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서가야 님의 서재입니다.

일곱 개의 바다

웹소설 > 일반연재 > 추리, 일반소설

서가야
작품등록일 :
2018.08.22 17:21
최근연재일 :
2019.05.15 02:56
연재수 :
103 회
조회수 :
12,098
추천수 :
185
글자수 :
577,838

작성
18.11.09 09:33
조회
162
추천
2
글자
11쪽

6장 일곱 개의 바다 (3)

DUMMY

“좋아, 진실. 죽을 때까지 숨기려고 했는데 틀렸군.”

나나미는 자세를 고쳐 앉고 말을 이었다.


“지금은 나이가 들었지만, 젊을 때는 얼굴이 반반하게 생겨서 동네에서 인기가 많았어.”

유엔은 고개를 끄덕여 나나미가 지금도 예쁘다는 표현을 에둘러 했다.


“시노가 어디서 듣긴 했지만 제대로 알아내지는 못했나 본데, 내가 고향에서 사고를 치고 도망간 건 아니야.”

시노가 몸을 움츠리며 눈을 굴렸다.


“지금 생각하면 웃긴 해프닝 정도지만, 고향에 한 살 많은 고종사촌 오빠가 옆집에 살았는데 나이가 들면서 날 친척이 아니라 여자로 좋아하기 시작했어. 난 처음엔 눈치채지 못했어. 별일 없이 지내다가 내가 연애를 전제로 남자를 만나고 난 다음 일이 터졌어.”

“누구였어, 상대는?”


“두 살 연상의 시청 공무원이었어. 썩 잘 생기진 않았지만, 세련된 스타일이었어.”

“그래서?”


“그 고종사촌 오빠가 저녁 식사 후에 집으로 찾아온 거야. 친정아버지와 어머니까지 모두 한자리에 모으더니 고백을 한 거지.”

“세상에.”


“부모님은 당연히 거절했지, 지금이 중세시대도 아니고 사촌끼리 결혼이란 게 말이 될 리가 없잖아? 더구나 사촌이 아니었더라도 난 거절했을 거야. 그런 최악의 프러포즈라니, 완전 협박이었어. 교제해주지 않으면 자살해버릴 거라고 말이야.”

“갑자기 정말 뜬금없네.”


“원래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사는 스타일이었어. 아무튼, 그날은 타일러서 돌려보내긴 했는데 다음날 동네가 발칵 뒤집혔어. 사촌오빠가 시청 공무원을 찾아간 거야. 그것도 근무시간에.”

“저런.”


“공무원 아내가 될 뻔한 내 짧은 로맨스는 그걸로 끝나버렸지. 사촌은 생긴 것과 다르게 심한 말도 서슴지 않고 해버린 거야. 나나미와 계속 만나면 쪽가위로 목젖을 잘라버리겠다고 협박까지 했다지 뭐야.”

“끔찍한 소리를 잘도 했네.”


“앞뒤 사정을 전부 들은 고모가 저녁에 우리 집으로 찾아와 부탁했어. 말로는 도쿄로 가서 독립하지 않을래, 하며 부드럽게 권유했지만, 피해자인 내가 고향을 떠나라는 무례한 소리였지.”

“그래서 어떻게 했어?”


“화가 나서 고모를 돌려보내려고 했는데, 현금으로 오백만 엔을 내미는 거야.”

“오호.”


“친정아버지가 멈칫하길래 그냥 내가 돈을 냉큼 받았어. 사촌과 엮이는 게 나도 끔찍하게 싫었거든. 그리고, 다음날 난 바로 도쿄로 왔어.”

“그다음엔?”


“혼자 살 방을 구하고 일자리를 얻었어. 필름 카메라 사진을 인화하는 일을 했지.”

“아, 아빠가 앨범에 풀칠했다는 그 스튜디오?”


“맞아. 한 달쯤 지나고, 그 사촌이 어떻게 알았는지 스튜디오에 찾아온 거야. 죽음을 각오한 듯 살기가 넘치는 표정으로 소리치며 난동을 부렸지.”

“그래서?”


“스튜디오 사장에게 날 내놓으라고 하는 거야. 난 인화실에 몸을 숨기고 귀를 세우고 말소리를 들었지. 사장도 처음에는 호기 있게 호통을 쳤지만, 사촌이 상스러운 말로 받아쳤어. 자길 막았다가는 아래위 구멍마다 전부 다 고무호스를 차고 살게 될 거라고 말이야.”

“러브스토리치고는 지저분한 레퍼토리네.”


“사장이 물러서자 그때 시노 아빠가 가로막으며 나섰어. 무슨 일이냐고 묻더라고.”

“사촌이 뭐라고 했어?”


“오백만 엔을 사기 쳐서 도망간 여자라고 거짓말을 하면서, 내놓지 않으면 너부터 똥주머니를 차게 만들어 버리겠다 하면서 협박하는 거야.”

“그래서?”


“네 아빠는 아무 대답도 안 하고 손에 들고 있던 재단 가위를 펴더니 가윗날 두 개로 분리해서 양손에 쥐고는, 사촌에게 걸어가며 조용히 말하는 거야.”

“뭐라고?”


“약한 사람을 괴롭히는 너 같은 인간은 힘줄을 모두 끊어 놓아야 더는 세상에 해를 끼치지 못하겠지, 라고 했어. 말투만 봐서는 협박이 아니라 진심인 것 같았어.”

“의외로 멋있는 소리를 잘도 했네.”


“호기롭게 협박하던 사촌은 자기보다 더한 악당을 만나서는 바로 물러섰어. 정말로 나를 좋아한 게 아니라 망상 속에서 폭주하다가 정신이 번쩍 든 거지.”

“그래서 아빠랑 사귀게 된 거야?”


“아니 그건 아니야. 혼자 호의를 베풀고는 으스대며 제멋대로 보답을 챙긴 거지.”

나나미는 ‘호의’라는 단어를 말할 때 손가락으로 시노를 가리켰다.


시노는 발끈하며 소리쳤다.

“당한 거야?”


“꼭 그런 건 아니야. 원치 않는 임신이긴 했지만.”

“로맨스 없이 임신부터 한 남녀 사이에서 내가 태어났다니. 이거 완전 최악이군.”


“그렇게 최악은 아니야. 그날부터 매일 저녁 초밥을 사줬거든. 임신한 걸 알았을 때는 초밥을 너무 많이 대접받아서 내가 먼저 결혼하자고 했어.”

“초밥에 넘어갔다면 그나마 다행이네.”


“매일 초밥을 사주는 남자라면 결혼해도 좋겠다고 생각했어. 그때 네 아빠는 벌이도 변변치 않았는데 가진 걸 다 나누어 준 셈이니까.”

“오케이. 여기까지 진실 인정.”


“인생 최고의 진실 혹은 도전 게임이었어.”

나나미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우리 이번에는 각자 소원 한 가지씩 말하는 거 어때? 무슨 부탁을 하든 반드시 들어주기로 약속을 하고 말이야.”


“이번에도 엄청난 소원이 등장할 것 같은데. 자신 있어?

시노가 물었고 나나미가 먼저 답했다.


“살날이 얼마 안 남았지만, 최선을 다할게. 난 오케이.”

“그런 계산이라면 이거 완전 손해 보는 게임인데.”


“이런, 내 의도가 간파당하다니 수치스럽군.”

나나미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말을 마쳤다.


유엔은 고개를 두 번 끄덕여 동의를 표시했다. 소원을 말해 보라는 표정으로 나나미를 바라봤다.


“그럼 나 먼저. 오늘 들어보니 너희들은 위험에 빠진 것 같다. 박재열도 위험한 사람이고, 내 남편도 간교하긴 마찬가지다. 둘 다 굴속의 너구리 같은 인간들이다. 너희 둘 다 여기서 멈춰라.”

웃음기를 싹 지우고 나나미는 단호하게 명령했다.


유엔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하지만, 제가 멈추면 엄마 혼자서 아빠의 죽음을 파헤치고 다녀야 해요. 그건 도리가 아니에요.”


“네 몫은 내가 대신할게. 내일 바로 도쿄로 갈 거다.”

“괜찮으세요?”


“케이진은 내가 찾을게. 사라진 케이진이 이 게임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 같구나.”

“어떻게 찾으려고요?”


“마에다 히데오는 집안 모임에서 오랫동안 만나온 사이다. 다른 사람이라면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겠지만, 이 다마루 가문의 딸인 내가 직접 부탁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 마에다 히데오라면 사라진 케이진을 찾을 수 있을 거다.”

유엔은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시노는 손을 들더니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나도 곤란해. 내 사업은 어떡하란 말이야.”


“이대로라면 너도 같은 굴속의 너구리 중 한 마리가 되는 거야. 그런 사업이 무슨 소용이야? 진짜 네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수 있을 거야.”

“배운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내가 뭘 할 수 있을 것 같아?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 해 봐야 방세도 내기 어려워. 추운 겨울에 미니스커트 입고 개업 행사에서 춤이나 추면서 평생 살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네 아빠와 똑같은 소리를 하는구나. 허드렛일만 하면서 살 수 없다고 자신 있게 소리치더니, 선택한 길이라는 게 고작∙∙∙”

“그게 아니야.”


“같은 거야. 돈이라면 나쁜 짓을 저질러도 괜찮다는 소릴 하는 거야? 어린애도 납치하고?”

“아니, 그건 아니야.”


“여기서 굴속으로 더 들어가면 정말로 돌아올 수 없게 될지도 몰라.”

시노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일이 이렇게까지 된 데는 내 책임도 있다. 불행이란 건 전염병처럼 계속 퍼져나가는 거야. 더 늦기 전에 부모들이 만나서 이 문제를 상의하고 싶구나.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해.”

“어머니가 일본에 와 계세요. 약속 잡을 수 있을 거예요.”

유엔의 말을 듣자마자 나나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유엔은 바로 엄마에게 전화해서 약속을 잡았다.


전화를 끊고 온 유엔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한 분 더 오실 거예요.”


“누구?”

시노가 물었다.


“잃어버린 아들을 찾으러 온 엄마.”

유엔이 답했지만, 나나미와 시노는 어리둥절해 하며 물었다.

“그게 누군데? 케이진 엄마 말이니?”


유엔은 긴 설명을 했다. 먼저 엄마와 오은명 여사의 수십 년 된 관계를 설명했다. 그리고, 케이진이 동광무역 박재열 대표의 조카라는 사실을 설명했다.


시노는 박재열이 자신의 조카를 감시하라고 자기를 이용했다는 사실에 몸서리를 쳤다. 이어, 그 비밀을 알아낸 유엔의 아버지가 박재열에게 죽임을 당한 것이라는 추측까지, 유엔은 자기가 아는 모든 걸 털어놓았다.



“엄마의 소원이라면 들을 수밖에.”

다 듣고 나더니 시노는 결심이 선 표정으로 말했다.


“박재열이 무서워서 결심한 거 아니야?”

유엔이 툭 치며 시노의 긴장을 풀어주려 말하다가 본인이 더 걱정되는지 다시 말을 이었다.


“언젠가는 괜찮아질까요? 너구리들.”

나나미는 고개를 끄덕이려다가 다시 가로저으며 눈을 감았다.


“그럼 내일은 세 엄마와 두 딸이 만나는 자리로 하자.”

상황을 다 이해한 나나미는 머리를 한 번 긁적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그것보다도, 시노. 아무리 네 아빠지만 당분간 연락을 끊고 지내는 게 좋겠다. 이해하지?”

“왜 아빠는 그런 사람이랑 엮여 있는 거야? 속상하게.”

시노는 속상한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그러게 말이다. 근데, 너도 그런 말 할 처지는 아닌 것 같은데?”

“듣고 보니 그렇네.”


“일단 해보자. 굴속 너구리 한 마리는 내가 한 번 더 설득해 볼게. 마지막 기회를 주고 싶구나. 내 말을 듣는다면 잘못을 빌고 새 인생을 살겠지.”

“그렇지 않으면?”

시노가 반문했다.


“시노, 잘 들어라. 만약 네 아빠가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지 않는다면 더는 그 사람을 가족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결국, 내 선택은 두 가지네. 너구리 딸이 되든지 아니면, 부모 없는 고아가 되든지.”


“너구리보다는 사람을 선택할 거라 믿는다.”

비장한 표정을 과장해서 짓더니 이내 웃음소리를 내며 시노가 말했다.

“그럼, 이번에는 내가 소원을 말할게.”

유엔은 손가락으로 오케이 모양을 만들어 동의했다.


“유엔, 영원히 변치 않는 친구가 되어 줄래?”

시노의 느닷없는 소원에 유엔은 당황했다.


“너무 외롭게 살았어. 의무적인 인간관계를 빼고 나면 나에게 남는 게 유엔 너밖에 없어. 내 편이 되어 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생각해 보면, 견딜 수 없을 만큼 쓸쓸해.”

듣고 있던 나나미가 입 모양으로 엄마가 미안해, 라고 말했다. 시노는 계속 말을 이었다.

“너만은 내 편이 되어 줄 거지? 항상.”


유엔은 생각했다, 시노에겐 기댈 사람이 없다는 것을, 엄마도 아빠도 시노에겐 떠나가는 기차와 같은 존재일 뿐이란 것을. 사랑과 우정에 목마른 시노의 마음을 유엔은 헤아릴 수 있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변치 않는 친구가 될게. 약속해. 너도 언제까지라도 변치 않는 친구가 되어 줄 거지?”

“응, 그게 지옥 불로 이어져 있더라도.”


작가의말

추운 겨울에 미니스커트 입고 개업행사에서 춤이나 추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평생 살 수 없다는 시노에게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요? 엄마인 나나미도 아빠와 똑 같은 소리를 한다며 화를 냈지만, 질문에는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일곱 개의 바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4 14장 거짓말 게임 (2) 19.01.07 87 1 14쪽
43 14장 거짓말 게임 (1) 19.01.04 91 1 11쪽
42 13장 그라운드 제로 (4) 19.01.02 89 2 12쪽
41 13장 그라운드 제로 (3) 18.12.31 114 2 12쪽
40 13장 그라운드 제로 (2) 18.12.28 98 2 12쪽
39 13장 그라운드 제로 (1) 18.12.26 94 2 12쪽
38 12장 뜻밖의 역습 (4) 18.12.24 90 2 11쪽
37 12장 뜻밖의 역습 (3) 18.12.21 102 2 11쪽
36 12장 뜻밖의 역습 (2) 18.12.19 95 2 12쪽
35 12장 뜻밖의 역습 (1) 18.12.17 115 2 13쪽
34 11장 진실 혹은 도전 (3) 18.12.14 108 2 13쪽
33 11장 진실 혹은 도전 (2) 18.12.12 107 2 13쪽
32 11장 진실 혹은 도전 (1) 18.12.10 112 2 12쪽
31 10장 숲속의 이끼 (3) 18.12.07 120 2 15쪽
30 10장 숲속의 이끼 (2) 18.12.05 112 2 12쪽
29 10장 숲속의 이끼 (1) 18.12.03 119 2 13쪽
28 9장 반격의 실마리 (3) 18.11.30 116 2 12쪽
27 9장 반격의 실마리 (2) +1 18.11.28 116 2 13쪽
26 9장 반격의 실마리 (1) +1 18.11.26 135 2 11쪽
25 8장 염곡동 살인사건 (5) +1 18.11.23 142 2 13쪽
24 8장 염곡동 살인사건 (4) +1 18.11.21 157 3 13쪽
23 7장 패밀리의 완성 (3) +1 18.11.20 140 2 11쪽
22 7장 패밀리의 완성 (2) +1 18.11.16 144 2 12쪽
21 7장 패밀리의 완성 (1) +1 18.11.13 150 2 11쪽
» 6장 일곱 개의 바다 (3) +1 18.11.09 163 2 11쪽
19 6장 일곱 개의 바다 (2) +1 18.11.06 164 2 11쪽
18 6장 일곱 개의 바다 (1) +1 18.11.02 159 2 12쪽
17 5장 잃어버린 아들 (4) +1 18.10.30 154 2 12쪽
16 5장 잃어버린 아들 (3) +1 18.10.26 193 2 12쪽
15 5장 잃어버린 아들 (2) +1 18.10.23 187 2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