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일벌 님의 서재입니다.

잿빛용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일벌
작품등록일 :
2019.01.02 21:31
최근연재일 :
2022.05.28 20:30
연재수 :
31 회
조회수 :
2,860
추천수 :
68
글자수 :
178,991

작성
19.01.03 12:03
조회
157
추천
3
글자
12쪽

1. 낙스빌(4)

DUMMY

​도스마르크는 상당히 놀란 눈치였다. 분명 자신이 몰아붙이고 있었는데, 눈 깜짝할 새에 거짓말처럼 패배했다. 특히 마지막 일격을 피한 움직임은 아직까지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형님!”


그 와중에​ 도스마르크의 부하들이 분개하여 싸움에 개입하려 들었지만, 아빌라드가 순식간에 그들 앞을 가로막았다.


“다 끝난 싸움에 허튼 짓거리할 생각 마라.”


부하들에게도 뒤에선 미친놈이라고 불릴 정도로 괴팍한 성격을 지녔으나 그런 그 역시 자기 목숨은 아까웠기 때문에 도스마르크는 결국 워해머를 내려놓고 두 손을 들었다.


“제법 하는군.”


“그쪽도요.”


도스마르크가 능글맞게 웃었다.


“마무리는 짓지 않는 건가?”


“그전에 사과하실 일이 남지 않았나요? 그리고 당신이 부순 벽에 대해서도 배상 하셔야죠.”


캐트시의 말에 도스마르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짐승이니 뭐니 함부로 모욕한 것에 대해서 사과한다. 태생이 천박한 용병인지라 고운 말을 잘 쓸 줄 모르거든.”


“받아들이죠. 그럼 벽이 날아간 저 분들에겐 어떻게 갚으실 건가요?”


도스마르크의 얼굴이 잠깐 씰룩였지만 그는 다시금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허리춤을 가리켰다.


“당연히 배상해야지. 여기 내 돈주머니가 있으니까 가져가라.”


캐트시는 주저없이 그의 허리춤의 돈주머니를 채갔다.


“그래서, 이젠 뭐가 남았지? 가랑이 사이로 기면 되나?”


“그건 제가 싫네요. 하지만 이렇게 그냥 놔주는 것도 좀...”


캐트시가 그렇게 고민할 때, 저편에서 무장한 사내들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모두가 창과 방패를 들고 있었고, 방패엔 하나같이 낙스빌의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아빌라드가 그들을 보며 말했다.


“경비대군. 어디서 놀고 먹는 건지 궁금하던 차였는데, 그래도 일은 하는 모양이야.”


경비대원 여섯 명이 그들에게로 다가갔다. 죽은 생선마냥 생기 없는 눈깔로 싸움이 벌어진 장소를 훑어본 대원 하나가 캐트시에게 말을 걸었다.


“뭔 일입니까?”


높낮이도 없는, 그야말로 무관심한 목소리였지만 캐트시는 개의치 않고 상황을 설명했다.


“이분이 갑자기 싸움을 걸어와서 그에 응한 것 뿐이에요. 보시다시피 결판은 났구요.”


“그렇습니까? 어이쿠, 여긴 벽이 아예 다 나가버렸네.”


도스마르크의 워해머가 벽을 스친 흔적을 만지작거리며 경비대원이 얼굴을 찌푸렸다. 싸움의 여파로 어질러진 주변을 대충 다 둘러본 그가 캐트시에게 다가갔다.


“일단 두 분 다 따라와 주셔야겠습니다.”


“네? 하지만 잘못은 이 사람이...”


캐트시가 억울한 얼굴로 항변하려 들자 아빌라드가 그녀의 어깨를 붙잡아 말렸다.


“알았소. 나는 그녀와 동행관계이자 목격잔데, 같이 따라가도 상관은 없겠지?”


“맘대로 하십쇼. 증언을 해줄 사람은 여럿일수록 좋은 법이니까.”


영문을 모르겠다는 태도를 보이는 캐트시를 겨우 진정시킨 아빌라드는 경비초소에 가서 어떤 이유로 이런 사단이 났는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해주었다.


경비대원은 처음엔 미심쩍어 했지만 여관주인 반즈를 불러내 증언을 대조한 끝에 아빌라드의 증언을 받아들이고 도스마르크와 그의 부하들을 수감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싸움 뒤에 입수한 돈은 우리에게 주시죠.”


캐트시가 이것도 넘겨줘야 돼? 라는 표정으로 아빌라드를 쳐다봤다. 아빌라드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그녀는 못마땅해 하면서도 결국 도스마르크의 돈주머니를 경비대원에게 건넸다.


여전히 불만이 가득한 표정의 그녀를 아빌라드가 억지로 초소 밖으로 끌고 나가자 도스마르크가 실실 웃기 시작했다. 그는 보통 죄인이 아닌 것을 감안하여 온 몸을 쇠사슬로 결박당한 상태였는데, 그런 모습으로 웃어대니 경비대원 입장에선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이 미친 놈. 뭐가 좋다고 웃어대?”


“저 늙은이, 분명 이름이 아빌라드라고 했지?”


경비대원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랬지.”


“크크크, 어쩐지 염병할 노인네가 전혀 겁먹지 않은 게 이상하다 했더니. 그 인간을 상대로 사지 멀쩡히 감옥에 잠깐 썩는 거라면 얼마든지 환영이지.”


“아는 사이인가?”


“내가 일방적으로 알 뿐이지. 저 양반 옛날엔 기사였어. 군주도 영지도 없는 자유기사라서 그렇게 명성이 드높진 않아도, 실력 하나만큼은 진짜였지. 아는 놈들만 아는 인물이라고 할까.”


그의 말대로, 경비대원은 그가 누구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오히려 이 도스마르크라는 정신나간 용병이 괜히 미친 소리를 하는 것 아닐까 의심하던 차였으니까. 그러나 쇠사슬로 묶여 잘 움직이지도 않는 몸을 꼼지락대며 도스마르크가 다시 웃어대기 시작했다.


“딱 잘라 말해서 나 같은 건 순식간에 도륙을 내버릴 수 있는 양반이야. 그런 작자랑 싸움이 붙어서 무사히 살아나왔는데, 당연히 웃어야지!”


곧 지하감옥으로 끌려갈 놈의 웃음에 넌더리가 난 경비대원은 한시라도 빨리 도스마르크를 감옥에 가두기 위해 보고서를 서둘러 마무리했다.



&



“으으으으! 이건 이상해요! 무례한 짓을 한 것도, 잘못을 한 것도 저쪽인데 왜 우리까지 이런 취급을 받는 거예요?”


조사를 마치고 반즈와 함께 셋이서 여관으로 돌아가는 길, 캐트시는 여전히 분하다는 듯이 꼬리를 빳빳이 세우고 있었다. 반즈는 그것을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봤고, 아빌라드가 그녀의 의문에 대답해주었다.


“너희 종족과는 달리 우리에겐 절차라는 게 중요해. 경비대원 입장에선 네 말만 무작정 믿을 순 없는 거니까.”


“그리고 돈! 돈은 왜 가져가는 거예요? 우리가 강도라도 되는 줄 알았나?”


“법대로 따지면 강도행위로 보일 수도 있지. 어찌 됐든 경비대원들이 그 돈으로 벽이 날아간 주민에게 배상할 거야.”


“아르키잔은 정말 불편하게 사네요. 그중 몇몇은 정말 무례하기 짝이 없기도 하고요.”


“그건 미안하게 됐군.”


본의 아니게 종족의 대변자가 된 아빌라드가 심심한 사과를 전하자 캐트시도 아차하며 태도를 누그러뜨렸다.


“아, 아니에요. 아빌라드 씨처럼 친절한 분도 있는 걸요.”


“그런가.”


자신이 그녀에게 그 정도로 친절했던가? 아빌라드는 그에 대해선 약간 의문이 들기도 했다. 식사를 사준 것은 자기가 원하는 정보를 듣기위한 것이었고, 그 뒤로는 일방적으로 따라다니는 캐트시의 말에 대꾸해주었을 뿐인데.


그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하는 와중에, 반즈가 어색한 침묵을 깨고 방정을 떨었다.


“이야, 그나저나 이루프 아가씨도 만만찮게 실력이 좋구만. 저 도스마르크를 제압하다니 말이야.”


“헤헤, 그런가요? 운이 좋았나 봐요.”


“운이라니! 다 실력이지! 겸손하기도 해라.”


“헤헤헤”


그녀의 빳빳하던 꼬리도 다시 살랑이고 있었다. 어쨌거나 그녀의 기분이 풀어져서 다행이라고 아빌라드는 생각했다. 그렇게 가벼운 발걸음으로 여관에 돌아오자 안에 있던 사람들이 술잔을 치켜들며 환호했다.


“드디어 왔네!”


“아깐 굉장했어. 아가씨!”


“저 아가씨에게 맥주 좀 가져다주쇼. 내가 살 테니까.”


“아니, 내 이름으로 달아둬!”


워낙 환호성이 커서 누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구분이 안 갔지만, 여관의 사람들이 캐트시에게 호의적인 건 확실해 보였다. 그녀는 쑥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종업원이 내민 맥주잔을 받아들었다.


“아, 감사합니다.”


“아니! 우리가 감사하지. 아까 저 무뢰배들이 들이닥쳤을 땐 얼마나 놀랐는데.”


“그래. 난 까딱하면 재수 없게 객사하는 줄 알았다니까.”


그들의 이야기로 미뤄보아 아까 도스마르크와 그 일당이 여관 안에서도 행패를 부린 모양이었다. 애초에 그 부하들이 아빌라드에게 까불다 얻어맞은 곳이 바로 이 여관이었으니 당연한 수순이었겠지만.


캐트시는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가 가운데에서 술을 벌컥벌컥 들이키기 시작했고, 그걸 구경하는 이들이 박수와 찬사를 보냈다. 구석진 곳에 앉아 그것을 가만히 구경하던 아빌라드에게 반즈가 맥주 두 잔을 들고 다가왔다.


“당신은 저기에 끼지 않는 건가?”


“오늘의 영웅은 누가 봐도 저 아가씨니까. 애초에 낮에 내가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미안하게 됐군.”


반즈가 손사래를 치며 껄껄 웃었다. 아빌라드는 그가 건넨 맥주를 받아들고 한 모금을 들이켰다.


“시비를 걸어온 놈 잘못이지. 이 지랄 맞게 흉흉한 도시에선 흔한 일이요. 우리 여관이 그래도 이 도시에선 점잖은 양반들이 많이 찾는 곳인데, 그런 놈들 혼쭐 내주는 걸 마다할 이유가 있겠소?”


그렇게 말하고 반즈는 맥주를 마시고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낮에 보여준 무위를 생각해보면 저 이루프 아가씨가 없었다 해도 당신이 모조리 해치웠을 것 아니오?”


반즈가 너스레를 떨자 아빌라드가 피식 웃으며 그와 잔을 부딪쳤다.


“하하! 혹여나 낙스빌에 들리는 지인이 있다면 얘기 좀 잘해주쇼.”


“기억해두지.”


그 뒤로도 몇 가지 시덥잖은 농담과 소문을 얘기해주던 반즈는 주방에서 날아드는 아내의 따가운 눈초리에 다시 돌아가 버렸다. 다시 혼자 남았지만 아빌라드는 개의치 않고 잔에 남은 맥주를 들이켰다.


그새 한잔을 다 비웠는지 캐트시는 자신의 머리위로 빈 맥주잔을 들어 올리며 소리를 질러댔다. 그에 맞춰 사람들이 갈채를 보내자 싱글벙글하며 춤을 추는 캐트시. 경비대원과의 마찰로 생긴 불만은 벌써 다 잊은 것 같았다.



&



날이 지나고 아침이 밝았다. 침대에서 바로 일어난 아빌라드는 방에 두었던 자신의 장비와 짐을 모두 챙기고 여관의 로비로 걸어 나왔다. 언제 일어난 것인지 주방 안에선 반즈와 그의 아내가 아침식사로 내오기 위한 요리에 열중하고 있었다.


길쭉한 바게트를 한 손으로 집기 좋은 크기로 다 썰어놓은 반즈가 주방을 나와 아빌라드에게 빵 한 조각을 내밀었다.


“바로 떠나는 거요?”


“이곳에서 볼 일은 다 봤으니까. 원래 제작을 맡길 생각으로 왔는데, 그 대장장이가 칼리고로 떠났다더군.”


“아아, 락스퍼를 찾던 거였군.”


“아는 사람이었나?”


“그냥 이 도시에서 꽤나 유명했던 대장장이였으니까. 지금 남아있는 제임스도 그렇게 나쁜 실력은 아니지만, 락스퍼 그 친구는 다른 도시에서도 곧잘 찾더군. 그도 그럴게 북대륙 출신이라서 이름값이 워낙에 높은 탓이었을 거요.”


바게트를 한입 베어 물던 아빌라드의 눈동자가 커졌다.


“북대륙 출신의 대장장이라, 치체니어인가?”


치체니어는 북대륙에서 사는 종족이다. 강철과 지식의 신 모지프를 섬기며, 대장간에선 네 개의 팔을 써서 항상 품질 좋은 물건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유명했다. 무기상들 역시 치체니어의 작품이라면 두 말하지 않고 높은 가격으로 사들이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래. 확실히 팔이 네 개 달린 것을 봤으니, 치체니어가 맞을 거요.”


“용케 서대륙까지 건너 왔군. 북대륙에선 상당히 통제를 많이 받고 있는 걸로 아는데.”


언제나 고품질의 물건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유명한 치체니어는 북대륙 내에선 굉장히 핍박받는 종족이다. 고품질의 무구를 만들어내는 것과는 별개로, 그걸 다룰 만큼 무술에 뛰어난 개체가 무척이나 적기 때문에 북대륙에서 사는 다른 종족들에게 붙잡혀 무기를 찍어내는 노예 취급받는 경우가 많았다.


“뭐, 어딜 가나 별종은 있는 법이잖소.”


“그건 그렇지.”


그렇게 아빌라드와 반즈의 대화가 마무리될 때 쯤, 테이블 중 하나에서 무언가가 주섬주섬 몸을 일으켰다. 반즈는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피했고, 아빌라드는 테이블에서 꼼지락꼼지락 나오는 그것을 살펴보았다.


짙은 주황빛의 털, 기품 있게 살랑대는 꼬리, 먼지가 탄 드레스 셔츠와 몸에 들러붙는 바지. 그리고 그 지저분한 몰골 속에서도 멀쩡히 색이 바라지 않은 장화까지. 캐트시였다. 아빌라드는 반즈를 쳐다보는 것으로 이 이해 못할 상황을 설명해달라고 할 참이었지만, 반즈가 먼저 치고 들어왔다.


“아, 글쎄. 잔뜩 취해서는 저기서 꼭 자야겠다고 고집을 피워서 그런 거요.”


캐트시는 그 둘이 그러거나 말거나 하품을 하며 눈곱을 떼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잿빛용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재개 공지 22.05.05 25 0 -
공지 연재관련 공지 +1 19.01.14 85 0 -
31 9. 그만둬야 할 때(2) 22.05.28 17 0 13쪽
30 9. 그만둬야 할 때(1) 22.05.22 19 0 12쪽
29 8. 드래곤킵(7) 22.05.18 19 1 12쪽
28 8. 드래곤킵(6) 22.05.15 25 1 13쪽
27 8. 드래곤킵(5) 22.05.12 20 1 13쪽
26 8. 드래곤킵(4) 22.05.11 22 0 13쪽
25 8. 드래곤킵(3) 22.05.09 22 1 12쪽
24 8. 드래곤킵(2) 22.05.07 28 1 16쪽
23 8. 드래곤킵(1) 22.05.06 28 0 13쪽
22 7. 갈라드식 접대(3) 22.05.05 30 0 12쪽
21 7. 갈라드식 접대(2) 19.01.13 117 1 12쪽
20 7. 갈라드식 접대(1) 19.01.12 68 4 12쪽
19 6. 오래된 벗(4) 19.01.11 70 2 12쪽
18 6. 오래된 벗(3) +2 19.01.10 75 1 15쪽
17 6. 오래된 벗(2) 19.01.09 67 1 13쪽
16 6. 오래된 벗(1) 19.01.09 88 0 12쪽
15 5. 커다란 그림자(2) 19.01.08 89 1 13쪽
14 5. 커다란 그림자(1) 19.01.08 89 1 12쪽
13 4. 미련(3) 19.01.07 77 1 13쪽
12 4. 미련(2) +2 19.01.06 86 4 12쪽
11 4. 미련(1) 19.01.06 87 5 12쪽
10 3. 이상징후(2) +2 19.01.05 113 5 12쪽
9 3. 이상징후(1) 19.01.05 109 1 12쪽
8 2. 동행(3) 19.01.04 129 2 12쪽
7 2. 동행(2) 19.01.04 111 4 12쪽
6 2. 동행(1) 19.01.03 126 5 13쪽
» 1. 낙스빌(4) 19.01.03 158 3 12쪽
4 1. 낙스빌(3) 19.01.03 149 4 13쪽
3 1. 낙스빌(2) 19.01.03 194 5 13쪽
2 1. 낙스빌(1) 19.01.02 234 6 13쪽
1 Prologue. 약초꾼과 사냥꾼 +5 19.01.02 392 7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