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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서재다.

신석기 제사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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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작품등록일 :
2021.05.12 20:32
최근연재일 :
2021.08.04 19:07
연재수 :
6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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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63,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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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15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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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쪽

9. 부족의 신(9)

DUMMY

잠시 우레노을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못들은 척 되물었다.


"다시 말해주실 수 있습니까?"


우레노을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말을 되풀이해 주었다.


나는 또 듣지 못한 척 다시 말해달라고 하였고, 내가 몇번을 되물어도 우레노을은 차분하게 말을 반복했다.


동굴 안쪽 모닥불 두 개가 꺼질 때쯤에야,


"...죄송하지만 다시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우레가람도, 하상진도...]


나는 저게 무슨 소리인지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X발!"


몸을 박차고 벌떡 일어났다.


"개소리 하지 마! 왜 내가 죽었다는 건데! 나는..."


[...'너'는 누구지?]


"...X발... 그러니까..."


머리를 부여잡고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내'가 누구인가.


나는 큰버루의 주술사 혈통 우레가람인가.


대한민국에 여자친구와 부모님이 있는 알바생 하상진인가.


둘 다 아니다. 그 무엇도 아닌 셈이었다.


"...내가... 누구지...?"


나를 하상진이라 생각해왔지만, 틀렸다. 나는 우레가람이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정말 우레가람이 맞는가? 하상진이 섞인 나는 우레가람인가? 아니면 우레가람이 섞인 하상진인가?


"빌어쳐먹을... 당신들의 빌어먹을 제사장인지 뭔지 때문에 내가..."


존댓말은 집어치우기로 했다. 나는 이 자의 손자 우레가람이 아니다.


스물일곱 하상진도 아니다. 예의는 내게 의미가 없다.


"당신... 당신들 제사장 때문에..."


[글쎄. 미안하다만 나 역시 선대 제사장에 의해서 혼이 섞인 몸이지. 선대 피해자일 뿐이다. 그리고 네 경우는 내가 아니라 서슬뱀이 그렇게 한 것이니 나를 원망해봤자 의미가 있는가?]


"... 빌어먹을."


나는 죽일 듯이 그를 노려보았다. 씁쓸하게 웃는 우레노을의 표정에서 얼추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서슬뱀에게 명령한 건 내 입이었지만, 당시 내 입을 조종했던 자는 우레노을이었다. 이 자는 서슬뱀이 신을 모욕하고 마을의 질서를 어지럽혔기에 추방시킨 것이 아니었다.


내가 언제고 서슬뱀을 죽여버릴 것을 알았기에 오히려 그를 피신시킨 것이었다.


"당신... 서슬뱀에게 당한 게 많을텐데. 의외로군."


그 말에, 우레노을은 나를 잠시 보더니 목소리를 내서 입을 열었다.


"우레가람도 반쯤 섞였을텐데... 내가 왜 그러는지 모르느냐?"


"....?"


내가 이해하기 어렵다는 눈으로 그를 쳐다보자, 그는 혀를 차며 말했다.


"저런... 어느 정도 예상하긴 했지만 조금 곤란하군."


"무슨 소리지?"


"너 말이다. 우레가람의 기억이 완전하지 않지 않더냐?"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이 쓴다는 주술이나, 당신이 치뤘다는 제례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소."


"본래는 쑥과 마늘을 먹으며 정확히 열흘을 귀신굴에 놔둬야 하건만.

서슬뱀 녀석이 서른 날간 방치한 탓이지.

절차가 완벽하지 않아 우레가람과 하상진의 혼이 완벽히 융합하지 못한 게야.

주술에 관한 기억은 용량을 많이 차지하니까 그런 류의 기억만 쏙 빠졌나보군."


우레노을은 태연하게 나를 보며 고민하는 기색이었다. 그런 모습을 보자니 가슴속에서 무언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


"태연하시군. 어렵게 제사장으로 만든 내가 지금 당장이라도 자살하면 어쩔거지?"


이 말은 협박 따위가 아닌 진심이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머리를 바위에 쳐서 죽고싶은 기분이 든다.


죽으면 내가 누군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저런, 죽는게 두렵지도 않은가?"


"당신 말에 따르면 어차피 내 혼은 귀신굴을 경유해서 하상진의 세계로 갈텐데 두려워할 이유가?"


"허허, 다른 세계로 돌아가면 뭔가 바뀔 것 같느냐?

너는 계속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그 세계에서도 다시 자살할 테지.

만약 그렇게 되면 이 세계로는 못 돌아올 텐데... 원래 세계는 사후 세계 같은 게 있긴 한 곳인가?"


"......"


맞는 말이었다. 이대로 자살한다고 해서 내 정체성이 바뀔 일은 없다.


나는 결국 돌아가도 자살할 테였고, 그의 말따마나 완전한 죽음 이후는 아는 것이 없었다.


"한 잔 마시고 진정부터 해라."


우레노을은 토기에 담긴 초록색 즙을 내밀었다.


나는 아까처럼 섣불리 받을 수 없었다.


"수상한 게 아니다. 너를 죽이려면 왜 굳이 그렇게 힘들게 너를 제사장으로 만들어 놨겠느냐."


그 말에 나는 초록색 즙을 다시 마셨다. 쌉쌀한 게 머리가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우레노을의 말이 이어졌다.


"머리가 식은 듯하니, 이젠 조금 도움될만한 애기를 해주지.

우레가람. 나는 너와 같은 처지인데 어찌 이렇게 평온해 보이는지 아는가?"


"...그건 궁금하군요."


내 말은 어느새 경어체로 돌아와 있었다. 복잡한 마음이 조금 진정되었고, 그 역시 어떻게 저렇게 평온한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난 못 가르쳐 준다."


"...이 씻팔 샛기가!"


나는 마시던 초록색 즙을 그대로 우레노을에게 던져버렸다.


우우우웅!


그때였다. 내가 던진 과일 토기와, 초록색 즙이 그대로 증발했다.


정확히, 토기는 가루가 되어서 우레노을에게 아무런 충격도 주지 못하고 흩어져 버렸다. 마치 초진동 분쇄기에 갈린 듯한 현상이었다.


그의 주술인 모양이었다.


우레노을이 미소지었다.


"나 역시 너와 같았다. 그리고 내 답도 선대 제사장과 같을 것이다.

우레가람. 제사장이 되거라.

제사장이 되어 신과 교감하다보면,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연히 네가 누군지 알 수 있다.

정체성을 고민할 일 따윈 없을 것이니라."


"...난 이미 제사장인데?"


"틀렸다. 넌 언제라도 자살할 생각을 하고 있지.

나는 네가 자살충동을 시도 때도 없이 느끼는 페인이 되는 게 아닌,

내게서 모든 주술과 신과 교감하는 법, 제사를 지내는 법을 배워

진정한 제사장으로 거듭나길 원하는 게다."


잠시 우리 둘 사이엔 침묵이 흘렀다.


"내가 주술사가 되길 원하는 거요?"


"그래."


"당신은 내게 주술을 가르칠 거고?"


"그래."


"내가 신이란 것과 교감하다 보면 내가 누군지 알 수 있소?"


"그래."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된다.


뿌득.


그런 게 중요할까? 나는 이미 누구도 아닌데?


갑자기 열이 뻗치며 머리를 모닥불 속에 집어넣어버리고픈 충동이 일었다.


"쯧쯔, 마음이 상당히 박살났군. 조금 진정하지."


우웅!


우레노을이 손가락을 튕기자 갑자기 온 몸이 기진맥진해졌다.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기 힘들어졌다.


"네가 먹은 약초즙에 내 주술을 불어넣었다.


잠시 자살시도는 힘들게야."


"...빌어... 먹을..."


욕을 하고 혀를 깨물려 했지만 그조차 힘에 부쳤다.


"진정하고 들어라. 이성적으로 네가 자살한다고 해서 얻을 이득이 있느냐?


당분간 네가 얻을 이득과 쾌락만 생각해라.


네가 주술사가 되면 큰버루의 모든 여자와 남자, 이웃 부족의 사람조차 데려다 네 마음대로 할 수 있다. 넓적머리, 솟은매 놈들은 제대로 된 제사장이 없으니 말이다.

선대 제사장의 업적을 체험한다는 명목으로 천지아래 어디를 여행다녀도 된다.

네 손끝이 가리키는 곳을 벼락이 맞출 것이다.

네 손으로 천벌을 내릴 수도 있는게야."


역시 주술인지, 내 앞으로 환상이 펼쳐졌다. 온갖 쾌락과 환락을 누리며 내 손으로 천벌을 내리는 장면들.


허약한 이웃 부족을 침략해 제왕이 되는 장면들.


나를 위한 제단을 쌓아 하늘에 이르는 모습들.


매우 환상적이고, 장엄하다.


그리고.


"정말 의미없군."


내겐 아무런 감흥도 없었다. 지금껏 나라고 생각했던 것은 전부 가짜고, 나는 만들어진 제 3의 존재였다는 사실이 그리도 공허할 수 없었다.


"리바이어던. 내 알 바 아니니 그냥 죽여주시오."


"내가 너와 같은데 어찌 이리 멀쩡한지 안 궁금하더냐?"


"그것 참 놀랍군."


슬슬 힘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나는 혀를 깨물려 입을 우물거렸다.


내 모습을 본 그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곤 정말 내키지 않는다는 듯 한마디를 뱉었다.


"...복수하고 싶지 않느냐?"


"...복수?"


"서슬뱀에게 말이다. 그가 아니었다면 네가 탄생할 일은 없었겠지. 우레가람은 우레가람대로, 하상진은 하상진대로 살았을게다."


"......"


우물거리던 턱이 멈췄다. 전신에 힘이 돌아왔다. 심장이 더욱 빨리 뛰었다.


복수? 서슬뱀한테 복수한다고?


"넌 서슬뱀에게 창대를 맞고 일순간 번개를 보았었지. 그 이미지를 이용해서 너 대신 벼락의 권역을 다스리는 신을 만들어주었다.

벼락은 세계를 떠받치는 네 개의 기둥 중 하나.

네게 내 세계의 중등지식과 주술을 가르쳐주마. 아마 그것만으로도 온갖 잔학한 방법으로 그에게 복수할 수 있을 것이니라."


나를 이렇게 만든 상대에게 복수한다.


마치 프랑켄슈타인 박사를 생각하는 그의 크리쳐의 심정이 이랬을까.


나는 어느새 미소짓고 있었다.


"...그 자가 황야에서 이미 죽었으면 어떻게 하오?"


"...서슬뱀 녀석은 무기와 몸이 하나되는 경지에 이른 창잡이다. 나도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큰버루 무리를 움직일 수 있는 방법도 발견한 듯하니 쉽게 죽진 않을 뿐더러, 되려 네가 위험할 수도 있겠지."


"......"


이상하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우레노을이 물었다.


"제사장이 될 것이냐?"


침묵했다. 하지만 혀를 깨물려 턱을 우물거리는 짓은 멈췄다. 그도 나를 더 이상 종용하지 않았다.


모닥불이 하나 더 꺼졌다.


"...알겠소. 이제부터 배우겠습니다."


"...말투가 변하는 건 보기 좋군."


서슬뱀의 복수로 내 활력을 되살린 게 마음에 걸리는지.


그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제사장의 세계에 들어온 것을 환영한다."




* * *




그로부터 6년이 지났다.


시간은 유수와 같이 흘렀다.


정정해 보였던 우레노을이 늙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따라서, 신이란 결국 주술의 일부이다."


흐릿한 눈으로 예전에 했던 말을 기계처럼 되풀이한다.


나는 백쉰번 넘게 들었던 주술강의를 건성으로 넘기며 제례준비를 하였다.


"인간의 힘으론 대자연에 흐르는 광대한 힘을 사역할 수 없으니, 대자연과 인간 사이에 징검다리를 놓은게지.

인간의 믿음과 제사의식을 거쳐 만들어지는 인공생명체, 그것이 바로..."


말을 이으려던 그가 움찔했다. 그리고는 열성적으로 반복하던 수업을 멈추고는 멍하니 허공을 응시한다.


또 다시 과거 어느시점으로 이동한 모양이다.


그는 멍한 눈으로 나를 보았다.


"우레별. 우레별이냐."


"예, 스승님."


우레노을을 부르던 내 호칭은 '스승님'으로 격상되어 있었다.


"키가 작아졌구나."


"아버지는 전사로 키우셨다 했지요. 당연히 저보단 큽니다."


주술사는 본디 평균수명이 일반인의 두배는 된다고 하였다. 다만 스승님 같은 경우 서슬뱀이 먹였던 그믐검 꽃잎이 치명적이었는지, 더욱 빨리 쪼그라들었다.


요 근래는 치매가 찾아왔는지 과거와 현재를 혼동하는 일이 잦았다.


특히 나를 그의 아들, 우레가람의 아버지인 '우레별'과 자주 혼동하곤 했다.


"서슬뱀과 사냥 나가기로 한 게야?"


"서슬뱀은 큰버루에 없습니다."


내 말에 우레노을은 충격을 받은 듯 주변을 더듬거렸다.


6년 사이 그는 정말로 많이 늙었다.


"서슬뱀이 너와 따로 나가다니 별 일이구나. 다퉜느냐?"


"모르겠습니다. 일단 귀신굴로 가시죠."


어젯밤 잠시 정신을 차린 우레노을은 오늘 자신이 죽을 것이라 일러주었다.


주술사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죽음이 임박하면 알 수 있다.


오늘은 제사장의 절차에 따라 선대 주술사를 귀신굴로 보내주는 제례를 할 것이다.


귀신굴로 그를 부축하는 내 뒤로, 수많은 큰버루 부족원들이 뒤따랐다.


"서슬뱀 녀석도 심란하겠지. 다음 대 제사장이 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예. 당신의 수제자였다고 일러주셨죠."


"석기시대 사람답지 않게 영리한 녀석이야. 아마 내 세상에 태어났으면 은하개척장교가 됐겠지."


"맞습니다. 발을 조심하시죠."


귀신굴 앞 돌부리를 밟으려는 그를 도와주며 말을 받았다.


"창 실력도 최고고, 영력도 제법이고, 머리도 좋고 잘 생기기까지. 뭐 그런 녀석이 있담. 아깝구나. 아까워."


"......"


"그런데 아들아, 여긴 춥지 않니? 마치 귀신굴 같구나."


"예 사부님. 이곳은 귀신굴입니다."


우레노을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더니 내게 물었다.


"오늘이 귀신굴 달래는 날이던가? [우짖는 새]. 대답 좀 해 봐라."


"스승님이 모시던 신은..."




"... 그래. 나도 안다. 죽었지."


그의 눈에는 총기가 돌아와 있었다.


신은 대를 이어 모시면 아니된다 하였다.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단지 자연과 인간의 징검다리 역을 하는 정령체일 뿐. 의지도 인격도 없다.


하지만 신은 세월이 흐를수록 인격이 형성되고, 성숙하고, 지성을 얻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욕망을 얻는다. 욕망을 얻은 신은 인간과 다를 바 없다.


주술사의 뜻에 따르지 않고 오히려 주술사를 지배하려 든다. 때문에 제사장은 죽음이 가까워지면 자신의 신을 죽인다. 하지만 제사장은 신의 힘을 빌리는 자.


신을 죽인 후를 기점으로 제사장은 한없이 약해진다.


서슬뱀이 태어나던 날부터 우레노을의 신력은 내리막길을 걸어왔다 했다.


"놓거라. 부축은 필요 없다."


"예."


우레노을은 제례용 지팡이를 짚고 굴 안으로 깊숙히 걸어들어갔다.


"... 의학도 발전하지 않은 세상에서 주술로 오랫동안이나 연명해 왔구나."


그는 귀신굴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귀신굴을 닫아라!"


쿠구구구!


큰버루 사람들이 바위를 굴려 귀신굴의 입구를 막았다.


이제 귀신굴에는 나와 사부만이 있었다.


마치 6년 전, 내게 제사장의 길을 걸을 것이냐 묻던 그 때처럼.


어둡다.


"나는 돌아간다."


"예."


"큰버루는 맡기마."


"예."


"내가 돌아갈 때를 잘 잡아, 잔여 영력은 최대한 흡수하거라."


"알겠습니다."


"그리고..."


잠시 말을 잇지 못하던 그는 작게 말했다.


"서슬뱀은, 최대한 고통없이 보내다오."


"...생각해보겠습니다."


6년. 오랜 시간이 지났으되, 나는 아직도 내 존재가 혼란스러웠고, 아직도 서슬뱀이 증오스럽다.


"...최대한 사람을 해치지 말거라. 제사장으로서 최종적인 깨달음을 얻을 때 방해될 테니까."


"...노력하지요."


얄궂게도, 서슬뱀은 본디 그의 제자로서, 차기 제사장이었다고 한다.


우레노을은 서슬뱀을 아꼈다.


'서슬뱀'을 죽이기 싫어 그를 차기 제사장에서 내쳤을 정도로.


지금도 그는 나에게 그가 아꼈던 수제자를 죽이지 말아달라고 돌려말하고 있었다.




"...그럼, 나는 가마."


우우웅!


어두운 동굴에 빛이 든다.


사부의 몸에서 푸른 빛이 뿜어졌다.


제사장은 대부분 한 무리를 지배하는 지배자이며, 자연을 부리는 이이다. 그렇기에, 죽을 때가 임박하면 자신의 죽음조차 본인의 지배하에 둔다.


자연의 선택이 아닌 스스로의 의지로 가는 것이다.


[잘 보거라. 내 혼에는 제사장의 최종 경지가 아로새겨져 있느니라.]


휘이이이!


가공할 빛과 바람이 뿜어져 눈을 뜨기 힘들었다. 그러나 가공할 빛에 귀신굴은 밝아지는 것이 아니라, 그 어둠이 더욱 짙어진다. 귀신굴의 석순들이 차차 어둠에 먹히며, 눈 앞으로 어둠의 공간이 생기는 듯 했다.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검은 터널이 생긴 것 같다.


빛과 사부가 분리되었다.


사부의 혼백이 몸에서 빠져나오고 있었다.


사부가 일생동안 쌓아왔을 기함할 영력이 새어나왔다. 최대한 잔여영력을 흡수하며 그의 죽음을 똑똑히 눈에 담았다.


사부의 영(靈)이 그의 몸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와 어둠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가공할 빛에 눈이 멀 것 같았다. 그의 영(靈)은 은은하게 신성하기도, 사악하기도, 거칠기도, 부드럽기도 한 기이한 기운을 머금고 있었다.


어쩐지 저 기운이야말로 그가 자신의 존재를 혼란스러워하지 않게 된 비밀 같았다.


그가 끝끝내 스스로 찾아야 한다 일렀던 주술의 최종 경지이리라.


[좋았던 일도, 싫었던 일도,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있었다.

큰버루에서의 삶은, 이 세상에서의 삶은...]


빛나는 영체가 잠시 나를 돌아보았다.


잠시 나와 눈을 마주친 그는 씁쓸하게 웃었다.


[아직 미련은 많지만, 이제 미련은 없구나.]


어둠 속으로, 빛의 영이 걸어들어갔다.




그날, 큰버루의 노을이 떨어졌다.


작가의말

아침에 한편... 저녁에 한편... 올릴예정... 내일부터는 비축분의 생명을 위해... 연참은 쵸큼 힘들수도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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