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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공장 님의 서재입니다.

격동의 시대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창작공장
작품등록일 :
2021.11.22 10:37
최근연재일 :
2022.03.23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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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8,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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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1.26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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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격동의 시대 시즌1 - 7화

DUMMY

강태수와 이용팔은 현재 나카무라가 혼자 있다는 술집으로 향했다. 인적이 드문 바닷가였는데, 이용팔이 입구에서 강태수를 막았다.

강태수의 굳은 표정이 지나치게 어두웠기 때문이었다. 이용팔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이용팔의 마음이 강태수의 얼굴만큼 무거워졌다.


“행님. 행님은 들어가지 않으셔도 됩니더. 저런 놈은 저 혼자 충분합니더. 행님, 내 알지요? 이 이용팔이, 헛말은 안 한다 아입니꺼.”


이용팔이 장난스러운 몸짓으로 제 가슴팍을 툭툭 두드렸다. 그제야 강태수의 얼굴이 조금 풀어졌다.


“그럼, 알다마다. 그래도 같이 들어가자. 이건 내 일이다.”


강태수가 먼저 걸음을 옮기고, 이용팔이 한숨을 내쉬며 뒤를 따랐다.

술집에 들어서자 들리는 언어는 일본어뿐이었다. 강태수는 주먹을 쥐며 미간을 찌푸렸다.


‘아직도 조선에 왜놈들이 이렇게 많다니.’


얼마 지나지 않아 둘은 어렵지 않게 나카무라를 찾을 수 있었다. 양복을 입은 일본인들 속에서 유카타 차림의 나카무라는 단연 눈에 띄었다. 이용팔은 모르는 척 나카무라에게 다가갔다. 위스키의 독한 술냄새가 훅 풍겼다.


“あなたがなかむらですか? (당신이 나카무라요?)”

“そうですが? (그렇소만?)”

“なかむら, ソウルからあなたを訪ねて来た人がいます。(나카무라, 서울에서 당신을 찾으러 온 사람이 있소.)”

“ソウルで? (서울에서?)”


탁.


나카무라가 들고 있던 잔을 내려놓는 것과 동시에 이용팔이 옆으로 비켜섰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나카무라는 강태수도, 이용팔도 기억하지 못했다. 강태수는 그것이 희수의 죽음만큼 화가 났다. 하지만 애써 분노를 갈무리했다.

이용팔은 미리 언질 받은 대로 나카무라에게 강태수를 일본에서 사업을 하고 싶어 하는 사업가로 소개했다. 나카무라는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 쳤다.


“역시 조센징들이군. 광복이라고 좋아하던 게 일 년이나 되었나? 지금이 사쿠라의 계절이니, 너희들이 말하는 해방이 된 지 반년 조금 넘었군. 조센징들은 벌써 다시 우리 일본에 기대고 싶은 모양이지?”


나카무라는 조선을 욕보이며 거만하게 응수했다. 어릴 적 배운 탓에 일본어를 알아들을 만큼은 알아듣는 강태수도 모를 수 없는 태도였다. 이용팔이 피를 토하는 심경으로 다시 대화를 이었다.


“아직 조선은 경제에 있어 일본을 따라잡기 힘듭니다. 그것은 사실이지요.”

“너는 조센징 주제에 우리 제국의 말을 제법 하는군. 좋아. 그 사업이 뭔지 이야기해 봐. 이 나카무라 님이 듣고 판단해 주지. 서울에서 왔다면 너희도 알 거야. 나는 명동에서 내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사업가였다고.”


나카무라는 악명으로 유명했으니, 완전히 거짓은 아니었다. 사업가라 칭하기도 민망한 사채업에, 금은방 주인이었지만 나카무라는 개의치 않았다. 패망한 주제에도 오만함이 하늘을 찔렀다.

강태수와 이용팔이 나카무라를 예상하며 세운 계획과 정확히 아귀가 맞아가고 있었다. 그들이 은밀히 눈짓을 주고받았다.


‘지금이다.’


“여기서는 조금 그렇고, 장소를 이동하는 건 어떠십니까? 이곳보다 더 좋은 곳을 알고 있습니다.”


강태수는 속으로 뿌득 이를 갈았다.


‘지옥불이 얼마나 따뜻한지 확인하게 해 주지.’


*



강태수는 이용팔의 안내를 따라 나카무라를 데리고 이동했다.

평소라면 항상 그를 호위하는 일본 야쿠자를 대동하고 움직이는 나카무라였지만, 오늘은 취한 탓인지, 그게 아니라면 내일 일본으로 돌아간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강태수와 이용팔을 따라 움직였다.

한적한 길에는 그들이 모는 자동차뿐이었다. 그들이 처음 찾아왔을 때부터 만취에 가까웠던 나카무라는 차 안에서 횡설수설 말을 늘어놓았다.


“이 몸이 본국의 은혜도 모르는 조센징을 돕는 건 오늘이 마지막이야. 내일 이 지긋지긋한 땅을 떠날 예정이거든. 내가, 내가 말이야. 이 나카무라 님은 미군도 손에 쥔 남자라고. 미군도 뭐 별거 없더만! 금붙이 몇 개면 되는 족속들이야. 으하하! 위대한 일본 반자이!”


나카무라는 좁은 차 안에서 양손을 뻗으며 만세를 외쳤다. 강태수는 말없이 나카무라의 옆에 앉아 그를 뜯어보았다.


‘겨우 이런 잡놈 때문에···.’


일본은 패망했다.

전 세계가 아는 사실이었다. 그런데도 왜 이리 당당한 것인가. 강태수는 잠시 생각하다 결론을 얻었다. 해방 후에도 실권을 쥐고 있는 이들이 친일파이기 때문이었다. 알렉스가 친하게 지내는 관료 몇몇도 해방 전 유명했던 친일파였다. 갑자기 동생 철수의 얼굴이 떠올랐다.


‘형, 이건 정말 잘못된 거야.’


강태수는 동생이 이념에 대해 말하던 목소리를 떨쳐내려 창밖을 보았다. 노을 너머 까마득한 절벽이 시야에 들어왔다.


“용팔아, 언제쯤 도착 예정이냐?”

“금방입니더, 행님.”


퍽!


“이런 바카야로! 내 앞에서 조선말을 쓰다니!”


나카무라가 불시에 달려들어 강태수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바로 팔을 세워 막았지만, 약간의 통증이 있었다.


“윽.”

“행님! 이 개자식이!”


눈을 치뜬 강태수가 가볍게 나카무라를 제압했다.


끼익!


그 사이 차를 세운 이용팔이 나카무라를 거칠게 끌어냈다.


“이, 이거 놔! 더러운 조센징이 감히 이 나카무라에게 손을,”


훅, 털푸덕.


이용팔이 손을 놓자 자갈 바닥에 나카무라가 뒹굴었다.


“으윽! 지,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나, 나한테 왜 이래!”


퍼억!


“크윽!”


이용팔은 전력을 실어 나카무라의 안면을 강타했다. 나카무라를 봤을 때부터 저 면상에 주먹부터 꽂고 싶었다. 이용팔은 나카무라의 일본어에 조선말로 대답했다.


“희수의··· 우리 조선인의 복수다. 이 쪽바리 새끼야.”


‘쪽바리’만은 알아들은 나카무라가 팔을 휘적휘적 저으며 소리를 질렀다.


“코노야로! 감히 이 나카무라한테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알아!”


퍽!


“크억!”


이용팔은 단 한 방으로 나카무라의 코피를 터뜨렸다.


뚜욱, 뚝.


주저앉은 나카무라의 코에서 흐른 피로 회색 자갈이 빨갛게 물들었다.

퍽, 퍽. 분노가 가득 담긴 이용팔의 주먹질이 연신 이어졌다. 이용팔에게 강희수는 친동생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강희수의 마지막을 지켜보지 못했다는 분노와, 자신이 부산으로 내려오지 않았다면 그 어린아이가 아직 살아 있지 않을까라는 후회에서 터져 나온 힘이었다.

강태수가 어느새 손목을 돌리며 다가왔다. 이용팔은 나카무라의 멱살을 쥔 채 돌아보았다.


“행님, 행님은 차 안에 계셔도 개않습니더. 이 잡놈은 내한테 맡겨 주이소. 금방 처리하겠습니더.”


강태수는 차가운 눈으로 나카무라를 잠시 응시하다가 발을 돌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다에 무언가 빠지는 소리가 났다.


풍덩!

쏴아아.


강태수는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 알렉스가 ‘해월관’에서 만나자고 한 시간에는 여유가 있었다.

이용팔이 묘하게 들뜬 얼굴로 돌아왔다. 그는 얼굴에 튄 나카무라의 피를 손등으로 쓱 닦아냈다. 강태수가 뭔가를 묻기도 전에 이용팔이 소리쳤다.


“행님! 부산호텔로 가입시더!”

“거긴 왜?”

“나카무라가 명동에서 돈 되는 것들을 다 들고 왔나 봅니더. 일본으로 갖고 튈라고 말입니더. 지 나라로 보내만 주면 금을 주겠다 카대요. 호텔 방에 숨겨 놨다고. 금고 비밀번호까지 일러 줬습니더. 얼른 가입시더. 이 놈팽이한테 당한 사람들한테 전부 돌려줍시더.”


이용팔은 망설임 없이 차를 몰았다. 얼굴에 튄 피만 닦아내자 놀랍도록 다시 멀끔해졌다. 둘은 부산호텔로 향하는 동안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강태수는 생각에 잠겨 있었고, 이용팔은 그런 강태수를 방해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카무라도 사라졌다. 이 정도면 희수의 복수로는 부족함이 없다. 그런데 왜 이리 기분이 찝찝한 것일까?’


강태수가 창밖으로 멀어지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이용팔이 나카무라를 던져버린 검푸른 바다를 말이다.

부산호텔은 멀지 않았다. 하지만 알렉스와 만나기로 한 약속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강태수는 오늘 알렉스를 통해 부산의 미군들과 안면을 틀 예정이었다. 부산 미군들에게 권조훈 사장의 대리인이라는 사실을 증명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강태수가 호텔 앞에 멈춘 차 안에서 입을 열었다.


“용팔아, 시간이 촉박하다. 해월관으로 돌아가야 해. 만나기로 한 손님이 있어.”

“얼마 안 걸릴 깁니더. 아이믄 행님은 먼저 돌아가셔도 됩니더. 금방 가겠습니더.”


이용팔은 나카무라의 유카타에서 챙긴 열쇠에 적힌 호수를 확인했다.


“303호입니더, 행님. 다녀오겠십니더. 어차피 여 지키고 있는 아들도 있을 겁니더. 같이 돌아가겠습니더.”

“조심해라.”


고개를 끄덕인 강태수가 이용팔을 내려주고 차를 돌렸다.

이용팔이 사람들의 눈을 피해 계단을 몇 번 오르자, 문 앞을 지키고 있는 야쿠자들이 보였다. 이용팔은 벽 뒤에 몸을 숨기고 동태를 살폈다.

총 6명. 혼자 싸워도 밀리지는 않겠다만 문제는 야쿠자들이 하나같이 옆구리에 차고 있는 장도였다.

가만 보니 명동에서 나카무라를 호위한다는 명목 아래 조선인들을 괴롭힌 놈들이었다. 이용팔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전원을 찾아 껐다.

신호였다. 나카무라를 미행하라 붙였던 둘과 해월관으로 강태수와 이용팔을 찾으러 왔던 남자가 위층과 아래층에서 나타났다.


팟!


“난다요?”

“난다!”


삽시간에 어두워진 사위에 야쿠자들이 당황하며 문 앞에 절반만 남고 흩어졌다.


‘해 볼 만하다.’


조직원들과 시선을 주고받은 이용팔이 말없이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


“강 사장님! 강태수 사장님! 나와 보십쇼! 큰일입니더!”


상의와 하의 할 것 없이 피를 뒤집어쓴 남자가 해월관으로 뛰쳐 들어왔다. 아까 전 강태수에게 나카무라의 동태를 전하러 온 남자였다. 막무가내로 들이닥치는 통에 로비에서 외국인 직원들에게 제지당했다.

그러나 워낙 눈에 띄는 차림새로 애절하게 소리치는 터라 주변의 시선이 금세 집중되었다. 그때였다. 웬 남자 하나가 인파를 헤치고 직원들을 밀쳤다.


“그게 무슨 말이야!”


무슨 일이 있어도 칼같이 시간 맞춰 등장하던 알렉스가 나타나지 않자, 강태수는 로비에서 연락을 취하기 위해 룸 밖으로 나왔다. 그러다 계단에서 소란을 보았고, 있어서는 안 될 이야기를 들었다. 강태수가 뛰어와 남자의 팔을 우악스럽게 붙잡았다.


“그게 무슨 말인가? 용팔이가 칼을 맞다니! 용팔이! 용팔이는 어디 있어!”

“강 사장님! 얼른! 얼른 가야 합니더! 행님이 호텔에서 야쿠자 놈들한테 칼을 맞았습니더! 이대로 있다간 죽을지도 모릅니더!”


강태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는 남자보다 빠르게 다리를 움직였다.


*


“이런, 생각보다 늦었는데. 미스터 강이 기다리겠군.”


서울에서 예정돼 있던 일정을 모두 마치고 해월관에 막 도착한 알렉스는 급하게 차에 타는 강태수와 이름 모를 남자를 발견했다. 알렉스가 예리한 눈으로 강태수와 옆의 남자를 훑었다. 알렉스가 보기에 지금의 강태수는 평정을 잃은 상태였다.


‘무슨 일이지? 저 남자의 피는 아니다. 피범벅이 된 남자와 미스터 강이 함께? 그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이러면 계획이 틀어지는데.’


알렉스는 원조로 인해 자신에게 떨어질 이득을 떠올렸다. 차가 출발하기 직전, 알렉스가 뛰어 차 앞을 막아섰다.


끼이익!


“당신 뭐! 어, 알렉스!”


강태수는 급하게 차를 멈추며 욕지기를 뱉으려다 알렉스를 확인했다. 강태수의 얼굴에 잠시 안도가 비쳤다가 사라졌다.


“미스터 강! 무슨 일이 생긴 거면 나도 함께 가지.”


탁.


“일단 출발부터 하자고!”


강태수는 아닌 척 질문하는 알렉스에게 줄 수 있는 최소한의 대답만 했다. 우린 지금 부산호텔로 가고 있으며, 내 동생과도 같은 사람을 구하러 간다고.

하지만 강태수는 늦고 말았다. 알렉스가 받아 온 여분 열쇠로 이용팔이 일러 주었던 303호에 도착했을 때, 이용팔은 죽은 야쿠자들과 조직원들 사이에 누워 겨우 숨을 쉬고 있었다.


“!”


인기척을 느낀 이용팔이 간신히 눈을 떴다. 피 묻은 눈 사이로 강태수를 확인한 이용팔은 피식 웃었다.


“행, 행님. 오실 줄 알았습니더.”

“··· 용팔아.”

“쿨럭. 노가다 할 때부터 행님이 몇 번이고 구해 준 목숨인데, 이리 돼 뿟네. 행님 볼 면목이 없습니더.”


이용팔이 말을 할 때마다 일장도에 관통당한 복부에서 울컥울컥 피가 샜다. 강태수는 고통스러운 얼굴로 이용팔의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고개를 저었다.


“더는, 더는 말하지 마라. 어서 의원부터 가자. 내가 널 살려 주마.”


이용팔이 웃으며 강태수의 손에 자그마하지만 정교한 열쇠를 하나 쥐여 주었다.


“행님. 이게··· 금고 열쇱니더. 저놈들도 이건 몰랐나 봅니더.”


이용팔이 눈짓으로 침대 뒤편의 금고를 가리켰다. 뒤로 물러나 있던 알렉스가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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