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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베어의 곰굴

EX급 귀농 라이프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무협

공모전참가작 새글

캡틴베어
작품등록일 :
2024.05.11 21:02
최근연재일 :
2024.06.16 13:10
연재수 :
62 회
조회수 :
206,587
추천수 :
4,611
글자수 :
415,080

작성
24.05.19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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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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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1쪽

17화

DUMMY

17화




도대체.

언제서부터였을까?


박보연이 카메라를 무서워한다고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이 믿어 주기나 할까?


‘왜 이러지 진짜······.’


이제는 다 그만둬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갑자기 찾아왔다. 어느 날부터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면 그만 얼려버린 생쥐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심할 때는 심지어 심장마저 멈추는 기분이 되었다.


병원을 찾아가지 않아 본 게 아니다. 지금도 의사와 상담 후 받은 약을 여러 가지 매일 삼키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전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 박보연 실제로 보니까 개싸가지던데??


어느 순간부터 밖에 다닐 때 본인의 상태가 이상했다. 사람을 마주 보면 예전처럼 친절하게 웃어줄 수가 없었다. 그런 나날들이 지나가자 인터넷엔 ‘박보연 실제 인성’이라는 제목의 날 선 글들이 게시되기도 했었다. 그 뒤로 어떻게 했는가?


예전처럼 친절하게 웃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다. 밖에만 나오면 사람들 눈치를 보며 정말 부단히도 노력했다. 이제 친절한 미소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반가움이 아닌, 이 사람이 뒤에서 나를 해코지 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자기도 모르게 내어놓는 상납 물이 되어갔다.


“누가 알아봐 주면 그렇게 좋아했었는데······.”


씁쓸했다.

남들이 보기엔, 심지어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도 열심히 치료도 받고 하면서 좋아졌다고 생각하겠지만, 속으로는 무언가 점점 가라앉고 있었다. 그건 아무도 알 수 없는 외로움이었다.


“언니 목 많이 안 좋죠!”


코디가 걱정스러운 안부를 물으며 따듯한 차를 건네주었다.


“아 오늘 조금 안 좋네. 헤헤.”


목이 안 좋은 것도 사실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방금의 상황은 사실은 다른 게 더 컸다.


“한 시간 쉬어 간대요. 언니 식사 하셔야죠. 매니저 언니가 밥집 알아놨다니까 우리끼리 잠깐 먹으러 갔다 와요.”


“아······. 괜찮아 나는.”


“정말 괜찮겠어요? 그럼 뭐 좀 사다 드릴까요?”


스텝들도 밥을 먹기 위해 하나둘 촬영장을 빠져나갔다. 하지만 도무지 박보연은 어딘가로 가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나는 여기 있을게. 대본도 한 번 더 보고.”


“그럼 저 금방 다녀올게요 언니.”


촬영장에 몇몇 스태프가 남아서 지키긴 했으나 거의 혼자가 된 박보연은 의미 없게 대본을 자꾸만 뒤져보고, 다 식어가는 차를 홀짝였다.


“이번엔 정말 잘 해야 돼 보연아······.”


스스로에게 의미 없는 다짐이라도 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번이 2년 만의 복귀작이다. 사람들은 배우에게 그렇게까지 지극한 관심이 있지 않다. 박보연이 지난 2년간 아무런 작품도 하지 못하고 쉬었다는 사실도 아는 사람은 꽤 드물 것이다. 하지만 개인의 인생엔 아니다. 2년간의 공백은 그렇지 않아도 상태가 좋지 않은 박보연을 더욱 초조하게 만들고 있었다.


딱딱딱······.


“아 왜 이래.”


박보연이 아차 하는 사이 자신의 손톱을 다시 이빨로 씹어 놓고 자책을 했다.




* * *




“흐으으으음······.”


아, 박보연 진짜 예쁘더라.


라고 멍청히 생각을 하며 농장에 발을 디딘 무렵이었다. 할아버지가 남겨주신 농장인 오장원의 입구에는 벌써 태양과도 같은 모습의 해바라기들이 어느새 사람 허리께 넘게 자라, 방실방실 하늘을 보며 웃고 있었다.


“하아, 기분이 좋아지네 보기만 해도.”


식물이란 참 신기했다.

씨를 심고 물을 주고, 관리해 주다 보면 어느새 내가 별것 한 것도 없는 것만 같은데 쭉쭉 자랐다. 순간순간 힘든 순간도 있지만, 지나고 나서 언제 그랬냐는 듯 번듯하게 커져 있는 녀석들을 보면 뿌듯하기 이를 데 없다.


아, 물론 내게는 며칠 안 걸린 시간이니까 ······. 더 뿌듯했다!


“바나나도 자랐고······. 흠, 그러고 보니.”


아까 박보연 씨의 연기는 처참했다.

보는 내가 가슴이 다 아플 지경이었다. 나는 드라마 같은 것을 자주 보지는 않았다. 그래도 영화는 가끔 보았는데, 우연히 봤었던 박보연의 작품이 굉장히 기억에 남았던 일이 있다. 그 뒤로 내가 이름을 아는 몇 안 되는 연예인이자, 행보가 궁금한 사람이기도 했다.


“연기를 못 하는 사람은 아닌데.”


더욱이 이상한 점이 있었다.

기관지가 좋지 않아 켈록 거리는 것이야 이해할 법하다고 해도, 그 박보연이. 10년차 배우인, 국민 여배우인 그 박보연이 심하게 떠는 것이 느껴졌다.


‘사람들은 모르는 것 같았지만.’


아연기자니 그것 조차도 연기연기로 숨겨버리고 있는 듯 했다. 하지만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던전을 드나들며 위기와 긴장감을 너무 오래도록 봐왔던 이유 때문일까? 남들이 숨기려고 해도 분노, 혹은 긴장감과 같은 감정은 유독 잘 읽어내곤 했다.


“그러고 보니 그 스킬을 한 번 써 볼까?”


나는 재료들을 마당에서 뚝뚝 따고, 허브 하우스에 들어가 몇몇 허브를 채취해 주방으로 왔다.


도마 위에 놓인 것은 오늘의 메인 재료인 샛노란 바나나다. 이건 여신님의 작물이 가진 신기한 점 중 하나였다.


부추나 상추 같은 작물은 파릇파릇할 때 따 두면 따로 특별한 보관 처리를 하지 않아도 엄청나게 오랫동안 파릇파릇 맛있는 상태를 유지했다.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였다. 바나나 역시 나무에 매달려서 부터 어느 정도 먹기 좋게 숙성된 노란 빛이 돈다. 하지만 이걸 따 두어도 갑작스럽게 과하게 숙성되거나 하지 않고, 오래도록 맛있는 맛인 상태에서 유지되는 거 같았다.


옹알 옹알?

옹알 옹알?


참 나. 내가 주방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으니 금세 마당이며 처마며 지붕 등에서 놀고 있던 정령들이 날개를 파닥이며 주방으로 몰려들었다.


“아냐. 부추전 안 할 건데? 다른 거 할 거야.”


시무룩······.


옹알 옹알······.


“풉.”


일부러 녀석들을 놀리기 위해 더 매정하게 말을 하니, 고작 부추전이 없다는 소식에 마치 일가 재산을 탕진했다는 소리라도 들은 양 정령들의 얼굴이 죽상이 돼선 고개가 축 처진다.


옹알······.


세상을 다 잃은 듯한 표정!

몇 번 확인해 봤지만 정령들은 딱히 음식을 먹지 않는다고 영양실조에 걸리거나 죽는 것도 아니다. 다만 맛있는 걸 먹으면 기분이 좋아서 그런지 더욱더 쌩쌩하고 팔팔하게 날아다니는 경향은 있었다. 어디까지나 기호식품이란 소리다.

기껏해야 맛 나는 간식이란 소리.


그런데 그걸 안 해줬다고 이토록 서운해하다니!


“알았어 알았어. 조금 있다가 너희들 것도 해 줄게. 그럼 되지?”


화아아아아······!


내 말이 떨어짐과 거의 동시에, 주방이 마치 조명이라도 몇 개 켜 둔 양 녀석들의 몸에서 나온 빛으로 잠시간 밝아졌다.


“하하하하하. 참 나, 그렇게 좋아?”


옹알 옹알

옹알 옹알!


부추전은 맛있지이!

나는 비빔밥이 쪼아!


이럴 때면 녀석들의 말의 의미가 마치 귀에 콕콕 꽂히는 것처럼 잘도 들렸다. 이럴 때만!


나는 스킬을 쓰기 위한 재료들을 도마 위에 늘어놓았다.


“먼저······. 기관지가 좀 안 좋은 거 같았으니까.”


[ 시원~한 애플민트! ]

- 은은한 사과 향이 담겨있는 여신님의 축복을 받은 최상급의 민트, 여신님은 민트를 좋아합니다.

>음양오행< 기관지와 호흡기에 탁월한 효과를 발휘합니다.


“이게 메인이고.”


[ 행복 가득 바나나! ]

- 여신님의 축복을 받은 최상급의 바나나, 눈으로 빛깔만 보고 있어도 행복감이 느껴집니다.

>음양오행< 자연적인 행복 호르몬의 상승을 도와줍니다. 스트레스에 대한 저항 능력을 갖게 됩니다.


“이것도 도움이 되겠지.”


기관지와 스트레스에 도움 되는 것들이니 박보연에게도 도움이 될 거다. 그리고 여신님이 민트를 좋아하는 것도 알게 되었다. 다음엔 공물로 치약을 드려봐야겠다.


[ 당신의 성좌 ‘어디에도 없는 여신’이 황당하단 눈으로 당신을 내려다봅니다! ]


[ ‘어디에도 없는 여신’이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콩콩 칩니다. ]


“아, 알았습니다 알았어요. 민트가 치약 맛인 게 아니라 치약이 민트 맛인 거예요. 맞죠?”


[ ‘어디에도 없는 여신’이 팔짱을 끼고 이제 좀 알겠냐는 듯 고개를 끄덕끄덕입니다. ]


“······.”


나 참. 공물 바칠 생길 일이 생기면 아이스크림 집이라도 달려갔다 와야 할 판이다.


그리고 요거트와 꿀을 조금 준비했다. 옆에는 적당한 밀폐용기 컵을 두었다.

이로써 준비는 끝이다.


“나도 이 스킬은 처음 쓰는데······.”


자못 진지한 마음으로 재료들을 향해 한쪽 손을 뻗었다. 그리고.


“네가 무슨 모든 스무디의 신이냐?!”


스킬의 발동어를 외쳤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뜌땨?


정령들도 이게 도대체 무슨 민망한 일이냐는 듯 나를 올려보고 있었다. 나라고 알 턱이 없었다.


뜌따는 물의 정령으로, 말소리가 다른 애들과 달리 뜌따거리는게 특징이었다. 폭탄을 맞은 듯한 곱슬머리 천사 같이 생긴 물의 정령 뜌따가 톡 튀어나온 배를 내밀고 재료들 옆에서 손가락을 쫍쫍 빨며 나를 맹하니 올려다보았다.


뜌땨아?


“······.”


정령과 함께하는 순간 중 이토록 뻘쭘하고 민망한 순간도 드물 것이다.


그런데 그 직후였다.

눈앞에 믿을 수 없는 메시지들이 떠올랐다.


[ 성좌 ‘어디에도 없는 여신’이 제갈이준의 요청에 응답합니다! ]

[ 성좌 스킬 ‘모든 스무디의 신’이 시전됩니다! ]

[ 비 파괴 스킬임으로 타인에게 메시지는 전송되지 않습니다. ]


이런 미친.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내 오른팔에서 뻗어져 나온 푸르른 아우라의 폭풍이 온 세상을 집어삼킬 듯 주방을 가득 채웠다. 맹렬한 기세의 폭풍이 이내 내가 간신히 손을 움직여 기운을 정조준한 컵 속으로 떨어졌고, 컵은 마치 마법에 걸린 양 주변의 모든 눈부신 기운들을 빨아드리고 있었다. 마치 우주에 구멍이 나 은하수수많은 별이이 그 속으로 쏟아지는 풍경을 보고 있는 듯한 장관이었다.


바나나와 민트 등의 재료들이 저절로 잘리고 다져져 컵 속으로 떨어졌고, 꿀과 요거트 등도 은하수를 건너는 용처럼 흐물흐물 춤을 추며 허공을 가르고 컵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주변이 조용해졌고, 이내 컵 안에 별빛을 녹여 만든 듯한 액체가 맹렬한 회오리를 만들고 있었다.


상상도 못 한 황당한 일이었다. 스무디 만드는 게 성좌 스킬이라니!


뜌, 뜌땨? 뜌땨아아아아아!!


휘리릭 쏙!


“헉?!”


더 황당한 일이 일어났다. 재료들 옆에서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던 물의 정령 뜌따가 순식간에 그 맹렬한 회오리가 일어나는 컵 속으로 딸려들어가 버린 것이다.


“괜찮니 뜌따야?!”


설마 정령까지 재료로 쓰는 것일까? 화들짝 놀란 나는 그만 스킬의 성공이고 뭐고 뜌따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발을 동동 굴렀다. 많은 재료들과 함께 스무디가 돼버릴 듯 함께 핑글핑글 돌아가는 뜌따..


[ 물의 정령의 가호를 받은 ‘행복 가득 리프래쉬 애플민트 바나나 스무디’ 가 완성되었습니다! ]


티용~! 팅팅팅······.


스무디가 완성됨과 동시에 컵이 뱉어버리듯 세상 밖으로 다시 나온 뜌따는 도마와 테이블에 탱탱볼처럼 튕기며 싱크대에 빠져버렸다.


“괜찮니 뜌따야??”


뜌, 뜌땨아······.


걱정한 내가 달려가서 묻자 두 눈이 핑글핑글 돌아가고 있는 뜌따가 설거지 감으로 넣어둔 컵 안에서 마치 바캉스를 와서 튜브로 둥둥 떠 있는 사람처럼 반쯤 잠긴 채 엄지를 척 들어 보인다.


“휴. 깜짝이야.”


뜌따가 괜찮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스킬의 결과물을 살펴보았다.


“······. 세상에.”


아름다웠다.

심지어는, 컵이 완전히 다른 컵으로 바뀌어 있었다. 내가 준비해 뒀던 컵은 싸구려 락앤락 컵이다. 박보연 씨에게 가져다 주기로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컵은 내가 놔뒀던 락앤락 밀폐용기 컵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한 예술작품으로 바뀌어있었다.


마치 천상계의 천사 여럿이 날개로 8면을 바쳐 컵의 면을 만들고 있는듯한 장식의 멋진 유리컵이었고, 심지어는 그런 고풍스럽고 고급스러운 컵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카페에서 팔듯한 뚜껑과 리드, 덮게 꼭지가 있는 빨대까지 달려있었다.


“홀더가 루비······. 인가??”


구체적으로 뭔진 모르겠지만 전체가 투명한 광물 같은 소재로 되어있었고, 굉장히 아름다웠으며, 그에 반해 무게는 턱도 없이 가벼웠다.


“······. 아니, 무게는 락앤락이랑 같을 거 같네.”


휴대하면서 마시기 좋은 형태의 텀블러. 그런데 텀블러라기엔 너무나도 사치스럽고 화려하며, 은근히 성스러운 느낌까지 뿜어내는 자태의 텀블러였다.


그 안에는 너무나도 완벽한 형태로 갈아져 있는 요거트 스무디가 들어있었다. 어찌나 입자가 고운지 주방에 들어오는 햇볕을 아름다운 백사장의 덧없는 모래처럼 자잘하게 반사하고 있었다.


“와······.”


그야말로 신화적 음료로 보이는 스무디였다.


[ 물의 정령의 가호를 받은 행복 가득 리프래쉬 애플민트 바나나 스무디 ]

- 물의 정령 ‘뜌따’의 가호와 여신님의 축복을 받은 최고 수준의 리프래쉬 스무디입니다.

- 바나나 : 스트레스와 우울을 날려버리고 용기를 되찾게 해 줍니다.

- 애플민트 : 차분한 멘탈을 갖게 해주며 기관지 소염 등을 치료합니다.

- 물의 정령 뜌따의 가호 : 일시적으로 마나가 증가합니다. 일시적으로 물 속성 공격에 무적이 됩니다. 일시적으로 물 위를 걸을 수 있게 됩니다.



“허······.”


[ 당신의 성좌 ‘어디에도 없는 여신’이 당신의 작품을 마음에 들어 합니다! ]

[ 성좌 ‘어디에도 없는 여신’과의 감응도가 올랐습니다! ]


이게 성좌 스킬이 맞기는 맞구나. 황당하지만 눈앞의 상황은 이것이 현실임을 더더욱 일깨워 주고 있었다. 내 스킬 ‘모든 스무디의 신’은 무려 성좌의 힘을 빌려오는 신화적 스킬이었다. 그리고 이 결과물로 만들어진 스무디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일시적으로 마나가 늘고 물 위를 걷고······.”


기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효능은 물의 정령 뜌따의 희생(?)으로 추가된 것이었다. 정령의 힘 자체가 여신님의 축복에 의해 극단적으로 강화된 결과로 보였다.


이쯤 되니, 나는 근본적인 질문을 하나 던질 수밖에 없었다.


“이, 이거······. 박보연 씨 줘도 되요? 괜찮아요?”


[ 당신의 성좌 ‘어디에도 없는 여신’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입니다! ]


그러고 보니 성좌 스킬이란 발동하는데 성좌 본인의 동의가 있어야만 쓸 수 있는 스킬이었다.

말인즉, 애초에 박보연에게 스무디를 주는 것을 찬성했기에 스킬이 시전 되었다는 소리였다.


“······. 이 컵도 박보연 씨 줘요??”


[ 당신의 성좌 ‘어디에도 없는 여신’이 잘난 체하며 시그마 걸 표정을 해 보입니다. ]


“······.”


그건 또 뭐야?

어째 인간계에 있지도 않은 여신님이 나보다 인간들 문화를 잘 아는 것만 같다. 아무튼지 간에 본인이 디자인 한 컵이 멋지니 자랑하시고 싶다는 뜻 같은데.


“······. 이거 텀블러 굉장히 비싸 보이는데 역시 박보연 씨 주는 건 다른데 옮겨서······.”


[ 당신의 성좌 ‘어디에도 없는 여신’이 찌릿한 눈빛으로 당신을 내려다봅니다. ]


“······. 알았어요. 이거까지 주면 되는 거죠.”


하나부터 열까지 말이 되는 것이 없다. 엉망이다 엉망이야. 내가 박보연 씨한테 이렇게까지 잘 해주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어쨌든 여신님의 의지도 담겨 있으니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여신님 성격상 삐져서 다음에 성좌 스킬 안 해주겠다고 내빼면 나만 손해다.



* * *



“왜? 무슨 일 있어?”


“아뇨~ 저기 어떤 사람이 언니 팬이라고 뭘 꼭 전해 줘야 한다잖아요.”


박보연의 매니저가 한숨을 쉬며 들어왔다. 규정상 이런 식의 음식들은 스타가 먹지 못하게 폐기하는 게 회사의 규칙이었다. 하지만 이번 건 폐기하기엔 매니저가 보기에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 보세요.”


“······. 우와. 세상에.”


박보연의 눈이 땡그랗게 커졌다. 동그랑땡이라도 넣을 수 있을 정도의 크기였다.


“이게 뭐야??”


“직접 기른 농작물로 만든 스무디래요. 기관지에 좋다고 꼭 전해드리라고 하더라고요.”


너무나도 예쁜 텀블러를 받아 든 박보연은 잠시 그 아름다움에 취해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과 걱정까지도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투명한 보석 같은 소재로 전체가 만들어진 텀블러는 보기만 해도 눈으로 먹는 간식이라 해도 될 정도로 아름다웠다.


“아까 언니가 기침하고 그러는 거 보고 농민분이 만들어 오셨나 봐요.”


박보연은 매니저의 말을 흘려들으며 텀블러에 붙어 있는 포스트잇에 적힌 내용을 읽고 있었다.


“오 나의 힘센 고등어 잘 봤습니다. 연기를 보고 행복했습니다. 보연 씨도 행복해지셔요.”


박보연의 눈이 가늘어지더니 포스트잇 하단에 작게 적어둔 문구를 읽었다.


“퀴즈. D가 스무 개 있으면 뭘까요?”


무슨 소리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어쩐지 이 사람의 진심이 느껴지긴 했다.


“먹어도 되겠지 이거?”


“안되긴 하는데 뭐······.”


그건 정말로 이상한 사람들을 걸러내기 위한 규정이었다. 이상한 짓을 하려는 사람이 이 정도로 정성 들여서 선물을 준비했을 거 같진 않았다.


“······! 세상에.”


“왜, 왜요? 뭐가 이상해요? 이상하면 뱉어요 언니.”


박보연은 스무디를 한 입 빨아먹더니 화들짝 놀라 입을 가리고 다시 스무디를 바라보고 있었다. 매니저도 덩달아 놀라 허둥거렸다.


“맛있어. 진짜 맛있다 이거.”


“아휴. 난 또 뭐라고. 그래도 적당히 마시세요 언니. 찬 거 기관지에 안 좋으니까. 이번에도 촬영 잘 안되면 좀······. 제작사 쪽에서 주연 배우 바꿔도 되지 않냐는 이야기 나왔나 보더라고요. 너무 걱정하실 건 아니에요 감독님이 언니 마음에 들어 하시니까 계속 가고 싶어 하시긴 하는데, 이게 촬영이 너무 안 되면 또 모르니까······.”


예전 같았으면 들으면서 덜덜 떨만한 무서운 소식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박보연은, 그저 스무디를 먹는데 정신이 팔려있었다.


“맛있다 진짜.”


상큼한 풋사과의 향기가 스치우나 싶으면 마음까지 달큰해지는 바나나의 맛이 입을 가득 채웠다. 끝맛은 상쾌한 민트향. 언제든지 얼마든지 먹을 수 있을 것만 같은 환상적인 스무디가 자꾸만 입에 당겼다.


“······와 진짜로 맛있다.”


“언니······.”


매니저는 오해했다. 박보연이 스무디 핑계로 현실도피를 하는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게 아니었다. 정말로 이 복잡한 현실을 잠시 깡그리 잊어버릴 정도로 스무디의 맛이 너무나도 좋았다.



“와······.”


박보연이 너털웃음을 웃었다.


“한······. 오 년만 인 거 같은데?”


“뭐가요?”


‘음식이 맛있다고 생각한 게······.’


세상은 너무 밥맛이 없었기 때문에. 어쩐지 이 스무디를 마시니 용기가 샘솟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촬영장으로 돌아가니 아까처럼 수많은 스태프가 박보연을 기다리고 있었다. 저쪽 식당 창문 너머로 주민들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것도 역시 느껴진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것이 부담감으로 돌아오고 심장이 떨렸는데, 지금은 조금 달랐다.


오히려 박보연은 무슨 재미난 생각이 났는지 입을 가리고 혼자 킥킥킥 웃고 있었다.


“정답은 스무디······.”


입을 가리고 무릎을 때리며 잠시 웃은 박보연이 숨을 들이마셨다 내쉬었다 하며 진정했다. 그래도 자꾸만 웃음이 나올 것만 같았다.


“자 들어갑니다 씬 4. 테이크 12~!”


모두의 시선이 박보연을 향해 쏟아졌다.


순식간에 연기에 몰입한 그녀의 주변으로 차밀한 분위기가 흘렀다. 조금 전 과는 딴사람이 된 듯한 그녀의 눈이 상대 남자 배우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사람이, 사람이 사람한테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머리를 반쯤 산발을 해 묶고 박보연에겐 아무런 관심도 없이 다음 스케쥴을 점검하던 FD가 물고 있던 볼펜을 놓쳤다.


“내가 이러는 이유가 이해가 안 간다고요? 나는 당신이, 당신 같은 사람들이 도무지 이해가 안 가요.”


단 두 줄의 대사가 이어졌을 뿐인데 이 공간의 모두가 박보연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방금 전 까지 무슨 상황이 있었던지 깡그리 모두가 잊어버릴 만큼 박보연이 만들어내는 분위기에 몰입했다.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모니터링하고 있던 감독이 중얼거렸다.


“봐라 인마. 박보연이 시동만 걸리면 된다고 했잖아. 그런데 이걸 바꾸자고?”


“역시 감독님이십니다······.”


“돈만 세는 새끼들이 뭘 안다고. 그 새끼 전화 차단해 버려. 난 박보연이랑 끝까지 간다고 전해.”


“예. 옙. 알겠습니다.”


조연출에 지시한 감독이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모니터링 화면을 흡족하게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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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49화 +2 24.06.04 2,230 68 14쪽
49 48화 24.06.04 2,240 61 14쪽
48 47화 24.06.03 2,288 64 13쪽
47 46화 +1 24.06.03 2,329 63 12쪽
46 45화 +1 24.06.02 2,331 66 13쪽
45 44화 24.06.02 2,382 69 12쪽
44 43화 +1 24.06.01 2,398 63 15쪽
43 42화 24.06.01 2,408 62 12쪽
42 41 화 +1 24.05.31 2,565 66 13쪽
41 40화 24.05.31 2,617 62 14쪽
40 39화 +4 24.05.30 2,585 67 15쪽
39 38화 24.05.30 2,612 66 14쪽
38 37화 +3 24.05.29 2,770 74 13쪽
37 36화 +1 24.05.28 2,864 74 13쪽
36 35화 +2 24.05.28 2,804 68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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