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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베어의 곰굴

EX급 귀농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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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새글

캡틴베어
작품등록일 :
2024.05.11 21:02
최근연재일 :
2024.06.24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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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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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4.06.08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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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53화

DUMMY

53화



짜자자자자잔~~~!


“우. 우와아아아아······!”


그야말로 턱이 쩍 벌어지는 한 상이 차려졌다. 오늘만큼은 셰프 제갈이준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의 요리들이었다. 마당의 평상 위에 커다랗게 이어 붙인 두 개의 밥상 위에 가득 차려진 음식들.


기본적으로 부추비빔밥, 필살의 요리인 가리비 부추 전, 그리고 스님을 위한 가리비를 뺀 부추 전, 이번엔 여신님의 스킬로 키워낸 오이가 베이스인 명품 중의 명품 오이소박이! 더욱이 떡볶이와 파스타, 과일로는 수박과 참외까지 차려져 있었다. 뭐 하나 규칙이나 법칙은 보이지 않지만, 하나하나가 다 맛있어 보이는 음식들!


“꺄아아아아! 잘 먹겠습니다!”


자기가 제일 먼저 젓가락을 들고 달려드는 주사랑을 보며 제갈이준은 턱을 쩍 벌렸다.


“도대체. 언제. 어떻게. 오는 거냐고!”


“넹? 뭐가여. 아저씨도 먹어봐요! 이거 맛있다! 떡볶이 나 먹으라고 한 거죠? 내가 좋아하는 거 알고? 아유 아저씨 완전 센스있다~ 헉, 설마 이거 고백?”


“아니, 아니고 아니야. 아니라고······.”


도대체 쟤는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분명 우리 집 근처에도 없었는데, 음식을 다 마치고 차려내고 보니 식탁 앞에 주사랑이 앉아 있는 게 아닌가. 무슨 내가 음식 차리면 순간 이동해서 오는 마법 같은 거라도 쓰는 걸까?


“앙~ 맛있다. 수아 씨도 먹어봐요 빨리!”


“하하하. 전 아까 먹었어요.”


“이럴 거면 밥값을 내던가.”


“와~ 무슨 그런 서운한 소리를 해요? 우리가 어떤 사인데!”


“······. 어떤 사인데?”


“나 참. 목숨을 걸고 악당들의 음모를 저지한! 응? 몰라요?”


모르겠다.

난 정말 널 모르겠어.


“나 안 보고 싶었어요 없는 동안? 내가 없으니까 동네가 썰렁했죠 아주?”


주사랑이 낄낄 젓가락을 물고 눈을 가늘게 뜨며 떠보듯이 물었다.


“······.”


나는 진심으로 주사랑이 청청리를 벗어났었단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다만 그러고 보니 오늘은 검은색 추리닝에 부시시한 머리칼이 아닌, 평소와 다르게 좀 신경 써서 입은 듯 도시처녀 같은 옷가지에 세상에, 화장······. 화장도 했다. 이런. 어디 여행이라도 갔다 왔나 본지 커다란 쇼핑백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이거 먹어봐요 아저씨! 대전역에 빵집이 엄청 크게 있더라고요?? 이거 사 왔지~”


“헉. 저 이거 알아요!”


박스 형태로 포장된 선물 박스에 빵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게 보인다.


아주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나도 고집을 꺾고 밥상에 앉았다.

꼭 빵 사와서 봐준 건 아니다.


“에휴. 여기 법진 스님 드시라고 한 건데 네가 신나서 그러냐.”


“저, 저는 괜찮습니다 형님. 하하······.”


응?

법진 이 자식 표정이 왜 이러지?

물론 법진이 먹을 것 앞에서도 아주 예의 바르게 구는 건 예전부터 그러긴 했다. 식탐이 많으면서도 불가의 가르침을 아주 잘 배운 건지 식사할 때면 늘 저렇게 점잖았지. 지금은 심지어 얼굴 뼈가 보이도록 깡마른 모습이라 음식 앞에서 얌전한 게 아주 잘 어울린다. 그거야 그런데.


‘저, 저놈이······.’


“하하. 많이 드십시오. 귀여운 여 시주의 이름은 어떻게 됩니까?”


“저요? 저 주사랑이에요! 스님은요?”


“법진이라 합니다······.”


“오오 법진~ 이름 멋있다~”


“그렇습니까? 하하하하하!”


“······.”


뭐? 귀여운? 여?시주?

슬쩍 얼굴이 붉어진 법진이 주사랑과 기묘한 티키타카를 하고 있었다.


“소림의 기강이 땅에 떨어졌구나. 땅에 떨어졌어! 에휴.”


여자 보는 눈도 바닥에 떨어진 거 같고.

저들이야 그렇다 치고.


“왜 고기가 없어? 정 없으면 깡통 햄이라도 구워 오든지.”


“······.”


밥상 한 편에 앉아서 한 손에는 상추를 몇 장이나 얹어놓고 쌈장을 바르며 아쉽다는 듯 툴툴거리는 당미미는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저 사람 아무리 그래도 이사 아닌가? 이렇게까지 할 일이 없단 말인가?


“이사님, 우리 이야기를 좀 합시다. 제가 평소 이사님 어려워하는 거 아시죠······?”


“어려워? 내가 왜 어려워. 나같이 예쁜 여자가 같이 밥 먹어주면 영광인 거 아닌가?”


“······.”


대화하려고 시도한 내가 잘못한 거 같다 아무래도.


“물론 나같이 예쁜 여자 앞에서 주눅드는거야 충분히 이해할 수 있기야 해. 그래도 상관없으니까 편하게 생각해. 난 제갈이준 절대로 남자로 안 보니까.”


“······.”


욕을 해라 욕을!

확 밥상을 뒤엎을까 하다가 법진이 밥은 먹여야 겠어서 참았다.

그런데 법진이는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있는데 왜 이 군식구들만 열심히 젓가락을 놀리고 있단 말인가. 열받게.


“계속 우리 집 드나드실 거면 일이라도 도우시던가요.”


“······.일?”


“요즘 이사님 저희 집 와서 하는 일이 뭡니까? 수아 수행도 더 이상 안 봐주시는 거 같든데.”


“그야 수아 양이 잘하니까.”


“그러니까요. 제가 일 안 해도 된다고 했던 게 수아 수련 봐주면 그동안 안 해도 된다고 했던 거지, 이렇게 동네 한량처럼 드나들어도 된다고 했던 소리가 아닐 텐데요?”


“······.”


당미미가 순간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나는 능히 알 수 있었다. 당미미는 뭔가 목적이 있어서 자꾸 우리 집에 드나드는 거다. 다만, 그 목적이 뭔지를 모르겠다는 게 문제지. 아무튼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는 법. 아, 진짜 우물이라도 파게 시킬까?


“아무튼 이건 다음에 자세히 얘기합시다. 그렇게 알아두세요.”


“······.치사 빤쓰.”


“뭐라고 하셨어요?”


당미미가 뭔가를 중얼거리며 상추를 우걱우걱 씹었다. 나 참. 삐졌나?

아무튼지 간에.


“이 떠, 떡볶이. 떡볶이가······.”


떡볶이를 한 입 씹은 법진이 차마 말을 잇지 못했고, 두 눈에선 별빛이 번쩍번쩍 튀었다.


“맛있지?”


“환상적입니다······. 이 정도면 정말 고행을 끝내고 먹는 보람이 있을 정도입니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이 떡볶이가 부처님이 내려주는 상은 아닐까 하는 상상까지 하는 법진이었다. 그리고 이 밥상에서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젓가락을 든 법진이 잠시 망설였다.


“아.”


제갈이준이 생각이 났다는 듯 이야기했다.


“맞네. 그러고 보니까 부추가 오신채구나?”


오신채란 불가에서 수행자에게 금하는 다섯 가지 향신료였다. 마늘, 부추, 파, 달래, 흥거 가 대표적인 오신채였다. 주로 매운맛이 나는 채소들이다.


다만 육류를 금기시하는 것과는 궤가 조금 다르긴 했다. 육식을 금하는 것은 나의 살을 채우고자 다른 생명체의 살을 취하는 것을 금하는 것이었다. 이건 계파마다 방식이 조금씩 다르긴 했고, 일부 종파나 스님이 아픈 경우, 아이가 자라는 데 필요한 경우엔 고기를 먹어도 되는 등 몇몇 예외적인 경우도 있었다.


오신채란 그런 개념에서의 금기는 아니었다. 다만 이러한 오신채를 먹으면 수행을 이어감에 있어 지장이 생긴다고 믿었다. 그렇기에 수행자들이 수행하는 동안은 생각보다 철저하게 먹지 않는 것들이기도 했다.


그리고 부추가 대표적인 오신채다. 마침, 떡볶이에는 파가다 떨어져 넣지 않았기에 오신채 프리인 상태였지만, 육식인 가리비를 빼고 한 그냥 부추전이라고 해도 부추 자체가 대표적 오신채임은 비껴갈 수가 없었다. 부추비빔밥 역시, 그리고 심지어 오이소박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그게······.”


“이런,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절반으로 줄어버리네. 내가 생각을 잘못했다 야. 미안해.”


따악!


법진의 앞에서 부추전을 빼려 하는데 법진의 젓가락이 부추전 접시를 붙잡았다.


“이렇게 오랜만에 본 형님께서 대접해 주신 건데 안 먹기도 그렇고······.”


문제는, 너무 맛있어 보였다!

문제는 주사랑과 정수아, 그리고 당미미였다.


“크으으으으으으 죽인다아아아아~!”


“진짜 맛있다! 선배도 좀 드세요!”


“훗~ 서민 음식 주제에 제법이야.”


가리비 부추전에 막걸리를 걸치며 반쯤 이미 저세상으로 간 듯한 모습들!


“이런 것도 못 먹다니 스님들은 너무 불쌍하다~”


입이 방정인 건 주사랑이었다.


확실히 부추전은 겉보기에도 노릇하고 따끈한 것이 어마어마한 향기까지 풍기고 있었다. 오신채라 쳐도, 슈퍼 프리미엄 오신채가 틀림없었다!


꼴깍······.


아주 조심스럽게 젓가락으로 찢은 부추전 한 조각이 법진의 입으로 들어간다.


바삭!


의외의 식감이 먼저 느껴진다. 그리고 직후, 솟구치는 풍미가 온 머리를 적신다.


“아아······.”


여기에 이준이 이준이준 웃으며 따라준 식혜가 함께 넘어간다. 살얼음까지 띄워진 식혜가 바삭하고 고소한 기름 맛의 끝을 깔끔하게 장식해 준다.


“크으으으~~!”


“아이고! 우리 스님 먹을 줄 아시네!”


“아하하!”


그저 부추전에 식혜 한 입 했을 뿐인데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법진에 주사랑이 박수를 짝 치며 구수한 추임새를 넣었고 웃음꽃이 피었다.


그 뒤로 법진은 흥청망청 오신채를 먹었다. 물론, 저런 끝내주는 부추전을 먹으며 막걸리를 끝끝내 입에 대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불자로서 높게 평가할 만했다.


“이거는~! 밀키트를 해야 한다니까요?”


“밀키트?”


“요즘 유튜버들 사이에서 유행이에요! 자기 이름이나 얼굴 넣은 밀키트 파는 거!”


주사랑이 신나서 설명을 했다.

알고 보니 최근에는 유튜브가 단순히 재밌는 영상을 올리는 곳을 넘어서, 이제는 일종의 홈쇼핑 비슷한 역할까지 하는 채널도 많아진 거 같았다.


예전엔 유튜버가 파는 것이 고작해야 그 유튜버를 기념할 수 있는 티셔츠나 머그컵 텀블러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요리와 연관된 유튜버는 밀키트(각종 재료와 조리법을 함께 담아주는 간편 조리 세트)도 판다는 모양이었다.


“부추전 밀키트를 팔자 이거야?”


“그거죠! 뭐 떡볶이 같은 것도 괜찮을 거 같고? 떡볶이 밀키트 엄청 많이 하거든요. 돈 엄청나게 벌 걸요??? ”


“그래? 그렇게 많이 번다고?”


“네! 오빠랑 저랑 하면 무조건 월 억 단위일걸요 매출?? 장난 아니에요 이쪽이!”


“호오······.”


아이스캐슬 코퍼레이션과 엮였던 사건 이후로 구독자 수는 14만 명까지 늘어나 있는 상태였다. 주사랑의 말 대로 못 할 건 없는 상황.


“생각 좀 해 보자.”


그때 즘, 집 앞에 트럭 소리가 들렸다.


달달달······.


“뭐야 손님 와 있었냐??”


추영광이었다.


“안녕하세요~~”


“아유 형수님. 시아야! 삼촌 안 보고 싶었어?”


“보고싶었떠요”


“흐흐흐흐 그래! 아이고 우리 귀여운 시아.”


영광이의 딸 시아가 반짝반짝한 눈으로 내 뒤에 무언가를 본다. 근데 가족까지 다 데리고 웬일이지?


“무슨 일은. 네 쌀로 만든 떡 다 됐다고. 네 쌀로 한 거니까 가서 생색 좀 내야지?”


“아. 오늘이 단오였구나?”


영광이는 얼마 전 내가 지은 쌀로 해서 맡겨 두었던 단옷날 먹는 떡인 수리취떡을 트럭에 싣고 오는 길이었다.

단체로 마을 회관으로 갔다.


“얌얌오행.”


난 떡을 나눠주기 전에 떡에 주문을 걸었다. 겉면에 윤기가 조금 더 살아나 반짝이는 듯했다.


주민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우와! 이 떡 쫄깃한 것 좀 봐!”


수리취떡은 일종의 쑥떡이었다. 쑥을 넣은 반죽을 마치 마차 수레바퀴 같은 모양을 찍어낸 일종의 절편이었다. 단옷날에 먹는 대표적인 음식이기도 했다.


“하이고 이걸 이준 총각이 했다고??”


“하하. 제가 한 건 아니고 제가 농사지은 쌀로······.”


“아주 장가가도 되겠어! 이거 보통 솜씨가 아니구먼!”


“장가 이미 간 거 아니었서? 저기 짝지 있잖어.”


“아니 대체 무슨 재주가 있길래 색시를 세 명이나 데리고 다닌대?”


“아이고 하하하하하!”


“······.”


갑자기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진다.

법진아, 너는 왜 또 부러운 눈으로 보는 건데. 그런 거 아니다······.


내가 해 간 떡을 비롯한 마을 주민들이 가져온 빨간 앵두를 담가 만든 앵두주니, 또 어디에 좋다는 뭐니, 약과니 등을 나눠 먹으며 한참이나 담소가 이어지고 나선, 저녁에 탁 트인 들판에 모였다.


마지막 순서는 풍등 행사였다.


알고 보니 청청리는 특히나 마을 이장님의 영향으로 이렇게 마을 주민들이 모이는 행사가 많다고 한다.


얇은 천과 촛불 따위로 만든 아주 작은 열기구 같은 녀석들이었는데, 만들고 보니 참 예뻤다.


“여기다가. 싸인펜으로다가 밖에 이렇~~게 소원을 딱 써가지고 날리면 되는 그런거여.”


“그런 거군요? 소원이라······.”


참외밭 사장님 내외도, 이장님과 동수도, 주사랑도, 당미미 이사도, 정수아도 나도 법진도 각기 소망하는 바를 풍등에 써넣었다.


“와 대머리 삼촌 이거 되게 잘해!”


“헉! 시아야 대머리 삼촌이 아니고 스님!”


“스님 대머리 삼촌이 이거 되게 잘해!”


“아유 죄송합니다. 스님 애가 철이 없어서······.”


“하하하하······. 괜찮습니다. 자. 이렇게 해 보렴.”


법진은 시아의 풍등을 만들어 주곤 자신의 것도 만들었다.


“자 그럼 띄워 봅시다! 우리 청청리의 무궁한 발전을 위하고! 주민분들 건강하시고! 올 한 해 잘 보냅시다!!”


“와아아아!”


이장님의 인사에 따라 풍등이 하나둘 허공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꺄르르

꺄르르르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겠지만, 특히나 신이 난 불의 정령들과 바람의 정령들이 풍등의 불 속에 자꾸만 들어갔다 나오거나 공놀이하듯 풍등을 이리저리 밀치며 놀고 있었다.


노을이 드리운 하늘 위로 점점이 올라가는 색색깔 풍등이 아름다웠다.


“응?”

“맞네. 보인다. 선배 손에 닿으니까 보이네요. 귀여운 애들이.”


갑자기 슬쩍 내 손을 잡은 정수아를 놀란 눈으로 보니, 정수아는 반짝거리는 눈으로 허공에 풍등을 가지고 놀고 있는 정령들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음.”


뭐 잠깐만 잡고 있기로 할까.


같은 풍경을 보며, 조금은 다른 생각을 하는 이도 있었다.


“아름다운 풍경이군요.”


법진 스님은 잠시 저 먼 산의 경계선 위를 서서히 넘어 계속해서 올라가는 풍등들을 보며 감상에 잠겼다.


“거기 땡중.”


“예?”


이런 무례한 자가.

그 정체는 팔짱을 끼고 뾰루퉁 하게 있는 당미미였다.


“오신채 들어간 것도 신났다고 퍼먹고 있는데 땡중이 아니야? 고기 쌈이라도 하나 싸 드릴걸 그랬나?”


“······.”


불편한 사람이다.

말을 아끼고 상대를 안 하려는 법진에게 당미미가 말을 이었다.


“잘 생각한 거야. 땡중 하나 굶어 죽는다고 사람들은 기억해 주지도, 슬퍼해 주지도 않아. 죽은 사람들이 돌아오는 건 더더욱 아니야.”


“······.죽으려고 한 것은 아닙니다.”


생각 없어 보이는 당미미가 한 것 치고는 지독할 정도로 핵심을 찔러오는 말이었다.


“죽은 사람은 아무것도 못 해. 하지만 산 사람은 할 수 있는 게 있어. 정신 똑바로 차려. 아직 당신이 살릴 수 있는 사람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도 살아 있으니까.”


“······.”


당미미의 말에 법진은 저도 모르게 제갈이준의 등을 잠시 보았다.


“시주는 왜 제갈형님과 함께하려는 것이요?”


질문을 받은 당미미가 뚱한 얼굴로 대답했다.


“이 집이 밥이 맛있어.”


밥집인가.

하지만 부정할 수는 없는 사실이었다.


“하하하······.”


하늘로 올라가는 아름다운 풍등들과 함께, 법진의 마음속 짐도 하늘로 떠나보내는 듯 했다.


불가에선 누군가가 떠날 때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하는 인사가 있었다.

하지만 너무도 충격적인 떠남에는 차마 인사를 하는 것조차도 잊어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도무지 입으로 튀어나오지가 않아서 말이다.


법진은 처음으로, 인사를 잊지 않을 수 있었다.


“극락왕생하소서······.”




다음 날 아침,

떠나려던 법진이 제갈이준에게 물었다.


“형님 무슨 일을 준비하시는 겁니까?”


“······응? 뭐를.”


딱히 법진에게 일러둘 만한 큰 사업이나 야심 찬 계획 따위는 준비한 적이 없다.


“그런 거 없는데?”


“후후후 알겠습니다. 저도 다가올 날을 위해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때가 되면 불러주십시오 형님!”


“······.”


법진이 아주 비장하게 합장해 보이곤 버스에 올랐다.

저 녀석 대체 무슨 상상을 하고 있는거지 혼자?



* * *



소림 메가 코퍼레이션은 굉장히 여러 가지 변천사를 거쳐온 조직이었다. 정통적인 소림사에서부터 수 없는 변화를 거쳐 지금의 회사 형태가 되었다.


최근엔 회사의 중심에 헌터들의 역량이 중요하게 다뤄지면서, 헌터로 각성한 스님들을 이끌 스님이 필요해졌다.


그래서 헌터로 각성한 스님 중 최고의 자리를 수호 대승이라는 자리에 임명해 그들의 리더로 쓰고 있었다.


현재 수호 대승의 자리엔 법진 스님이 있었는데, 이 사실에 불만인 자도 있는 법이었다.


“후후후후······. 이제 슬슬 정식으로 수호 대승의 명패를 빼앗아 올 때가 됐지.”


법진과 동 배분이기도 한 법량 스님이었다. 온몸이 근육인 그는 키도 훌쩍 커서 다른 스님들을 어린아이로 보이게 할 지경이었다. 법량 역시 헌터로 각성한 힘을 가지고 있었을뿐더러, 최근 고행에만 들어가 비쩍 말라가고만 있는 법진보다는 자신이 수호 대승에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사실 겉보기엔 원래부터 법량이 법진보다 훨씬 더 강하게 생겼긴 했다. 키도 훨씬 크고 덩치도 더 컸으니까.


‘치욕의 날들은 끝이다.’


수호 대승은 소림의 헌터 중 가장 강한 이가 한다는 법칙을 시초부터 가지고 있었으므로, 지금 한껏 약해진 법진을 쓰러뜨리면 그에게 자연스럽게 수호 대승의 자리가 넘어오게 되었다.


물론, 여기엔 그의 야망 역시 작용하고 있었다.


“축하드립니다. 오늘로 수호 대승의 자리에 오르시겠군요.”


“크흐흐흐흣······. 누가 들으면 제가 자리 욕심이라도 부리는지 알겠습니다~”


“아유 그럴 리가요~. 다만 소림의 수호 대승 자리에 더 적합한 분이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크크크크······.”


법량은 오랫동안 법진과 라이벌 관계였다. 같은 배분이고, 같은 헌터인데 한 번도 그보다 앞서보지 못했다.


하지만 사람은 역시 버티는 놈이 강한 법. 이제야말로 법량이 웃는, 법량의 시대가 도래할 때였다!


자신의 패거리를 이끌고 당당하게 법진의 거처에 들어간 법량.


“법진 스님. 정식으로 겨루기를 청합니다!”


“······. 아. 겨루기요?”


“······?”


법량과 패거리는 눈을 깜빡였다.

어라? 뭔가 좀 이상한데?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비쩍 말라가는 시체 상태여야 할 법진의 컨디션이 이상할 정도로 좋아 보였다. 여전히 비쩍 말라 있긴 했지만, 두 눈은 똘똘하게 살아나 있었고 어쩐지 두피의 피부마저 반들거리는 게 좋아 보였다.


비스듬히 누워서 참외를 짝짝 씹던 법진이 어리둥절한 눈으로 일어나더니 우드득 우드득 몸을 풀며 손짓했다.


“나갑시다. 여기는 너무 좁지 않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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