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로드맨 2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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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23화 -
“햄스, 자세 바꾸는데 도와줘. 자네는 꼬챙이 안 움직이게 잡고!”
“옙.”
“자, 셋하면 움직인다. 준비됐지? 하나 둘 셋.”
셋이란 소리와 동시에 렌스의 상체를 돌렸지만, 뭔가 잡고 있는 듯 꼬챙이를 기준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뭔가 싶어 스트레쳐 카트 쪽을 보자마자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햄스가 컴프레이션을 하는 동안 사출구 쪽으로 나온 꼬챙이 끝이 카트 바닥에 박힌 거였다.
이정도면 그냥 빼도 될 것 같았다.
손에 힘을 줘 꼬챙이를 위로 당기는 순간 다시금 아차 싶었다.
꼬챙이 끝 부분에 낚시 바늘 같이 생긴 촉이 나와 있었다.
확인하지 못한 체 꼬챙이를 제거하려 했다면 되돌릴 수 없는 사태를 만들어냈을 거였다.
이렇게 된 이상 삽입구가 아닌 사출구 쪽으로 밀어내 제거해야 할 것 같았다.
머뭇거리기엔 시간이 없었다.
“뭣들 하고 있어!! 돕지 않고.”
“······.”
“내가 꼬챙이 잡을 테니, 렌스 자세 모로 뉘어. 셋에 힘을 준다.”
서너명의 스텝들이 렌스의 상체를 잡았다.
“하나 둘 셋. 지금!”
구령에 따라 렌스의 자세가 바뀌었고, 이제 남은 건 꼬챙이를 제거하는 것 뿐이었다.
그때였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펠로우(수련의) 들이 몰려왔다.
“수고하셨습니다. 이제부터는 저희가 하겠습니다.”
“뭐?”
“저희가 하겠다고요.”
“이봐!”
“교수님께서 그러라 하셨습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막무가내 일어난 일이라 황당 그 자체지만 뭐라 할 순 없었다.
뭐 이런 인사들이 있나 싶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감사하기도 했다.
렌스의 상태가 걱정돼 쉽사리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럼, 부탁합니다.”
“네. 교수님께서 기다리시니, 의국으로 가보시죠.”
“······.”
가봐야 귀찮아질 게 뻔했다.
뒤돌아서려는 순간, 바이스의 행동에 놀라야 했다.
박혀 있는 꼬챙이를 그냥 잡아 당겨 제거하려 하고 있었다.
“이봐! 지금 미쳤어?”
“······?”
“그렇게 하면 일이 더 커진다고!”
“저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신경 쓰지 마시죠.”
아무리 그래도 잘못될 걸 알면서 두고 볼 수는 없었다.
그때 씨암(C-Arm:이동식 투시 엑스레이 장비)이 시선에 들어왔다.
당장에 달려가 끌어왔고, 무겁던 무게감이 한순간 가벼워졌다.
날 돕는 이가 있었고, 그건 실습생인 햄스였다.
“제가 돕겠습니다.”
“고마워!”
씨암을 밀면서 소리 쳤다.
“다 손 떼!”
“······.”
“지금 건들면 환자 죽는다고!”
고함 소리에 움직임이 멈췄고, 그동안 무사히 영상 촬영을 할 수 있었다.
잠시 후 모니터에 영상이 떴고, 모든 이들이 시선이 모여 들었다.
“여기! 저 물건이 심장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잖아!”
“그런데요?”
“그리고 이곳도! 내가 왜 안 된다고 소리쳤는지 모르겠어!”
“······?”
“여길 보라고. 이 끝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보더니, 다들 그제야 날 봤다.
“이 상황에 그냥 잡아당긴다면 어떻게 될까? 뒷감당 할 수 있어?”
“미처 확인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중간에 담당이 바뀌면 안 된다는 거야. 게다가 준비도 하나 되지 않은 상태에서.”
“······.”
“막무가내로 설친다고 다 되는 게 아니라고! 기본부터 확인해야지!”
바이스와 시선을 맞췄다.
“뭐해. 수술실 확인하지 않고. NS(신경외과)랑 VS(혈관외과) 콜하고.”
“네.”
“그리고 자네들은 저기 있는 OP 카트 가져와!”
좀 전과 달리 펠로우들이 움직였고, 그들이 카트를 밀고 오면 꼬챙이를 제거해야 했다.
무사히 OP 룸이 잡힌다 해도 이런 상태로 이동시키는 건 무리였다.
“꼬챙이 아래로 밀어서 빼낼 겁니다.”
“네.”
“햄스는 아래 쪽에서 잡아당기고, 자네들은 위에서 밀어!”
오더에 따라 자세들을 취했고, 난 거즈 뭉치와 클립을 들었다.
꼬챙이를 제거함과 동시에 사출구 쪽으로 클립을 넣어 손상된 동맥 지혈을 시도할 참이었다.
실부담감이 크지만, 지금은 될 거란 생각으로 움직여야 했다.
“셋 하면 시작하는 겁니다.”
“네.”
“하나 둘···.”
셋을 세려는 순간 뭔가 찝찝했다.
이런 기분은 오랜만이라 다시 한 번 생각을 정리해야 했다.
제거하면 액티브블리딩(active bleeding:두드러진 출혈)이 발생할 거라, 손에 들린 클립으로 지혈하는 게 좀 불안한 느낌이었다.
손에 들고 있던 클립을 내려놓고, 롱 크램프(clamp)를 집어 들었다.
“시작합니다. 하나 둘 셋. 밀어!!”
“악” 소리와 함께 흉부를 통과한 꼬챙이가 밖으로 나왔고, 그 순간 들고 있던 클램프를 사출구로 밀어 넣었다.
사출구로 손상된 동맥에서 출혈된 피가 바닥으로 쏟아지고 있었다.
클램프를 잡고 있는 손이 온통 피범벅이 됐고, 심박에 따라 더 쏟아졌다.
끈적임과 미끌거림이 심했지만, 지금은 무슨 일이 있어도 손상된 동맥을 잡아야 했다.
미간에 힘을 주고 눈을 감았다.
오감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때였다.
잠시 후
손끝에 느껴져 오는 압력을 따라 움직였고, 이내 드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출혈이 적어졌다.
제대로 잡은 게 확실 했지만, 혹시 몰라 한 번 더 스캔했다.
다시 손에 크램프를 들어 손상된 동맥의 다른 쪽을 잡았다.
“후” 하며 한숨이 길게 나왔다.
이제 남은 건 이곳이 아니라 수술방에서 할 일들 뿐이었다.
바이스들을 돌아봤다.
“출혈 잡았다. 빨리 OP룸으로.”
“네.”
“NS(신경외과), VS(혈관외과) 콜 넣었지?”
“대기하고 있을 겁니다.”
“어서 서둘러!”
우려했던 신경이나 척추엔 문제가 없어 다행이었지만, 이젠 브레인이 걱정됐다.
‘서둘러야 하는데···.’
환자의 걱정이 되면서도, 아까 밀려난 것이 자꾸 떠올라 기분이 계속 좋지 않았다.
빨리 이 기분을 추슬러야 했다.
“선생님.”
익숙한 목소리에 고갤 돌려야 했고, 시선에 들어온 건 햄스였다.
“햄스, 오늘 수고 많았다.”
“아닙니다. 선생님께서 고생많으셨죠.”
“그런데 자네 말이야?”
“네?”
“이곳이 처음이 아닌 것 같던데, 출신이 어디지?”
물음에 햄스는 잠시 대답을 머뭇거리는 듯 입만 달싹거렸다.
“말하기 싫으면 그만 두고.”
“아, 아닙니다. 사실 전 의대출신입니다.”
“그래? 어쩐지 손발이 맞는다 했지. 그런데 왜 위생병을 지원한 거지?”
“개인적인 문제로 졸업을 하지 못했습니다.”
“······?”
“수업료를 낼 수가 없는 상황이었거든요. 그래서 꿈을 접었었습니다.”
“그럼, 지금은 이루기위해 위생병으로 있는 거군. 아, 그보다 왜 부른 거지?”
햄스도 문득 생각난 듯 눈을 크게 떴다.
“사실 선생님이 하시는 처치에 놀라서요. 어떻게 영상도 보지 않고 출혈을 막으셨습니까? 제가 보니 출혈부도 보이지 않던데.”
“그거 말인가?”
“그것도 있지만, 외상실에서 선생님 OP 대단했습니다. 수처법도요.”
“수처···?”
“써전 (surgeon:외과의사)이 하고 싶어서 의대에 갔었거든요. 근데 관두기 전까지도 배운 적 없었던 거라서.”
마음이 아팠다.
저 정도의 순발력과 의욕을 가진 사람은 의료계에서 필요한 인재다.
그런 그가 경제적 이유로 꿈을 멈췄었다니.
의대.
모두가 한 번쯤 꿈을 꾸는 곳이지만, 사실은 뒷받침이 없다면 힘이 많이 든다.
내 과거를 봐도 그랬다.
타 과외부터 각종 알바를 이어가며, 학비를 내봤던 나로썬 그 힘듬을 잘 안다.
“군에 들어와서도 본 적이 없고요. 제가 꿈을 접은 적이 있긴 하지만, 요샌 위생병 제도에 희망이 생겼거든요. 그래서 궁금합니다.”
“희망?”
“하고자 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제겐 써전으로 갈 수 있는 마지막 길이거든요.”
“······.”
“그 수처법, 처음 봤습니다. 꼭 가르침을 받고 싶습니다.”
“가르쳐? 내가?”
“네. 가르쳐만 주신다면 실습기간 동안 제가 뭐든 돕겠습니다.”
“······.”
뭐라 말해야 할지 몰랐다.
수처를 한 건 사실이지만, 나도 내가 쓴 방법에 대한 정보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실대로 말했다간 미친놈 취급은 기본일 거였다.
“선생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게···.”
“제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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