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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빛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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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벌
작품등록일 :
2019.01.02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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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15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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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8. 드래곤킵(6)

DUMMY

“도대체 이게 다 무슨 일입니까?”


유적 입구의 경비를 서던 기사는 돌아온 일행의 몰골을 보더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센티누스와의 전투로 여기저기 옷이 찢어지기도 했고, 피가 잔뜩 튀어있기까지 했으니 그의 입장에서는 놀랄 법도 했다.


상황을 설명할 기력조차 없었던 일행이었기에, 다들 에드워드를 쳐다보았고 에드워드는 기사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그의 입을 다물게 했다.


역시 권력이 좋구나, 캐트시는 그런 표정이었다.


그렇게 도시로 되돌아간 후, 에드워드는 여왕에게 보고를 올리기 위해 왕궁으로 돌아갔고 나머지는 교단으로 되돌아갔다.


캐트시나 론달이나 서로 지쳤다며 방에 돌아가면 바로 잠에 들 것이라 얘기했지만, 교단에 가자마자 뻗은 것은 의외로 도브카였다.


그러나 그럴 만한 것이, 전신에서 오러를 방출해가며 사력을 다해 싸운 뒤였다. 제아무리 강철같은 육신을 가진 도브카라고 할지라도, 그 정도의 전투 뒤에는 휴식이 필요한 게 당연했다.


용케도 전혀 내색하지 않으며 교단까지 돌아온 도브카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침대 위에 죽은 듯이 쓰러졌다. 그 거구를 감당해야만 했던 침대가 삐걱거리는 비명을 지르는 통에, 곤히 잠들었던 가웨나마저 깨고 말았다.


캐트시는 털에 피가 묻은 채로 자기 찝찝하다며 목욕하러 가버렸기 때문에, 잘 자다가 깨버린 가웨나를 도로 재우는 건 고스란히 론달의 몫이었다.



&



그렇게 다른 일행들이 지친 몸들을 뉠 동안 아빌라드는 길버트 대사제와 수정구를 통해 유적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해 보고하고 있었다.


늦은 밤이었지만 그만큼 중요한 이야기였고, 길버트 역시 졸린 기색 하나 없이 아빌라드의 보고를 주의 깊게 듣고 있었다.


[인간으로 변신할 수 있고, 마법까지 사용한다니. 보고하는 분이 아빌라드 공이 아니었다면 계속 믿지 못했을 겁니다. 이전에 발라리아에서 말씀하셨던 그 가능성이 맞아떨어졌군요.]

“그때는 저도 반신반의했습니다. 마법을 쓰는 걸 직접 보고서도 처음엔 믿지 못할 정도였으니까요.”

[이전의 목격담에서는 마법을 쓴다는 언급이 전혀 없었는데, 그 사이에 최상위 주문을 습득한 것을 보면 그 마인에게 엄청난 마법사의 재능이 있다고 여겨야 하는 것인가 싶습니다. 묵시록에 기록된 마인이니 그럴 만도 하다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지, 혹은 두려움에 떨어야 하는지 혼란스럽군요.]


아빌라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애당초 야성에만 의존하여 날뛰는 마물들에게조차, 인간은 크게 고전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센티누스의 출현과 함께 마물들이 이전에 없던 전략적인 움직임을 구사하는 이상현상이 발생했고, 그 원흉으로 지목된 마인 센티누스는 높은 수준의 마법까지 구사할 수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묵시록에 그 이름이 기록되어 있기까지 한 이상, 그 센티누스가 종말을 가지고 올 존재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인간의 관점에서 이만큼 두려운 이야기가 또 있을까.


[그런데 센티누스는 과연 어떻게 마법을 쓸 수 있는 것일까요? 흔한 하위 등급 주문이라면 몰라도, 최상위 등급의 주문이라면 마탑의 철저한 감시 아래 보호받고 있을 텐데 말입니다. 대륙의 모든 마탑의 최근 동향을 한번 확인해봐야겠군요.]

“아직 확실하지는 않습니다만, 짐작 가는 구석이 있긴 합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지금으로선 아빌라드 공이 센티누스에 관해선 세계 제일의 권위자일 테니까요.]


굉장히 부담스러운 수식언이었지만, 아빌라드는 애써 내색하지 않으며 말을 이어갔다.


“놈은 어쩌면 무언가를 포식하는 것으로 그 힘을 얻는 것이 아닌가, 하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사실 위화감을 느낀 것은 센티누스가 중력 증강 주문을 사용해놓고서 다 죽어가던 오르가레스를 포식한 때부터였다.


그 동족상잔 덕분에 주문에서 벗어날 수 있긴 했지만, 석연치 않다는 의구심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굳이, 왜 그 순간에 자기 동료의 숨통을 끊고 먹어버렸을까? 오르가레스의 투명화 능력을 얻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아빌라드는 그렇게 생각했다.


실제로 일행과의 전투에서 도주할 때 센티누스는 이전에 사용한 적 없던 투명화 능력을 사용해 전투에서 벗어났다.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능력이라기엔, 그 전에 일행들과 전투를 벌일 때도 얼마든지 유용하게 쓸 수 있는 기회가 많았는데 그러지 않았다는 점이 걸렸다.


그리고 유적에서 보았던 마법사의 시체들의 상태로 미뤄보아 마법사들 역시 센티누스에게 포식당했고, 그로 인해 센티누스가 마법을 쓸 수 있었던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었다.


아마도 본모습을 드러내기 전, 빅터라는 얼굴도 센티누스에게 잡아먹힌 희생양의 얼굴이었을 것이다.


[타당한 판단이로군요. 말씀대로라면 추적에 더 박차를 가해야겠습니다. 이 와중에도 그 마인이 얼마나 더 강해지고 있을지 알 수가 없을 정도니까요.]

“옳으신 말씀입니다. 하지만 인간으로 변신할 수도 있고, 순간이동 주문까지 쓰는 놈을 추적한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길버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추측일 뿐이지만 먹어 치운 인간의 모습으로 변할 수 있고, 장거리 순간이동이 가능한 센티누스다. 말이 어려운 일이지 센티누스가 작정하고 숨으려 든다면 절대로 찾을 수가 없는 조건이었다.


[그래서, 아침이 밝는 대로 교단 본부에 중요 안건을 하나 보내려고 합니다.]

“중요 안건이라면?”

[성화의 개방을 제안할 생각입니다.]


아빌라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교단의 상징이자 여신 마일디아가 실재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절대로 꺼지지 않는 불꽃.


성화의 소재는 여기저기에 널리 퍼져있다. 외부인에게 문을 단단히 걸어 잠근 성도 내에서도 가장 삼엄한 탑 안에서 성기사들이 빈틈이 없이 지키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대륙의 누구나가 그 소재는 알아도 그 실체는 아무도 본 적이 없는, 교단의 심장이나 마찬가지인 성물.


“대사제님의 뜻은 알겠습니다만, 저는 성화에 대해선 잘 모릅니다. 그게 센티누스를 추적하는데 어떻게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까?”

[사제가 아닌 이에겐 잘 모를 만도 합니다. 이해하기 쉽게 비유하자면 성화는 여신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창구라고 볼 수 있지요.]

“창구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보통 인간은 마일디아 님께 기도를 드림으로써 그 뜻을 전하고, 여신께서는 계시를 내려 인간에게 그 뜻을 전하지요. 하지만 여신의 답을 구하는 일은 짧게는 몇 년, 길게는 평생이 걸릴 일입니다. 그리고 성화는 즉각적으로 마일디아 님과 소통할 수 있게 해주죠.]

“...”


성화에 대해서는 대강 이해는 되었다. 즉각적으로 여신 마일디아의 계시를 들을 수 있다는 것. 그게 가능하다면 아마 센티누스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도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하지만 아빌라드는 그것을 왜 이제야 꺼내겠다는 것인지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불경스러운 생각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유용한 성물이 있었다면 진작에 사용해서 센티누스의 위협을 차단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


[물론 성화라고 해서 만능인 것은 아닙니다. 막대한 신앙심이 필요하기도 하고, 마일디아 님의 뜻을 온전히 다 전해 듣지는 못하니까요. 하지만 종말을 일으킬 수도 있는 존재가 대륙에 암약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성화가 필요한 순간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럼 그 성화는 언제부터 쓸 수 있겠습니까?”


시간이 지체되어 좋을 게 없는 상황이다.

인간 사이에 숨어든 센티누스가 계속해서 힘을 쌓는다면 나중에 가선 토벌이 불가능할 정도로 강해질 수도 있었으니까.

지금 가장 중요한 건 빠르게 센티누스를 쫓는 것이었다.


[아마 안건이 올라가도 며칠은 족히 걸릴 것입니다. 모든 교구장의 동의가 필요하기도 하거니와 교황 성하에게도 승인을 받아야 하니까요. 우선 그때까지는 이제까지 그리했던 것처럼 수소문으로 센티누스의 행방을 쫓아야 할 것 같습니다.]


아빌라드는 표정을 바꾸지 않고 이를 악물었다. 교단의 법도에 대해 뭐라 할 순 없지만, 답답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우선 여기서 가능한 만큼 조사를 진행하죠. 그리고 요청할 게 있습니다.”

[무엇이든 말씀만 하시죠.]

“마법 스크롤을 구해다 주십시오. 특히 주문 해제 스크롤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고, 가능하다면 용병으로써 우리와 동행할 수 있는 고위 변조마법사도 있으면 좋겠군요.”


어느 쪽이든 돈이 무지막지하게 많이 깨지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만큼 필요하기도 했다.


강력한 마법사이기도 한 센티누스를 추격하려면 일행이 어느 정도 마법에 대처할 수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스크롤로 센티누스의 마법공격을 방어하고, 혹시라도 센티누스가 순간이동으로 도주한다면 그것을 쫓는 것에 마법사의 힘이 필요하다.


가능한 지원은 모두 해주겠다 약속했던 길버트도 내용을 듣자 조금 고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알겠습니다. 공께서 그리 말씀하신다면 모두 필요한 것들이겠지요. 주문 해제 스크롤은 당장 아침이 밝으면 드래곤킵 마탑 쪽에서 조달하도록 전해두겠습니다. 고위 마법사를 찾는 데에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군요. 혹시 더 필요하신 것이라도?]

“대륙의 마탑 중에서 최근에 고위 마법사가 실종된 적이 없는지 조사해주십시오. 드래곤킵의 마탑은 제가 직접 찾아가서 조사해보겠습니다.”

[그러도록 하지요. 여신의 가호가 함께 하길.]





&&





대륙 서부의 끝자락에 있는 도시, 벨포스트. 시민들 대부분이 주로 어업에 종사하며, 어육을 특산품으로 판매하는 소도시였다. 번창한 대도시와 다르게 밤이 오자마자 거리의 불은 빠르게 꺼져버렸고, 거리 전체가 어둑해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거리를 쏘다니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자면 지금 골목길을 껄렁거리며 걷고 있는 한 사내. 사내의 이름은 올리.

몰래 도시에 숨어든 해적이었던 그는 지금 눈앞에서 도도하게 걷고 있는 여인을 계속 따라다니던 참이었다.


이 빌어먹을 도시에서는 그 흔한 창녀촌조차 찾기 힘들어서, 배에서 쌓인 성욕을 풀 방도가 없었다.

그러던 중 반반하게 생긴 여인이 늦은 시간에 거리를 어슬렁거리는 것을 보니 마음이 동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휘파람으로 추파를 던졌더니 여인이 자기 쪽을 돌아보며 희미하게 웃는 것이 아닌가.


창부다.

창부가 아니라 해도 먼저 유혹한 것이다.

따위의 추잡한 생각으로, 올리는 부둣가에서부터 줄곧 여인의 뒤를 따라 걷고 있던 것이다.


그렇게 기대감에 잔뜩 부푼 가슴으로 따라간 끝에, 여인의 발걸음이 멎었다.


그곳은 올리가 기대하던 창녀촌도, 으슥한데 자리 잡은 민가도 아니었다. 아무것도 없는 막다른 길이었다.


“뭐야, 씨발?”


아무리 그래도 몸 뉠 곳은 있어야 그 짓거리를 하든 말든 할 것 아닌가.


“어이, 무슨 생각으로 여기서 멈춘 거야? 길바닥에서 따먹히는 게 좋은가 봐? 응?”


주위를 둘러보던 올리가 난폭하게 여인의 엉덩이를 잡아 쥐었다.


“난 조용히 식사하는 게 좋거든.”

“뭐라는 거야 미친년.”


싸늘한 여인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얼굴을 들이미는 올리. 그러나 그 흥분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케헥!”


매력적이던 여인의 몸이 여기저기서 울렁이더니 순식간에 검은색의 마인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거대한 몸집에 하늘에 떠 있는 달마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마인은 순식간에 거대한 손을 뻗어 올리의 목을 붙잡아 들어 올리고 있었다.


“너희 종족의 번식욕은 볼 때마다 역겹단 말이지. 쓸데없이 왕성히 번식해서 머릿수가 늘어나는 것을 보면 구역질이 난다.”

“컥, 컥!”


올리는 대꾸조차 할 수 없었다. 목을 죄는 힘이 점점 더 강해지면서 눈알마저 터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허리춤에서 뽑은 단검을 마구 휘둘렀지만, 마인의 팔에 생채기조차 내지 못했다.


우득.


무심하게 손목을 비틀자 올리의 목도 똑같이 움직이며 부러졌다.

힘없이 축 늘어진 시체를 흡족하게 지켜보던 마인, 센티누스는 길게 찢어진 입을 벌려 올리의 시체를 단번에 삼켜버렸다.


그 거구를 집어삼킴과 함께, 옆구리에 남아있던 상처가 조금씩 아물기 시작했다. 조금 전 드래곤킵의 지하 유적에서 성검에 당한 상처였다. 재생되는 상처를 보며 센티누스가 이를 갈았다.


“나와라 토가론.”


말이 끝남과 동시에 어둠 속에서 그림자 하나가 솟아났다. 센티누스가 그림자를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해줘야 할 일이 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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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8. 드래곤킵(4) 22.05.11 22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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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6. 오래된 벗(1) 19.01.09 88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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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3. 이상징후(1) 19.01.05 109 1 12쪽
8 2. 동행(3) 19.01.04 128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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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 낙스빌(4) 19.01.03 157 3 12쪽
4 1. 낙스빌(3) 19.01.03 149 4 13쪽
3 1. 낙스빌(2) 19.01.03 194 5 13쪽
2 1. 낙스빌(1) 19.01.02 234 6 13쪽
1 Prologue. 약초꾼과 사냥꾼 +5 19.01.02 392 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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