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9. 최득수가 마지막 숨을 내쉬던 밤
“...뭐라 말 해야할지.”
최두식은 수연에게 고개를 숙였다.
“한때 같은 상단에 있었던 정이라고 해두세요.”
봄비가 오던 그날 이후, 최득수는 병석에 누워 오늘 내일 하고 있던 상태였다.
그런 그를 당장 하옥시켜 사건의 전말을 밝혀내겠다는 조동제를, 수연이 설득한 끝에 그를 감시할 군사 둘을 붙이는 조건으로 자택에 유폐되었으니, 최두식과 병상의 다른 사람들 입장에서는 최악은 피할 수 있었다.
다만 이후로 최득수의 상태는 점점 안좋아져 이제는 모두가 내려놓은 채 그를 지켜볼 뿐이었다.
수연은 최초 계획했던 것 보다 강진에 좀 더 머무는 대신 청어가 어떻게 팔리는지, 어디까지 팔리는지를 파악하며 시간을 보냈다.
벚꽃의 꽃망울이 점점 분홍색으로 바뀌어가던 그 날.
박 사환이 멀리서 헐레벌떡 뛰어오더니 최두식과 수연을 향해 외쳤다.
“최 행수! 도방 어른께서 찾으시오!... 김 행수도 가능하면 모셔오라 하셨습니다.”
최두식은 박 사환의 다급해보이는 표정에서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는 생각에 슬픔 보다는 씁쓸한 후련함이 몰려왔다.
‘후련하다고?’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한 충격이 몸을 휘감았고 스스로에게 역겹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럴수록 씁쓸한 후련함은 더 강하게 느껴졌다.
‘...나도 제정신이 아니구나.’
평생을 싸워온, 하지만 미워할 수는 없는 이를 떠나보내는 순간이 이런 느낌일까.
‘아버지...’
최두식은 아버지 최득수를 마음 속으로 불러보았지만,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언제였을까. 아버지가 더 이상 아버지로 느껴지지 않았던 순간이.
어제? 오늘? 일년 전? 기억을 헤아려 보아도 아버지께 진심을 담아 아버지라고 불렀던 순간은 도무지 기억해 낼 수 없었다.
아침에 눈을 떠서 밤에 잠이 들 때까지 아버지이자, 도방 어른은 하나의 사람이 아닌, 병상 그 자체였던 것만 같았다.
“가보셔야 하지 않을까요. 최 행수님.”
수연은 그런 최두식을 환기시킨 후에 최득수에게 가볼 것을 권했다.
“...김 행수께서는 어찌...”
최두식의 말에 수연은 고개를 저었다.
“마지막 순간에는 뵙지 않는게 서로에게 좋을 것 같아서요.”
“...이해하오. 그렇다면.”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최두식은 안채로 향했다.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 그를 바라보며, 수연은 들릴 듯 말듯한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도 이미 한 번 죽었던 목숨이었고, 조선에서 다시 눈을 떴지만 누군가의 죽음을 마주하는 순간만큼은 아직 적응하지 못했다.
내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얽혀있던 관계가 일방적으로 끊어지는 순간은 그다지 달갑지 않았다. 아니, 어떻게 보면 살아있는 사람에게는 조금 억울한 면도 있는게 아닌가? 살아남은 사람에게는 죽은 사람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어, 그가 죽을 때 까지 따라다니게 될테니까.
최득수는 이제 곧 세상을 떠나면서 그의 모든 것이 훌훌 던져지겠지만, 남은 사람들은 어떤 형태로라도 그를 기억하게 될거라는 점에서 수연은 다시금 자신의 처지를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전생의 기억이 온전히 살아있는 상태에서 이번 생을 살아가며 여러 기억들이 추가될 것이고, 이번 생을 마무리 한 뒤에 또 다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된다면...
‘정말 그렇게 된다면 난... 너무 외로울 것 같은데.’
예전에 그런 영화를 본 적이 있었다. 늙은이 존 이라는 사람이 일만 년 넘게 살아가며 겪었던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담담히 풀어내었던.
수연은 김만덕이라는 이름으로 두 번째 삶을 살아가는 지금, 늙은이 존을 만난다면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물어보고 싶었다.
‘아마 늙은이 존이라면, 이름을 지우고, 모두에게 잊혀지라며 도망가라 하겠지. 그런데 그게 나에겐 정답일까.’
그러고는 수연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이 와중에도 21세기 대한민국의 교육과정을 잘 밟아온 사람처럼 여전히 정답을 찾고 있다니.
애초에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눈을 떴을 때, 21세기에서 통용되던 정답들은 오답으로 바뀐지 오래였다.
다만 그 오답들이 반드시 틀린 것이냐 하면 그건 확신할 수 없었다.
21세기 사람의 사고방식을 18세기에서 펼칠 때, 모든 생각과 행동에 대해 그것이 옳고 그름 자체를 판단할만한 사람은 이 세상에 수연 혼자 밖에 없었으니까.
‘아니지. 한 사람 더 있지.’
수연은 사람이라고 불러도 될까 싶긴 했지만, 자신을 조선에서 눈을 뜨게 하도록 한 절대자 혹은 절대적인 힘 또한 어디선가 자신을 내려다 보며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고 있을거라 생각했다. 어떨 때는 정답이라고도 할 것이고, 어떨 때는 오답이라고 하며 열심히 자신을 평가하면서.
그녀는 고개를 들어 밤 하늘을 바라보았다.
감히 셀수도 없을만큼 반짝이는 별들이 밤하늘을 수놓고 있었고 지상으로 빛을 쏘아보내고 있었다.
저 무한한 별들 중에서, 혹은 저 별 모두가 자신을 조선 땅에서 눈을 뜨게 한 절대자라면 – 자신은 그에게 무어라 해야 할까.
잠시 곰곰이 생각한 수연은, 이윽고 그녀가 생각한 정답을 그에게 내밀었다.
“엿이나 처먹으라지!”
가운데 손가락을 밤 하늘 높이 치켜들고는, 수연은 흐뭇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웃기지 말라 그래. 내가 살아온 날들이 정답이었고, 내가 살아갈 날들이 정답일 예정이야.’
수연은 그렇게 심호흡을 하고서, 최득수가 있는 안채로 향했다.
그러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런 과정이, 자신처럼 두 번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겪는 성장통 같은게 아닐까 하고.
**
수연이 안채로 향하니, 박 사환이 깜짝 놀란 얼굴로 그녀를 맞이해주었다.
“기..김 행수!”
“도방 어른은요?”
박 사환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아직 늦지 않았다는 뜻에 수연도 고개를 끄덕였다.
“도방 어른, 조선 물산 김 행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누...구?”
“도방어른. 저 김가 만덕이에요.”
“....들어오시게.”
수연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방에 모여있던 사람들의 시선을 한 눈에 받았다. 여기가 어디라고 찾아오느냐는 눈빛부터, 그녀를 경멸하는 눈빛, 두려워하는 눈빛, 체념한듯한 눈빛, 썩 꺼지라는 눈빛까지 다양했지만 그녀는 신경쓰지 않았다.
‘당신들을 보러 온게 아니니까.’
수연은 성큼성큼 걸어가 최득수 앞에 앉았다. 그런 그녀를, 최득수는 반가운 사람이라도 온 마냥 고맙다는 눈빛으로 바라봐주었다.
“...안 올거라 했다던데.”
“마음이 바뀌었어요.”
“그런가...”
최득수는 눈을 감고서 잠시 있더니, 수연을 제외한 모두에게 밖에 잠시 나가달라 청했다.
예상외의 말이었던지, 모두는 걱정과 놀란 표정을 지으며 하나 둘 안채에서 나가니, 이윽고 최득수와 수연 둘만 남게 되었다.
“빈 손으로 태어나 결국 빈 손으로 돌아갈 것을 어찌하여 그리 독하게 살아왔나 모르겠네.”
“...”
“만덕이. 아니, 이제는 김 행수만 남기고 모두를 물린 이유가 짐작 가는가.”
“설마 저 보고 병상 도방 자리에 앉아달라. 이런 말 하시려는건 아니지요?”
그 말에 최득수는 꺼져가는 불꽃 속에서도 마지막으로 킬킬거리며 웃어보였다.
“참으로 자네답네. 거절할텐가?”
“제가 왜요? 지금 조선 물산 이끌어 가는 것도 벅차 죽겠는데.”
“...병상 모두를 미워하지는 말아주게. 내가 저지른 잘못들이었고 팔열지옥(八熱地獄)에 가는 한이 있더라도 내가 짊어지고 갈 터이니...”
최득수의 말에 수연은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네.”
“혹 더 하실 말씀이 있으신지요.”
수연이 일어날 행동을 취하자, 최득수는 아주 편안해 보이는 얼굴로, 힘겹게 입을 열었다.
“혹시 내가 자네에게 그동안 미안했네 하며 용서를 구하는걸 기대하는건 아니겠지.”
“...조금은요?”
“그럴 일 없네. 입장 바꿔 그대가 나였어도 같은 일을 했을거라 생각하네만.”
최득수의 뻔뻔한 말에 수연은 어이가 없으면서도 납득했다. 자신이 최득수였다면 비슷한 결정을 내렸을 것임은 이견이 없었으니까.
‘뭐, 이걸로 되었지. 막판에 되도않는 후회와 사과를 주고받으며 눈물을 흘릴 바에야.’
잠시 서서 고민하던 수연은, 마지막으로 그녀의 진심을 꾹꾹 눌러담아 마음을 전했다.
“...제발 빨리 쉬세요.”
“...미친놈 아닌가.”
수연이 나오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최두식을 비롯한 병상의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최득수는 마지막 숨을 몰아쉬었다.
마지막까지 서로 훈훈한(?) 덕담을 주고받은 탓에, 수연은 예정했던 일 보다 며칠을 병상에서 더 머물렀다.
당연히 최득수의 눈에 흙이 들어가는걸 볼려고 한 것은 아니었고 단지 그가 부탁한 병상 도방으로서 그간 벌어진 일의 뒷 수습 때문이었다.
다행히 병마절도사 조동제는 최득수가 빌려간 사천 냥에 대해서 알아서 처리하겠노라며 새로 도방으로 추대된 수연에게 축하 인사와 함께 통보해왔다.
‘병상 염전을 전부 먹은거나 다름없으면서 생색은.’
균역법이 시행되었지만 균역청 관리들이 직접 모든 지방을 돌아다니며 염전을 확인할리는 만무하니, 각 지방에서는 토호들이 관리하던 등록이 안된 사염전을 경국대전과 속대전을 들먹이며 관으로 몰수시키고 있었다.
조동제 역시 균역법의 반포와 최득수의 죽음을 이용해 병상이 추가로 일구던 염전 모두를 우선 그가 통제하게끔 하였으니, 별 다른 이변이 없다면 균역청에 소금세를 납부하고 나머지는 모조리 그의 차지가 될 것이었다.
그렇다고 수연은 조동제가 잘못한거라 생각하진 않았다. 본래 조선의 법을 보다시피 모든 염전은 관의 소유가 옳은 것이니까.
다만 기억할 뿐이다.
웃는 얼굴로 다가오는 상대를 바로 쳐내기에는 전라도에서 갖는 병마절도사의 위상은 높았고 알게 모르게 병상에 주어지던 혜택들도 있던데다가...
‘훈제청어를 대량으로 사가는 큰손 고객님이니까.’
병상을 살리기 위해 조선물산의 이익을 포기할 수는 절대로 불가한 일이다. 그 반대라면 모를까.
‘그렇다고 병상을 공중분해 시킬수도 없는 노릇이야. 병상이 있어야 조선물산과 제주가 생존할 수 있어.’
어찌보면 그녀에게 병상은 순망치한(脣亡齒寒) 같은 관계였다.
외부 육지에서 제주로 물목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상단이 없다면 수연과 조선물산은 모조리 물거품이 되어버릴 터.
처음 병상을 직접 관리해야겠다는 생각과는 달리, 사람이 너무나도 부족한 조선물산 입장에서는 병상을 관리할 사람도 없었고, 전라도 지역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기도 쉽지 않았다.
그랬기에 수연은 기존의 인력을 대부분 활용하는 것을 생각해두었는데 처음부터 삐그덕 거렸다.
“...최두식이는 왜 안오는거야?”
수연의 바뀐 계획에는, 최두식이 핵심 인물이었다.
“저기 김 행수.. 아니 도방 어른... 아니.. 도방 부인?”
박 사환은 어쩔줄 몰라하며 한참동안 고민하다가 수연을 괴상한 호칭으로 불렀다. 수연 스스로도 자신을 뭐라 불러야 할지 모른다는 표정이었지만, 그냥 깔끔하게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냥 도방이라고 하세요.”
“예. 최두식 행수가 이걸 전해달라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박 사환은 소매에 있던 서찰을 건네었고, 수연은 왠지 불안한 마음에 활짝 펼쳐 읽었다.
필체는 거칠었지만, 안에 담긴 내용은 간단하고 명료했다.
[아버지께서 소천하셨으니, 삼년 상을 치르고 돌아오겠습니다.]
수연은 어이가 없었다. 아니, 이해는 했지만 굳이 이런 상황에서 삼년 상을 치르겠다고?
“박 사환. 삼년 상이라 하면 삼...년동안 안 오겠다는 뜻이지요?”
“예.. 보통 이 년 반 정도 하면 오긴 하는데...”
“이런 미친.”
이년 반에서 삼년까지. 자신이 돌아올 때 까지 맨 땅에 헤딩하며 병상을 돌봐달라는 말이나 다름없는 글에 수연은 처음으로 화가 머리 끝까지 솟구쳤다.
“...어디 있어요?”
“예?”
“최두식이. 어디있냐구요. 아니다. 안내하세요. 내가 직접 잡으러 갈려니까.”
하며 수연은 간단하게 챙겨둔 짐을 들쳐매었다.
병상 도방으로서, 첫 번째 업무를 시작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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