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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야 님의 서재입니다.

일곱 개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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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야
작품등록일 :
2018.08.22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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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15 0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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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7,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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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1.02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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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6장 일곱 개의 바다 (1)

DUMMY

<2018.01.29. 월요일 / 일본 가나가와(神奈川)>


아침 일찍부터 유엔과 시노는 전화 통화로 분주했다.

“뭐라고? 난 나리타 공항 가는 항공권 예매했는데?”


“그래? 뭐 어쩔 수 없지. 괜찮아.”

“많이 멀어?”


“서울에서 대전 정도?”

“헐.”


“고속철 타면 금방이야. 세 시간 정도 걸릴 거야. 요양원 주소는 카톡으로 봤지? 아까 찾아오는 방법 보낸 건 잊어버려, 그건 하네다 공항에서 오는 길이니까.”

“응.”


“기차 시간 확인해서 다시 메시지 보낼게.”

“알았어.


“엄마가 고맙다고 전해 달래. 보고 싶다고 했지만, 이틀 만에 바로 올 줄은 몰랐다고. 여기서 지내는 동안 풀코스로 대접하라고 하셨어.”

“날마다 맥주투어할 준비 단단히 해둬. 특히 체력을 준비해야 할 거야.”


유엔은 전화를 끊고 시노가 보낸 메시지를 봤다. 헷갈리지 않게 한글과 한자를 병행해서 쓴 메시지였다. 가나가와 현(神奈川県) 아이코 군(愛甲郡) 아이카와 정(愛川町)으로 시작하는 요양원 주소를 보며 중얼거렸다.

‘어떤 사람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되네.’


유엔은 공항 가는 길에 엄마와 통화했다.

“엄마? 밥 먹었어? 딸 혼자 남겨두고 가더니 잘 있는 거야?”

“언니가 아들을 만나긴 했는데 다시 잃어버렸어. 어디에 있는지 못 찾고 있어.”

“나 지금 일본 가.”

“왜?”


“시노 엄마가 나 보고 싶대.”

“널 보면 조마조마해서 견딜 수가 없다. 넌 이제 좀 빠지면 안 되니?”


“도와달라고 했다가 빠지라고 했다가 자꾸 왜 그래?”

“걱정돼서 그렇지.”

“도착하면 전화할게.”

“응.”


나리타 공항에 내린 유엔은 시노가 알려준 대로 요코하마행 고속전철을 탔다. 차창을 통해 이국적인 풍경을 바라봤다. 어디쯤 지나고 있는지 묻는 메신저 알림이 핸드폰을 울렸다.


유엔은 현재 위치를 구글 지도 화면에서 캡처해 답장했다. 유엔은 요코하마에서 도시 전철로 갈아타고 에비나(海老名) 역에 내렸다. 오후 4시 55분이었다.


“유엔.”

오른쪽으로 돌아보자 마중 나온 시노가 보였다.

“사람들 많은 데서 그렇게 부르면 어떡해?”

“흥, 꼭 일본사람처럼 말하는군.”

“제발 좀 조용조용 말해 줄래?”


둘은 쇼핑몰 앞에서 버스를 탔다.

시노는 잔뜩 들뜬 목소리로 창밖을 내다보며 수다에 열을 올렸다.

“이 동네는 이상하게도 불교 사찰도 많고 신사도 많아. 지난번에 세어봤는데 가는 동안 길가에 보이는 것만 열다섯 개가 넘어.”

“왜 그렇게 많아?”


“도쿄는 땅값이 비싸니까 조상 제사를 지낼 절을 찾아 여기까지 찾아와서 그런가?”

“절에서 조상 제사를 지내?”


“흔히들 그래. 내일 시간 되면 구경하러 가자. 일본 귀신도 만나보고 말이야.”

“귀신 보는 거 아니래도.”


버스를 탄 지 40분 정도 지났을 때 시노는 유엔의 손을 잡아끌며 말했다.

“다 왔어.”


둘은 인사를 하고 버스에서 내렸다. 잘 모르는 유엔이 봐도 신사(神社)인 게 틀림없는 건물이 버스 정류장 앞에 또 있었다. 야트막한 언덕 뒤로는 제법 높은 산이 보였다. 길 건너 언덕에는 숲으로 들어가는 진입로가 보였고, 길가에는 전원주택이 늘어서 있었다.

“산이 꽤 높은데?”


“저 멀리 보이는 높은 산이 단자와(丹沢) 산이야.”

“후지산이랑 가까워?”


“여기서는 안 보이지만 저 산 정상에 올라가면 멀리 후지산 보일걸.”

“요양원은 어디야?”


“저기 산 두 개 넘어서 가면 돼.”

“내일 갈까?”

“농담이야, 저기 신사 뒤 건물이야.”

“생각보다 작은 건물이네. 큰 요양병원이라고 생각했거든.”


“여긴 한국이 아니라 일본이니까. 그리고 항암치료는 중단하셨으니까 큰 병원은 필요 없어.”

“항암치료 중단해도 괜찮은 거야?”

“항암치료가 암세포만 죽이는 게 아니거든. 더는 쇠약해지고 싶지 않다는 게 엄마의 결정이야.”


미리 예약해둔 게스트하우스에 여행 가방을 풀고, 둘은 바로 방에서 나와 요양원 병실로 갔다.



“안녕하세요. 유엔이에요.”

“어서 와요. 다마루 나나미(田丸 七海)에요.”

시노의 엄마는 약간 어색한 억양으로 인사를 했다.


침대에 누워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나나미는 의자에 앉아 있다가 유엔이 들어오자 자리에서 일어나 악수를 하며 맞이했다. 하지만, 오랜 투병으로 얼굴빛은 어두웠다. 기력이 많이 약해졌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름이 멋져요. 국제연합, 유엔.”

“본명은 김여원인데 시노가 유엔이라고 새 이름을 지어줬어요.”


“나나미는 일곱 개의 바다라는 뜻이에요. 편한 친구처럼 그냥 나나미라고 불러줬으면 좋겠어요.”


듣고 있던 시노가 농담했다.

“기분 나쁠 땐 시치미라고 불러도 돼.”

시노가 농담으로 말장난을 했지만, 유엔은 일본어를 잘 몰라서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더니, 시노가 설명했다.

“일곱이란 걸 시치라고 다르게 발음할 수도 있거든. 게다가 엄마는 시치미 떼는 데 선수거든.”

“엄마가 얘기했지. 설명이 필요한 유머는 실패한 유머라고.”


나나미는 냉장고를 열어 접시에 담긴 치즈를 꺼내 테이블에 올렸다.

“엄마 이게 뭐야?”

“치즈, 오늘 안주.”

나나미는 스카치위스키 한 병을 침대 밑에서 꺼내더니 테이블에 놓았다. 언더록 양주 컵 세 개도 꺼내 테이블에 올렸다.


“엄마 술 마셔도 돼?”

“딸이 어른 되면 같이 한잔하려고 마음먹었거든. 한 번은 마셔보자.”

“정말 괜찮아?”

“친구 앞에서 이런 말 해서 미안하지만, 나 어차피 오래 살진 못해. 길어야 일 년 정도? 어쩌면 반년.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훨씬 중요해, 내겐.”


“그래도. 괜찮겠어?”

“이런 속담이 있지.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

“뭐야? 그거 한국 속담이야?”

“자, 잔소리는 그만하고 일단 한잔할까?”


나나미는 언더록 잔에 삼 분의 일 정도 술을 따랐다.

“내가 젊었을 때 제일 좋아했던 술이야. 조니워커 블루.”


“엄마 부자였네.”

“건배할까? 우리의 만남을 위하여.”

“위하여.”


셋은 ‘위하여’를 외치며 잔을 모두 깨끗하게 비웠다. 40도짜리 독한 술은 처음 마셔본 유엔은 반사적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엄청 쓴데, 그런데 향이 좋아요.”

유엔은 독한 기운에 말이 탁탁 끊기면서도, 감사의 인사를 대신하며 술맛을 칭찬했다.


나나미는 크래커 위에 브뤼치즈 한 조각과 사과 한 조각을 얹어 즉석에서 카나페를 두 개 만들어 유엔과 시노에게 내밀었다.


나나미는 손바닥을 삭삭 비비며 시선을 모았다.

“밤은 길지만 아무래도 체력이 약하니 바로 게임을 시작해 볼까?”

“게임?”

“술 게임이 없으면 무슨 재미야? 오늘의 게임은 진실 혹은 도전.”

“진실 혹은 도전?”


나나미는 게임의 룰을 설명했다.

“차례로 질문을 하고 진실을 말하는 게임이지. 도저히 말할 자신이 없으면 벌주로 한 잔씩 마시는 거야.”

“난 거짓말 잘하는데, 괜찮겠어?”

시노가 맹랑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오늘은 아무도 거짓말하기 없기. 얼마 안 남은 내 생명에 대고 맹세.”

나나미는 우울한 말을 하면서도 밝게 웃으면서 크게 외쳤다.

“네 좋아요. 약속할게요.”

유엔이 대답했다.


“질문을 받기 전에 먼저 소개를 할게. 나는 두 사람을 잘 알지만 둘은 날 잘 모를 테니 말이야.”

“내가 엄마를 잘 모른다고 하니 갑자기 정말 낯선데.”


“결혼하면 보통 남편 성을 따르지만 난 처녀 때 성 다마루(田丸)를 계속 쓰고 있어. 친정아버지가 성에 대 자부심이 대단했거든. 센코쿠 시대에 지방 영주를 했던 다마루 도모타다의 직계 혈통으로 아직도 집안에서는 당주라고 부르지.”

“당주가 뭐에요?”

생소한 단어가 들리자 유엔은 바로 질문했다.


“가문의 적통이란 뜻이지. 내력 있는 집안의 장손은 가문의 주인이라는 뜻으로 문주라고 부르거나 당주라고 하지.”

“정말? 나도 처음 듣는 얘긴데.”

“그러니까, 내 소개가 필요하다고 했잖아.”

“계속해봐 엄마.”


“전성기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4만 석이나 되는 영지를 받았을 때였지만, 오래 가진 않았어.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서군을 도왔거든.”

“임진왜란 뒤에 일어난 일본 내전에서, 엄마 조상이 도요토미 집안 쪽에 붙었다는 뜻이야. 도요토미 히데요시 알지? 임진왜란 일으킨 풍신수길.”

시노는 중간 설명을 했고, 유엔은 짧게 ‘응’ 하고 대답해서 이해한다는 표시를 했다.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패해 영지가 몰수되고 집안은 몰락했지만, 검술 달인의 후예답게 장남이 마에다 가문을 섬기는 무사가 되면서 떠돌이 낭인 신세를 간신히 면할 수 있게 되었지.”

“마에다는 이시카와 지역의 지방 영주야. 영지가 대충 백만 석쯤 되었을 거야. 막강한 가문이지.”


“우리 다마루 가문은 아마 3천석 정도 영지를 받았을 거야. 나중에는 마에다 가문의 차남과 혼맥도 쌓았지. 그 혼인 이후로 그쪽 방계와 우리 집안은 지금도 각별한 사이로 지내니까 대단한 인연이지.”

“근데 그 재미없는 집안 족보 얘기는 왜 하는 건데. 자기소개라고 하기기에는 너무 거창하잖아.”

“나는 지금 왜 친정과 의절하게 되었는지 설명하고 있는 거야.”

나나미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시노의 표정이 굳어졌다.

시노가 알던 것과는 다른 얘기였다. 외할아버지가 처음부터 한국인과의 결혼을 반대했고, 결혼 후에도 불법적인 일을 서슴지 않는 아빠 때문에 다툼이 커져 결국 엄마가 친정과 의절했다는 정도만 들었는데 또 다른 비밀이 있는 줄은 몰랐다.


“내가 먼저 몇 가지 얘기해두지 않으면 질문이 시시할 거 같아 미리 힌트를 주는 거야.”

나나미는 숨을 고르고 다시 말을 이었다.

“결혼한 지 5년쯤 지나서, 시노 아빠가 다섯 살 된 남자아이를 집으로 데려왔어.”


놀란 유엔은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나나미는 담담하게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부탁받은 일인데 하면서 말을 꺼내더니, 아이를 누가 맡아서 길러줬으면 좋겠다고 했어. 아이를 맡긴 사람이 양육비는 넉넉히 보낼 테니 돈 걱정은 안 해도 된다며 말이지. 남편은 일본에 아는 사람이 별로 없으니 친정에 좀 부탁을 하라고 대놓고 요구했지. 나도 어쩔 수가 없어서 친정에 전화를 걸었고, 다음 날 아침 일찍 친정아버지와 엄마가 와서 남편과 한참 언쟁을 하더니 결국 아이를 데리고 갔어.”

“누구에게 맡긴 거야?”


“아까 말했지. 마에다 집안과는 아직도 가깝게 지낸다고. 친정아버지는 남편이 데려온 남자아이를 마에다 집안에 맡겼어. 종갓집은 아니고 둘째 아들 집에.”

“그래서?”


“그렇지 않아도 친정아버지는 한국인 사위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는데, 불법 밀수 정도의 범죄가 아니라 어린 애까지 데려왔다고 크게 화를 냈어. 남편은 유괴가 아니라고 한사코 부인했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어. 친정아버지와 남편의 언쟁은 계속 심해졌어. 결국, 이런 식으로 평생 살 수는 없다고 결론이 내려졌어. 아버지는 남편이 아니라 내게 명령조로 말했어. 당장 이혼하고 시노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라고 말이야.”


“그런데, 왜 이혼하지 않았어?”

“러브스토리 같은 건 없어. 머리만 감추고 꼬리는 감출 줄 모르는 엉성한 남편이긴 했지만, 시노를 아빠 없는 자식으로 키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야.”

“그래, 아빠는 냄새나는 걸 감출 때 그냥 뚜껑으로 덮는 스타일이지.”


“결국, 한국에 와서 착실히 살겠다는 조건으로 남편과 나는 가정을 지키기로 약속했다.”

나나미는 물을 한 모금 더 마셨다.


“그런데 말이야, 며칠 전 의절했던 친정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왔어. 마에다 가문에서 연락을 받았다고 말이야. 그때 맡긴 남자애가 사라졌는데 네 아빠가 다시 찾고 있다면서 말이야.”


“아~”

유엔이 자기도 모르게 외마디 탄식을 뱉었다.


“이제 내가 너희를 왜 불러 모았는지 알겠나 보구나. 그 사라진 남자를 찾고 있는 건 남편뿐이 아니라고 들었다. 이제 너희들 얘기를 좀 들어봐도 될까?”


작가의말

다섯 살 먹은 어린 한국 소년 규진을 일본에 데려왔던 최대식은 아이를 아내의 지인에게 맡겨 16년간 기르게 했습니다. 나나미의 소개를 들었으니 이제 유엔과 시노가 답할 차례입니다. 과연 둘은 진실을 말할 수 있을까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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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4 14장 거짓말 게임 (2) 19.01.07 87 1 14쪽
43 14장 거짓말 게임 (1) 19.01.04 91 1 11쪽
42 13장 그라운드 제로 (4) 19.01.02 89 2 12쪽
41 13장 그라운드 제로 (3) 18.12.31 116 2 12쪽
40 13장 그라운드 제로 (2) 18.12.28 99 2 12쪽
39 13장 그라운드 제로 (1) 18.12.26 94 2 12쪽
38 12장 뜻밖의 역습 (4) 18.12.24 90 2 11쪽
37 12장 뜻밖의 역습 (3) 18.12.21 102 2 11쪽
36 12장 뜻밖의 역습 (2) 18.12.19 95 2 12쪽
35 12장 뜻밖의 역습 (1) 18.12.17 115 2 13쪽
34 11장 진실 혹은 도전 (3) 18.12.14 108 2 13쪽
33 11장 진실 혹은 도전 (2) 18.12.12 108 2 13쪽
32 11장 진실 혹은 도전 (1) 18.12.10 112 2 12쪽
31 10장 숲속의 이끼 (3) 18.12.07 120 2 15쪽
30 10장 숲속의 이끼 (2) 18.12.05 112 2 12쪽
29 10장 숲속의 이끼 (1) 18.12.03 119 2 13쪽
28 9장 반격의 실마리 (3) 18.11.30 116 2 12쪽
27 9장 반격의 실마리 (2) +1 18.11.28 117 2 13쪽
26 9장 반격의 실마리 (1) +1 18.11.26 135 2 11쪽
25 8장 염곡동 살인사건 (5) +1 18.11.23 142 2 13쪽
24 8장 염곡동 살인사건 (4) +1 18.11.21 157 3 13쪽
23 7장 패밀리의 완성 (3) +1 18.11.20 140 2 11쪽
22 7장 패밀리의 완성 (2) +1 18.11.16 144 2 12쪽
21 7장 패밀리의 완성 (1) +1 18.11.13 150 2 11쪽
20 6장 일곱 개의 바다 (3) +1 18.11.09 163 2 11쪽
19 6장 일곱 개의 바다 (2) +1 18.11.06 164 2 11쪽
» 6장 일곱 개의 바다 (1) +1 18.11.02 160 2 12쪽
17 5장 잃어버린 아들 (4) +1 18.10.30 154 2 12쪽
16 5장 잃어버린 아들 (3) +1 18.10.26 193 2 12쪽
15 5장 잃어버린 아들 (2) +1 18.10.23 187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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