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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서재다.

신석기 제사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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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작품등록일 :
2021.05.12 20:32
최근연재일 :
2021.08.04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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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14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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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7. 부족의 신(7)

DUMMY

주술파의 지지자들마저 나를 보며 간절한 눈빛을 보낸다.

점차 먼지구름이 큰버루산 아래 큰버루 마을에 가까워졌다.

나는 침묵했다.


일 초.

이 초.

삼 초.

십 초.


서슬뱀이 다시 고개를 든다.


"버력미르여! 그대의 눈에는 저 재앙이 보이지 않소!? 어찌 모른 채 한다는 말이요!"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가 창대를 휘두르며 일어섰다.


"버력미르여!"


"......"


"... 모두 들어라!"


서슬뱀이 내게서 등을 돌려 부족원들을 바라본다.


"우리는 지금까지 헛된 주술이니, 제사니에 매달려 헛된 것을 믿고 따라왔다!

하지만 보라! 주술사가, 제사장이, 위대한 영이 지금 무엇을 해주는가?

그러한 것이 있기는 하는가?

만약 있다면 지금의 우리를 모른 채 하는 신은 악한 신인가?

우리는 악한 신을 따르고 있던 것인가!

들어라!

이제 큰버루에 신은 없다!

아니, 본래 음산한 귀신굴에서 태어나는 주술사가 모시는 신이란, 악한 신이었다!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악신을 버린다!

이젠 인간의 시대이며, 인간만이 신이다!

나를 따라 큰버루에게 인간의 힘을 보여 줄 진정한 전사만이 일어나라!"


촤악!


서슬뱀의 창이, 그가 들고 온 북을 꿰어 찢고 하늘을 향했다.


"누가 나를 따르겠는가!"


"저, 억센잎은..."

"저 검은뿔은..."

"저 뱀꼬리는..."


서슬뱀의 수많은 지지자들이 일어서 성명을 발표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검은 바위가 일어나 고개를 끄덕였다.


"부족을 위한 것이라면, 무조건 따를 것이오!"


"옳다!"


서슬뱀이 호탕하게 웃고는, 다시 나를 보며 창을 겨누었다.


"이에 나 서슬뱀은 우선 우리를 농락했던 삿된 주술사의 혈통을 친히 끊을 것이다!"


"마, 말도 안 되는 소리!"


주술파를 지지하는 전사들이 창을 들고 일어섰다.


"지금 큰버루 무리가 달려오는데 이게 무슨 미친 짓이오!

버력미르께 간절히 기도해도 모자랄 판에!"


"하,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필요한 건 부족을 지배한 헛된 믿음을 끊고 용감히 맞서야 하는 것이다!"


"헛소리 하지 마시오, 서슬뱀! 당신이 그런다고 큰버루 무리를 멈출 수 있소!?"


"우선 비키면 보여드리지, 아니. 그럴 생각이 없군!

돌격해라! 우레가람을 붙잡아 목을 치고 인간의 시대를 열 것이다!"


"우와아아아!"


큰버루산의 정상에서 주술파와 족장파 간의 전면전이 벌어졌다.


수라장이다.


틈을 봐서 빠져나가려 눈을 굴려 봐도 내게 남은 길은 제단 너머 낭떠러지 밖에 없었다.


"젠장할..."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딸랑.


"....?"


주변이 고요해졌다. 싸움이 멈춘 것은 아니었다. 눈 앞에서 수라장은 벌어지고 있으나, 소리가 삭제 된 것 같았다.


딸랑. 딸랑.


어디선가 방울 소리가 들렸다.


"엇..."


내 목에서 청동 방울이 낭랑한 방울 소리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분명히 알이 없던 방울이었을진데, 지금 이렇게 아름다운 소리로 운다.

어찌된 일일까.


웅 - 웅 - 웅-


낭랑한 소리로 진동을 하는 청동 방울 소리에 잠시 넋을 놓았다.


그리고, 시야가 이동했다.


큰버루산에서.


큰버루산 아래.


그 아래 큰버루 마을.


마을의 한 귀퉁이.


늙은 노인이 누워있는 한 천막 속으로.


천막 속에서 앙상히 누운 노인이,


서서히 몸을 일으킨다.


노인이 나와 눈을 마주쳤다.


[도와주마.]


"엇... 어엇..."


노인이 검지를 들어 나를 가리킨다.


파아앗!


시야가 돌아왔다. 그리고 뭔가가 내 몸속으로 들어와,

'씌인' 다.


딸랑, 딸랑, 딸랑.


방울 소리가 멈추지 않고, 그 소리에 맞춰지듯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나는 단창을 던져버리고 목에 건 방울 목걸이를 들어 마구 흔들며 춤사위를 췄다.


디딤소리가 가르쳐준 적 없는 춤사위다.


[반쯤 도박이었으되, 질료를 잘 모아왔구나.]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울린다.


질료?


고민을 하기도 전, 내 손이 허공을 향한다. 그리고 허공을 쓰다듬듯 춤사위를 이어가며 필요한 것들을 골라낸다.


허공에서 수많은 붉고, 푸르고, 짙고, 밝은 선들이 꺼내졌다. 부족원들과 연결된 듯한 그 실들이, 주변을 메운다.


알록달록한 오색실이 내 주변을 춤추는 중이었으나 누구도 신경쓰는 이가 없다. 마치 보이지 않는다는 듯이.


춤사위를 멈추지 않으며 내 손이 그 실선들을 하나하나 엮는다. 실선들은 이내 하나의 빛살로 엮여진다.


완성된 칠채색의 빛깔이 마치 선녀옷처럼 내 주변을 맴돌았다.


[재료는 충분하리 모였다. 제물도, 증인도, 상황도 있으니...

필요한 건 이름뿐이다.]


'이름? 그게 무슨...'


눈 앞으로 언뜻 노인이 웃는 환영이 지나쳤다.


[네가 하려던 것을 완수해라.]


하려던 것? 그게 뭐지?


수많은 주술파의 전사를 뚫고, 서슬뱀이 내게 다가온다.


여전히 주변의 소리는 들리지 않고, 그의 입모양으로 말을 추정한다.


우레가람.


그는 내 이름을 부른다.


우레가람...


우레...


노인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신을 만들어라!]


"우레... 미르.“


칠채색 빛에 홀려 나도 모르게 아무 말이나 내뱉어 버렸다.


퍼억!


서슬뱀이 나를 찌르려 했으나, 다른 전사의 방해 때문에 그의 창대가 내 머리를 후려쳤다.


눈 앞에서 번개가 번쩍였다.


목소리가 읊조렸다.


[좋다. 그걸로 하지.]


내 입이 멋대로 움직이며, 멋대로 말이 튀어나왔다.


"우레미르여, 오소사!"


화르르르르!


주변을 맴돌던 칠채색의 빛살이 순식간에 불길로 변했다. 오른손이 제단을 가리키자, 칠채색의 불꽃은 자기 스스로 움직여 제단 위의 곡물에 불을 붙였다.


번제(燔祭:태워 바치는 제사)가 시작되었다.


"증인을 모으고, 번제를 바치고, 이름을 붙였사오니. 오셔 기적을 보이소사!"


번쩍!


빛의 기둥이 제단으로 떨어진다.


삼 초 뒤 하늘을 울리는 소리가 큰버루산 정상에 퍼졌다.


우르르릉!


내게 소리가 돌아왔다.


하지만 여전히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부족원들은 싸움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 뒤에선 번제로 곡물들이 불타는 소리만이 타닥거린다.


마치 벙어리가 된 듯, 아무도 말을 하지 못한다. 어쩐지 온 몸의 힘이 없었다.


딸랑.


방울이 딸랑거린다. 탈력감이 느껴지는 내 몸과 입이 멋대로 움직였다.


"보아라! 신을 믿지 않는 자들이여!"


내 손가락이 멀리서 오는 큰버루 무리를 향하였다. 동시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다시금 내 몸을 빠져나갔다.


번쩍!


마른하늘에서 수십 줄기의 빛의 기둥이 쏟아진다.


오초 후, 빛의 기둥에 이어 들판에서 친 천둥이 이곳까지 울린다.


쿠르르릉!


그리고, 방금까지 달려오던 것은 장난이었단 것처럼. 눈 앞에서 벼락을 목격한 큰버루 무리가 진로를 틀었다.


휘이이이-


큰버루산 정상에는 침묵이 내려앉는다.


다시 세상이 밝아졌다. 일식이 끝나고 있었다.


"보아라! 믿음 없는 이들아!"


성대모사를 하거나 하지 않았음에도 내 목에서 명백한 타인(他人)의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노인의 목소리였다.


"우레미르께서 나 제사장 우레가람을 통하여 권능을 보이셨도다!"


내 양팔이 저절로 벌려졌다. 기운찬 모습과는 반대로, 내 몸의 힘이 어딘가로 줄줄 새는 듯 했다.


"하니, 말없이 믿을 지어다!"


번쩍 번쩍!


큰버루산 정상으로 세 줄기의 낙뢰가 몰아쳤다.


"후우..."


내 몸을 차지한 자가 목을 움직여 서슬뱀과 눈을 마주쳤다.


"아...으...그..."


"할 말이 있느냐?"


서슬뱀이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다는 것이, 너무 비현실적이다.


이건 꿈인가?


아니, 어디서부터 현실이지?


내 팔이 절로 움직이며 서슬뱀을 가리켰다.


"위대한 영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마을 내 분란을 조장하고 신의 이름을 욕보인 자.

서슬뱀을 큰버루에서 쫓아내겠다!"


번쩍!


한 줄기 빛이 나와 서슬뱀 사이로 떨어졌다.

어찌 되어먹은 물리법칙인지, 충격이나 열기는 없다.

다만 서슬뱀에겐 달랐던 모양.

낙뢰의 한 줄기. 아주 작은 스파크가 녀석의 얼굴에 닿았다.


"끄아아아아악!"


서슬뱀이 얼굴을 부여잡고 바닥에 뒹굴었다. 서슬뱀의 얼굴에서 피가 흘렀다.

녀석의 얼굴에는 마치 번개를 형상화한 듯한 흉터가 이마 왼편에서 턱 오른편까지 아로새겨져 있었다.

내 몸을 조종하는 목소리가 말했다.


"그 낙인이 내가 네게 새기는 벌이다. 이 못난 녀석아!"


얼굴을 부여잡고 덜덜 떠는 서슬뱀은, 십 년은 더 늙은 듯이 보였다.


"따라갈 자는 없으니, 가족도 명예도 권력도 내려놓고 썩 가거라!"


내 입이 멋대로 움직였고, 서슬뱀은 창을 지팡이처럼 쥐고서 큰버루산을 비척비척 내려갔다.


우우웅...


청동방울에서 느껴지는 진동이 눈에 띄게 약해졌다.


내 심장 고동소리도 약해지는 것 같았다.


[이쯤 해야겠구나.]


노인의 목소리가 혀를 찬다.


내 입이 다시 열리며 부족원들에게 소리쳤다.


"위대한 영의 이름으로 선언하노니, 지금부터 큰버루의 제사장은 우레가람이노라!"


말을 끝으로 노인의 목소리는 사라졌고, 나는 전신에서 느껴지는 탈력감에 의식을 잃었다.


* * *


눈을 뜨자 보이는 것은, 마치 산타클로스같은 수염을 가진 비쩍 마른 노인이었다.


"당신은..."


나는 저 노인의 얼굴을 알고 있다.

제사자의 날, 내 몸을 움직였던 자.

부족의 정신적 지도자, 신비한 힘을 가진 존재.


그리고...


"할아... 버지...?"


우레가람의 할아버지.

주술사였다.


"이것부터 마셔라."


주술사는 열매 껍질로 만든 잔에 초록색 즙 같은 것을 담아서 건냈다. 그가 나를 해칠 거란 생각은 추호도 않았기에 잠자코 마셨다.


주술사가 나를 보며 혀를 찼다.


"우레가람... 내 손자. 어찌 그리 되었을까..."


"예. 저는 이제 괜찮습니다."


나는 초록색 즙을 다 마시고 입을 닦으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자 주술사의 얼굴이 사납게 변했다.


" '너' 에게 말한 것이 아니라, 내 손자를 애도한 것이다!"


"....!"


입을 닦고, 열매 껍질을 든 손 그대로 몸이 굳어버렸다. 머릿속으로 오만가지 생각이 돈다.


내가 생각을 정리하며 말을 고를 때였다.


노인이 표정을 풀며 혀를 찼다.


"아니, 되었다. 그래 지금와서 그딴 걸 따져봤자...

통성명이나 하지. 우레가람도 반쯤 섞였으니 알겠지만, 내 이름은 우레노을. 큰버루 부족의 전 제사장이다."


뒤이어진 말에 나는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너와 같은 '이방인'이지."


"그게 무슨....!"


주술사, 우레노을은 쓴웃음을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벌써 이리 놀라다니 진실을 말해주면 심장마비로 죽을 수도 있겠군.

기껏 제사장이 탄생했는데 죽으면 아니 되지.

좋다. 하나하나 천천히 설명해주마. 우선 네 이름부터 밝혀라."


"...저는..."


나는 내 이름을 말하려다가도 흠칫했다. 상진으로 살아온 기억 역시 생생하지만 우레가람으로서의 기억과 감정도 생생했기 때문이었다.


내 고민을 눈치챈 건지 우레노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군. 네 이름을 '둘 다' 소개하면 된다. 제사장끼리는 친해지자는 의미로 자신의 이름을 둘 말하지."


그 말에 나는 무언가 이상한 것을 느끼고 되물었다.


"당신은 제게 '우레노을'이라는 이름 하나만을 얘기해 주셨군요."


"클클. 네가 애기하면 나도 내 다른 이름을 알려주마."


"...제 이름은 우레가람, 큰버루 부족의 주술사 혈통입니다.

그리고... 하상진이 제 또 다른 이름입니다."


"ha쌍jin... 하쌍진..하상진..."


우레노을은 내 이름을 몇 번 곱씹어 본 후 고개를 끄덕였다.


"내 다른 이름은 리바이어던."


우웅.


그때 머리가 울려왔다.


동시에 노인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려퍼졌다.


[큰버루가 쓰는 어휘로는 표현이 안 되니, 텔레파시로 말해주지. 나는 T7673 은하계 7번 꼬리은하 TA12003행성계 4번 주성, 우기즈(oogiz) 인이네. 산업동맹공화도시 출생이지.]


이어진 노인의 말에 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자네는 어느 행성 출신 이방인이지?]


작가의말

*정보 : 버루는 버력 + 노루의 합성어로, 해당 세계관 가공의 짐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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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9. 부족의 신(9) +7 21.05.15 1,247 52 16쪽
9 8. 부족의 신(8) +6 21.05.14 1,311 48 14쪽
» 7. 부족의 신(7) +5 21.05.14 1,333 53 12쪽
7 6. 부족의 신(6) +5 21.05.13 1,395 45 14쪽
6 5. 부족의 신(5) +3 21.05.12 1,552 48 17쪽
5 4. 부족의 신(4) +2 21.05.12 1,729 47 12쪽
4 3. 부족의 신(3) +3 21.05.12 1,963 53 10쪽
3 2. 부족의 신(2) +4 21.05.12 2,436 53 12쪽
2 1. 부족의 신(1) +5 21.05.12 3,503 72 10쪽
1 프롤로그 +12 21.05.12 4,817 96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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