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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공장 님의 서재입니다.

격동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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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창작공장
작품등록일 :
2021.11.22 10:37
최근연재일 :
2022.03.23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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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1.30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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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격동의 시대 시즌1 - 11화

DUMMY

배경석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가 일본 경찰들과 결탁해 독립군들을 팔아넘긴 것은 ‘일국회’의 간부들만 아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보름 전 불쑥 나타나 배경석 자신을 자신의 감옥에 가둬 버린 이 젊은 청년은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하물며 죽은 독립군들의 이름까지 말이다.


“우, 웃기지 마. 너 같은 애송이가 나를 죽일 수 있을 것 같아! 나, 나한테 원하는 게 있으니까 이럴 거 아니야! 원하는 게 뭐지? 다 들어주마!”


강태수는 핏기가 가신 배경석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것은 노려보는 것도, 멸시하는 것도 아닌 그저 무기질 그 자체의 시선이었다. 배경석은 그런 강태수의 시선에 오싹 소름이 돋았다.


‘이, 이놈의 말은 진심이다.’


철컹!


강태수는 굳세게 닫혀 있던 철창을 열었다. 그토록 고대하던 문이 열렸건만 배경석은 움직일 수 없었다. 강태수는 성큼성큼 큰 보폭으로 감옥 안에 들어섰다. 흘깃 본 뒤에는 알렉스가 팔짱을 끼고 상황을 관망하고 있었다. 강태수가 본인에게 이 같은 상황을 왜 보여 주는지에 대해 손익을 따지고 있을 것이었다.


퍽!


강태수가 주먹을 내질렀다.


풀썩.


배경석은 강태수의 주먹 한 방에 자신이 집어 던졌던 음식들 위로 나가떨어졌다. 강태수는 배경석이 찐득거리는 느낌에 기분 나빠할 틈도 주지 않고 다시 주먹을 날렸다.


“아악! 그, 그만!”


강태수 자신이 생각하기에 자신은 분명 애국자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가 났다. 이 을씨년스러운 감옥에서 수없이 죽어갔을 그들을 떠올리자 주먹질을 멈출 수가 없었다.


퍽, 퍽!


강태수는 피떡이 된 채 몸을 둥그렇게 말고 벌벌 떠는 배경석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멱살을 잡으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단정했던 강태수의 셔츠 역시 어느새 피가 튀어 있었다.


“내게 왜 이러냐고 물었지. 나는 그동안 네가 지은 죄들이다. 너를 이곳으로 인도한 것은 내가 아니라 너의 죄야.”


처음부터 배경석을 죽이고자 마음먹은 것은 아니었다. 강태수는 동생 강철수가 집을 나갔을 때 ‘명동상가’의 임금 체불 때문에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배경석이 지은 죄들에 비해 아주 일부였을 뿐이었다.


“친일파들을 모아 ‘일국회’를 결성하고 독립군들을 밀고한 죄. 이름도 바꿔 가며 후원하는 척 몇 번이고 그들의 뒤통수를 쳤지. 그뿐인가. 조선 처녀들에게 일자리를 소개해 준다며 정신대로 팔아넘긴 죄도 있어. 근방에 있는 여고를 다닌 학생들 중에서 네 쓰레기 같은 이름을 모르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으, 으윽.”


강태수는 배경석이 정신을 잃으려 하자 가차 없이 뺨을 때렸다.


짜악!


“정신 차려. 이 저택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네놈에게 무언가를 뺏긴 이들이더군. 남편에게서는 아내를 빼앗고, 어미에게서는 딸을 빼앗았지. 혹시라도 항의하는 자가 있거든 모두 죽여 버리거나 압력을 넣어서 다신 일을 구할 수 없게 만들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지금 네가 목숨을 구걸할 수 있게 해 주는 것만 해도 후한 처사란 걸 왜 모르지?”


광복 후에도 그들의 세상은 똑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오늘이 끝이다.”


*


강태수는 고용인들이 준비해 둔 뜨거운 물로 몸을 씻었다. 안채의 굴뚝에서 매캐한 연기가 나왔다. 감옥에 붙어 있던 간이 소각장이 근원지였다. 강태수는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창밖에서 흩어지는 연기를 바라보았다.

매섭게 분노하던 청년은 어디로 가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건조한 눈빛이었다. 벽에 기대 있던 알렉스가 그런 강태수를 불렀다. 알렉스는 굳은 얼굴로 아직까지도 팔짱을 끼고 있었다.


“미스터 강.”


강태수가 창을 등지고 돌아섰다. 마치 강태수 자신의 것처럼 그의 어깨 위로 연기들이 솟아났다.


“왜,”


강태수가 더 빨랐다.


“왜 이런 짓을 하냐고 묻고 싶은 거지?”


알렉스가 고개를 끄덕이자 강태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 자네가 매매를 도와줬던 적산가옥 말일세. 그 집이 사실 내 동생을 죽인 일본 놈이 살았던 곳이야.”

“!”

“해방이 되자마자 그놈부터 찾으러 갔지. 하지만 언제 튀었는지 없더군. 그런데 금방 알게 됐어. 누가 그놈이 도망간 곳을 알려 줬거든. 덕분에 나는 동생의 ‘복수’를 할 수 있었어. 내가 그럴 수 있도록 알려 준 옆집 할머니는 그놈에게 남편을 잃었었지. 하지만 알렉스, 일본인들한테만 우리 조선인들이 이렇게 ‘인생’을 잃었을까?”


강태수는 눈을 감고 고개를 저었다. 다시 눈을 뜬 그의 눈동자에는 몇 시간 전처럼 분노가 가득했다. 알렉스는 강태수가 제 손으로 ‘야마다’를 처리했음을 알게 되었다.


“일본인들이 그럴 수 있도록 도와준 건 배경석 같은 놈들이야. 한둘이 아니지. 하지만 그놈들은 지금도 여전히 잘 먹고, 잘 살고 있어. 아니, 전보다 지금 더 잘 살고 있다고 해야겠군. 나는 그 꼴을 두고 볼 수가 없고.”

“미스터 강. 자네 지금 굉장히 공산주의자들처럼 말하고 있어. 행동도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아.”


강태수가 창문에서 앞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그는 창문과 알렉스의 중간에 서 있었다. 알렉스의 표정에서 경계심이 묻어났다. 강태수는 느긋하게 웃으며 이야기했다.


“아니, 알렉스. 난 그들과 다르네.”

“미스터 강!”

“자네의 미국이, 그리고 소련이 이 일에 개입하면 정치가 되지만 나는 아니야.”

“그게 무슨 말이지, 미스터 강.”

“내가 하는 것은 복수야.”


알렉스의 눈이 번득였다. 그 순간 계산을 끝마친 것이다.


“혹시 전에 자네가 말했던 이야기가···?”

“맞아. 역시 자네는 이해가 빠르군. 나는 앞으로도 지속할 예정이네.”

“하지만 이건 너무 위험한 일이야, 미스터 강.”

“알고 있어. 그래서 오늘 자네를 이곳으로 데리고 온 거야. 직접 보여 주고 싶었거든. 조선인들이 가진 ‘한’이 무엇인지.”


배경석은 자신이 수없는 사람들을 밀어 넣었던 소각장에서 생을 마감했다. 고용인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강태수에게 배경석에 대한 정보를 주었다. 감옥은 핏자국 하나, 머리카락 하나 없이 깨끗했다. 모두 배경석의 명령 때문이었다.

강태수가 창문에서 완전히 멀어져 알렉스에게 다가왔다.


“미군은 이미 배경석의 재산을 몰수했을 거야, 그렇지?”


이미 확인한 사실이었으나 확실히 해 둘 필요가 있었다. 강태수는 알렉스에게 자유시장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이유를 들어 배경석을 압박하라고 해 두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곧 이 집도 경매에 넘어가거나, 미군에게 넘어가겠군.”


알렉스는 금방 강태수의 의중을 눈치챘다. 알렉스가 짐짓 어두운 표정으로 대꾸했다.


“이 집을 미스터 강, 자네가 얻을 수 있게 해 주지. 대신, 나도 위험 부담이 큰일인 걸 알아줬으면 좋겠군.”

“알렉스 자네의 노력이 섭섭하지 않을 정도로 보답하지.”


툭, 툭.


강태수가 알렉스의 어깨를 두드렸다.


*


일은 순조로웠다. 강태수는 이번에 박창수를 도마 위에 올렸다. 소문도 본격적으로 흘렸다. 노동자들은 모일 때마다 입을 모아 말했다.


“미군이 맞다니까.”

“예끼! 어디 가서 함부로 이 이야기하면 안 된다는 말 못 들었는가!”


실제로 그들을 노려보는 일행들이 있었다.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공산주의자들이었다. 박 씨는 모두 들으라는 듯 더욱 크게 소리쳤다.


“아, 왜! 소련은 못 받아 준 돈! 미국이 받아 줬다고 하는 게 죄야? 사실이잖아! 지들도 돈은 받았으면서, 노려보긴 뭘 노려봐!”

“저 잡놈이!”

“잡놈이랑 같이 일하는 놈은 잡놈 아닌가?”


박 씨의 일격에 남자가 더욱 크게 씩씩거렸지만, 상대가 자리를 떠남으로써 상황은 금방 진정됐다. 박 씨가 민주주의도, 공산주의도 개의치 않아 하는 사람이라는 걸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조 씨가 손가락에 침을 묻혀 가며 돈을 세는 박 씨를 데리고 구석으로 향했다.


“박 씨 자네, 그래도 그런 말을 사람 많은 데서 하는 건 좀 위험해. 사상이라는 게 사람 눈 회까닥하게 만드는 거라고!”

“아! 글쎄 나는 민주주의든, 공산주의든 알 바 아니라니까!”

“저들은 아니지 않는가! 저들은 목숨을 거는 게 그 ‘주의’라고! 자네 그러다가 무슨 일 당할 수도 있어!”

“사람이 눈치 보며 덜덜 떨어야 하는 게 이념이면, 그게 무슨 이념이야. 퉤.”


박 씨가 걸쭉하게 침을 뱉고 그 위를 발로 마구 뭉갰다.


“강 씨 청년은 잘 지내는가 모르겠네···.”


*


강태수와 강철수는 만발한 무궁화를 뒤로한 채 이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강철수가 못 보던 사람들이 바삐 짐을 포장하고, 트럭으로 날랐다. 강철수가 그중 하나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땡볕인데 고생하게 해서 미안합니다.”

“아이고,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편히 계십시요! 저희들이 다 하겠습니다!”

“아닙니다. 함께 해야 빨리 끝나죠. 하하. 그런데 어디서 온 분들이십니까?”


강철수는 일부러 나긋한 어조로 질문을 던졌다.

이들은 단순히 형이 고용한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보통의 일꾼들이 보이는 태도 보다는 더욱 공손한, 예를 들자면···


“철수야, 이쪽으로 오거라. 이들은 우리가 새로 갈 집의 하인들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는지, 강태수가 강철수를 불렀다.


“하인 말입니까?”

“그래. 우리가 이사하기 전부터 그 집에서 일하던 사람들이란다. 만약 내가 거두어 주지 않으면 길가에 나앉게 될 게 뻔하니, 내가 저들을 거두기로 했다.”


강태수가 하는 말에 강철수가 저도 모르게 약간 인상을 찡그린 뒤에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때 눈앞에 있던 남자는 이미 다른 곳에서 짐을 옮기고 있었다.


“우리는 어디로 이사를 가는 겁니까?”

“종로로 간다.”

“종로요?”

“그래. 여기는 이제 이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먼저 가 있자.”


강철수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군말 없이 차에 탔다.

형제는 차 안에서 아무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강철수가 생각하는 올바른 세상에는 주인과 하인 같은 구분은 없어야 마땅했다.

하지만 또 여기서 형에게 그 이야기를 하면 분명히 싸움이 날 것이 분명했다.


“다 왔다. 이곳이 우리가 새로 이사할 집이다.”


어느덧 차는 큰 집 앞에 섰다.

야마다의 집 보다 두 배는 커 보이는 규모의 집이었다.


“들어가자.”


태수는 별말 없이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철수 역시 태수의 뒤를 따라 말없이 집으로 들어갔다.


*


이사를 하고 나서도 어느덧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철수는 이사를 오고서, 나름 집에 적응하며 지냈다.

하지만 한 가지 의심쩍은 부분이 있었다.


‘저기 가장 안쪽에 있는 안채는 내가 일 때문에 따로 쓰는 곳이니, 들어가지 말거라.’


하지만 인간은 하지 말라고 하면 더더욱 하고 싶어지는 법.

철수는 태수가 자리를 비운 사이, 안채에 결국 들어가고 말았다.


“이건···. 뭐야?”

강철수를 안채 한가운데에서 지하로 통하는 계단을 발견했다.

그리고 무언가 홀린 듯 계단을 타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강철수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주변을 살피며 내려갔다. 마감이 제대로 되지 않은 통 시멘트 벽에서는 기분 나쁜 냉기가 흘렀다.


저벅, 저벅.


강철수 어느덧 가장 밑바닥에 있는 감옥 앞에 멈췄다.


“여기는 도대체 뭘 하는 곳이지? 집 안에 이런··· 감옥이 도대체 왜 있는 거야?”


강철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둘러보았다.

이 집과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이곳은 용도를 가늠할 수 없었다.

그는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는 6개의 감옥 중 가장 안쪽에 있는 감옥에 문득 서고 말았다.

가장 안쪽 감옥의 바닥은 먼지가 쌓여 있는 다른 감옥과는 달리 매우 깔끔했다.

마치 누군가 최근에 이 방을 청소한 것처럼.


청소는 했지만, 숨길 수 없는 비릿한 냄새에 강철수의 심장은 쉴 새 없이 요동치고 있었다.

강철수는 이 냄새가 무슨 냄새인지 알고 있었다.

바로 피비린내였다.


“철수야.”

“으악! 형님!”


그때 강철수는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소리를 지르며 뒤를 돌아보았다.

어느새 지하 감옥에는 강태수가 와 있었다.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이냐. 내가 여기는 들어오지 말라고 했던 것을 듣지 못했느냐.”

“형님! 여기가 도대체 뭐 하는 곳입니까?”

“이곳이 무엇인 것 같으냐?”

“감옥 아닙니까.”

“그래. 감옥이지. 그럼 이 감옥은 무엇을 위한 감옥인 것 같으냐?"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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