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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공장 님의 서재입니다.

격동의 시대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창작공장
작품등록일 :
2021.11.22 10:37
최근연재일 :
2022.03.23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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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8,619

작성
21.11.23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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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격동의 시대 시즌1 - 3화

DUMMY

강인수는 두리번거림 끝에 지나는 사람을 붙잡고 물었다.


“형제상회가 어디입니까?”

“지금 그 ‘형제상회’를 찾는 거요? 용산은 처음인가 보구만. 저기 골목 돌면 제일 크게 쌀가게 하는 집이 보일 거요. 그곳이요.”

“고맙습니다.”


강인수가 재차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정신이 쏙 빠질 것만 같았다. 서울은 시끄럽고, 그만큼 분주했다. 그 분주함에 강인수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서울. 이제는 경성이 아니라 서울이었다.

해방 이후 8월부터 경성은 서울로 명칭을 변경했다. 1910년까지 대한제국의 수도 ‘한성’에서 1945년 일제강점기에는 ‘경성’으로 불렸고, 해방되면서 서울시가 되었다.

따로 기별을 넣지 않았으니 강인수의 동생들은 그가 서울에 도착한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길을 잃어 수소문할 때마다 강인수는 ‘제일 큰 쌀가게’라는 대답을 들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는 알 수 없었어도 강인수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동생들이 성공했다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무엇으로?’


의문이 가시지를 않았다. 둘째인 강태수는 방황을 거듭하며 겨우 정신을 차린 끝에 노가다 등 잡일을 하며 돈을 번다는 것이 마지막 소식이었고, 셋째인 강철수는 광복 전에도 학생이었다.

광복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이만큼의 성공이라니?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강인수는 한쪽에 꽈리를 틀고 그를 위협하는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러다 사람들이 한 뭉텅이를 이뤄 모여 있는 곳을 발견했다.


“강 사장! 강 사장네 가게는 쌀 있지?”

“근방에 쌀이 씨가 말랐어!”

“판다고 해도 너무 비싸. 강 사장네는 안 올릴 거라고 믿어.”

“아유, 아저씨. 저희도 먹고살아야죠.”

“아니! 쌀이 이렇게 많구먼!”


먹고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익숙한 목소리가 강인수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강인수가 실눈을 뜬 채 먼 거리에서 간판을 확인했다.


[형제상회]


‘드디어 찾았구나!’


강인수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쳐 동생들을 불렀다.


“태수야! 철수야!”

“형님?”


이어서 강인수는 온몸을 움직여 달렸다. 한달음에 달려오는 형을 확인한 강태수가 마찬가지로 내달렸다.


“형님!”


두 형제는 길에서 서로를 부둥켜안고 꽤 오랜 시간 말없이 인사를 나누었다.

강태수는 가게를 평소보다 일찍 정리하고 집에서 강인수와 함께 강철수를 기다렸다. 넓은 집 안을 둘러보는 강인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여기가 저희가 지금 머무르고 있는 집입니다.”

“그래, 태수야. 너희가 정말 성공을 했나 보구나. 이렇게 좋은 집이라니.”

“해방 전에 일본 놈이 살던 집입니다. 그래서 있을 건 다 있습니다. 빨리 모시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그간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형님. 부여는 괜찮습니까?”


강태수가 질문을 던지자마자 강인수의 얼굴에 시름이 드리웠다. 그 얼굴을 본 강태수의 표정까지 덩달아 무거워졌다. 강인수는 침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땅을 다시 홍 판서에게 뺏겼다. 너도 알지? 홍 판서.”


홍 판서라면 강태수도 익히 아는 인물이었다. 강태수가 깜짝 놀라 반문했다.


“그놈이 아직도 활개를 치고 다닌단 말입니까? 해방이 되면서 쫄딱 망한 것이 아니고요?”

“그래. 오히려 더 활개를 치고 다닌다. 이제는 미군정이 자기 뒷배라며 공공연히 떠들고 다니는 것도 모자라서, 사람들에게 더욱 패악질을 부리고. 그래서 이참에 너희와 함께할까 하는 마음으로 서울에 온 것도 있다.”

“형님.”


강인수의 마지막 말은 강태수가 줄곧 기다리던 내용이었다. 하지만 강인수가 고개를 저으며 자조적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강인수에게 서울은 너무 낯선 곳이었다. 동생들을 보내 놓고도 자주 찾을 수 없었던 만큼.


“그렇지만 말이다. 내가 이 서울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 순간 앳된 목소리가 강태수 대신 끼어들었다.


“저희와 함께 찾아보시면 되지요.”

“철수야! 네가 어느새 이렇게 컸구나!”


강철수는 근방에 배달을 나갔다가 닫혀 있는 가게를 보고 의아해하던 참에 강태수의 쪽지를 발견하고 집으로 향했다. 문틈으로 들리는 그리운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할 리가 없었다. 강철수는 자전거도 제대로 두지 않고 부리나케 안으로 들어왔다.

강철수가 두 형제를 얼싸안고 겨우 말을 이었다.


“우리가 이렇게 모인 모습을 본다면 부모님께서도, 희수도 기뻐할 거예요.”

“그래, 그럴 거다. 당연한 이야기지. 그럼 이제 다 모였으니 태수가 보낸 편지에 적힌 내용에 대해 이야기해 주겠어? 긴히 할 이야기가 있다고 했으니 말이다.”


희수의 이야기가 나오자 분위기가 짐짓 심각해졌다. 강태수는 잠시 기다리라 말하고, 주변과 문단속을 한 뒤 다시 자리에 앉았다. 강태수는 간략하지만 정확하게 이야기했다.


“... 그렇게 죽은 희수의 복수를 위해서 야마다를 쫓아갔을 때, 별장에 창고가 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그 안에는 쌀이 산처럼 쌓여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몇 달 동안 장사를 했는데도 쌀이 줄지를 않습니다.”

“야마다는 어떻게 되었어? 일본으로 도망간 거냐?”


강철수와 시선을 교환한 강태수가 분명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결연하고, 힘이 들어간 목소리였다.


“제가 죽였습니다. 우리 희수를 죽인 놈을 그냥 살려 보낼 수가 없었습니다.”


강인수는 강태수가 강렬한 눈빛으로 꺼낸 ‘죽였다’는 말에 잠시 움칫했다. 그러나 금방 고개를 깊이 끄덕였다.


‘태수의 불같은 성격에 백번이라도 가능한 이야기지. 부여에서도 주먹은 깨나 썼었으니.’


강인수가 손을 들어 강태수의 등을 토닥였다.


툭, 툭.


“그래, 태수야. 네가 하지 않았다면 내가 했을 일이다. 희수가··· 희수를 더는 볼 수 없다는 게 마음이 아프지만···. 시신이라도 찾아서 장례까지 치렀다니 다행이다. 고생했다. 그럼 그 쌀들은 어떻게 했느냐.”

“적산가옥에 대해 이야기가 나오고 있어서, 저와 철수가 시간이 생길 때마다 조금씩 옮겨 두는 중입니다.”

“적산가옥? 그게 무엇이냐?”

“일본인들이 해방 후에 버리고 간 집들 말입니다. 그게 전부 미군정청으로 귀속된다고 합니다.”


방금까지 슬픔에 잠겨 있던 강인수의 얼굴에 숨길 수 없는 분노가 나타났다. 땅을 두 번이나 빼앗긴 터였다. 강인수는 손끝이 하얘지도록 주먹을 쥐었다.


“그놈의 미군정! 홍 판서를 다시 요직에 앉힌 것도 그 코쟁이 놈들이건만! 이러면 일본 놈들한테 나라를 뺏겼을 때와 뭐가 달라!”

“들어 보면 초대 임시정부 대통령인 이승만 선생이 미국에서 귀국했다고는 하던데,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지금 서울은 너무 혼란스럽지 않습니까, 형님. 김구 선생님도 상하이에서 다음 달에 귀국하신다는 말이 있습니다.”


가만히 형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강철수가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야마다의 쌀과 재산도 이제는 다 처분해야 하지 않을까요? 둘째 형님과 제가 수시로 쌀을 옮기고는 있지만 조금 불안합니다. 애초에 우리 것이 아니었잖아요.”

“철수 너는 또 그 소리냐.”


강태수가 짐짓 엄한 목소리로 다그쳤지만, 강철수는 굽히지 않았다. 강철수가 생각하기에는 옳지 않은 처사였다. 공평하지 못한 일이었다.


“애초에 우리 것이 아니었던 건 맞지 않습니까, 큰형님. 저는 불안합니다. 지금 우리가 돈을 벌고 있지만, 이것은 정당한 노동으로 얻은 돈이 아닙니다. 야마다의 재산으로 얻는 부정한 돈이에요.”


몇 번이고 반복된 대화였다. 강태수가 소리 쳤다.


“그럼, 세상 사람들에게 ‘여기 쌀이 있소! 모두들 공짜로 가져가시오!’ 외쳐야 한다는 말이야? 철수 네 말은 그런 거냐? 너는 지금 이 형이 잘못됐다, 그렇게 말하고 싶은 게냐?”

“그런 게 아니야, 형!”


희수의 장례를 치른 후로 강태수에게 깍듯이 존댓말을 쓰던 강철수가 소리를 지르듯 외쳤다.


“이건 잘못된 거라고!”


가만히 둘의 언쟁을 듣고 있던 강인수가 차분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철수야, 뭐가 잘못됐다는 건지 형에게 설명해다오.”


한차례 숨을 고른 강철수가 분명한 목소리로 조곤조곤 대답했다.


“형님들. 우리 조선은 지금 아주 혼란한 상태입니다. 쌀은 눈을 감았다 떴을 때마다 값이 올라 있고, 우리가 파는 쌀은 우리 것이 아닙니다. 분명 야마다가 우리 민족들을 착취해 모은 것일 거란 말입니다! 그게 저를 죄책감에 들게 합니다, 형님들. 저희만 잘 먹고, 잘 살면 안 되지 않습니까?”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강태수 또한 했던 생각이었으나, 누르고 눌렀던 염려였기 때문이었다. 그랬기에 강태수는 더욱 강하게 부정했다.


“이 이야기는 전에도 했던 거로 기억하는데, 그만하자.”

“하지만 형님!”

“그만하라니까!”


쾅!


강태수가 바닥을 내리치며 고성을 질렀다. 한숨을 쉰 강인수는 손을 들어 두 형제를 진정시켰다.


“철수야.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는 안다. 하지만 이걸 세상에 이야기하는 순간 우리는 어떻게 될 것 같니.”

“···.”


강철수는 대답하지 못했다. 스스로도 모르지 않았다. 알고 있기에 강하게 나가지 못하는 자신과 사실을 눈감고 싶어 하는 형제들에게 화가 나는 것이었다.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뜬 강철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윽.


“먼저 방에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래. 들어가 쉬어라.”


강인수가 아직 씩씩거리고 있는 강태수를 대신해 휘휘 손짓했다.


세 형제는 그 후로 ‘야마다’의 쌀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저 ‘쌀’을 이야기할 뿐이었다.

그 후로 한 달이 지났다.

김구가 임정 요인 스무 명과 개인 자격으로 환국했다. 환영 인사는 단 하나도 없었다. 금의환향은 둘째 문제였다.

김구는 평생을 조국 독립에 바쳤고 상해임시정부의 대통령이었다. 이는 미군정과 이승만 박사의 견제가 분명했고, 대한민국의 임시정부를 인정할 수 없다는 메시지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독립은 어디로 갔는가.

김구의 귀국 이후 각기 다른 정당들의 창당으로 정국은 여전히 혼란스러웠으나, ‘형제상회’에는 해당하지 않는 이야기였다.


*


1945년 늦가을, 서울역.

세 형제의 입에서 하나같이 입김이 나왔다. 늦가을 바람이 기차를 끌고 왔다.

강태수는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형님. 꼭 부여로 돌아가셔야 합니까? 저희와 함께 서울에 계시지 않고요. 원하신다면 경기도에 농사지을 자리를 마련할 수도 있습니다.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요.”


강인수는 온화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자신을 생각해 주는 동생의 마음에 몸이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강인수는 고개를 숙이고 있는 막내 강철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어른처럼 굴어도 아직 어린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걸음은 무거웠지만, 그에게는 장남으로서 져야 하는 책임이 있었다.

고민과 고민을 거듭한 끝에 강인수가 고개를 저었다.


“태수야, 나는 고향이 좋다. 너도 알다시피 서울은 나한테 너무 번잡해. 그리고 고향에는 우리 형제 셋 중 하나라도 해야 하는 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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