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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야 님의 서재입니다.

일곱 개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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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야
작품등록일 :
2018.08.22 17:21
최근연재일 :
2019.05.15 02:56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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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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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77,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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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2.26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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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13장 그라운드 제로 (1)

DUMMY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순 없어, 라고 규진이 말하는 순간이었다.


겁먹은 표정으로 달아날 것 같았던 키 큰 중학생이 만두귀의 다리를 걸어 땅에 쓰러뜨렸다.


옆에 있는 친구 한 명은 공원으로 들어오는 경찰에게 소리쳤다.

“(일본어)이 사람이 살인자예요.”


경찰 네 명과 경비원은 호각을 불며 중학생들과 엉겨 붙은 만두귀를 향해 달려갔다.



유엔이 다시 규진에게 말했다.

“지금이야. 누가 따라오기 전에 빨리 피해야 해. 우린 시노에게 가야 해. 시노도 아직 위험해.”

유엔은 규진을 일으켜 공원 밖으로 향했다.



경찰 한 명이 고개를 돌려 쓰러진 히데오를 보더니 달아나는 규진과 유엔을 번갈아 노려봤다. 하지만, 만두귀가 경찰 동료를 쓰러뜨리는 소리를 듣고는 체념한 듯 다시 몸을 돌렸다.


만두귀는 피를 흘리면서도 괴력을 과시하며 경찰들을 쓰러뜨렸고, 경찰은 반항하는 만두귀의 등에 인정사정없이 삼단봉을 내리쳤다. 마침내 소란은 잠잠해졌고, 경찰은 만두귀의 양손에 수갑을 채웠다.


경찰이 고개를 돌려 규진과 유엔이 있던 자리를 봤지만, 둘은 보이지 않았다.

규진과 유엔은 이미 공원 입구를 빠져나와 전철역으로 달리고 있었고, 최대식은 누군가와 전화한 다음 규진과 유엔이 달리는 반대 방향으로 몸을 피했다.



규진은 손이 잡힌 채 끌려가듯 달리면서도 끊임없이 눈물을 흘렸다.

둘은 달리기를 멈추지 않고 곧장 전철역까지 직진했다.


역 앞에 도착하고 나서야 규진은 유엔의 손을 뿌리치며 주머니에 대충 넣어둔 피 묻은 폴딩 나이프를 접어 주머니에 다시 넣었다.


화장실에 들러 피 묻은 손과 얼굴을 씻은 뒤 둘은 곧장 열차에 올라탔다.



서쪽 종점에 도착할 때까지 30분간 규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깊은 탄식만 뱉었다.

눈앞에서 형이 죽어가는 모습을 본 건 견디기 어려운 큰 충격이었다.


유엔은 손수건을 꺼내 터진 입술을 지혈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막을 수 있었는데, 너무 분해.”

유엔은 비극적인 상황을 막을 수 없었던 자신을 비관했다.


“다 내 잘못이야, 상황을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어.”

슬픔에 빠진 규진은 이메일을 처음 읽었을 때 사태를 낙관했던 자신의 판단을 후회하고 자책했다.


넋 나간 사람처럼 멍하게 앉아 있던 30분이 지나고 열차는 종착역인 주오린에 도착했다.


얼굴이 엉망으로 일그러진 채 열차에서 내리는 둘을 발견한 시노는 울음을 터뜨렸다.

“이게 무슨 일이야?”

“히데오가 죽었어.”

유엔이 짧게 대답했다.


억눌린 감정을 폭발해내며 규진은 자리에 주저앉으며 눈물을 흘렸다.


“일단 역에서 나가자.”

유엔이 둘의 팔을 붙잡으며 간신히 말했다.


“우리 어디로 가?”

“일단 밥부터 먹자.”

시노의 투정 섞인 질문에 유엔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지금 밥이 넘어 가?”


“나 시력을 잃은 것 같아.

엄마가 그랬어.

죽을 만큼 힘든 일이 생기면,

정말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 때가 오면,

아무 생각 하지 말고,

일단 더운 밥부터 먹으라고.”


유엔의 기세에 눌려 시노는 몸을 움츠리며 물었다.

“많이 다친 거야, 눈?”

유엔은 입술을 굳게 다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규진은 유엔을 따라가다가 일본의 구석기 유물이 발견된 야마토 홍보관에서 멈춰 섰다. 공중전화 부스 앞이었다. 잠시 망설이다가 규진은 혼자 전화 부스로 들어갔다.


“히데오가 죽었어요.”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후타코 타마가와 공원에서 문제가 있었어요. 만두귀를 한 사내가 우리를 공격했어요.”

[거기 또 누가 있었죠?]

“최대식이 있었어요. 그리고, 조력자가 있었어요. 아이를 데리고 온 젊은 여자.”


[지금 거긴 어디예요?]

“일단 우린 안전해요.”

규진은 나나미의 말을 기다리지 않고 말을 이었다.

“유토를 돌봐주세요. 경찰이 가긴 하겠지만, 위험할지도 모르니까 조심하시고요.”


[그런데 유엔, 시노는 다치지 않았나요?]

“유엔이 많이 다쳤어요. 한국에도 알려주세요.”


[염치없는 부탁이지만 유엔과 시노 부탁드립니다.]

“저야말로 염치없지만, 유토 부탁드립니다.”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마에다 가문에 연락하겠습니다.]



규진은 나나미와 통화를 끊으며 시계를 보더니 자책했다.

“도망가기 바빠서 이제야 동생 생각이 나다니, 정말 최악이야.”


유엔과 시노는 좌절하는 규진을 아무 말 없이 바라봤다.


규진은 수화기를 다시 들고 통화를 하려다 말고 전화부스에서 나왔다.


“한국에는 전화 안 해?”

시노가 직설적으로 물었다.


“지금은 말하고 싶지 않아.”

규진은 돌아서며 작은 목소리로 힘주어 말했다.




<2018.02.11. 일요일 / 일본 도쿄 스기나미(杉並)>


장례식은 간소하게 치러졌다.

장례는 마에다 가문의 친척들이 주관했다.


슬픈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게 일본의 장례문화라고는 하지만, 유토는 죽은 자의 영혼을 위로하는 쯔야(通夜) 의식이 시작된 어젯밤부터 울기 시작해 하루가 지나도록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망자가 살인사건으로 사망한 탓에 경찰들이 장례식장 주변 여기저기 포진해 있었다.



조문객들도 모이기만 하면 살인자를 욕하기 바빴다.

범인이 한국인이라면서, 라는 분노로 시작해서, 히데오가 칼로 찌르고 난 다음 공격받은 거라서 정당방위 판결이 나올지도 몰라, 라는 식의 대화로 이어졌다.


히데오는 사람을 왜 칼로 찌른 거야, 라는 말소리가 들리기라도 하면 어김없이 유토가 날카로운 시선으로 노려보았다.



다마루 나나미가 조문을 와서 유토에게 인사했다.

“(일본어)있어서는 안 될 불행한 일이 생겼습니다.”

“(일본어)이틀 전 밤에 괴한 세 명이 집으로 들이닥쳤어요. 시노 누나를 내놓지 않으면 저를 대신 데려갈 거라고 협박을 했죠. 그래도 형은 물러서지 않았어요. 이메일을 쓴 건 괴한들이었지, 형이 아니었어요.”


유토는 나나미를 만나자 담아두었던 말을 한꺼번에 쏟아냈다.

“(일본어)히데오는 시노를 지켜주기 위해 용감하게 맞서다가 비극을 당했습니다. 영원히 다 갚을 수 없는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저도 시노도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일본어)케이진은요?”

“(일본어)장례식장 근처까지 왔다가 보는 눈이 많아서 들어오지 못하고 멀리서 참배하고 갔습니다.”


“(일본어)전 아버지 고향으로 돌아가 당분간 큰아버지 댁에서 지낼 계획입니다.”

“(일본어)때가 되면 시노와 함께 찾아가겠습니다.”

유토는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나나미가 돌아 나오려는 순간 유토는 사람들이 들으라는 식으로 큰 소리로 소리쳤다.

“(일본어)복수할 수 있도록 저를 도와주세요. 그게 은혜를 갚는 길입니다.”



사람들이 웅성웅성하는 소리에 장례식장은 소란해졌다. 유토의 큰아버지는 조심스럽게 유토에게 다가가 자초지종을 물었지만, 유토는 막무가내였다.

“(일본어)이런 치욕을 당하고도 가만히 있겠다면, 세상 사람들이 마에다 가문에 명예가 사라졌다고 비웃을 겁니다.”

유토는 일부러 예의 없이 집안 어른들을 도발하는 소리를 내질렀다.


돌아서던 나나미는 몸을 틀어 유토에게 크게 허리를 숙이고 천천히 인사를 했다.

유토의 큰아버지는 조용히 밖으로 나오더니 나나미를 붙잡았다. 나나미는 시간을 들여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일을 천천히 설명했고, 큰아버지는 아주 가끔 궁금한 것을 반문할 뿐 신중하게 나나미의 말을 경청했다.



10분이 넘는 긴 대화를 마친 뒤 나나미는 장례식장을 나와 전철역으로 향했다. 뒤를 흘끔 돌아본 나나미는 자기에게 미행이 따라붙었다는 걸 한눈에 알아챘다. 히데오를 살해한 김일호는 잡았지만, 사건의 전말을 실토하지 않는 것에 격분한 경찰은 공범과 주변 인물을 조사하고 있었다.


나나미는 묘한 웃음을 짓더니 전철역을 향해 계속 걸으며 최대식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디에요?”

[나? 나 밖인데.]

“안 바쁘면, 오다와라(小田原)로 와요.”

[뭐? 오다와라? 거긴 왜?]


“오후 2시, 하코네 종합상사 앞에서 만나요.”

나나미는 자신을 몰래 미행하는 경찰에게 들릴 정도로 일부러 큰 소리를 냈다.

[무슨 일인데?]


“몰라서 물어요? 어제 당신도 공원에 있었다면서요?”

[어? 공원?]


“본부장에게는 제가 전화해둘 테니 당신은 그냥 오기만 해요.”

[본부장? 당신이 그 사람 연락처도 알아?]


“잔소리하지 말고 제시간에 오기나 해요.”

나나미는 단호하게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 * *


오은명은 전화기를 들고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이희경도 옆에 앉아서 양손에 고개를 파묻은 채 괴로워하고 있었다. 규진과 유엔 아무도 히데오의 사고 이후 전화를 걸어오지 않았다.


“애들만 두고 오는 게 아니었어.”

오은명은 자책했다.


“나나미 말로는 유엔이 다쳤다고 했어요. 걱정돼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요.”

딸이 안전하지 못하다는 소식을 들은 이희경도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었다.



오은명의 전화벨이 울렸다.


화들짝 놀라며 전화를 받았지만, 기다리던 아들은 아니었다. 이지영이었다.

오은명은 경멸의 표정으로 핸드폰을 노려보다가, 마음을 가라앉히고 침착하게 전화를 받으며 녹음 버튼을 눌렀다.


“동서?”

[형님, 생각지도 못했던 사고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생각도 못 한 일? 이런 비극을 생각지 못했던 건 우리 쪽이지, 그쪽이 아닐 텐데.”


[그게 아니라, 의도와는 달리 사고가 생겨서 죄송하다는 말씀드리려고 전화했어요.]

“그럼 죽이려고 의도한 대상은 따로 있었다는 말인가?”


[오해하지 마세요. 그건 정말 사고였어요. 형님 전화 받고, 남편이 바로 전화 돌렸는데 그사이에 사고가 터진 거예요.]

“사람이 죽었는데 지금 상황에서 그런 소리가 나와?”


이지영도 오은명의 독한 말투에 빈정이 상했는지 목소리를 바꾸며 태도를 달리했다.

[그래도, 어제 우리가 한 약속은 잊지 않으셨으면 해서 전화드린 거에요.]

“이젠 소용없어. 애들과 연락도 안 돼.”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곧 연락 오겠죠.]

“무슨 일을 또 당하게 될지 이젠 짐작도 못 하겠구먼.”


[이젠 더 이상 불행한 일은 없었으면 좋겠어요. 진심이에요.]

“항상 불행한 일은 내 차지였지. 불행이 뭔지 구경이나 해보고 하는 소리야?”


[그러니까요, 제 말이 그 말이죠. 침착하게 잘 생각하시기 바라요.]

오은명은 왼손을 불끈 쥐며 화를 내다가 다시 흥분을 가라앉혔다.

“누가 시킨 거야? 동서야 아님 도련님이야?”


[사람을 뭐로 보고 그러세요. 우리가 설마 그런 일을 시키겠어요?]

“그럼 누가 시켜?”


[일본에 있는 직원들이 오버해서 과잉 대응한 거예요. 정말이에요.]

“하코네 종합상사?”


[형님이 그 회사 이름을 어떻게 아세요?]

오은명은 움찔 놀라며 대답하지 못하다가 간신히 얼버무렸다.

“시노 아빠 최대식이 그 회사 다닌다면서.”


[아~ 일본 혼혈 애 아빠.]

이지영은 아~, 하는 감탄사를 과장되게 크고 길게 말했다.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이지영은 전화를 그만 끊고 싶은지 서둘러 마무리를 했다.

[불미스러운 일이 생긴 건 사과드릴게요. 정말 본의가 아니었어요.]


“사과받을 사람은 내가 아니야. 조금이라도 책임을 느낀다면 유족을 찾아가 사죄하길 바라.”

[별말씀을. 이만 들어갑니다.]



오은명은 전화를 끊고 이지영의 마지막 말을 곱씹으며 따라 말했다. 분노가 가득한 얼굴이었다.

“뭐 별말씀을? 사과하라고 하는데 별말씀을이 뭐야? 별말씀을이.”



오은명은 바로 핸드폰 메뉴로 들어가 메신저 앱을 켠 다음 통화가 녹음된 파일을 나나미에 보냈다.


작가의말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불러올 뿐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세 친구와 유토에게 그 말은 받아들일 수 없는 공허한 외침일 뿐입니다. 더는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결심, 과연 그 끝에는 어떤 결과가 찾아올까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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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14장 거짓말 게임 (2) 19.01.07 87 1 14쪽
43 14장 거짓말 게임 (1) 19.01.04 91 1 11쪽
42 13장 그라운드 제로 (4) 19.01.02 89 2 12쪽
41 13장 그라운드 제로 (3) 18.12.31 116 2 12쪽
40 13장 그라운드 제로 (2) 18.12.28 100 2 12쪽
» 13장 그라운드 제로 (1) 18.12.26 95 2 12쪽
38 12장 뜻밖의 역습 (4) 18.12.24 90 2 11쪽
37 12장 뜻밖의 역습 (3) 18.12.21 102 2 11쪽
36 12장 뜻밖의 역습 (2) 18.12.19 95 2 12쪽
35 12장 뜻밖의 역습 (1) 18.12.17 115 2 13쪽
34 11장 진실 혹은 도전 (3) 18.12.14 108 2 13쪽
33 11장 진실 혹은 도전 (2) 18.12.12 109 2 13쪽
32 11장 진실 혹은 도전 (1) 18.12.10 112 2 12쪽
31 10장 숲속의 이끼 (3) 18.12.07 120 2 15쪽
30 10장 숲속의 이끼 (2) 18.12.05 112 2 12쪽
29 10장 숲속의 이끼 (1) 18.12.03 119 2 13쪽
28 9장 반격의 실마리 (3) 18.11.30 116 2 12쪽
27 9장 반격의 실마리 (2) +1 18.11.28 118 2 13쪽
26 9장 반격의 실마리 (1) +1 18.11.26 135 2 11쪽
25 8장 염곡동 살인사건 (5) +1 18.11.23 142 2 13쪽
24 8장 염곡동 살인사건 (4) +1 18.11.21 157 3 13쪽
23 7장 패밀리의 완성 (3) +1 18.11.20 140 2 11쪽
22 7장 패밀리의 완성 (2) +1 18.11.16 144 2 12쪽
21 7장 패밀리의 완성 (1) +1 18.11.13 150 2 11쪽
20 6장 일곱 개의 바다 (3) +1 18.11.09 163 2 11쪽
19 6장 일곱 개의 바다 (2) +1 18.11.06 164 2 11쪽
18 6장 일곱 개의 바다 (1) +1 18.11.02 160 2 12쪽
17 5장 잃어버린 아들 (4) +1 18.10.30 154 2 12쪽
16 5장 잃어버린 아들 (3) +1 18.10.26 193 2 12쪽
15 5장 잃어버린 아들 (2) +1 18.10.23 187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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