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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서재다.

신석기 제사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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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작품등록일 :
2021.05.12 20:32
최근연재일 :
2021.08.04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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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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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12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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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3. 부족의 신(3)

DUMMY

큰버루 부족의 이름이 큰버루 부족인 이유에는 많은 전설이 있었지만, 가장 유명한 전설은 '버루산'이었다.


큰버루 부족이 터를 잡은 곳 뒤쪽에는 버루라는 짐승을 닮은 바위산이 있었다. 부족의 첫 족장이 인근을 지나다 버루산이 부르는 목소리를 듣고 터를 잡았다는 전설이었다.


그런 만큼 버루산은 예로부터 영험하고, 웅장하고, 높은 산으로 알려져 있었다.


"허억... 헉..."


나는 높디높은 버루산의 중턱, 적당히 넓은 바위에 드러누워 숨을 골랐다.


"어른들이 그러는데, 너 인근 넓적머리 부족도 아니고, 솟은매 부족도 아닌 멀리서 온 이방 혈통이라고 하더라. 그래서 체력이 약한가?"


서슬바람이 자신의 창으로 내 옆구리를 찌르며 키득거렸다.


나는 녀석을 무시하고, 녀석과 나를 따라온 큰바위에게 시선을 돌렸다.


"큰바위, 물 좀..."


"여깄어."


큰바위는 물소의 고환으로 만든 물주머니를 건냈다. 누릿한 냄새가 섞인 물이었지만 뭐라도 액체가 입에 드니 살 것 같았다.


나는 물을 마시고 다시 숨을 몇번 고른 후에야 서슬바람을 쳐다보았다.


"서슬바람, 창 맛은 언제 보여줄 건데?"


"하하..."


서슬바람은 피식 웃으며 가지고 온 가죽 주머니에서 구운 얌(Yam) 조각을 꺼내 던져주었다.


"창 맛 전에 얌 맛 부터 보시지. 열이틀만에 먹는 얌 맛은 어때?"


나는 씨익 웃으며 아직 온기가 남은 얌 조각을 배어물었다.


"째진다."


나와 서슬바람, 그리고 큰바위는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큰바위가 바위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역시 너였구나, 서슬바람."


"먹을 걸 줄 거면 서른 날 전부 가져다주지, 열이레만 가져다주면 어쩌자는 거야."

우레가람의 기억 속. 어둠 속에서 누군가 구운 얌을 귀신굴의 틈새로 던졌었다. 우레가람은 그것을 먹으며 겨우 굶어죽는 것을 면했다.


다만 구운 얌도 보름을 넘기자 더는 오지 않았고, 우레가람은 거의 미치기 직전까지 갔었었다.


우레가람의 심정을 이어받은 내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서슬바람은 입을 비죽였다.


"아버지가 넓은머리 부족에 날 데리고 가는데 어떻게 하라고. 아버지 몰래 귀신굴 다가가서 얌 넣어주는 것도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어."


"그래 그래. 정말 수고했다."


서슬뱀과 우레가람의 할아버지인 주술사의 사이는 극악이었다.


하지만 그 자손들인 우리는 우습게도 정 반대로 둘도 없는 친우였다.


다만 부족의 상황상 서슬바람은 서슬뱀 앞에서 나를 구타하고 조롱했고, 나는 당하는 채 하기만 했을 뿐.


"그런데 이 창은 왜 가지고 오란 거야. 진짜 창 맛 보여주게?"


난 서슬바람이 내게 던졌던 단창을 들며 물었다.


마을에서 뒷산으로 따라오라 했을 땐 명분 삼아 던진 모양이었다만 자세히 보니 여러 무늬도 울긋불긋하게 그려진 것이 보통 창이 아니었다.


서슬바람이 얌을 베어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창 맛좀 보여줘야지."


"네가?"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서슬뱀은 부족 최고의 창잡이였지만 서슬바람은 창에 재능이 없었다.


이방 혈통 탓인지 힘이 약한 우레가람조차도 창술 만큼은 서슬바람보다 나았으니 할 말이 없을 정도로.


내가 의아해할때 서슬바람의 흥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창 맛은 나 말고, 큰바위가 보여줄거야."


"...뭐?"


"너 데리고 온 것도 사실 큰바위가 부탁해서 온 거였거든."


"아..."


얌을 베어문 내 입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창을 못 잡는 서슬바람과는 반대로, 큰바위는 또래 중 최고의 창잡이였다.


큰바위가 창을 가리켰다.


"우레가람, 원래 너 주려고 만든 창인데 이제서야 주게되네."


"아... 그래?"


"창도 받았으니까 한 번 붙어보자고."


큰바위가 만들었다는 창을 보며, 침을 삼켰다.


'x됐다.'


* * *


서슬뱀은 그를 찾아온 디딤소리를 말없이 쳐다보았다.


그의 앞에 선 디딤소리는 저도 모르게 침을 삼키며 말을 시작했다.


"그러니까, 주술사가 아침부터 발작을 시작하더니 방금 기절했습니다."


"그 늙은이가?"


서슬뱀은 왼손 검지를 꺾으며 되물었다.


디딤소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데 기이한 것이... 주술사를 관리하는 족원들에게 묻자니, 그가 발작한 시간과 우레가람이 굴에서 나와 발작한 시간대가 거의 같습니다.

저...족장이 주술을 불신하는 건 알지마는..."


"디딤소리."


서슬뱀의 눈동자가 디딤소리의 눈동자와 마주쳤다.


"그건 그냥 우연이다. 우레가람이 발작한 건 굴속에서 살짝 실성한 탓이고, 늙은이가 발작한 건 네가 그믐검 꽃잎을 제때에 가져다주지 않은 탓이겠지."


"아니, 그것이..."


디딤소리가 말을 흐리자 서슬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디딤소리보다 머리 하나 반은 더 큰 그의 몸집에, 디딤소리의 어깨는 눈에 띄게 쪼그라들었다.


"디딤소리, 네게 주술사에 대한 존경이 남아 있단 건 안다. 하지만 네가 존경하던 주술사는 젊은 시절의 영명한 지도자였고, 위대한 목소리였다. 지금 그 주술사는 없다. 그는 병에 들었어. 치료제는 독한 그믐검 꽃잎이란 걸 알고 있지 않나?"


서슬뱀의 목소리에 디딤소리는 침묵했다.


"정말로 주술사를 생각한다면, 그믐검 꽃잎으로 흐린 정신이나마 붙잡고 목숨을 연명하게 해주어라."


"...알겠습니다."


디딤소리는 고개를 숙이고 서슬뱀의 천막을 나갔다. 서슬뱀은 자리에 다시 앉아, 디딤소리가 나간 천막의 입구를 쳐다보았다.


"벌써 발작이 일어났다니, 그믐검 꽃잎의 효과가 아주 빠르군."


서슬뱀의 입가로 잔잔한 미소가 묻어났다.


“주술사는 그믐검에 중독됐고, 그 아들은 죽었으며 마지막 혈육은 내 손에 들어왔다.”


서슬뱀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우레가람이 살아있어 시기가 조금 늦춰졌다. 하나 오히려 잘 됐어... 제사자의 날, 큰버루는 온전히 내 것이 된다...!"


그의 천막 안으로 작고, 낮은 웃음소리가 울렸다.


웃음소리는 점차 줄어들더니 곧 끊겨버렸다.


“... 그래. 이제... 큰버루는 내 것이다.”


* * *


"후후, 자세가 좋아."


큰바위가 어금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귀신굴에서 기력이 다 빠졌을 테니까, 살살해 줄게."


"아 정말 고맙..."


퍼억!


큰바위의 창대가 내 얼굴을 후려쳤다. 골이 울리고 세상이 흔들린다.


녀석의 얼굴에서 장난기가 사라졌다. 이제 내 앞에는 부족의 두 번째 전사, 검은바위의 혈통을 지닌 큰바위라는 전사가 있을 뿐이다.


'온다...!'


큰바위의 발이 성큼 다가오며 창을 잡고 허리를 꺾었다.


허리 힘을 받은 녀석의 창이 공기를 밀어낸다.


'부딪히면 손아귀가 찢어진다.'


오른발을 뒤로 물리고 왼무릎을 굽혔다. 창이 공기를 때리는 소리가 머리 위를 아슬아슬하게 스쳤다.


굽힌 무릎을 펴고 녀석에게 돌진했다.


큰바위가 허리를 다시 돌렸다.


창이 무시무시한 소리와 함께 내 몸을 쳐낸다. 버티려 하지 않고 창의 방향에 따라 네 걸음을 움직인 후 창끝을 아래에서 위로 쳐올렸다.


창끝이 바닥을 긁는다.


큰바위는 허리를 굽혔다 튕기듯 곧추세우며 내 창을 쳐냈다.


따악!

"아아악!"


결국 나는 창을 놓쳐버렸고, 큰바위의 창끝이 내 목에 닿았다.


"...나쁘진 않았어."


"그래, 또래 최고 큰바위님의 창을 세 번이나 받아냈으니 훌륭할 정도였지."


서슬바람은 킥킥 웃으며 주머니에서 얼푼이풀을 꺼내 던져주었다. 풀을 씹자 머리가 맑아지며 고통이 가시는 듯 했다.


'근데 이거 생긴게 대마 같은데...'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아직도 뭐가 뭔지 혼란스러운데 그런 것까지 신경 쓰면 머리가 터질 게 분명하다.


큰바위가 씨익 웃었다.


"귀신 들린 줄 알았는데, 창 실력 보니 우레가람이 맞았네."


"형편없다는 거지?"


"하하, 역시 머리가 좋아! 아침에 미친 척 비명 지르고, 나 못 알아본 척한건 역시 연기지?"


그 물음에 나는 뒤통수를 긁적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 엄청 썼던 거야. 나는 그렇게 하면 내가 새 주술사 비슷한 게 될 줄 알았지."


"어휴 멍청하기는. 우리 아버지가 그렇게 호락호락 하겠냐?"


서슬바람은 낄낄거리며 내 옆에 앉았다.


"새 주술사 비슷한 걸 하려면 연기를 더 했어야지. 나라면 벙어리가 된 척 제사자의 날까지 기다렸다가 일을 벌렸어."


"제사자의 날?"


"그래 제사자의 날!"


그게 뭐지?


우레가람의 기억에는 없는 말이었다. 나는 최대한 모르는 걸 들키지 않으려고 서슬바람을 떠보았다.


"그런데 우리가 작년 제사자의 날 때는 뭐하고 놀았지?"


그러자 큰바위가 나를 보며 피식 웃었다.


"놀긴 뭘 놀아. 너랑 서슬바람, 그리고 몇몇 주술사 후보생들은 주술사 님 곁에서 하루종일 북 들고 서있었잖아."


"난 그 때 생각하면 오금이 저려! 주술사님은 하루 종일 제단 위에서 춤만 추셨고... 사실 주술사님이 날 후계자로 찍었을 때는 행사 때마다 종일 춤추는 게 제일 걱정이었어."


서슬바람은 얼푼이풀을 꺼내 뜯고, 큰바위는 그때를 회상하는지 킥킥거렸다.


"그때 너희 얼굴이 어땠냐면..."


둘은 재밌게 떠들었고, 나는 안색이 어두워졌다.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듣자하니 매년 있는 행사 같았으나 우레가람의 기억 속에선 한번도 그런 행사를 찾을 수 없었다.


'아니, 잠깐만...'


"그런데 우리 제사자의 날 말고 주술사가 행하는 행사가 또 뭐가 있었지?"


"큰버루산 잔치, 하늘뫼 제례, 귀신굴 달래기 또..."


이어지는 서슬바람의 무수한 대답에 나는 애써 흥미롭단 표정을 유지하며 기억을 뒤졌다.


'없어...'


우레가람의 기억 속.


그 어디에도 거대한 행사를 여는 주술사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가끔 우레가람의 앞에서만 손바닥에 불꽃을 피운다던가 하는 기행을 보여줄 뿐이었다.


'우레가람의 기억이... 완전하지 않다.'


겉으론 억지 웃음을 지으며 대화를 이어나갔으나, 서슬바람은 무언가 불편한 기색을 눈치챘는지 내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괜찮겠어? 이번 제사자의 날에는 주술사님이 누워계시니깐..."


이어지는 서슬바람의 말에 내 억지 미소는 완전히 깨져버렸다.


"네가 제사를 주관해야 하잖아."


작가의말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를 본 후, 얌 요리가 그렇게 맛있어 보이더라구요. 그래서 큰버루 사람들의 주식은 얌 요리가 되었습니다...

그 밖의 개연성적인 이유는 없어요... 그냥 제가 얌을 먹고 싶었어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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