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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영등포구

무림에 인방이 생김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무협

영등포구민
작품등록일 :
2020.06.01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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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24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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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29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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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7화 의문의 편지 (2)

DUMMY

유현인은 생각했다.


‘이 사람은 어떤 의도로 자신에게 제안했을까? 이 제안이 자신에게 어떤 이득이 될까?’


자신이 많은 사람을 만나본 것은 아니지만 눈앞에 있는 이 정립이라는 협객의 기운은 범상치 않다. 자신이 직접 보고 느끼는 실체로서의 정립. 그리고 유명세나 다른 세간의 이야기를 통해 들은 평판으로서의 정립. 둘 다 그가 충분히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 말한다.


그렇다면 그가 말한 자신의 의도가 실제 의도와 같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 제안은 유현인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정립은 무의미한 충돌과 피를 줄이고 싶다는 욕구가 있다. 하지만 유현인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자신과 자신에게 피해를 끼치는 일도 아니고, 힘없는 약자를 괴롭히는 악당이 있는 것도 아니다. 더 많은 힘을 가지고 싶은 욕망들이 서로 부딪히는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유현인은 여기서 자신의 욕구를 자극하는 점을 하나 찾을 수 있었다.


‘여기서 내공 대래비 방송이 폭발할 예감이 들어.’


절강성은 거대 방파들이 모여있는 하북이나 사천처럼 무력이 집중된 곳은 아니지만 그에 버금가는 금력이 모인 곳이다. 송대(宋代)에 화려하게 꽃핀 강남의 역량이 집중된 곳이 바로 남경과 항주, 그리고 절강성과 강소성이다.


만약에 이곳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빨아들이는 대형 사건이 일어난다면 어떨까? 거기다 그 사건을 이루는 두 개의 기둥은 각각 팔십년 전의 검마와 장보도다. 하북에서 활동한 마두의 장보도가 멀리 떨어진 절강에서 발견된다는 건 조금 의문이긴 하지만 그것 또한 사건의 흥미를 더해주는 조미료다.


‘전설적인 마두의 무공이 담긴 장보도가 발견되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검마 사굉은 도대체 무슨 무공을 사용했는가?’


어쩌면 그가 펼친 학살과 겁탈의 원인을 밝힐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의 강력한 무공을 습득한다면 순식간에 이름을 떨치는 고수가 될 수도 있다. 그런 기대감이 절강 무림을 욕망의 소용돌이로 끌어당길 것이다.


그런 모든 사람이 안달한 사건을 중간에서 실시간으로 방송할 수 있다면?


“좋습니다. 미약한 힘이라도 도와드릴 수 있다면 영광이죠. 하지만 제가 바라는 건 금이나 재화는 아닙니다.”


정립의 눈에 작은 실망이 어리기 시작했다.


“검마의 무공을 바라는 것이오?”


장보도 이야기를 들은 유현인도 검마의 무공을 탐낸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유현인은 느긋하다.


“아닙니다.”


그러자 정립의 실망이 의문으로 변했다. 설명을 요구하는 정립의 눈빛에 유현인이 빙긋 웃는다.


“저는 비재이죠. 방송을 원합니다. 아, 그리고 정 대협도 한번 출연해주셨으면 좋겠군요.”


정립은 갑자기 고민에 빠진다. 이때까지 그가 무림 생활을 하던 이십 년 동안 이런 제안을 받은 적은 없었다. 처음 십년 동안은 내공 대래비가 없었고 내공 대래비가 생긴 십 년 동안은 홀로 다니는 고강한 무림인에게 그런 제안을 할 사람이 없었으니까.


내공 대래비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정립도 그게 어떤 것인지는 몇 번 봐서 알고 있었지만 거기에 자신이 나온다는 건 조금 다른 이야기다.


정립이 대답하지 않고 잠시 머뭇거리자 유현인이 말했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정 대협께서 원하는 건 정확하게 뭔지도 모르는 것을 위해 무의미한 피가 흐르는 것을 막고 싶은 것 아닙니까?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는 겉으로는 선한 사람도 남몰래 나쁜 짓을 저지를 수 있지요. 강한 무공에 대한 욕구는 사람을 변하게 할 만큼 강력하니까요.”


“그 말이 맞소. 그동안 더 상승의 경지를 위해 악한 짓도 거리낌 없이 저지르는 자들을 자주 봐 왔으니까. 그 당시에는 모르지만 나중에 행위가 들통 나 그동안 얻은 명예를 잃어버린 자들도 많았고. 하지만 그 많은 선례가 있지만, 사람의 욕구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곤 하오. 어리석은 일이지.”


“하지만 정 대협, 내공 대래비 방송은 전 중원으로 송출됩니다. 어디에 있든 자신이 하는 행동이 다른 무림인들, 나아가 대명의 신민들에게 보인다면 자연스레 행동을 조심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원래 법도, 도리도 없이 행동했던 사파나 마도의 악적들이야 보이든 말든 멋대로 행동하겠지만 적어도 중도의 인물이나 정파의 인물이 무공에 대한 욕심에 눈멀어 그른 행동을 하는 것은 억제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유현인이 말한 것은 방송을 통한 공론화다.


“좋소. 어떤 사건이 일어날 때 진선생이 그걸 내공 대래비를 통해 방송하는 것에 동의하겠소. 음··· 그런데···.”


정립이 말끝을 흐렸다.


“말씀하십시오.”


“내가 진선생의 방송에 출연하는 것 말이오. 그게 어떤 식으로 이뤄지는 것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구려.”


“하하.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건 차차 의논하면 되니까요. 대단한 건 아닙니다. 딱히 뭔가를 하실 필요는 없어요.”


이야기는 그렇게 끝났다.


“그런데 정 대협은 어디서 머물고 계십니까? 호북에서 오셨다면 항주에 몸을 잠시 의탁할 곳이 마땅찮을 텐데요.”


정립이 빙긋 웃는다.


“손가장에 잠시 머물고 있소이다. 진선생은 무림에서 이름을 날린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아시오?”


유현인은 고개를 저었다.


“본인에게 거처를 제공하거나 금전적인 후원을 해주려는 사람들이 넘쳐난다는 거요. 물론 난 대가 없는 금전적 도움은 받지 않지만. 진선생의 무공도 보통이 아니니 멀지 않은 시간 내에 내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게 될 것이오.”


무림뿐만이 아니라 중원 전체에 흔한 빈객 개념이다. 유현인이 물었다.


“그렇다면 정당한 가치판단을 하는 게 힘들지 않겠습니까? 어떻게든 그쪽에 신세를 진 것일 텐데요.”


“무공이 높은 고수라고 어찌 잠을 안 자고 음식을 먹지 않고 살겠소? 다 피와 살로 이루어진 사람이거늘. 그건 일종의 거래요. 자신의 가문에서 뛰어난 고수나 유명인이 머물렀다거나, 아니면 그들을 지원한다거나 하는 것 자체가 가문의 이름값을 올리는 데 혁혁한 도움이 되니 말이오.


굳이 부담스러워 할 필요는 없소. 그것에 얽매여 자신의 본질을 잃어버리면 곤란하겠지만. 물론 평판이 좋지 않은 곳은 미리 알아서 걸러야 할 것이고.”


정립의 나이는 사십 대 중반. 확실히 그가 가진 견문과 경험은 무림의 선배로서 유현인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었다.


유현인이 씩 웃으며 말했다.


“밤이 늦었으니 오늘은 여기서 주무시고 가시지요. 유가장에 절운검 정립 대협을 하루 모실 기회를 주시겠습니까?”


정립이 껄껄 웃는다.


“그러면 신세를 지도록 하겠소이다. 방명록은 있소?”


“방명록이요?”


유현인이 반문했다.


“허···. 확실히 아직 진선생은 무림 경험이 모자란 모양이군. 보통 그런 곳에는 빈객들이 자신의 서명과 시 한 수를 남길 수 있는 방명록이 있소. 수많은 명사의 손을 탄 방명록은 명문세가라면 어디나 자랑으로 삼는 명예로운 것이지.”


“선배님께 정말 많은 것들을 배웁니다. 유가장에 찾아온 손님은 정 대협이 처음이라 아직 방명록을 만들진 않았는데 그 첫 서명을 정 대협께서 장식해주시겠습니까?”


“껄껄껄. 내 멋진 시 한 수를 써 드리리다.”






정립이 말한 사건은 두 달 뒤 뜬금없이 일어나는 게 아니었다. 그가 편지를 받은 지 이제 한 달. 아직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지만 항주 분위기는 벌써 평소와 다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공자님, 혹시 그 소문 들으셨습니까?”


정립이 유가장에 들린 지 며칠 지나지 않은 날이었다. 정원에서 과일을 까먹는 유현인에게 유명세가 다가와 말했다.


“무슨 소문?”


유현인은 혼자만의 시간을 즐긴다. 유가장을 벗어나 외출을 할 때도 서호를 비롯해 여러 호수들을 산책하거나 아니면 대로변에 있는 노천객잔에 앉아 교자 하나를 시켜놓고 사람들을 구경하는 식이다. 하지만 유명세는 유현인보다 훨씬 사교적이라 이리저리 쏘다니며 이런저런 소문을 듣는 걸 즐겼다.


“강소삼랑(江蘇三狼) 삼 형제가 항주에 왔다더군요.”


유현인이 이리저리 쏘다니지는 않지만 그래도 항주 밥을 먹으면서 몇 번 들어본 이름이다. 강소삼랑. 강소성 중북부에 있는 회안(淮安)를 거점으로 움직이는 자들로 늑대라는 별호답게 잔혹한 손속이 특징이었다. 또 무림명에 회안이라는 도시 이름이 아닌 강소라는 성(省)이 들어갈 정도로 무공이 고강했고.


“강소삼랑이 항주에는 왜? 회안에서 항주는 꽤 멀 텐데.”


하지만 유명세가 대답하기 전에 유현인의 머릿속에 추측 하나가 지나갔다. 정립이 말한 검마의 장보도와 관계된 이유는 아닐까 하는. 유명세가 말했다.


“그게 말이에요. 아무도 그 이유를 모른다고 합니다. 강소삼랑의 맏형 영호형(映瓠亨)과 안면이 있는 기녀가 잠자리에서 아양을 떨며 물어봤지만 입을 꾹 다물었다고 해요.”


“기녀가?”


“예. 창희루에만 계속 머문다고 하네요. 하는 짓은 계집질이 전부고요.”


“흠······.”


아직 정립의 제안을 유명세에게 말하지 않은 상황. 유명세도 며칠 동안 굳이 먼저 물어보진 않았었다. 절운검 정립같은 고수가 따로 둘이서만 이야기하자는 걸 보면 그만큼 무게감이 있는 상황일 것이고 유현인이 아직 자신에게 말해주지 않았다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기에.


“명세야, 정립 대협이 우리 집에 온 날 말이야.”


“네, 공자님.”


유명세의 눈동자가 초롱초롱하다. 먼저 물어보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궁금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유현인은 유명세에게 그날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검마, 장보도, 그리고 정립과의 방송.


“공자님, 제 팔뚝 보이세요?”


그렇게 말하며 유명세는 자신의 팔뚝을 들어 유현인에게 보여주었다. 거기에는 오톨도톨한 소름이 돋아 있다. 유명세가 멍하니 말했다.


“저는 매일 공자님 얼굴을 보니 요즘은 가끔 실감이 나지 않는데요. 절운검 같은 고수가 먼저 공자님께 협업을 제안하는 걸 보면 공자님이 정말 대단하다는 걸 다시 느끼게 되네요.”


“그건 그렇고, 창희루에 머무는 강소삼랑. 그자들이 만약 검마의 장보도에 대해 알고 왔다면 분명 그들 셋에서 끝나진 않을 거야. 편지를 보낸 자가 비슷한 편지를 얼마나 돌렸는지도, 정보를 얼마나 퍼트렸는지도 모르니.


한번 퍼진 정보, 거기다 그런 검마의 장보도에 대한 정보라면 분명 다른 자들도 그걸 입수했겠지. 명세야, 네가 좀 돌아다니면서 그런 소문들을 모아 봐.”


“넵! 맡겨만 주세요!”


유현인의 예상대로 항주로 온 다른 지역의 고수들은 정립과 강소삼랑뿐만이 아니었다. 가까이는 강소와 호북 뿐만 아니라 멀리는 사천, 섬서, 그리고 운남에서까지 몇몇의 무림인이 찾아왔다.


사람들이 항상 모여드는 항주이기에 그런 이방인이 낯선 것은 아니었지만 작금의 분위기는 웬만한 사람들이라면 심상치 않은 걸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달라졌다. 정립이 다시 유가장으로 찾아온 것도 그맘때였다.


“진선생 계시는가?”


“정 대협, 오셨습니까?”


그의 손에는 이번에는 술병 대신 다른 편지 한 장이 들려 있었다. 그가 편지를 흔들어 유현인에게 그 존재를 알려주었다.


“손가장에 내 앞으로 그때와 비슷한 편지가 하나 더 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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