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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그드라시 님의 서재입니다.

상고배, 조선을 거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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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그드라시
작품등록일 :
2023.10.15 23:35
최근연재일 :
2024.01.01 23:58
연재수 :
7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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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604
추천수 :
2,170
글자수 :
452,428

작성
23.12.01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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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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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글자
18쪽

048. 어느 봄비 흩날리던 날

DUMMY

최득수는 오랜만에 기분이 좋았는지, 누군가의 이야기에 폭소하며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을수가 없었다.


“파하하하하핫! 내가 오십 평생을 살아오며 들었던 이야기 중에 가장 웃겼구나!”


덮수룩한 수염이 씰룩거릴 정도로 박장대소하던, 최득수는 너무 웃었는지 눈물이 찔끔 나왔다.


“그래. 김가 그것이 상인들을 죄 모아놓고서 청어를 내어주겠노라고, 자기네와 함께 하자고 떠들었다지?”


“도방 어른께서 제대로 들으신 바가 맞습니다. 청어를 원하는 대로 다 내어줄테니 제발 자기네와 매매를 하자고 사정하는 꼴이 참으로 우스웠습니다. 차라리 도방 어른께 싹싹 빌면서 다시 받아달라고 하면 그랬을 것을.”


당장이라도 웃음이 터져나올 듯 한 표정의, 권씨 성을 가진 나이든 사환이 최득수에게 아부하자 그는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생각했다.


권 사환은 그간 병상에서 눈에 잘 띄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모두가 염전을 세워 소금을 굽는 것을 반대했을 때, 홀로 찬성하였고 그 길로 최득수의 눈에 들어 그의 서기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김가 놈이 제대로 궁지에 몰리긴 했나보구만. 어디 잡을 사람이 없어 보부상을 잡으려 해.”


“그러게나 말입니다 도방어른.”


“결국 그놈의 그릇은 거기까지 였던게지. 뭐, 김가 이야기는 그만 하고, 그래. 염전을 더 늘릴 땅을 찾았다 했느냐?”


“예 도방어른. 저기 남당포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해변가인데...”


권 사환은 대강 거리를 짐작하고는 지도에 있는 한 지점을 손으로 가리키며 최득수에게 고했다.


“지금 굽고 있는 소금은 육 할을 병영성으로 보내야 하기에 이문이 많이 남지는 않겠지만, 여기 이 땅 마저도 염전으로 만들어 소금을 구울수만 있다면 우리 병상은 단박에 전라 제일 상단을 넘어 저기 개성 송상하고도 한 번 겨뤄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송상하고도 견줄 정도? 이문이 얼마나 남기에 권 사환은 그리 확신을 가지고 말하는가?”


권 사환의 말에 최득수는 그를 의심에 찬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도방 어른. 이 땅 전부가 염전으로 탈바꿈 된다면, 소금을 구워 내는 이문으로만 일 년에 십만 냥이 넘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십만 냥이라.”


“예 도방 어른!”


지금 병상이 일 년간 남기는 이문이 일 만냥 가량 되었는데, 일 년에 십만 냥을 이문으로 남긴다면 열 배 가량 성장을 이루는 것이니 순간 최득수의 마음에 불이 지펴졌다.


“땅을 매입하는데에는 얼마나 들어가겠는가.”


“간략히 알아만 왔는데, 사천 냥이면 될거라고 했습니다.”


사천 냥.


방금까지의 흥분을 가라앉히고 애써 냉정을 되찾은 최득수는 생각에 잠겼다.


상단 수중에 있는거라곤 저 사천 냥 돈과 창고 가득 채워진 소금 뿐.


‘병사 영감에게 진 사천 냥 빚을 갚거나, 저 돈으로 땅을 매입하여 염전을 일구거나.’


“쓰읍.”


최득수의 고민이 길어지자 권 사환은 천천히 보시라 하면서 방을 빠져나가려고 했다.


“잠깐.”


그런 그를 최득수가 불러세우고는 다시금 물어보았다.


“땅을 사서 염전으로 만드는데 사천 냥이면 된다고?”


“예 도방 어른.”


같은 것을 또 물어보는 최득수를 바라보며 권 사환은 확신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갯벌을 염전으로 바꾼다고 했으면 무슨 미친소리를 하는 사람 취급할게 뻔했지만, 탐욕이라는 불꽃이 눈동자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는 사람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 하여도 믿을 것 이라는걸.


그 때, 대문쪽에서 큰 소리가 나더니, 머슴 하나가 달려와 최득수에게 고했다.


“어르신! 도련님이 오셨습니다요!”


“도방 어른. 그만 일어나 보겠습니다.”


“아니야. 권 사환은 그대로 있게.”


잠시 후, 두식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최득수 앞에 기어오다시피 하며 다가왔다.


그 모습을 보며 최득수는 혀를 끌끌 차며 두식을 나무랐다.


“두식아. 아니 최 행수야. 네놈은 내가 널 그렇게 찾는 동안 어디서 무얼 하고 다녔느냐?”


“...남당포에 갔었습니다.”


“남당포라. 그래 네놈도 김가 그 것이 파는 청어를 보러 갔었더냐.”


“...예.”


“내가 널 얼마나 찾은지 아느냐?”


“찾으셨을거라 짐작은 했습니다.”


“그런데 왜 거기에 갔느냐?”


“...”


최두식이 아무런 말 없이 고개를 숙이자 최득수는 혀를 끌끌거렸다.


“못난 놈. 가서 아사리판을 만들어 올 생각은 않고.”


최득수의 조용한 일갈에 최두식은 아무런 말 없이 묵묵히 듣고만 있을 뿐이었다.


“대체 어떤 놈이 우리 병상에 먹칠을 하는지 궁금했는데 말이다. 오늘로서 그 궁금증이 풀렸구나.”


그 말에 최두식은 마음이 아파왔다. 이제는 병상에서 완전히 자신의 입지가 사라져 버린듯한 기분에 좌절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나면 안될 일이었다. 아직 병상을 제 자리로 돌릴 수 있을거라 생각했고, 무엇보다도 ‘경고’를 최득수에게 전해주어야 했으니까.


“하오나...”


“네놈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은 듯 한데.”


최득수의 송곳같은 말들이 그의 폐를 깊숙이 찌르는 듯 했지만, 최두식은 어떻게든 용기를 쥐어 짜내 외치듯 말했다.


“나...나라에서! 조만간 모든 염전을 관으로 몰수하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나라에서 염전을 몰수한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


최득수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짓기도 전에, 권 사환은 손사래치며 말했다.


“최 행수께서 무언가 잘못 알고 계시는 듯 합니다. 도방 어른. 안 그래도 얼마 전 듣기로 나라에 사사로이 소금 만드는 이들이 갈수록 늘어나니 세금이 제대로 걷히지 않아 나라 운영이 어렵다 하여 전국에 염전이 몇 곳이나 있는지 조사한 다는 것이 와전된 모양입니다.”


“흐음... 그런가? 그러고 보니 병사 영감이 비슷한 말을 했던 것 같기도 한데. 두식이 너는 네가 들은 이야기를 뒷받침할 증거가 있느냐?”


“그것은...”


최두식은 이내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가져왔다는 것에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 했다.


“...소자가 잘못했습니다.”


“잘못 했지. 아암. 잘못했고말고.”


“아버지...”


“다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움츠러든 최두식을 보며, 최득수는 한숨을 쉬었다.


“어째서 내가 염전을 일구고 소금을 파는 와중에 염전과 관련된 소식이 이리 자주 들리는지 모르겠구나.”


최득수는 수염을 매만지며 고민에 빠졌다.


병영성에 소금을 잔뜩 실어다가 가져갔던 것이 보름 전 일이었다. 그 때 병마절도사 조동제는 최득수에게 조만간 염전과 관련하여 조정에서 이야기가 나올거라 살짝 언질을 주었었다.


“도방 어른. 잘은 모르겠지만 나랏님께서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게 아니겠습니까?”


권 사환의 말에 최득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금이라는 것이 나랏님 입장에서는 얼마나 귀한 것이겠느냐. 그러니 병사 영감도 그런 말을 했었던 것이겠지. 역시 권 사환이야. 참으로 명쾌한 답이었네.”


“하지만...”


최두식은 짧은 신음을 내며 고개를 떨궜다. 저 권 사환이라는 자는 어느새 아버지 곁에 찰싹 달라붙어 온갖 감언이설을 내뱉으면서 아버지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있었다.


“염전을 몰수한다니 하는 말은 덮어두고, 염전을 새로 늘릴 땅을 매매하는데 집중해야 한다. 사천 냥이라는 거금이 들어가는 만큼, 이번 매매에 우리 병상의 미래가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임을.”


“예? 방금 뭐라 하셨습니까? 지금껏 늘린 염전이 몇 개인데 사천 냥을 더 들여서 염전을 늘리겠다 하셨습니까?”


“이미 결정된 것이니 두식이 너는 아무 말 하지 말거라. 염전이 지어지면 다시 부르겠다.”


“아버지! 병사 영감에게 진 빚을 갚지 않고서 염전을 늘리는 것은 아니될 일입니다! 이놈들아! 이거 놓아라! 어서!”


최두식의 항변이 끝나기도 전에 문이 활짝 열리더니, 건장한 머슴 셋이 그를 끌고가 대문 밖으로 던지듯 내쫒았다.


“아아....!!!”


흙먼지가 잔뜩 묻은 채, 최두식은 주먹으로 흙바닥을 사정없이 내리쳤다.


겨우 용기내어 들어가기 싫은 곳에 들어가, 마주하기 두려운 사람을 마주하여 말하기도 겁나는 것을 말했건만 결국 이런 꼴이 되어버린 자신이 경멸스러웠다.


대문 위에 있던, 전라제일상단 (全羅第一商團) 이라는 현판이 이토록 부끄러웠던 적이 없었다.


아버지에게 듣기로, 옛날 조상님 중에는 충무공 이순신을 따라 종군했던 최희량 (崔希亮) 이라는 장군이 있었다고 했다.


우리도 장군님의 뜻을 기려 백성들에게 도움이 되는 장사꾼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던 기억이 떠오르며, 최두식은 지난번 대문 앞에서 보부상이며 다른 상인들을 밀치고 조롱했던 이들이 기억나 부끄러움에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이보오. 거 괜찮소?”


최두식이 정신을 차려 고개를 올려다보니, 왠 보부상 하나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자신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다행이라고 해야할진 모르겠지만, 이 보부상은 자신이 병상의 행수임은 모르는 듯 싶었다.


“예.. 보다시피...”


“혹시나 싶었는데 역시나로군.”


“예?”


“병상에 물목을 매매하러 가면 매를 흠씬 두들겨 맞고 쫒겨난다는 말이 있었는데. 형씨를 보아하니 그게 사실이었소.”


보부상의 동정어린 눈빛에 최두식은 할 말을 잃고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이제는 옛 행수였던 자신을 이렇게 쫒아낼 지경까지 왔음을.


“자. 이거. 받으시게.”


그런 두식의 몰골이 안쓰러웠는지, 보부상은 짐에서 무언가를 꺼내 최두식에게 건넸다.


“이건...?”


“그 뭐라더라. 연적청어라 하던가. 아무튼 받으시오. 얼마 되진 않겠지만, 밑천으로 삼아 장사하기엔 나쁘지 않을테니까.”


엉겹결에 청어 꾸러미를 받아든 두식은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


“...이걸 왜 제게...”


“병상에 물목을 구하러 온 이들이 모두 동병상련의 처지가 아니겠소. 봄이 오고 있긴 하지만, 춥지 않소이까. 요즘.”


보부상의 말에 최두식은 지난번 수연이 포구에서 했던 외침을 떠올렸다.


밀려오는 부끄러움과 동시에 그녀의 마음 씀씀이가 널리 퍼져있음을 깨닫고는 방금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병상의 미래를 내던지고서 보부상이 건넨 청어 꾸러미를 손에 쥐었다.




열흘 뒤, 염전 관련 일로 병마절도사 조동제를 찾아간 최득수는 간단한 주안상을 나누다가 그에게서 도무지 믿을수 없는 이야기를 듣고 머릿속이 새햐애져버렸다.


“이번에 조정에서 균역법이라는 법이 새로 반포되었네... 전국에 있는 모든 염전이 곧 균역청 소속으로 바뀌며 기존에 있던 염전은 모두 몰수될거고...”


-텅! 데구르르...


조동제의 폭탄선언이나 다름없는 말에 최득수는 들고있던 술잔을 떨어트렸다.


“...병사 영감. 그게 대체 무슨 말씀이시온지...”


“조정에서 갑작스레 이럴 줄이야... 궁가의 염전도, 군자금을 위해 굽던 염전도 모두 균역청 휘하로 들어가게 되네...”


“예....? 그렇다면 상단에서 일구고 있는 염전이며... 병영성 염전들도 설마!”


조동제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최득수의 시선을 회피할 뿐이었다.


“그간 거래한 정이 있어 이리 언질을 주는 것이니. 수습하게. 시간이 많지가 않...”


조동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최득수는 문을 박차고 나가 버선발로 달려나갔다.


“권 사환! 권 사환! 대체 어디 있는가! 권 사환!”


집에 도착한 최득수는 애타게 권 사환을 불렀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머슴 몇이 그에게 다가와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볼 뿐.


“어르신! 권 사환이라면 저기 이번에 새로이 염전 만드는 곳에 있지 않겠습니까요.”


“그..그렇지! 염전!”


최득수가 염전으로 달려나가니, 권 사환이 웃으며 그를 맞이해주었다.


“권 사환! 이 땅...! 혹 염전으로 관가의 허락을 득하였는가? 제발 아니라고 해주게!”


“도방 어른? 행색이 왜 이리... 사흘 전에 병영성의 염전이라 하여 관가의 허락을 득하였습니다. 역시 병마절도사의 뜻이라니까 안 되는게 없... 도방 어른!!”


혼절할뻔한 최득수는 겨우 정신을 붙잡고 다시 병상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땅이야 얼마든지 나라에 내어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껏 만들어둔 소금까지 나라에 고스란히 내어줄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이걸 내다 팔아야 손해를 메꿀 수 있을테니까.


발톱이 깨어지고 피가 흘러 버선이 붉게 되었지만 아랑곳 하지 않고 최득수는 뛰고 또 뛰었다.


“다들 이리 오너라! 어서! 한 시가 급한 일이다!”


최득수는 머슴들을 불러다 세워놓고서 소금 창고에 있는 모든 소금을 꺼낼 것을 지시하니 이내 병상 안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창고에 있는 소금을 꺼내기 시작했고, 마당에는 소금 포대들이 산처럼 쌓이기 시작했다.


“너! 네놈들! 어서 이 소금들을 가지고 남당포로 가서 쌀이든 무명천이든 뭐든 바꿔오거라! 어서!”


“예..? 예! 그리 하겠습니다요!”


얼마 지나지 않아 소식을 들은 최두식과 박 사환이 황망한 얼굴로 병상에 도착하니, 최득수는 반 쯤 실성한 표정으로 이들을 맞이했다.


“두식아! 박 사환! 아직 소금이 남아있다! 창고에 소금이 남아있으니까! 저걸 가지고서 다시 시작하면 될 일이야! 다시 일어설 수 있단 말이다!”


일손이 모자랐기에 최득수는 직접 창고에 들어가 소금 포대를 밖으로 던지며 외쳤다.


“소금! 이 소금! 얼른 챙겨가야해! 관에서 사람이 오기 전에 얼른 챙겨가야 한다고!”


“아버지! 이제 그만...! 그만 하십시오! 법이 반포되었으니 곧 관에서 사람이 올 겁니다!”


최두식의 울부짖음에도 최득수는 연신 소금 포대를 던져대었다. 포대 주둥이를 대강 묶은 탓에 소금이 쏟아져 창고 근처는 하얀 눈이 내린 듯 했다.


“안돼! 이 소금이 어떤 소금인데! 한 톨도 못 내어줘! 내 소금이야! 내 소금이라고!!!”


“아버지...!”


그때, 남당포로 소금을 팔러갔던 머슴들이 돌아와 최득수를 찾았다.


“어르신! 어르신!”


“그래! 소금..소금은 다 팔았느냐! 손해를 보았어도 용서하겠다. 팔기만 하면 된다!”


“저... 그게...”


돌아오는 반응이 시원치 않자, 최득수는 창고 밖으로 나가 머슴들을 살펴보고는 놀란 눈이 되었다.


그들이 지고 갔던 소금이 그대로 있었다.


“...남당포 어느 누구도 우리 병상과 거래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을 내칠땐 언제고 이제 와 소금을 팔러왔냐고...”


“보..보부상들은? 혹시 거기에 경상이든 내상이든 없었느냐!”


“남당포에 있던 상인 모두가 김가 여인의 청어를 가져가려고 난리였었고... 저희가 병상에서 왔음을 알리자 몽둥이를 들어 쫒아내려 했을 뿐이었습니다 어르신...”


“아...”


비틀.


최득수는 그 자리에서 휘청거렸지만, 어떻게든 이 상황을 극복해내려 했다.


“아직 포기하기엔 이르다! 그래...! 소금을 모두 챙겨서 병영성으로 가겠다! 거기에 군량미가 있으니 소금을 내어주면 쌀로 바꿔줄 것이야!”


“이미 가져가 보았지만, 성문이 굳게 닫혀있었습니다!”


“뭐라고! 내가 아까 그 곳에서 나왔단 말이야!”


“어쩐 이유에서인지 성문을 닫고서 아무도 들이지 않으니..!”


“대체 왜! 왜 그런 것이란 말이야!”


“지난날 도방 어른께서 지은 죄가 많기에 그런게 아니겠습니까?”


그 때, 수연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병상의 대문으로 걸어들어오자 최득수는 눈에서 불을 내뿜듯 그녀를 노려보았다.


“너...너! 만덕이 네 년이!”


“도방께서는 체통조차 잃으셨습니까? 어디 함부로 이년이라 하십니까!”


“뭐...뭣?”


수연은 대꾸하지 않고, 한 걸음 물러나며 병마절도사 조동제를 앞으로 오게 했다.


“최 도방은 병영성에 있는 주전소의 돈을 사사로이 빌려다가 청과를 입도선매하여 손해를 보았는데 이는 국고의 손실이기도 합니다. 병사 영감.”


“...그것이 사실입니까?”


“병상 도방께 여쭈시지요.”


“...최 도방. 김 부인의 말이 모두 사실인가?”


“...”


최득수가 놀란 눈으로 아무말 않자, 조동제는 도무지 믿을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맙소사...”


조동제는 황당함과 동시에 무언가 끓어오르는 분노를 느끼고는 최득수에게 일갈하려할 찰나, 수연 옆에 있던 다른 장사꾼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최득수를 몰아세웠다.


“그 뿐만 아닙니다 병마절도사 나으리! 저 자는 소금을 만들고 유통한다는 이유로 지난 수십년간 거래하던 저희 장사꾼들과의 관계를 모두 단절하고는 저희들의 생활이 어떻든 오로지 소금을 만들어 파는데만 집중하였습니다.


심지어 소금을 사지 않으면 저희가 가져온 물목을 매매하지 않고서 조롱하거나 험악하게 대하였으니 장사꾼이 이문을 쫒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어찌 사람으로서 그런단 말입니까!”


“...사실인가?”


“...”


“이런 미친 자일 줄은...”


조동제의 분노에 최득수는 뒷걸음질 치다가 진창에 주저앉아버리고 말았다.


“으흐...히히...히.”


최득수의 기괴한 웃음에, 수연을 비롯한 모두는 소름이 돋을것만 같았다.


“그..그래... 그렇다 하여도 내겐 아직 소금이 있어! 이 소금들로 병사 영감께 진 빚도 갚고, 거기.. 보부상 그래 네놈들이 가져올 물건 모두를 다 사들이겠다! 그럼 된게 아니오? 으응?”


광기어린 말을 쏟아내었지만 그를 믿는 사람은 이제 없었다.


-톡.


“으음..?”


순간 수연은 무언가 물방울 같은게 이마에 떨어진 것을 느끼고서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비가 조금씩 내리더니 이내 봄비 치고는 쏴아아 하며 제법 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아....아아! 안돼! 내 소금! 내 소금들이! 으아..으아아아악!!!!”


최득수의 마지막 희망이었던 소금.


하늘에서 쏟아지는, 언제 그칠지 기약없는 봄비에 소금이 녹아 없어지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한 되라도 건져내려 최득수는 애썼지만 그가 건져낸 소금은 얼마 되지 않았고 창고에서 모조리 꺼내어진 소금 포대들은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최득수의 희망 또한 비에 녹아내리는 소금처럼 서서히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겨울이 지나감을 알리는 봄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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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8

  • 작성자
    Lv.66 실로펜
    작성일
    23.12.02 02:49
    No. 1

    잘봤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2 yj*****
    작성일
    23.12.02 09:09
    No. 2

    따갚되 정신이 이렇게 무섭군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1 ga******
    작성일
    23.12.02 10:23
    No. 3

    균역법이 세금징수가 아니고 염전 몰수인가요? 그냥 세금을 잘 내라는 것인 줄 알고있는데.....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32 이그드라시
    작성일
    23.12.02 14:13
    No. 4

    안녕하세요?
    말씀하신바 균역법의 목적은 백성들에게 가해지는 세금 부담을 완화 및 세금제도를 개편하기 위한 법령이었지만 줄어드는 세수를 보충하기 위해 어염선곽세(漁鹽船藿稅)를 균역청에서 징수토록 하게 되었으며, 이는 새로이 제정된 해세절목(海稅節目) 규칙에 따르게 되었습니다.

    [소금은 일체를 균역청 소속으로 하고 제 궁가 염분의 절수를 모두 없애며, 소금의 현물납(現物納)을 전납(錢納)으로 하고, 염세의 부담을 경감하며, 각각의 경중의 차이가 심한 것은 그 제염의 난이, 이익의 다과, 토지가격의 고저 등을 참작하여 공평하게 균분하여야 한다.]

    자세한 설명은 작가의 말에 보충해놓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0 치미타타
    작성일
    23.12.02 20:36
    No. 5

    최득수 끝이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0 Nothing
    작성일
    23.12.04 06:15
    No. 6

    아주 제대로 망했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4 nf1124
    작성일
    24.04.22 20:42
    No. 7

    근데 이렇게 분량을 잡아먹을 만큼 비중있는 인물이었는지 의문이네요

    딱히 주인공과 크게 원수진것도 아니라서 사이다도 아니고

    스토리 진행상 꼭 필요한 일인가 하면 그것도 의문이고요

    초반에는 제법 지혜로운 사람으로 나왔는데 나중엔 그냥 클리세 같은 엑스트라 악역처럼 변하니 왜? 굳이? 싶었어요

    뭘 보여주려고 이 등장인물을 이리 비중있게 다뤘나 의문입니다.
    고증이라서? 상단주 별거 아니란걸 독자에게 납득시키려고?
    스토리상 필요해서?
    설마 사이다를 노리고? 전혀 안 시원 한데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4 nf1124
    작성일
    24.04.22 20:43
    No. 8

    마지막 굳이 비까지 내리게 한 점에서 도대체 왜?? 굳이?? 싶었어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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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071. 이게 사실일리가 없다 +4 24.01.01 326 20 12쪽
72 070. 분조(分朝) +5 23.12.31 361 23 14쪽
71 069. 수연이 암영상단주와 재회하다 +3 23.12.29 472 23 12쪽
70 068. 설득과 또 다른 설득 +2 23.12.28 485 21 12쪽
69 067. 모두가 아니라 할 때 +1 23.12.27 501 20 13쪽
68 066. 또 다시 제주에서 +4 23.12.26 522 23 13쪽
67 065. 결단 +6 23.12.25 534 31 17쪽
66 064. 막다른 길에 몰린 수연은 +5 23.12.23 548 27 13쪽
65 063. 우려했던 현실 +3 23.12.21 571 21 12쪽
64 062. 불은 강을 건너오고 +5 23.12.20 589 23 13쪽
63 061. 강 건너 불 구경 +6 23.12.19 640 31 12쪽
62 060. 한양에 흩날리는 괴문서들 +5 23.12.16 609 21 12쪽
61 059. 영조의 정신이 서서히 흐려지기 시작하니 +4 23.12.15 601 21 12쪽
60 058. 그물을 던져 목사를 낚고 +5 23.12.14 600 25 15쪽
59 057. 서로 배수의 진을 치고 마주앉은 형국은 +1 23.12.13 593 22 15쪽
58 056.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5 23.12.12 600 26 14쪽
57 055. 제주목사 정언유가 조선물산 교역소에 찾아오니 +4 23.12.11 629 26 16쪽
56 054. 혼란에 빠져버린 조정과 이득을 취한 자 +4 23.12.09 632 23 13쪽
55 053. 세자의 두번째 서찰이 조정에 도착하다 +3 23.12.08 639 30 14쪽
54 052. 완벽한 오판과 교란작전 +2 23.12.07 618 24 13쪽
53 051. 궁궐에 퍼지는 괴소문 +5 23.12.06 627 27 13쪽
52 외전. 봄날의 풍어제 +1 23.12.05 507 22 14쪽
51 외전. 사치라는 의미와 구명조끼 +2 23.12.04 529 24 15쪽
50 050. 칠종칠금 (七擒七縱) +6 23.12.03 641 25 13쪽
49 049. 최득수가 마지막 숨을 내쉬던 밤 +4 23.12.02 627 22 12쪽
» 048. 어느 봄비 흩날리던 날 +8 23.12.01 625 21 18쪽
47 047. 최득수의 소금, 수연의 청어 +3 23.11.30 629 25 14쪽
46 046. 붉은 청어 +5 23.11.29 640 22 12쪽
45 045. 최득수가 소금을 만들기 시작하다 +2 23.11.28 645 24 13쪽
44 044. 수연의 큰 그림 +3 23.11.27 665 23 13쪽
43 043. 항해학당 시험날 찾아온 사람들 +1 23.11.26 645 26 13쪽
42 042. 포작인들을 항해학당으로 모셔온 방법 +2 23.11.25 665 23 14쪽
41 041. 수연이 항해 학당을 세우고자 하는 까닭 +2 23.11.24 670 25 12쪽
40 040. 엄젱이말에서 찾아온 손님과 제주 소금 협동 조합 +3 23.11.23 674 29 16쪽
39 039. 누가 백성들을 살릴 것인가? +4 23.11.22 697 29 15쪽
38 038. 세자가 제주의 참상을 목격하니 +1 23.11.21 704 27 16쪽
37 037. 수연이 던진 미끼를 덥썩 물어버린 최득수 +2 23.11.20 707 23 13쪽
36 036. 수연이 최득수에게 소금을 팔러 가던 날 +4 23.11.19 720 29 20쪽
35 035.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다른 사람에 의해 치유됨을 +2 23.11.18 727 23 14쪽
34 034. 산재보험을 도입한 수연과 감격한 세자 +2 23.11.17 734 29 13쪽
33 033. 수연이 조천말 사람들을 설득하니 +1 23.11.16 712 24 13쪽
32 032. 조천말 한 가운데 염전이 생긴다면 +4 23.11.15 747 25 12쪽
31 031. 밧줄로 염전을 만들고 +3 23.11.14 766 27 12쪽
30 030. 다시 돌아올 자신을 위해 +4 23.11.13 779 27 13쪽
29 029. 최득수를 찾아간 수연과 짧은 해후 +2 23.11.12 790 24 14쪽
28 028. 세자의 홀로서기와 수연의 응원 +1 23.11.11 838 26 12쪽
27 027. 떠나요 넷이서 모든걸 훌훌 버리고 +4 23.11.10 856 32 13쪽
26 026. 사도세자 사표내고 창경궁 탈출합니다 +2 23.11.09 895 30 15쪽
25 025. 모든걸 내려놓은 세자와 그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 +2 23.11.08 870 29 14쪽
24 024. 달빛이 머무는 강에서 수연은 +3 23.11.07 995 28 12쪽
23 023. 영조의 입은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으니 +2 23.11.06 931 26 14쪽
22 022. 소쩍새는 뒤주 속 별을 찾아 날아오고 +4 23.11.05 896 26 13쪽
21 021. 추락하는 사도세자와 등장한 뒤주 +3 23.11.04 917 24 12쪽
20 020. 게장과 곶감이 연회상에 오르던 날 +3 23.11.03 945 24 17쪽
19 019. 영조가 사도세자를 성군의 재목이라 추켜세우다 +2 23.11.02 970 27 13쪽
18 018. 세자가 옹주에게 항아리를 내어준 까닭 +3 23.10.31 1,000 3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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