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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공장 님의 서재입니다.

격동의 시대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창작공장
작품등록일 :
2021.11.22 10:37
최근연재일 :
2022.03.23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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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88,619

작성
21.11.22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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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격동의 시대 시즌1 - 1화

DUMMY

밖이 시끄러웠다.


“-!!”

“--!!”


강태수는 유치장 바닥에 누워 시끄럽다는 듯이 귀를 막았다. 귀를 막아도 소음은 잡히지 않았다.

한여름임에도 불구하고 앉아 있으면 엉덩이가 시렸다. 유치장 바닥이라는 건 원래 그랬다. 아무리 누워 있어도 온기가 스미지 않았다. 그런 차가운 바닥에서 겨우 눈을 붙이던 강태수는 밖에서 들리는 소음에 덜컥 짜증이 났다.

그러나 간밤에 일본 순사들에게 곤봉으로 두드려 맞은 몸을 일으키는 대신 고쳐 누웠다. 강태수의 단단한 몸 곳곳에 상처가 가득했다. 어떤 것은 오래돼 보이기도, 어떤 것은 생긴 지 얼마 안 돼 보이기도 했다.

그때 강태수의 동생 강철수가 멍이 가득한 팔로 강태수를 격하게 흔들었다.


“형! 형 좀 일어나 봐!”

“아, 왜. 깨우지 말라니까.”


일본 순사들에게 마구잡이로 구타를 당할 때도 흔들림 없던 동생이 답지 않게 흥분하고 있었다.


“뭔가 좀 이상,”

“만세-!”

“만세--!!”


창살 너머에서 사람들이 그렇게 소리쳤다.

나라가 망해도 진작 망해 이 꼴을 당하고 있는 마당에 만세는 무슨 얼어 죽을 놈의 만세.

강태수는 얼굴을 한껏 구긴 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강태수의 생각이 모두 거짓이라는 듯, 다시 한번 정확히 심장을 두드리는 말이 들려왔다. 쾌쾌한 곰팡이 악취가 한순간 모두 물러간 것 같은 착각이 일 정도였다.


“대한- 독립- 만세-!!”


유치장 안에서 시체처럼 미동도 없이 있던 사람들의 눈이 동시에 번득였다. 강태수와 강철수의 눈에도 순식간에 이채가 서렸다.


“만세?”

“독립이라고?”

“그럼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야?”


유치장 안의 사람들이 수군거리며 철창과 창문에 매달렸다.


철컹!


“이봐요! 거기 누구 없습니까!”


강태수는 벌떡 일어나 쇠창살을 흔들면서 제일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타다닥!


그 순간 빠르고 가벼운 뜀박질 소리가 들렸다. 철창에 매달려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렸다.

사람들은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러들었다. 그동안 수없이 일본 순사에게 고문을 당한 흔적이었다. 하지만 강태수는 그대로 소리를 내질렀다.


“거기 누구요!”


앳된 얼굴에 검댕을 묻힌 소년은 열쇠 뭉치를 들고 한달음에 달려왔다. 검댕으로도 가려지지 않는 기쁨과, 더할 나위 없이 환희에 찬 목소리로 강태수의 말에 대답했다.


“해방, 해방이 됐습니다!”

“뭐? 그게 정말이야?”

“네! 일본 놈들이 전부 도망치고 있다고요! 일본이 전쟁에서 졌답니다!”

“일본? 일본이 정말 졌어?”

“그렇다니까요! 다들 어서 나오세요!”


덜컹!


굳게 닫혀 있던 유치장 문이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두리번거리며 의심을 거두지 못했다.


“그 쪽바리 새끼들이 다 도망갔다고! 일본이 망했다고!”


눈에 피멍을 단 남자가 걸걸한 목소리로 울분을 토하며 뛰쳐나가는 것을 시작으로 하나둘 유치장 밖으로 발을 내밀었다.

강태수, 강철수 두 형제 역시 반신반의하며 다른 사람들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길거리는 환희에 가득 찬 사람들로 가득했다.


“대한 독립 만세!”

“만세!”

“만세! 만세!”


뛰어다니는 사람들을 피해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경계하는 강태수 앞에 서서 철수가 중얼거렸다.


“형, 정말 해방이 됐나 봐.”


만세를 외치는 사람들을 한없이 쳐다보다 강태수는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그래, 그런가 보다.”


오늘은 1945년 8월 15일이었다.

1910년 8월 22일, 그 이후로 36년 만이었다. 민족 매국노 이완용이 일본 육군 대신 데라우치와 합병조약을 체결한 이후 무려 36년이었다.


*


해방이라는 사실에는 아직 반신반의했지만, 강태수는 유치장에 나오자마자 하고자 한 일이 있었다. 강태수의 얼굴은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분노에 가득 차 있었다.


“철수야, 야마다 그 개자식부터 찾자. 우리 희수를 죽이고, 우리를 유치장에 처넣은 그 개자식부터.”


희수. 두 형제의 막냇동생이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았던 여동생이었다. 한순간에 동생을 잃은 것도 모자라서 시신조차 찾지 못했다. 범인은 알았으나, 안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이면 가능할지도 몰랐다.

두 형제는 즉시 발이 기억하는 대로 달려 야마다의 집으로 향했지만 호화스러운 집은 이미 텅 비어 있었다.


와장창!


“빌어먹을!”


강태수는 보이는 물건들을 전부 내던져 가며 소리쳤다.

강철수도 집안 곳곳을 살피었으나, 이미 야마다는 패전 소식을 듣자마자 도망간 뒤였다.


“이럴 수는, 이럴 수는 없어. 이래서는 안 돼.”


무언가 부서지는 시끄러운 소리를 듣고 온 옆집 김 할매가 울분이 가득한 얼굴로 강철수에게 말을 걸었다.


“철수 청년, 야마다 그놈 찾는 거지?”

“네, 할머니. 어디로 도망갔는지 아세요?”

“내가 숨어서 들었는데, 그놈 용산인가 어딘가로 도망간 것 같아.”


용산! 용산이라면 강철수도 잘 알았다. 야마다의 별장이 있는 곳 아니었던가! 강철수는 바로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가 강태수를 불렀다.


“형! 용산! 용산이야!”


강태수의 안광이 반짝였다.


*


형제는 가쁜 숨을 눌러가며 용산을 향해 이를 악물고 달렸다.


“헉, 헉.”


야마다는 형제의 막냇동생을 죽이기까지 하고, 그것을 항의하러 간 강태수와 강철수 유치장에 갇히게 했다. 그런 그놈이 일본으로 달아나기 전에 잡아야 했다.

야마다는 전쟁통에 나날이 값이 폭등하는 쌀을 목숨처럼 틀어쥐고 자신이 왕이라도 되는 것마냥 군림했다.

더군다나 일본 순사들이라는 뒷배를 이용해 쌀을 외상으로 팔고 이자를 붙여 조선인의 재산을 갈취했다. 하지만 이제 상황은 바뀌었다. 해방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절대 살려 보내지 않는다.’


형제가 막냇동생을 잃었듯이 야마다에게 빌린 쌀의 이자를 갚지 못해 김 할매는 남편을 잃었다. 가난했지만 금슬이 좋았던 부부였다. 그런 김 할매가 위험을 감수하고 숨어서 들은 이야기였다.

강태수는 당장에라도 주저앉고 싶은 다리를 질질 끌면서도 악착같이 달렸다. 그런 강태수를 기다리는 것처럼 으리으리한 별장의 대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야마다!”


넓은 정원과 집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야마다가 이곳에서도 이미 사라진 것이다.


“젠장!”


두 형제가 낙담한 그 순간, 둘에게는 기적과도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早く行け! (빨리 가!)”


야마다의 목소리가 분명했다.


“아직이다!”


두 형제는 마지막 힘을 짜내서 다시 한번 땅을 박찼다. 별장의 뒤, 마당에서 야마다의 머슴이 창고에서 자동차로 무언가를 옮겨 싣고 있었다.

야마다를 발견한 두 형제의 눈동자에 순식간에 분노가 찼다. 야마다의 기름기 가득한 낯짝을 보니 자연스레 막냇동생 희수가 떠올랐다.

쌀값의 이자의 기간을 조금만 늘려 달라고 부탁하러 다녀온다던 동생은, 농락당하고 몰매를 맞아 도리어 죽임을 당했다.


“야마다!”


강철수의 외침에 야마다는 깜짝 놀라더니 허둥지둥 차에 올라탔다. 강철수는 두 눈에 불을 켜고 그에게 달려갔다.


“何してるんだよ!出発して! 出発しろって! (뭐 해! 출발해! 출발하라고!)”


털털, 털털-


하지만 차의 시동이 한 번에 걸리지 않았다. 야마다가 머슴을 밀치고 자동차의 시동을 걸기 위해 애썼다. 야마다의 눈에도 분노에 휩싸인 형제들이 보였다.


“こんなばかみたいな! (이런 등신 같은!)”


강철수는 그새 야마다의 차에 빠르게 다가섰다.

그리고 운전석에 앉은 시종이 허둥거리는 동안 강태수는 차에 달려들어 살집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야마다를 순식간에 끌어냈다. 어느새 통증은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퍽!


“아악!”


강태수는 바닥에 나뒹구는 야마다의 멱살을 잡아채고 계속해서 인정사정없이 주먹을 날렸다. 둔탁한 타격음이 울려 퍼졌다.


“이 개새끼! 우리 희수를 죽이고도 이 땅을 무사히 떠날 수 있을 것 같아!”


해방이 되었는데, 그럼에도 일본어를 써야 한다는 사실이 다시 한 번 강태수의 분노를 이끌어 냈다. 강태수가 이를 악물고 으르렁대자 야마다는 핏물이 가득한 침을 뱉고서 실실 쪼갰다.


“퉤, 지난번에도 난 모르는 일이라고 하지 않았나. 난 몰라!”


야마다의 뻔뻔한 표정을 본 강태수는 있는 힘껏 야마다의 번들한 안면을 강타했다.


“이 새끼가!”

“이것 놔!”


강태수는 이 주먹 하나로 먹고살았다. 사람을 부릴 줄만 아는 일본 놈과는 힘에서조차 차이가 있었다. 강태수는 야마다의 기모노 멱살을 단단히 고쳐 잡고 계속해서 주먹을 휘둘렀다.


퍽, 퍽!


툭, 야마다의 앞니가 부러져 마당에 떨어졌다. 어느새 야마다는 눈 뜨고 봐 주기 힘든 꼴이 돼 있었다.



툭.


그제야 강태수는 마치 더러운 것을 내동댕이치듯 멱살을 붙잡고 있던 손을 놔 버렸다.


털썩.


강태수의 눈이 이성을 잃은 맹수처럼 들끓었다. 그는 어느샌가 찾은 묵직한 돌을 손에 쥔 채였다.


“죽음은 죽음으로 갚아라. 네놈이 죽는다고 우리 희수가 돌아오는 것은 아니지만, 오라버니로서 마지막 복수는 해 주어야지.”


이번에 강태수의 입에서 나온 것은 일본어가 아니었다. 야마다는 그런 강태수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으나, 강태수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만은 또렷이 느낄 수 있었다.


“쿨럭, 쿨럭.”


정신을 잃기 직전인 야마다가 뭐라고 웅얼거렸다.


“사, 살려 줘···. 금, 내가 금을 줄게.”


퍼억.


강태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야마다와 달리 강태수는 야마다 모든 말을 이해했음에도 불구하고.


“살, 살려만 줘···!”


강태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돌을 움켜쥔 손에 힘을 주었을 뿐이었다.

금을 받는다고 해도, 희수는 살아 돌아올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강태수에게 이 울분을 잠시라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희수가 죽은 것과 똑같이 야마다의 목숨을 거두는 것밖에 없었다.

강철수가 높이 팔을 들었다.


퍽!


으깨지는 소리와 함께 야마다의 머리와 얼굴에서 튄 살점이 강태수에게로 튀겼다. 피가 분수처럼 터져 나왔다.


“으아아악!”


야마다가 고통에 온몸을 뒤틀었지만, 강태수는 야마다의 이마를 계속해서 내리찍고 또 내리찍었다.

야마다의 발버둥이 완전히 멈추고 난 후에도 여러 차례 더 돌을 휘두른 강태수는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시체를 한참 응시했다. 야마다의 머슴은 이미 도망간 지 오래였다.

복수했는데도 복수심은 가라앉지 않았다. 강태수가 씩씩거리는 숨을 통제하지 못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무기가 될 만한 다른 것들을 찾고 있을 때였다.


“형!”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비명을 지리는 듯한 동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강태수가 야마다를 처리하는 사이였다. 강철수는 강태수와 약간의 거리를 두고 움직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었다.

그러던 강철수의 앞에 창고로 보이는 건물이 나타났다. 강철수는 목이 찢어질 듯이 강태수를 불렀다.

완전히 나갔던 강태수의 이성이, 강철수의 목소리를 듣자 어느 정도 돌아오기 시작했다.


툭.


강태수는 널브러진 야마다 옆에 피 묻은 돌을 떨어뜨리고 강철수에게 향했다. 강철수는 창고 안을 보고는 넋이 나간 듯, 그저 멍하니 서 있었다.


“형···. 이 안에 좀 봐.”


이성을 어느 정도 되찾은 강태수가 철수의 곁으로 걸어갔다.


“무슨 일이길래, ··· 어?”

“형, 이, 이게 도대체 다 뭐야?”


그 안에는 쌀로 만든 산이 있었다. 강태수의 키보다 두 배는 큰 높이로 쌓여 있는, 형제의 동생을 죽게 만든, 조국의 수많은 이웃을 죽게 만든 일본인의 쌀 산이.


“이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한 명의 일본인이 이만큼의 쌀을 틀어쥔 채 휘두른 탓에 굶어 죽은 조선인들을 생각하니 속에서 천불이 올라왔다.

이미 죽은 야마다를 다시 찢어 놓고 싶을 정도로. 하지만 야마다는 한 명만 있던 게 아니었을 것이다. 전국에 수십, 수백 명의 야마다가 존재했을 것이다. 그 밑에는 더욱 많은 국민들이 피를 흘렸을 것이다.

강태수는 문 앞에 한참 서 있다가 그 안으로 들어섰다.

바닥에 흩뿌려진 흰 쌀이 자박자박 눈처럼 밟혔다. 강태수의 옷에 묻은 야마다의 붉은 피에 흰 쌀이 달라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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