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은학이

제4장 새로운 시작-2-

다음 날 오후, 은학은 휴대폰으로 석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혹시나 석우의 모친이 받지 않을까 노심초사했지만 다행히 받은 사람은 석우 모친이 아니라 본인이었다.

“여보세요.”

피곤한 음성이 흘려 나왔다.

“은학이에요. 몸은 어때요?”

“많이 좋아졌어.”

“두 번 다시 그런 짓 하지 마세요. 그런다고 제 마음 달라지지 않아요.”

“나 죽으려고 했던 건 아니야. 물론 너하고 헤어지고 어머니 그늘에서 언제까지 이러고 살아야 하나 하고 화나서 정신없이 과속으로 운전했던 건 사실이야. 하지만 아주 작심을 했었던 건 아니야. 그저 화가 치밀어서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뿐이야. 그리고 은학아 네 말이 다 옳아. 너 우리 집에 시집오면 마음고생만 할 거 뻔해. 우리 어머니 성격상 유별하게 독한 시집 사리시키실 거야. 그리고 난 그것을 불구경 하듯 방관만 할 거고, 우리 집에 시집오느니 평범한 집안에 좋은 사람을 만나 마음 편하게 살기를 바래. 이건 내 진심이야.”

“다친 사람은요?”

“정말 천만다행히 나 밖에 없어. 그리고 나도 그렇게 많이 다치진 않았어. 막 속도를 내면서 운전하는데 웬 떠돌이 강아지새끼가 도로에 지나가더라고, 아무리 하찮은 떠돌이 강아지지만 살아있는 생명이잖아. 그래서 급제동을 걸다가 사고 난 거야. 그리고 은학아 나 곧 미국유학 갈 거야. 한 몇 년동안 한국에 없을거야. 꼭 좋은 사람 만나기를 바래.”

“네. 석우씨도 좋은 사람 만나세요.” 은학은 통화버튼을 눌렀다. 휴대폰의 전원이 꺼지고 그녀는 그 걸 바지주머니에다 넣었다. 그리고 한숨을 쉬며 학교에 들어갔다.

*****

몇 시간 후 은학은 샌드위치를 들고 태준의 사무실에 노크를 세 번 하며 문을 열고 슬그머니 들어갔다. 30분 전에 태준에게 전화한 은학은 오늘 그가 갑작스러운 일로 야근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 바람에 김민정에게 집에서 저녁식사 대접하는 것도 엎어졌다.

태준은 은학이 들어오자 약간 놀랬다.

“여기는 웬일이야? 너 아까 여기에 온다는 말 안했잖아.”

“저 샌드위치를 사가지고 왔어요.” 태준은 약간 인색한 표정을 지었다.

“꼭 그렇게 염마대왕 같은 표정을 지어야 돼요.”

은학은 섭섭한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어제 자신이 가장 힘들고 괴로울 때 곁에 있어줘서 고마운 마음으로 저녁식사를 챙겨왔는데 정작 태준은 그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진 모양이다.

“전 별다른 생각없이 어제 일로.”

은학의 표정에는 섭섭함이 가득했다. 태준은 그녀를 달랬다.

“내가 인색하게 군거 미안해. 갑작스럽게 일이 터져서 나도 모르게 신경이 날카로워졌나 봐. 너무 섭섭해 하지마.”

태준은 그러면서 샌드위치를 먹기 시작했다. 은학은 그런 태준을 보며 이런 말을 하고 싶었다.

‘어제 자기 곁에 있어줘서 고마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