 거다.”

“형님, 저는 형님의 말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 다시는 저를 찾지 마십시오!”

“내가 틀렸다면, 네 그 이념도 틀리고 말 것이다.”


강철수는 가파른 계단을 쉬지도 않고 뛰어 올라갔고, 강태수는 철수의 뒤를 쫓지 못했다.

그것이 강태수가 동생과 나눈 마지막 대화였다.


*


강태수는 또다시 사라진 동생을 수소문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강철수는 증발한 것처럼 사라졌다. 그 사이 첫 번째 광복절이 다가왔다.


“미스터 강. 이건 선물이야.”

“선물?”

“응, 우리 미국이 조선에 주는 선물. 광복 1주년을 축하해.”


알렉스가 건넨 것은 총 열 장의 엽서였다. 우리나라 최초로 제작된 우편 엽서를 강태수에게 선물한 것이었다.


“그림이 마음에 드는군.”


강태수가 보기 드문 얼굴로 환히 웃었다. 강태수가 마음에 들어 한 엽서에는 태극기를 들고, 일장기를 밟으며 행진하는 군중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역시 미스터 강이 좋아할 줄 알았어.”

“그런데 이건 어떻게 쓰는 거야?”

“레터. 편지지야. 우표도 조금 가져왔어.”


알렉스는 한반도 지도와 비둘기가 그려진 기념 우표 몇 장을 강태수에게 건넸다. 강태수는 엽서와 우표를 손에 든 채 번갈아 그림들을 보았다.


“정말 광복이 담겨 있는 것 같아. 여기 끊긴 쇠사슬 말이야.”


강태수가 바닥에 널부러진 사슬 조각들을 가리켰다.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네.”

“편지를 쓸 주소가 생겼으면 좋겠군.”


강태수의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강철수를 생각하는 것이다. 강태수가 머무르고 있는 곳은 쌀을 발견한 야마다의 별장도, 지하 감옥을 숨기고 있던 배경석의 집도 아닌 평범한 주택이었다. 두 남자는 거실에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나저나 내 동생에 대한 소문은 들은 게 없을까? 알렉스?”


알렉스가 고개를 저었다.


“이번에는 소식조차 들을 수가 없어. 아마 가명을 사용하고 있는 것 같아.”

“그래도 꼭 좀 부탁할게.”

“흐음. 알겠어. 최대한 찾아보도록 할게.”


알렉스가 손을 들어 턱을 매만졌다.


“안 그래도 요즘 ‘그들’의 움직임이 평범하지 않다는 보고가 계속 올라오고 있어. 이렇게 가다가는 일이 좀 생길 것 같단 말이지.”


강태수는 알렉스가 지칭하는 그들을 쉽게 떠올랐다. 공산주의자.

분명 이번에도 그 안에 동생이 있을 것이었다.


“일?”

“곳곳에서 파업의 조짐이 보여.”

“파업?”


강태수의 물음에 알렉스는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아무래도 상황이 좋지 않아. 군정에서 주시하는 중이야.”

“별일이 없어야 할 텐데···. 왠지 느낌이 좋지 않군.”


강태수가 고개를 틀어 창밖을 바라보았다. 쨍한 햇빛이 새로 조경한 마당 위로 쏟아지고 있었다. 무궁화가 가득한 마당이었다.


*


한 달도 지나지 않아서 일은 벌어졌다.

1946년 9월 7일, 미군정은 월북하려는 박헌영, 이강국, 이주하 등 조선공산당 간부에 대한 검거령을 내렸다. 이주하는 월북 시도 도중 체포되었으나 박헌영과 이강국은 월북에 성공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곳곳에 ‘방’이 붙었다.


[일급제 실시에 관한 공고]

- 9월 1일부터 군정청 운수부 소속 직원들에게 일급제가 실시되었음을 공고한다.


월급이 일급으로 바뀌는 것을 노동자들은 당연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안 그래도 노동자들 중에서 철도노동자들의 처우는 단연 좋지 못한 상태였다. 그들의 수입은 식료품 제조공장이나 인쇄공장, 금속기계공장 노동자들에 비해 현저히 낮았다. 노후된 침목이 방치되고, 석탄 부족, 차량 수리공장의 조업정지 등으로 인해 열차의 운행은 항상 사고의 위험을 안고 있었다.


“일급제 강행을 설명해라!”

“설명해라! 설명해라!”


일급제 강행과 몇 차례에 걸친 협의 결렬은 철도파업을 불러왔다. 요구를 거절당한 노동자들은 파업을 선언했다.


“노동법령을 실시하라!”

“일급제를 폐지하라!”


그 중심에서 강철수가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단상에 올라 있는 강철수의 옆에는 중년의 남자가 있었다. 짧게 친 머리에 강인한 눈빛이 돋보이는 사내는 ‘김 씨’라 불리는 김인국이었다. 노동자들 사이에는 아주 많은 김씨들이 있었지만, 그들 중에서 ‘김 씨’는 오직 김인국 하나였다.


강철수는 강태수와 갈라서고 난 후 다시 노가다 판을 떠돌았다. 그러다 다시 박 씨를 만나게 되었다. 박 씨는 말로만 듣던 ‘김 씨’를 소개해 주었고, 강철수는 김인국과 함께 서울역 하역 인부로 일을 하게 되었다.

쌀장사와 노가다를 하던 때에 비해 몸은 훨씬 더 힘들었지만 우습게도 강철수는 살아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태어나 제일 많이 했다. 알렉스로 인해 학생연맹에서도 제외당한 강철수에게는 빛과 같은 시간이었다.


‘선생님과 함께하게 되다니···.’


그도 그럴 것이, 김인국은 노동자들 사이에서 유명한 공산주의자였다. 하지만 그는 어느 당에도 정치적으로 소속되지 않은 ‘이념’을 지닌 인물이었다. 서울역, 김인국의 옆에서 일하며 강철수는 생각했다.


‘이 이념이야말로 옳은 것이다. 형님의 말은 틀렸다.’


강철수는 단상 밑에서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더욱 크게 외쳤다. 혼돈한 분위기 속에서 강철수의 목소리가 곧게 퍼져나갔다.


“일급제를 폐지하라!”

“폐지하라! 폐지하라!”


강철수가 선창하면 사람들이 입을 모았다. 노동자들은 하늘로 주먹을 내지르며 외치는 강철수를 따라 손을 들며 외쳤다.


“와아아아!”


김인국이 그런 강철수를 바라보았다.

김인국은 노동자들 사이에서 지도자와 다름없는 사내였다. 그런 김인국이 신임을 보내자 당연한 수순으로 강철수는 노동자들에게 신뢰를 얻었다. 수많은 노동자들을 대표해 단상에 서 있는 이것이 지금 그 반증이었다.

강철수의 등 뒤에 새카만 기차들이 서 있었다. 파업이 시작된 것이다.


*


파업을 예상하고 있던 미군정의 대처로 철도파업은 실패했다. ‘김 씨’는 노동자들을 불러 모아 사냥을 위해 몸을 낮춘 짐승처럼 낮게 속삭였다.


‘우리는 이 실패를 초석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파업으로 인해 경찰들에게 수배를 당하게 되었으나, 강철수는 김인국의 말을 따르기로 하였다. 그러던 와중 강철수가 오갈 곳이 없어 노동자들의 쉼터를 전전한다는 것을 알게 된 김인국이 강철수를 자신의 집에 들였다.

강철수에게는 그 흔한 짐가방조차 없었다. 김인국의 집은 혼자 살기에는 컸지만 휑한 느낌은 없었다. 오히려 곳곳에 정성을 가지고 관리한 흔적들이 가득했다.


“제가 정말 선생님 집에서 지내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를 일구이언하는 사람으로 만들 작정은 아니겠지요. 하하. 편하게 지내십시오. 안 그래도 혼자 지내자니 적적한 참이었습니다.”


김인국은 오랫동안 길들인 태가 나는 가죽 소파에 앉아 손짓했다.


“제가 이 집에서 지내는 동안 항상 신념으로 지켜왔던 것이 있습니다.”


김인국이 다시 입을 열자 강철수가 무섭게 집중했다. 맞은편에 소파에 앉은 강철수의 몸은 이미 앞으로 쏠려 있었다.

김인국은 강철수를 시험하고 싶었다. 쓸 만한 인재인지, 이념이 올곧은 청년인지, 뒤가 아닌 앞을 맡겨도 되는 청년인지 알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강철수를 철도파업의 얼굴로 내세웠다. 강철수가 수배될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김인국은 어두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박 씨가 가고 나서 제가 처음 이름을 물었을 때, 이리 대답하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름이란 부를 수만 있는 것이면 되는 것이 아니냐고.”

“··· 맞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때 묻지 않았습니다. ‘생각’이 통한다면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 집에서는 다릅니다. 이 집에서는 진실만이 존재해야 합니다. 저는 이제 들을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강철수는 원목으로 꾸며진 집 안을 둘러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는···.”


툭.


김인국이 허벅지 위에 깍지 낀 손을 올려 두었다.


“친미인 형을 두었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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