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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영등포구

무림에 인방이 생김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무협

영등포구민
작품등록일 :
2020.06.01 21:04
최근연재일 :
2020.07.24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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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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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33화 검마 (3)

DUMMY

전체 내공의 삼할을 일 격에 쏟아부었지만 그래도 유현인의 내공은 대해처럼 그 양이 어마어마하다.


더군다나 세상에 나와 처음으로 전력을 다해 전개해보는 유현인. 끔찍하고 잔인한 강시들이었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제약 없이 무공을 휘두를 수 있었다. 그의 일검 일검이 치명적인 투로를 통해 강시들에게 적중해간다.


정립 역시 뛰어난 무인이었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가장 뛰어난 신위를 보여주는 건 유현인이었다.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다.


“후······.”


하나 둘씩 생혈강시들이 제압되었다. 어떤 것들은 목과 머리가 잘리기도 했고 어떤 것들은 팔다리가 잘려 더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마침내 유현인의 찌르기에 의해 마지막 생혈강시의 흑요석 내단이 깨졌다.


“와아!!!!!”


더 이상 움직이는 강시는 없다. 살아남은 무림인들은 환희의 함성을 내질렀다. 비록 죽은 자와 다친 자가 들어온 자의 절반을 넘는 숫자였지만 어쨌든 그들은 생존했다. 그리고 마지막 강시가 쓰러짐과 동시에 공동 중앙에 있던 석조 제단이 아래쪽으로 푹 내려갔다.


사라져버린 제단 대신 지하로부터 뚫린 구멍이 공동을 향해 검은 아가리를 벌렸다. 기력이 남아 있는 무림인들은 그 검은 구멍 주위로 슬금슬금 모여들었다. 하지만 정립은 그보단 다른 것부터 확인하고자 했다.


“잠시 실례하겠소.”


정립이 그렇게 말하곤 아까 유현인이 가리켰던 천장 아래로 이동했다. 검은 피를 잔뜩 머금은 검이 천장을 향해 겨눠진다.


절영검법(截影劍法) 제삼초식(第三招式) 분영참(分影斬)


그림자를 잘라버린다는 정립의 기예다.


쾅!!


아까 의문의 목소리가 들리던 공동의 천장 벽이 숟가락으로 두부를 파 내린 것처럼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크고 작은 파편들의 소나기에 먼지가 피어오른다. 정립이 자신의 장포를 빳빳하게 세워 휘두르자 선풍이 발생하며 먼지가 순식간에 흩어졌다.


그런데 천장에서 떨어진 건 바위뿐만이 아니었다. 중간에 이질적인 물체 하나가 끼어 있다. 정립이 그 투명한 구체를 집어들었다.


“으음······.”


침음하는 정립.


“내공대래비 수정구군요. 이 자는 여기 있는 게 아니라 먼 곳에서 이 수정구를 작동시켜놓고 방송을 송출했나 봅니다.”


유현인이 말했다. 이 음모를 꾸민 용의주도한 자는 자신의 모습을 쉽사리 노출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지금은 수정구가 꺼져 방송한 게 누군지 알 수 없다.


“잠시 살펴봐도 될까요?”


“물론이오.”


유현인은 정립으로부터 수정구를 건네받아 작동시켜보았다. 하지만 올바른 사용자 이름과 내공 파형을 입력하라는 전언만 뜰 뿐 접속할 순 없었다. 세 번, 네 번, 무작위로 입력했지만 다음 접속 시도까지의 대기시간만 길어지더니 결국 수정구는 반영구 잠금상태로 변해버렸다.


“젠장.”


유현인이 나직하게 내뱉었다.


“저··· 진선생?”


누군가 유현인을 불렀다.


“이 구멍은 언제 조사하실 생각이십니까? 아까 목소리가 말하길 큰 보상을 준다고 했었습니다만.”


그들의 관심은 이 음모를 누가 꾸몄는지보다는 당장 눈앞에 있는 보상에 가 있는 듯했다. 그리고 처음에는 어느 정도 무공을 배운 애송이가 절운검을 등에 업고 날뛴다고, 속된 말로는 나댄다고 생각했었지만 생혈강시를 상대하던 유현인의 신위를 보자 다들 태도가 조심스럽다.


“네. 알아보도록 하죠.”


유현인은 의문의 수정구를 유명세에게 넘겼다.


“일단 보관하고 있어. 나중에 다시 조사해보자.”


유명세가 고개를 끄덕였다.




유현인과 정립이 바닥에 난 구멍 앞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바닥은 한 장 반 정도 아래에 있었다. 뛰어 오르내리기 부담 없는 높이.


정립이 말했다.


“먼저 내려가 보겠소? 이 생혈강시들을 처리하는데 자네가 제일 큰 공헌을 한 건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 당연히 진선생이 앞장서서 확인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소.”


유현인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리고 유명세에게서 자신의 수정구를 건네받았다.


“여러분들도 내려오시게 될 겁니다. 다만 제가 한발 먼저 앞서 가는 데 혹여나 제가 뭔가를 은닉할까봐 우려하실 분들도 있을 겁니다.”


몇몇은 눈을 피한다.


“저는 수정구를 들고 내려갑니다. 내공대래비에 있는 일만 명의 눈이 제가 보는 것을 같이 볼 겁니다. 제가 아무것도 손대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요.”


사실 그럴 필요는 없다. 무림은 강자존의 세상이다. 이미 가장 큰 공을 세운 데다 단신으로, 그 누구보다 강력한 유현인이 자신이 보물을 챙긴다 한들 누가 뭐라 하겠는가?


하지만 유현인은 딱히 보물이나 무공의 소유권에는 관심이 없었다. 생혈강시가 검마의 무공을 익혔지만 유현인에게는 매력이 없었고 그런 것보다는 자신의 행동과 업적, 그리고 명성이 시청자들과 이 자리의 사람들을 통해 알려지는 게 더 중요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조금 다르게 생각하는 모양이다.


-처음에는 별호 듣고 완전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인제 보니 진선생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최고의 별호네.

-영파 현령이 선견지명이 있었네 哈哈哈哈哈

-진정한 무소유의 도로다. 젊은 도사들도 실행하기 어려울진데.


“어리지만 대협의 풍모를 갖추고 계시군요. 이 진 모, 진선생을 처음에 속으로 무시해서 참으로 송구하오이다.”


한 사람이 나와 유현인에게 포권한다. 그는 유현인에게 꽤 감탄한 모양이었다.


“아니.. 음. 뭐, 나중에 얘기하도록 하죠.”


적당히 대답한 유현인은 유명세에게서 자신의 수정구를 건네받고 아래쪽으로 훌쩍 뛰어내렸다. 위에서 보던 대로 그리 깊지는 않았다.


“······ 흠.”


구멍 아래에는 방 하나가 끝이었다. 통로도 없고 그리 넓지도 않았다. 안쪽 천장에 야명주 하나가 박혀서 들어오는 사람이 사물을 분간할 수 있게 최소한의 빛을 확보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상자가 하나 있었다.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유현인이 외쳤다.


“아래쪽엔 상자만 딱 하나 있습니다. 제가 들고 올라갈 테니 꼭 내려오실 필요는 없습니다.”


유현인은 상자를 들고 다시 구멍을 통해 공동으로 나왔다. 상자 크기도 작아서 한 손으로 허리에 끼고 뛰어오르기에 충분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상자로 집중된다.


“확인하고 싶으신 분은 아래로 내려가 둘러보셔도 됩니다만 진짜 아무것도 없어요.”


그말대로 몇몇이 고개를 아래로 내밀고 방을 확인해보지만 유현인의 말대로 아무것도 없자 얼굴에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상자 하나 해봤자 얼마나 되겠는가? 혹여나 모를 분배의 기회는 물 건너간 것이다.


“자, 그러면 이제 열어볼까요?”


삐걱대는 소리를 내며 상자가 열렸다. 그 소리는 어딘가 깊은 동굴 속에서 들리는 것처럼 음침하고 기분 나빴다. 상자 안에는 책 한 권이 있었다.


책은 검은 가죽 표지로 덮여 있다. 아주 반질반질한 가죽 표지는 생활하며 자주 접하게 되는 소가죽이나 말가죽이나 다른 어떤 동물의 가죽과도 질감이 달랐다. 속 어딘가에서 구역질이 날 법한 느낌. 그 위에는 붉은 글자로 ‘검마록(劍魔錄)’ 세 글자가 적혀 있었다.


침 삼키는 소리가 들린다. 누구라고 특정할 수도 없다. 여기 모인 대부분의 사람들의 심정이 그랬으니까. 다른 보물 같은 건 하나도 없었지만 그 책을 위해 수많은 피를 쏟으며 여기까지 왔다. 실망은 언제고, 그 피해에 비례하는 기대감이 책을 향한 시선에 생겨났다.


“확인해보죠.”


정립이 말했다.


“꼭 그 내용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해야 하는 것은 아니오. 진선생이 아니었다면 여기 있는 사람 중 다시 절반 이상이 죽었을 테지. 전부 생혈강시에 몰살당했을 수도 있고.”


정립의 배려다. 공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에게 이미 이 검마록의 소유권은 유현인에게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유현인이 고개를 저었다.


“일단 내용이 어떤지만 같이 확인해보도록 하죠. 검마록이라는 제목을 보면 딱히 무공 비급 같지는 않구요. 중간에 멈출지 아닐지는 그때 가서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유현인은 책의 첫 장을 넘겼다.


[나는 사굉이다. 그러나 나는 내가 누군지 모른다. 이 회고록을 내가 저지른 죄를 참회하고자 남긴다······.]


책은 그리 두껍지 않았다. 유현인은 책을 빠르게 휙휙 넘겨보았다. 책은 말년 시점으로 추측되는 검마가 자신의 일생에 대해 남긴 내용이었다. 고아로 자라 어떤 조직에 납치되어 강제로 무공을 익히게 된 것. 무공이 어느정도 성취를 이루었을 때 다른 인격을 강제로 이식당한 것. 통제할 수 없는 자신의 몸에 갇혀 자신이 일으키는 학살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던 것.


[그렇게 나는 내 몸의 주도권을 찾았다. 그리고 내가 나로 남아있을 수 있을 동안 무작정 도망쳤다. 하지만 그건 찰나의 행운이자 괴물의 방심에 불과했다. 이제 나는 내 안의 괴물이 다시 나를 잡아먹을 것을 느낀다. 이후에 나, 사굉은 완전히 소멸할 것이다. 그 전에 나는 스스로를 봉인하리라.]


책의 마지막은 그렇게 끝났다.


“무공 비급은 확실히 아닙니다. 스스로의 무공에 대한 언급도 거의 없고요. 말 그대로 회고록이네요.


군중의 커다란 기대감은 커다란 실망감으로 돌아왔다. 개방의 삼결제자, 걸상만이 그 눈을 요요히 빛냈다.



“그렇다면 우리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여기 왔단 말입니까?”


누군가 허탈한 목소리로 말했다.


실망감은 분노로 변한다. 생사의 고비를 넘겼으며, 동료를 잃는 커다란 대가를 치뤄야 했지만 그에 대한 보상은 없다. 대다수는 자신의 욕망을 좇아 여기까지 왔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랴. 중요한 건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누가 자신에게 이러한 손해를 끼쳤는가다.


“편지를 보낸 놈들에 대해 아는 것 없소이까?!!”


“이 사악한 악적들의 뿌리를 캐내야겠소! 살과 뼈를 씹어먹어도 모자랄 놈들!”


무림인들 사이에 고성이 오가기 시작했다.


-아니, 그런데 저것 자체도 희귀한 보물 아닌가? 검마에 대한 건 알려진 게 없으니까 저 정보를 탐내는 곳도 엄청 많을텐데. 개방이나 하오문뿐만 아니라 제갈세가, 사마세가, 목위기문도 있고······.

-그건 우리가 수정구로 멀리서 봤기 때문에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저 자리에서 생명을 걸고 싸운 이유가 고작 회고록이라면?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지.

-그런가······.


한창 소란이 이어지던 중 유명세가 말했다.


“저··· 제가 의견을 말씀드려도 될까요?”


하지만 각자 언성을 높여 떠드는 상황. 아무도 유명세의 말을 듣지 않는다. 단 하나, 유현인을 제외하고. 기죽은 유명세가 유현인을 쳐다보자 유현인은 그를 향해 살짝 웃어줬다. 그 응원에 용기를 낸 유명세가 다시 크게 말했다.


“제가 의견을 말씀드려도 될까요?”


목소리는 컸다. 놀랍게도 거기에는 사람의 심정을 건드리는 호소가 담겨 있었고 언성을 높이던 무림인들이 유명세를 쳐다보게 만들었다.


걸상이 말했다.


“말씀하시게.”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하지만 유현인은 절반 이상의 생혈강시를 혼자 처리한, 공동의 무림인들을 구한 사람이고 유명세는 그런 사람의 부검수다.


유현인이 유명세에게 다가가 수정구를 건네받았다. 확실하게 시선을 유명세에게 실어주려는 행동이었다. 이 현장에 있는 사람들뿐이 아니라 수정구에서 여기를 보고 있는 시청자들에게도.


“명세야, 잘 해봐.”


수많은 사람들, 거기다 평소에는 자신이 만나기도 힘든 고수들의 시선이 집중되자 유명세의 목이 파르르 떨린다. 하지만 그는 아까 통로에서 죽음의 공포도 이겨냈다.


“제 생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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