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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그드라시 님의 서재입니다.

상고배, 조선을 거스르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드라마

이그드라시
작품등록일 :
2023.10.15 23:35
최근연재일 :
2024.01.01 23:58
연재수 :
7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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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2,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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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11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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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쪽

055. 제주목사 정언유가 조선물산 교역소에 찾아오니

DUMMY

시간을 다시 돌려, 1749년 10월 어느 화창한 가을날.


대나무를 깎아가며 구명조끼를 만드느라 여념없던 사도세자가, 뭔가 생각났다는 듯 장부를 쓰고 있던 수연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김가야. 소식 들었느냐?”


“어떤 소식이요?”


심드렁한 수연의 대답.


요즘 새로운 소식이라 해봤자 청어가 너무 많이 잡혀 함수(짙은 소금물)가 부족할 지경이라는 것과, 녹산마을의 양봉사업이 생각보다 잘 되어간다는 것, 종달말 포작인들도 항해학당에 합류하여 본격적으로 청어잡이에 나섰다는 것 정도였다.


그녀가 늘 경계하고 있던 한양 조정에서는, 세자의 두 번째 서찰 이후 얼마 안되어 의주에 청나라 형부와 예부의 관료들이 찾아와 이윤방에 대하여 재 조사할 것을 통보하였다고 하니, 조정 관료들 모두가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세자의 혜안에 놀랐다고 했다.


청에서는 그를 봉천성으로 압송하라 했지만, 원 역사와는 달리 그는 압송되던 중 해주 부근에서 달아나버렸고, 지금껏 그를 찾지 못하고 있어 청나라에서는 고의로 그를 숨겨준게 아니냐 하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고 하니 조정에서는 그런 청나라를 어르고 달래며 상대하느라 제주 쪽으로는 전혀 관심을 돌릴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런 상황이었으니, 왠만한 소식에는 관심이 없던 수연이었다.


“이번에 제주 목사가 새로 부임을 했다 하는구나.”


세자가 조금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하자 수연은 별 것 아니라는 듯 손을 저었다.


“아 그거라면 벌써 들었어요. 부임했다고 제주 각지를 돌아다닌다는데, 제주성에서 출발한 게 닷 새 전이니 아마 내일이나 모레쯤이면 여기 조천말에도 올 거에요.”


“네가 그걸 어떻게 아느냐?”


“저하. 장사꾼이라면 관가에서 흘러나오는 소식 단 하나라도 빠트리지 않고 들어야 해요.”


수연은 장부를 닫고, 잘 말린 누룽지를 꿀에 찍어 입에 넣었다.


“으! 역시 머리 쓰고 나서는 단게 최고야.”


하며 기지개를 켜는 수연. 세자는 애써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제주 목사로 누가 오는지는 들었겠구나.”


“정언유(鄭彦儒) 라는 사람이 온다는건 알아요.”


수연이 기억하는 정언유는 1749년부터 1751년여 까지 제주 목사를 지내며 탐라별곡을 남긴 사람이라는 것일 뿐.


‘이마저도 경제사 과제가 아니었다면 전혀 몰랐을테지만...’


정언유는 다른 제주목사와는 달리, 제주 백성들에게 가해지던 공물의 부담과 가난함에 대해 연민하고 어떻게든 개선해보려 했던 사람으로 알고 있었다.


그와 접촉하여 수연이 구상하고 있는 이런 저런 사업구상을 설명하는 동시에 지금껏 조천말에서 이뤄낸 것들을 보여준다면, 그녀의 사업을 제주 전역으로 확장시킬 수도 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내가 아는 건 딱 거기까지라는게 문제지.’


수연은 열심히 대나무를 깎는 세자를 힐끗 바라보았다.


‘정언유라는 인물이 만약 노론의 일원이라서 사도세자를 알아보고 바로 조정에 고한다면?’


그 즉시 세자는 청나라에 있던게 아닌 제주에 있는게 발각되어 즉시 의금부로 끌려가거나 뒤주에 들어갈 것이었고, 자신은 그를 도운 죄로 아무런 이름이 남겨지지 않은 채 죽게 되리라.


이제 겨우 확장된 사업을 소화하면서 안정을 꾀하고 있는 시기.


한번에 몰아치는 발전보다는 천천히 내실을 쌓아가는 동시에 새로 부임할 제주목사 정언유라는 인물에 대해 경계를 늦추지 말자고 수연은 생각했다.


“아!”


그때, 세자가 대나무를 깎다가 손을 베었는지 짧은 신음을 내었다.


“저하! 괜찮아요? 손 베인거에요?”


“...손가락을 살짝 스쳤구나. 괜찮다.”


수연은 무명천으로 세자의 엄지 손가락을 감아주었다.


“자. 이쪽 손은 이렇게 쭉 들고 있어요. 심장보다 위에 있어야 피가 금방 멈출거에요.”


“꼭 그래야 하느냐?”


“하이고. 저하. 애기씨 말 들어서 언제 손해본 적 있었던가요?”


옆에서 장부 정리하던 수연을 돕던 박 객주 역시 수연의 편을 들자, 세자는 아무 말 없이 오른손을 들어 천장으로 쭉 뻗었다.


엄지에는 무명천이 칭칭 감겨있는 채, 잔뜩 근엄한 표정으로 허공에 따봉을 날리고 있는 모습에 수연은 자유의 여신상이 떠올라 순간 웃음이 터져나왔다.


“푸흡!”


“...웃지 마라.”


“이 모습..풉...을 보고...크흡!...어떻게...안..웃어요!”


“박 객주 자네마저!”


장부로 얼굴을 가린채, 어깨와 팔이 들썩거리는 박 객주를 보며 세자는 세상에 믿을사람 하나 없다며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그 때, 문이 열리더니 장 별감이 들어와 세자를 찾았으니, 난생 처음보는 자세로 얼굴이 벌개진 채 뭐라 하는 세자와, 어떻게든 웃음을 참아보려는 이들을 바라보며 대체 무슨일인가 싶어 황당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저하.”


“장 별감. 지금은 제발 아무것도 묻지 말아주게.”


상황을 대충 파악한 장 별감은, 이내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한 마디 말을 남기고 다시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신은 저하께서 광대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만, 어찌되었든 이리 잘 지내시는 모습을 보니 여한이 없습니다.”


“아닐세! 자네가 생각하는 그런게 아니라고!”


절망하는 세자와, 웃음기 가득히 걸어나가는 장 별감, 빵 터져버린 수연과 박 객주의 웃음소리가 회의실을 가득 메웠다.




**




“연희각에서 떠날 때만 하더라도 제주는 그저 감귤이 많이 나는 섬으로만 알고 있었지. 이렇게나 생활이 어려운 백성들이 많은줄은 몰랐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을꼬...”


정언유가 제주목사로 부임 후 첫 순력에 오른지도 엿새가 되었지만 하루하루 제주목 이곳 저곳을 돌아다닐수록 안타까움이 커져만 갔다.


이제 봄이 되었건만 농사지을 준비는 전혀 되어있지 않았고, 마을마다 굶주린 이들이 가득하니 그나마 풀 죽이라도 끓여먹거나 하면 다행인 수준이었으니까.


그런 정언유의 기분을 조금이나마 풀어주려는 듯, 순력길에 동행하고있던 귤림서원의 유생 하나가 굽실거리며 말했다.


“목사 어르신. 제주 백성들의 삶이 퍽 고단하지만, 조정에서 매년 쌀을 보내주니 이 또한 주상전하의 은혜가 아니겠습니까.”


유생의 말에 대정현감 송덕수가 유생의 말에 맞장구 쳤다.


“아닌게 아니라, 목사께서 부임하시면서 자그마치 쌀 삼천 석을 구휼미를 가져오셨다지요! 거기다 삼년여를 대동미 납부를 면제하셨다니. 이토록 어진 수령이 제주에 왔음을 알리는 송덕비라도 세워야 함이 어떨까 합니다 으하핫!”


그런 송덕수의 아부에 정언유는 손사래를 쳤지만 속으로는 한숨을 쉬었다.


대정현감의 속내야 어쨌든 그의 목적은 정언유가 가져온 구휼미를 한 석이라도 더 타내는게 목적이었을 터.


정언유 역시 전임자에게 익히 들어 저들이 제주 목사에게 바라는 것들을 모르지는 않았다.


제주목사의 능력과 덕목을 떨치기 위해서는, 제주 사람들에게는 한양에서 얼마만큼의 구휼곡을 받아오느냐로 송덕비의 크기가 결정되었고, 반대로 조정에서는 얼마만큼의 귤과 해산물, 그리고 가장 중요한 말을 얼마나 진상하는지에 따라 다음 벼슬길이 결정되었으니까.


다만 그의 나이 예순 둘.


어떻게는 기를 쓰고 중앙으로 진출하려던 다른 제주목사들과는 달리, 이제 그는 벼슬길을 마무리할 시기라고 여겼기에 송덕비의 크기보다 저 패기넘쳐보이는 후학들에게 좋은 교훈을 남기는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수령이 수령의 일을 하는게 어찌 찬탄할 일인가. 그만한 것으로 송덕비를 세운다면 후대에 웃음거리가 될걸세.”


정언유의 뼈 있는 말에 유생과 대정현감은 흠흠 하며 고개를 돌렸다.


“백성들이 옷과 먹을 것이 없이 저리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을 돌아다니는 곳곳마다 있으니...”


그는 뒷 말을 생략했지만, 유생과 현감은 어찌 선비와 위정자라는 사람들이 백성을 이렇게나 돌보지 못했냐 라는 질책을 듣는 것 같아 고개를 숙였다.


“순력길에 보셔서 아시겠지만, 이 제주 섬에 농사 지을만한 땅이 많지가 않지요. 그나마 해안가에나마 조그맣게 농사 짓는 땅이 있습니다.”


“나도 보았네. 죄다 검은 모래나 다름없는 흙이지만... 다들 어떻게든 농사를 지으려 애쓰던 모습이 선하네.”


정언유는 순력길에 보았던, 제주 백성들이 농사 짓는 모습이 기억났다.


정의현 어느 촌로가 말하길, 밭을 밟아 주는 밭볼리기라는 기술을 하지 않으면 씨를 뿌리지 못하고, 바량이라는 기술을 하지 않으면 이삭이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기에 소나 말을 몰고 나와 종일 달리게 하고 짓밟게 하고 돌로 담을 쌓은 밭 안에 가두어 밤낮으로 밭에 분변을 모아서 거름으로 써야 겨우 농사가 된다 했던가.


“그나마도 씨를 뿌려 싹이라도 날 때면, 큰 비와 집을 날라게 할 정도로 거센 바람이 불어 곡식을 망치기가 매일같으니...”


대정현감 송덕수는 감정에 북받쳤는지 고개를 떨궜다.


정언유도 똑똑히 보았다. 순력 이틀째, 한성에서는 볼 수 없었던 크나큰 비와 바람이 불어 얼마 안되는 밭을 황폐하게 만든 것을.


채찍으로 갈갈이 찢어놓은 듯 한 밭. 그나마도 이삭이 모두 썩어문드러져 먹을 것 하나 건지지 못한 모습을.


“목사 어르신께서 현실을 직시하시라 하시니 소인도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만...”


귤림서원의 유생도 작심했다는 듯 입을 열었다.


“목사 어르신께서 부임하기 바로 전에, 제주 백성들에게 환곡이 돌아간 적이 있습니다. 환곡이라 함은 어쨌든 갚아야 하기에, 그나마 밭에서 조금이나마 수확하는 것으로 환곡 빚을 갚으니 먹을 것이 없어 메밀과 상수리로 만든 모밀밥이나 상수리 죽을 쑤어 먹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메밀과 상수리라니! 대체 이 제주 섬은 아무리 발버둥쳐도 가난해질 수 밖에 없는 곳이란 말인가?”


정언유는 유생의 말에 탄식하고는 아까전 저들에게 좋은 가르침을 주기로 마음먹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이런 상황에서 백성들에게 쌀 한 톨 더 먹일 수 있다면 송덕비 쯤이야 몇 개고 세워줄 기세였던 저들의 진심이 조금이나마 닿았기 때문이었다.


그 때, 대정현감 송덕수가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저으기 조천말과 엄젱이말, 그리고 종달말은 날이 갈수록 풍요로워 진다고 들었습니다.”


유생이 운을 띄우자 정언유가 눈을 빛냈다.


“조천말 하고 엄젱이말, 종달말이라고?”


그의 물음에 대정현감 송덕수가 받아쳤다.


“그러고 보니 작년부터 무슨 밧줄에다가 바닷물을 부어 소금물을 만들어 거기에 청어를 절여 판다 하였지요. 그 것으로 전라 강진에 가서 쌀을 바꿔와 먹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청어를 소금물에 절였다라. 내가 순력길에 보니, 여기 제주는 전라도처럼 염전을 만들만한 곳이 없던데. 소금이 없어 청어를 소금물에 절인것인가?”


정언유가 뭔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되묻자, 대정현감 송덕수는 머리를 긁으며 답했다.


“저도 말로만 들은 이야기인지라...”


“여기서 조천말까지 얼마나 걸리는가?”


“그리 멀지는 않습니다. 반 나절을 걸어가면 될 길이고, 말을 타고가면 한 시진 정도면 족히 도착하지요.”


“가 보아야겠네.”


“조천말에 말씀이신지요?”


“자네가 그러지 않았는가. 소금물에 절인 청어를 팔아 쌀로 바꿔먹는 사람들이 있다고. 그 것이 진정 사실이라면, 이 제주 섬에 그나마 백성들이 먹고 살아갈 길이 있지 않겠는가.”


하며 정언유가 말에 올라타자, 대정현감 송덕수 그리고 귤림서원의 유생도 뒤따라 말에 올라탔다.


한 시진 하고 세 각쯤 달려왔을까. 마을 어귀에 들어선 정언유 일행은 포구 근처 큰 기와집을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이럴수가! 여기가 진정 같은 제주 섬이 맞단 말인가?”


“소인도 말로만 들었지 이렇게나...”


정언유와 유생, 그리고 대정현감 송덕수 모두 입을 떡 벌린 채 얼마전 완공된 조선물산의 신설 교역소를 바라보고 있었다.


쉴새없이 소금 자루와 소금물이 들어있는 듯 한 나무통이 들어오고 나가는 모습.


하얗다 못해 뽀얀 쌀알들이 잔뜩 담긴 가마를 주고 받는 모습.


붉게 훈연된 청어가 궤짝째 배에 실리는 모습.


꿀 같은 것이 담겨 쌀이며 청어며 바꿔가는 모습.


무명을 수백 필씩이나 주고받는 모습.


멀끔한 무명옷을 입은 이들이 돼지며 닭이며 산짐승 고기를 소쿠리 가득 사가는 모습까지.


“저...목사 어르신 저기를 좀 보시지요.”


송덕수가 가리킨 곳을 보니, 남녀노소 누구나 주머니를 매달고 있었으니 쌀을 사던, 청어를 사던, 무명을 사던 저 주머니를 내미는 것이었다.


그때. 한 여인이 녹색 비단옷을 입은 채 진흙길 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다가와 물었다.


“교역소에는 어쩐 일이셔요? 혹 물산 식구라면 목패를 보여 주시어요.”


걸걸한 목소리에 딱 보아도 억척스러운 삶을 살아온듯한 중년의 여인이 얼굴에 미소를 띄운 채 그에게 말했다.


정언유는 그녀가 저 기와집의 주인쯤 되는 사람임을 알고 하대하지 않고서 말을 걸었다.


“...본관은 제주 목사 정언유라고 하오. 교역소는 무엇이고, 또 목패는 무엇이오?”


제주 목사라는 말에 그녀의 안색이 바뀌더니, 고개를 푹 숙이고는 하나씩 설명해주었다.


“엄맴매! 실례가 많았습니다요 목사 나으리. 쇤네는 조선 물산 행수 박 객주라 하는데, 여기 교역소는 조선 물산 상단에 적을 둔 사람만 출입할 수 있고, 목패는 처음에 물산에 입적할 때, 그의 신분을 보증하는데 쓰인답니다.”


하며 다시금 고개를 숙이는데, 정언유는 다급히 손사래 치며 캐물었다.


“본관이야 당연히 물산에 적을 둔 적 없으니 뭔가 얻으러 오진 않았소. 다만 제주 순력길에 조천말과 엄젱이말, 종달말이 풍요롭다는 말을 들어 와 보았을 뿐. 교역소를 좀 구경해도 되겠소?”


“안될 것은 없지요. 이 쪽으로 오셔요.”


하며 박 객주는 교역소로 정언유 일행을 데려갔다.


교역소는 기와집처럼 보이는 곳 말고도 그 뒤에 또 다른 건물들이 줄줄이 서있었다.


돌과 진흙으로 견고하게 지어진, 한성의 어느 기왓집보다도 더 커다란 창고들에는 각 미창 (쌀 창고), 어창 (청어 창고), 면창 (무명천 창고), 염창 (소금 창고), 밀창 (꿀 창고), 건해창 (전복, 미역 등 말린 해산물 창고) 이라는 글자가 붙어있었고, 정언유 일행보다 다들 키가 큰 이들이 몽둥이를 들고 삼엄하게 서 있었다.


“내 여지껏 여러 창고를 보아왔지만, 이렇게나 기강이 엄정한 곳은 처음이네!”


“소인도 말로만 들었지 조천말이 이렇게나...”


정언유와 유생, 송덕수는 창고들을 보며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여기 보관되어 있는 물목들이 양이 얼마나 되오?”


정언유의 질문에 박 객주는 소매에서 종이를 꺼내 보고는 무언가 헤아린 다음에 답해주었다.


“쌀이 삼천 오백석, 훈제 청어가 이천 팔백 칠십 세 두름 (57,460마리), 무명천이 일천 팔백여필, 소금이 사만 근 (24,000kg), 꿀은 일백이십 근 (72kg), 전복하고 미역 등등 합해서 일천 백여근 (660kg) 가량 되니, 상평통보로는 대략 사만 냥 가량 되겠어요.”


“사..사만 냥이라고 하였소?”


예상을 뛰어넘는 아득한 수치에 정언유는 물론 다른 이들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예 목사 나으리. 아직 강진에서 쌀이 덜 들어왔으니 마저 들어오면 더 늘어날테어요.”


“허어...여기에 더 들어올게 있단 말이오?”


정언유는 도무지 믿을수가 없었다.


자신이 목사로 부임해올 때 조정에 사정사정 하여 받아온 구휼미가 삼천 석이었건만, 여기 교역소에 있는 물목들로만 하여도 사만 냥. 그러니까 쌀로 따지면 팔천 석이 넘는 것이었다. 그런 물목 전부 한 개 상단의 것이라니.


‘제주목 재정으로 쓰이는 돈이 일 년에 십만 냥이 채 안될터인데...’


십만 냥이 무엇인가. 팔만 냥 조금 넘어가는 수준이면 매우 양호할 터. 그런 상황에서 이런 저런 물목을 사만 냥 가까이 쌓아두고 있는 교역소의 존재가 충격으로 다가왔다.


정언유는 제주 목사로 오기 전, 경상땅 영해부사로 재직할 적에 어째서 제주에 이런 상단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몰랐는지 의아했다.


아니. 이제는 그게 중요하지는 않았다.


조선물산 교역소에서 정언유는 이 가난하고 불행한, 제주목의 새로운 희망을 발견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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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060. 한양에 흩날리는 괴문서들 +5 23.12.16 617 21 12쪽
61 059. 영조의 정신이 서서히 흐려지기 시작하니 +4 23.12.15 608 21 12쪽
60 058. 그물을 던져 목사를 낚고 +5 23.12.14 608 25 15쪽
59 057. 서로 배수의 진을 치고 마주앉은 형국은 +1 23.12.13 600 22 15쪽
58 056.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5 23.12.12 608 26 14쪽
» 055. 제주목사 정언유가 조선물산 교역소에 찾아오니 +4 23.12.11 637 26 16쪽
56 054. 혼란에 빠져버린 조정과 이득을 취한 자 +4 23.12.09 640 23 13쪽
55 053. 세자의 두번째 서찰이 조정에 도착하다 +3 23.12.08 647 30 14쪽
54 052. 완벽한 오판과 교란작전 +2 23.12.07 627 24 13쪽
53 051. 궁궐에 퍼지는 괴소문 +5 23.12.06 635 27 13쪽
52 외전. 봄날의 풍어제 +1 23.12.05 515 22 14쪽
51 외전. 사치라는 의미와 구명조끼 +2 23.12.04 537 24 15쪽
50 050. 칠종칠금 (七擒七縱) +6 23.12.03 649 25 13쪽
49 049. 최득수가 마지막 숨을 내쉬던 밤 +4 23.12.02 636 22 12쪽
48 048. 어느 봄비 흩날리던 날 +8 23.12.01 634 21 18쪽
47 047. 최득수의 소금, 수연의 청어 +3 23.11.30 637 25 14쪽
46 046. 붉은 청어 +5 23.11.29 649 22 12쪽
45 045. 최득수가 소금을 만들기 시작하다 +2 23.11.28 654 24 13쪽
44 044. 수연의 큰 그림 +3 23.11.27 673 23 13쪽
43 043. 항해학당 시험날 찾아온 사람들 +1 23.11.26 653 26 13쪽
42 042. 포작인들을 항해학당으로 모셔온 방법 +2 23.11.25 673 23 14쪽
41 041. 수연이 항해 학당을 세우고자 하는 까닭 +2 23.11.24 678 25 12쪽
40 040. 엄젱이말에서 찾아온 손님과 제주 소금 협동 조합 +3 23.11.23 682 29 16쪽
39 039. 누가 백성들을 살릴 것인가? +4 23.11.22 706 29 15쪽
38 038. 세자가 제주의 참상을 목격하니 +1 23.11.21 711 27 16쪽
37 037. 수연이 던진 미끼를 덥썩 물어버린 최득수 +2 23.11.20 714 23 13쪽
36 036. 수연이 최득수에게 소금을 팔러 가던 날 +4 23.11.19 727 29 20쪽
35 035.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다른 사람에 의해 치유됨을 +2 23.11.18 734 23 14쪽
34 034. 산재보험을 도입한 수연과 감격한 세자 +2 23.11.17 741 29 13쪽
33 033. 수연이 조천말 사람들을 설득하니 +1 23.11.16 719 24 13쪽
32 032. 조천말 한 가운데 염전이 생긴다면 +4 23.11.15 754 25 12쪽
31 031. 밧줄로 염전을 만들고 +3 23.11.14 773 27 12쪽
30 030. 다시 돌아올 자신을 위해 +4 23.11.13 786 27 13쪽
29 029. 최득수를 찾아간 수연과 짧은 해후 +2 23.11.12 797 24 14쪽
28 028. 세자의 홀로서기와 수연의 응원 +1 23.11.11 845 26 12쪽
27 027. 떠나요 넷이서 모든걸 훌훌 버리고 +4 23.11.10 863 32 13쪽
26 026. 사도세자 사표내고 창경궁 탈출합니다 +2 23.11.09 902 30 15쪽
25 025. 모든걸 내려놓은 세자와 그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 +2 23.11.08 877 29 14쪽
24 024. 달빛이 머무는 강에서 수연은 +3 23.11.07 1,007 28 12쪽
23 023. 영조의 입은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으니 +2 23.11.06 939 26 14쪽
22 022. 소쩍새는 뒤주 속 별을 찾아 날아오고 +4 23.11.05 906 26 13쪽
21 021. 추락하는 사도세자와 등장한 뒤주 +3 23.11.04 926 24 12쪽
20 020. 게장과 곶감이 연회상에 오르던 날 +3 23.11.03 954 24 17쪽
19 019. 영조가 사도세자를 성군의 재목이라 추켜세우다 +2 23.11.02 979 27 13쪽
18 018. 세자가 옹주에게 항아리를 내어준 까닭 +3 23.10.31 1,009 3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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